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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아, 그래요? 그런 말씀 하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그래도 실내악은 밸런스가 낫습니다. 

 

▷트랜스 덕일 겁니다. 트랜스 프리앰프는 사실 많은 제작업체들이 포기했습니다. 대충 만들었다가는 소리가 까칠해지기 때문이죠. 대신 저항과 콘덴서를 조합해 쓰는데 이렇게 되면 대역폭이 좁은데다 왜율이 증가해 또 필터회로를 만들어야 합니다. 게다가 부밍까지 일어나 음악을 듣다보면 금세 피곤해집니다. 

▷(뒷줄 왼쪽부터) 전원트랜스, 초크트랜스, 그리고 출력트랜스 레프트(left), 라이트(right). (앞줄 왼쪽부터) 정류관 6X4, 레귤레이터, 인풋트랜스 레프트, 증폭관 5687(E182CC), 인풋트랜스 라이트. 이렇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왼쪽부터 전원트랜스, 정류관 6X4, 출력트랜스 레프트, 증폭관 5687(E182CC), 출력트랜스 라이트 순입니다. 초크트랜스는 내부에 들어가있습니다.   

 

-트랜스는 직접 만드시나요? 

▷출력트랜스는 직접 동선을 감아 만듭니다. 동선은 독일제 코일입니다.(직접 코일을 보니 그야말로 머리카락처럼 가늡니다!) 보통 진공관 프리에 없는 게 바로 이 출력트랜스입니다. 

 

▷네. 입력신호를 증폭해 양쪽 출력트랜스로 반반씩 나눠 보내줍니다. 

 

▷그게 좀 아쉬운 부분입니다. 밸런스나 언밸런스나 모두 미국 GE 것을 씁니다. 아무래도 유럽 것이 좋습니다. 뮬라드 것으로 바꿔 들어보실래요? (밸런스 버전의 GE 5687을 뮬라드 E182CC로 바꾸니 역시 음이 달라집니다. 무엇보다 윤기가 반짝반짝 나는 것을 귀가 단박에 알아챕니다)

▲Platinum-T1 밸런스

 

①소스기 = 맥북프로(오디르바나 플러스+아이튠즈)

②DAC = 브리카스티 M1 DAC

③USB&DC 전원장치 = BOP L12 

④DAC 받침대 = 시너지스틱 Tranquility Base

⑤프리앰프 = 메타뮤직사운드 플래티넘 T1

⑥파워앰프 = 아방가르드 XA Power amplifier

⑦스피커 = 아방가르드 DUO G2

 

 

▲Platinum-T1 밸런스

플래티넘 T1(아, 여기서 T는 진공관을 뜻하는 ‘Tube’의 약자입니다. 증폭관을 하나만 써서 T1이라고 합니다)에 물린 파워앰프는 독일 아방가르드 XA인데 채널당 출력 150W(8옴)에 무게가 42.5kg이나 나가는 헤비급 스테레오 파워입니다. 이에 비해 플래티넘 T1은 밸런스 버전이 5kg, 언밸런스 버전이 4kg입니다. 스피커는 모양부터가 눈길을 확 사로잡는 위풍당당 혼 스타일의 아방가르드 듀오 G2입니다. 맨 위에 7인치 돔형 미드레인지 드라이버에 27인치 스페리컬 혼을 달고, 밑의 별도 인클로저 상단에 1인치 트위터+7인치 혼, 그리고 액티브 타입의 10인치 서브우퍼 2발(250W)을 내장한 높이 160cm에 무게 79kg짜리 스피커입니다. 주파수응답특성은 중고역이 170Hz~20kHz, 서브우퍼가 18~350Hz, 음압은 104dB. 

 

▲Platinum-T1 밸런스

아방가르드 파워앰프와 듀오 G2에 물린 플래티넘 T1은 사실 눈으로 찾기 힘들 정도로 작은데다 외관마저 소박합니다. 밸런스 버전의 경우 폭 334mm, 높이 145mm, 안길이 190mm, 무게 5kg, 언밸런스 버전의 경우 폭 334mm, 높이 145mm, 안길이 154mm,  무게 4kg입니다. 밸런스 버전 상판이 2열 구조로 돼 있기 때문에 언밸런스 버전보다 안길이가 36mm 더 깊습니다. 외모는 별도 장식, 하다못해 장식 나무나 다른 컬러의 노브도 없이 그냥 아노다이징한 알루미늄 표면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어 호불호가 갈릴 게 뻔합니다. (아직 출시는 안됐지만 플래티넘 T1과 호흡을 맞출 모노모노 진공관 파워앰프 펜토드 플래티넘도 안길이와 무게만 빼놓고는 엇비슷합니다. 폭 31cm, 높이 22.5cm, 안길이 33cm, 무게 21kg. 이 파워앰프는 출력관으로 KT88을 4발 써서 채널당 70W 출력을 냅니다.)

