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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하이엔드 오디오 씬이 재미있다. 재미있다 못해 뜨겁기까지 하다. 그 흐름을 대충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하이엔드 오디오의 터주대감은 미국이었고, 영국의 일부 메이커가 합류한 모양새였다. 그러다 2000년대에 들어와 독일을 비롯, 스위스, 덴마크 등 중부 유럽쪽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더니, 요즘에는 동구권까지 그 열기가 전해지는 형국이다.

 

실제로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폴란드,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터키, 그리스 등에서 인상적인 브랜드가 출현하는 가운데, 이번에는 불가리아가 등장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일대 격전장이 된 것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아마도 2020년대가 되면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도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하이엔드 브랜드가 여럿 나오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는 어떤 수준의 오케스트라를 소유했는가가 국력의 척도였다면, 지금은 어느 레벨의 하이엔드 메이커를 갖고 있나로 판단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각설하고, 불가리아! 대체 우리가 불가리아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일까? 아마 제일 먼저 요거트를 떠올릴 것이다. 공기 좋고, 물 맑은 장수 국가라는 이미지도 있다. 대략 면적을 보면 11만 평방 킬로미터. 우리 남한 땅보다 약간 더 큰 수준. 그러나 인구는 고작 740만에 불과하다. 힐링 여행으로 가면 딱 좋을 농업 국가다. 그런 데에서 하이엔드?

 

사실 하이엔드 오디오를 만들려면, 높은 수준의 공업 기반이 필수다. 그런 면에서 쓰랙스(Thrax)라는 브랜드의 탄생은, 1991년 구소련에서 독립한 후 독자적인 생존의 길을 걸어온 불가리아라는 국가의 아이콘이나 다름없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불가리아는 IT와 컴퓨터 쪽에 상당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 구소련 체제하에 코메콘(COMECON : Council for Mutual Economic Assistance)이라는 경제 공동체가 운영되고 있었는데, 여기서 불가리는 IT쪽을 담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구의 실리콘 밸리는 이때 얻은 별명이다. 이후 구소련이 몰락하고, 코메콘이 붕괴되면서 새롭게 국가 시스템을 정비, 고도의 하이테크한 산업을 육성해왔다. 특히 BAS(Bulgarian Academy of Science)라는 대학을 만들어, 공업쪽에 강력한 투자를 한 것이 서서히 빛을 발하는 형국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쓰랙스라는 하이엔드 메이커가 탄생하기에 이른 것이다.

 

 

한편 쓰랙스를 주관하는 루멘 아르타르스키(Rumen Artarski)씨로 말하면, 편집증적으로 완벽주의를 표방하는 분이다. 원래 수입상을 하면서 세계 유수의 브랜드를 섭렵하다가, 이런 메이커들에 만족하지 못하고 직접 제조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주변에 우수한 인재들이 많은 덕분에, R&D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생산 과정 자체를 매우 꼼꼼하게 챙기면서, 짧은 시간에 전세계가 주목하는 메이커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브랜드는 그리 낯설지 않다. 특히, 뮌헨 하이엔드 오디오 쇼에서 여러 번 대면한 바가 있는데, 매우 퀄리티가 높고, 뉘앙스가 풍부한 음에 놀란 적이 많았다. 외관의 디자인이나 만듦새도 뛰어나서 독일이나 스위스제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불가리아산이라는 말에 잠시 당황한 적도 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내에 런칭되는 만큼, 그 귀추가 주목된다.

 

쓰랙스의 아이덴티티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기술 중심주의라고나 할까? 그러나 막연히 테크놀로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근거와 이유를 갖고 개발하는 것이 특이하다면 특이할 것이다. 참고로 동사의 생산 시스템이 재미있다. 엔지니어 한 명당 대략 2개 정도의 모델을 할당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손에 맡기는 것이다. 이것은 전통적인 장인 정신을 계승한 모양새고, 반복되는 제조 끝에 얻게 되는 높은 숙련도는 제품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진공관을 골자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공관? 그렇다. 특히, 3극관에 관해선 아낌없는 애정을 표하고 있다. 여기엔 아마도 오디오파일로서 루멘이 체험한 여러 브랜드에 대한 느낌도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을까 싶다. 홈페이지에 가보면, 직접 몇몇 메이커에 대한 언급이 눈에 띤다. 우선 일본의 높은 진공관 앰프 제조력에 찬사를 보낸다. 특히, 와박(Wavac)의 시시도 상이나, 오디오 노트의 곤도 상에 대한 경배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리고 왜 이들이 이렇게 멋진 진공관 앰프를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탐구도 나온다.

 

결론은 웨스턴 일렉트릭. 즉, WE에서 비롯된 여러 기술을 갈고 닦아서 발전시킨 결과라는 데에 시선을 모은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엔 심플한 디자인을 치고 있다. 사실 이런 방향 선택은 그리 쉽지 않은 접근법이고, 어느 정도의 내공과 혜안이 필요하긴 하지만, 오랜 오디오파일로서의 경험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넬슨 패스의 경우, 비록 TR을 쓰지만, 역시 심플한 회로 구성으로 풍부한 음악성을 획득하는 부분을 놓치지 않고 있다.

 

 

 

여기서 왜 3극관이 5극관보다 뛰어나냐, 이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쓰랙스에 따르면, 3극관에 싱글 엔디드 방식이 가장 리니어한 반응을 이끌어낸다고 한다. 5극관의 경우, 더 디스토션이 많고, TR도 테스트해보면 5극관 수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동사는 3극관을 쓰되, 푸시풀 방식을 고집한다. 물론 싱글 엔디드가 자연스러운 음을 연출하지만, 하모닉 디스토션이 발생했을 때 이를 통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푸시풀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트랜스포머도 빼놓을 수 없다. DC가 출력관에 전달되는 과정을 한번 살펴보자. 당연히 전원 트랜스부터 통과하는데, 그 안에 있는 코어를 거치면서, 일종의 자성화(Magnetise) 성격을 띠게 된다. 이것이 오디오 시스템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동사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에어 갭”(Air Gap)을 코어 안에 도입해서, 자성화의 여지를 아예 없애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코어가 커져야 하고, 코일의 사이즈도 커져야 한다. 따라서 전체 앰프 사이즈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출력을 감안하면, 예를 들어 20W 수준에서 완벽하게 만든 트랜스가 있다고 하자. 이것을 80W 수준에서 똑같은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트랜스를 고안한다? 이것은 거의 불가능한 영역이다. 동사는 이것을 극복하는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으니, 이 부분에서 놀랄 따름이다.

 

 

 

 

논 네거티브 피드백 방식을 추구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예를 들어 증폭 과정에서 에러가 발생하면, 피드백을 통해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2차 하모닉에서 발생한 에러는 피드백을 거치면 4차 하모닉이 되어 더욱 인간의 귀를 자극한다. 이것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피드백 자체를 없애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일체 피드백을 걸지 않을 경우, 여러 문제점도 나타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제안하는 것이, 신호 처리 과정을 보다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통상 앰프를 구성할 때 보면, 프리앰프는 3개의 스테이지, 파워 앰프는 4개의 스테이지가 기본이다. 이것을 보다 간략화시킬 경우, 디스토션이 2~3배 더 저감되는 것이다.

 

 

당연히 전원부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통상 콘덴서와 트랜스포머를 동원해서 전기를 채우고 또 방사하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는데, 이것이 단순히 전기적인 동작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즉, 여기에 음성 신호도 관계된 것이다. 따라서 전원부가 부실하면, 단순히 힘이 딸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디스토션 레벨도 증가하게 된다. 이 부분을 커버하기 위해 콘덴서를 분산 배치한다거나 트랜스포머에 많은 물량을 투입해서 새로 설계하는 등, 여러 고안이 이뤄지고 있다. 

 

 

 

앰프의 출력에 대한 언급도 흥미롭다. 통상의 리스닝 룸에서 최대 음압으로 플레이할 경우, 피크 SPL는 110~112dB에 이른다. 그러나 맨날 펑펑 큰 소리를 듣는 경우는 드물고, 보통은 86~93dB의 SPL로 듣는다. 이럴 경우, 통상의 노이즈 레벨은 24~26dB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한번 이렇게 생각해보자. 스피커의 감도가 82~86dB에 이른다고 할 경우, 클래스 D 방식의 설계로 된 파워 앰프를 쓴다고 하면 약 400W의 출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통상의 리스닝 룸에서 원하는 SPL을 얻을 수 있다.