▲Platinum-T1 밸런스

 

 

청음은 플래티넘 T1의 밸런스 버전, 언밸런스 버전 순으로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비교를 위해 아방가르드 XA 파워앰프와 쌍으로 나온 아방가르드 XA 프리앰프로도 교체해 들어봤습니다. 청음곡(앨범)은 다음과 같습니다. 청음이 즐겁다보니 평소보다 더 많은 곡을 듣게 됐습니다. 

 

①피레스, 뒤메이, 지안왕 ‘브람스 피아노 3중주 1,2번’(1996. DG)

②줄리아노 카르미뇰라, 유쾌한 마르카 합주단 ‘비발디 사계’(1994. Divox)

③샤를 뮌슈 지휘, 보스톤심포니오케스트라 ‘생상스 오르간 교향곡’(1959. RCA)

④제니퍼 원스 ‘The Hunter’(1992. Private Music)

⑤페터 막 지휘,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 ‘멘델스존 스코틀랜드 교향곡’(1960. Decca) 

⑥이슈트반 케르테츠 지휘, 빈필 ‘신세계 교향곡’(1961. Decca)

⑦라파엘 쿠벨리크 지휘, 베를린필 ‘신세계 교향곡’(1973. DG)

⑧박주원 3집 ‘Captain’(2013)

⑨두네딘 콘소트 ‘브란덴부르크 협주곡’(2012. Linn. 24비트 192kHz)

⑩에이비슨 앙상블 ‘비발디 사계’(2009. Linn. 24비트 192kHz)

⑪아트 블레이키 ‘A Night At Birdland, Vol.1’(1954. Blue note)

⑫캐롤 키드 ‘All My Tomorrows’(1985. Linn. 24비트 192kHz)

⑬에밀리 바커 ‘Dear River’(2013. Linn. 24비트 96kHz) 

 

샤를 뮌슈가 지휘하고 보스톤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생상스의 오르간 교향곡에서는 무엇보다 이 곡이 녹음된, 근처에는 얼씬도 못해본 보스톤심포니홀의 크기가 느껴져 내심 당황했습니다. 오케스트라를 약간 내려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중세 쾰른 성당(이곳은 1995년 베를린영화제를 참관하러 갔다가 우연히 들러본 적이 있습니다)의 환영. 그 만큼 이 죄그만 프리앰프의 사운드 스테이징이 훌륭하다는 것이겠죠. 무대가 워낙 투명하게 펼쳐지다보니 장중히 바닥을 기는 오르간의 음은 더욱 순결하게, 마치 천상의 소리처럼 들렸습니다(아방가르드 혼 스피커의 덕도 꽤 봤을 겁니다). 

‘Rock You Gently’에서는 제니퍼 원스가 완전 정중앙에 나타납니다. 그녀가 노래를 부르기 위해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에는 등에 소름마저 끼칩니다. 킥드럼의 리듬감도 상당합니다. 음의 가닥수가 면발처럼 쏟아져나옵니다. 아주 풍성합니다. 아니, 이 표현으로는 부족합니다. ‘풍성’(rich)에 ‘물기’(liquid)를 더했다는 뜻에서 ‘풍윤’합니다. ‘Somewhere, Somebody’에서는 차륵차륵, 드르륵 드르륵 퍼커션 소리가 생동감 있게 들립니다. 제니퍼 원스와, 백보컬로 참여한 맥스 칼의 보컬 대비가 극명합니다. 여자와 남자가 거의 어깨를 부딪힐 정도로 바싹 붙어서 노래를 하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두 보컬의 차이가 또렷합니다. 뭉개지거나 애매하지가 않습니다. 제니퍼 원스가 이 노래를 부를 때 비음이 약간 섞여있다는 것도 이날 처음 알았습니다. ‘Way Down Deep’에서는 보컬이 무대 약간 아래에서 들립니다. 심지어 바닥을 기는 초저역의 주인공, 킥드럼의 재질이 분명 플라스틱이고, 표면은 아주 팽팽하게 당겨져 있을 것이며, 이를 때리는 망치는 보드라운 헝겁에 쌓여있을 것 같은 느낌마저 생생합니다. 단언컨대, 이날의 이러한 진기한 체험의 80%는 프리앰프가 선사해준 겁니다.  

 

스코틀랜드 교향곡에서는 널찍한 무대가 순식간에 펼쳐지는 바람에 아주 깜짝 놀랐습니다. 콘서트홀의 중간보다 약간 앞쪽에 앉아있는데 이상하게 공간감이랄까, 공기의 밀도감이랄까, 이런 것들이 머리 위로 좌악 펼쳐집니다. 역시나 왜 클래식 음반 프로듀서들이 킹스웨이홀을 선호하는지, 마이크 녹음에 관한 한 왜 데카 사운드가 전설로 남아있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또한 예전 스펙트랄 프리앰프(DMC-12, DMC-30SS) 때 느낀 것이지만, 프리앰프의 주파수응답특성이 광대역에 걸쳐있고 평탄할 때, 악기음색의 디테일이 오롯이 살아나는 것을 이번 플래티넘 T1에서 다시 깨달았습니다. 악기음색의 디테일? 말이 어려워서 그렇지, 다들 아실 겁니다. 이게 바로 ‘귀맛’이라는 것을요. 

 

▲Platinum T1 밸런스

이쯤에서 아방가르드 XA 파워 + 듀오 G2 칭찬을 곁들여 플래티넘 T1 얘기를 하자면, 이들이 펼쳐내는 다이나믹스가 그야말로 상급입니다. 작고 미세한 소리는 포만감을 주고, 트럼펫처럼 박력있고 큰 소리는 순식간에 공복감을 줍니다. 세상에 롤러코스터도 이런 롤러코스터가 없을 겁니다. 그래서 급히 골라본 케르테츠의 신세계 교향곡 투티 부분에서는 모골이 송연해졌습니다. 마치 사운드 이펙트 트랙을 듣는 듯했거든요. 이에 비해 애청반 중 하나인 쿠벨리크의 신세계 교향곡은 절제미와 단정함을 내세웠지만 전체적인 힘이 상대적으로 약간 모자란 듯해 내심 속상했습니다.  

 

분위기를 바꿔 박주원의 ‘승리의 티키타카’입니다. 역시 여지없습니다. 박주원이 쳐대는 어쿠스틱 기타줄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습니다. 24비트 음원인 두네딘 콘소트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에서는 음 하나하나가 선명하고 또렷하게 들립니다. 그러면서도 음의 가닥수가 무지 많아 꽉찬 카스테라의 맛이 느껴집니다. 확실히 이 음원의 녹음장소는 교회가 아니라 스튜디오입니다. 역시 24비트 음원인 에이비슨 앙상블의 ‘사계’에서는 저역이 과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풍성한 음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홀로그래픽 이미지라 이름 붙일 만합니다. 아트 블레이키의 1954년 버드랜드 실황 녹음인 ‘Split Kick’에서는 아주 신나 자유분방하게 불어제끼는 트럼펫 소리가 귀에 착착 감기고(심지어 간드러지기까지!), 베이스와 하이햇은 어깨를 저절로 들썩이게 만듭니다. 블레이키의 드럼 솔로에서는 “아주 제대로 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난장이 펼쳐집니다. 드럼이 실물크기로 나타납니다. 간만에 재즈클럽에 온 느낌 그대로입니다. 

 

-파워앰프를 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출력 임피던스(600옴, 밸런스 버전)가 낮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파워 입장에서 부담감이 없는 겁니다. 임피던스가 높으면 고역이 깎일 위험이 크죠. 

이번에는 언밸런스 버전입니다. 사실, 밸런스 버전을 이미 몇 시간에 걸쳐 들었던 터라 언밸런스 버전의 플래티넘 T1에게는 눈길도 안가고 기대도 크게 안했습니다. “굳이 안 들어도 되는데...” 이런 심정으로 생상스의 오르간 교향곡을 다시 들었습니다. 소심해진 것인지, 조심하는 것인지 싶을 정도로 역시 스케일이 적어졌습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제 청음노트에 이런 단어가 ‘저절로’ 쓰여지는 겁니다. ‘차분, 정돈, 순백, 정결..’ 새로운 매력의 여성을 보자 곁에 잘 있던 애인이 미워지는 그 못된 습성이랄까요. ‘그러고보니 아까는(밸런스) 있는 그대로를 까발리는 듯했어!’ 옆에 있던 지인이 거듭니다. ‘좀 강했지?’ 어쨌든 오르간 교향곡은 ‘이 언밸런스 버전 프리를 좋아할 사람도 있겠구나’ 정도로 넘어갔습니다. 

 

멘델스존의 스코틀랜드 교향곡. 다 아시겠지만 이 곡은 한민족 특유의 한의 정서가 쉽게 상통하는 곡인데, 언밸런스 버전의 플래티넘 T1이 그야말로 제격입니다. 프리가 나름 최선을 다한 것일까요, 아니면 교묘히 착색을 한 것일까요. 밸런스 버전보다 유려하며 디테일은 더 살아나고 애달픔은 더해졌습니다. 지긋이 눈을 감고 음악을 계속 듣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이 언밸런스 버전에 있었습니다. 아트 블레이키의 ‘Split Kick’에선 재즈 특유의 업비트가 더 부각되고, 사운드 재생에 불필요한 힘을 뺀 탓인지 경쾌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날 결국, 청음실에서는 언밸런스 버전의 플래티넘 T1 불빛이 더 오래 켜져 있었고, 며칠 후 저는 온수역행 1호선에 올라타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