 

 

반면 88~93dB 정도의 감도를 가진 스피커를 쓴다고 하면, 100W 이상이 절대 필요하지 않다. 108~112dB의 혼 타입 스피커라고 하면, 3~6W면 충분하다. 이런 내용을 알고 동사의 제품과 스피커를 매칭하면 보다 효과적인 결과물을 얻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동사는 스피커도 제조하고 있는데, 3웨이의 경우 아예 우퍼부를 액티브로 만든 것이 흥미롭다. 아마도 이런 내용을 알기 때문에, 그런 조치를 하지 않았나 싶다.

 

 

 

 

동사는 DAC, 포노앰프부터 프리, 파워 앰프는 물론 스피커까지 만든다. 여기서 꼭 언급할 것이 DAC다. 그런데 이 DAC는 일반적인 앰프 회사들이 구색을 맞추기 위해 만든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전문적인 디지털 연구원을 둔 것과 함께 MSB의 기술력도 충분히 가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DAC를 만든다고 할 때, 몇 가지 문제점이 제기된다. 우선 변환 과정 그 자체가 중요하다. 또 변환이 일어나기 전의 과정, 이른바 DSP도 빼놓을 수 없다. 클록이나 타이밍 역시 지터와 관련되어 무시할 수 없고, 멀티 비트 방식이냐 싱글 비트 방식이냐 역시 논쟁거리에 속한다. 

 

우선 변환 과정에서 동사는 32비트라는 높은 사양으로 데이터를 처리하고 있다. 이것은 에러를 줄이는 데 무척 효과적이다. 또 지터를 저감하기 위해 어떤 클록을 쓰느냐도 문제가 되는데, 동사에 따르면 쿼르츠 오실레이터 방식을 제대로만 쓰면, 오디오용으로는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멀티 비트 방식을 채택하면서, 동사는 MSB에 특주한 다이렉트 DAC 칩을 채용하고 있다. 그 결과 무려 384KHz까지 오버샘플링이 이뤄지고 있다.

 

DAC 과정 후, 이른바 OP 앰프를 어떻게 꾸미느냐도 큰 관건이다. 어떤 메이커는 풀 디스크리트 회로로 풀어내서 제안하기도 하는데, 동사는 특이하게도 트랜스포머를 사용하고 있다. 즉, DAC에서 출력단을 분리시킨 후, 트랜스포머를 통과하게 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IM 디스토션을 제거함과 동시에 불필요한 대역을 잘라내고 있다. 상당히 선진적인 발상이 아닐까 싶다.

 

 

현재 동사의 라인 업을 보면, 프런트 엔드에는 DAC로 막시미누스(Maximinus)가 있고, 포노 프리로 오르페우스(Orpheus)가 있다. 프리앰프는 디오니소스(Dionysos)라 명명했는데, 매우 레벨이 높은 볼륨단을 탑재하고 리모트 컨트롤로 조정이 가능하도록 했다. 

 

 

 

 

파워 앰프는 세 종이 있는 바, 우선 스파르타쿠스(Spartacus)부터 보자. EML 520v3라는 3극관을 사용한 클래스 A 방식의 모노 블록이다. 8오옴에 70W의 출력을 낸다. 이어서 테레스(Teres)가 있는데, 하이브리드 방식이다. 초단에 진공관을 사용하고, 출력단에 FET 계열의 TR을 쓰고 있다. 단, 일체 네거티브 피드백을 걸지 않았다. 채널당 250W의 출력을 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헤로스(Heros)가 있는데, 이것은 순 클래스 A 설계에 역시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100W를 낸다. 참, 입맛대로 고를 수 있는 다양한 제품군이 있다고 하겠다.

 

 

 

 

거기에 2웨이 북셀프 타입의 라이라(Lyra)라는 스피커가 있고, 그 위로 액티브 서브우퍼를 장착한 바수스(Ba년)라는 3웨이 타입의 제품이 있다. 이렇게 보면, 정말로 짧은 시간에 프런트 엔드에서 스피커까지 다양한 라인 업을 구축했다 하겠다. 

 

 

불가리아라는, 그리 친숙하지 않은 나라에서 온 제품이지만, 진공관을 중심으로 빼어난 퀄리티를 자랑하는 만큼, 향후 큰 반향을 불러오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무엇보다 음을 듣게 되면, 해상도가 높고, 뉘앙스가 풍부하며, 음악성이 뛰어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이와 관련되어, 앞으로 세계적인 하이엔드 메이커를 꿈꾸는 우리나라 메이커들에게도 쓰랙스의 성공 신화는 좋은 귀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반갑기만 한, 쓰랙스의 본격 런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