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홍콩 영화 <무간도>를 보다 보면, 오디오파일들이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장면이 나온다. 오디오샵 주인 양조위가 손님 유덕화에게 진공관앰프 소리를 들려주면서 고가의 케이블을 연결해놓고 다소 오만한 전문용어들을 날리면서 유덕화의 표정을 살피는데, 잠시 듣던 유덕화는 매장에 있던 다른 케이블을 가져와서는 바꿔서 들어보자고 한다. 다음 순간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양조위에게 유덕화는 말한다. ‘옛날 노래에는 이 케이블이 더 좋다’고… 양조위의 그 넋 나간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는데, 주변의 오디오파일들에게서 유사한 표정을 마주칠 때면 <무간도>의 양조위가 떠오르곤 한다. 

어느 방식이 주류가 된다거나 정답이 된다거나 하는 게 없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반듯하게 진행중이라는 게 현재 하이엔드 케이블 시장을 설명하는 방식이 될 것 같은데, 그 중에서 재질 자체를 고순도 소재를 채택해서 여타의 부가 설계를 최소화시키는 방식은 하이엔드적이기도 하고 점차 무언가 새로운 제어를 첨가해왔던 것 과는 정반대의 방식이 된다. ‘가공의 최소화를 통한 고순도의 추구’는 케이블 제조로서는 그 자체로 꽤나 설득력있는 방식으로 보인다. 이런 방식을 선도한 제조사로 PSC가 존재한다.   

 

‘Pure Silver Connection’을 의미하는 PSC는 회사 이름에서 이미 은선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PSC 는 최근 모 통계에서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일인당 국민소득을 기록한 풍족한 ‘호주’ 출신이다. 잠시 오디오파일들의 주의를 환기시켜 보자면, 호주는 대량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핼크로나 던텍 등의 셀러브리티들을 배출한 하이엔드 강국 중의 하나이다. 인근 뉴질랜드의 플리니우스까지 가세하면 꽤나 알찬 스테디셀러들을 거느리고 있다. 케이블 제조사로서는 PSC가 필자가 아는 유일한 브랜드라고 보인다. 

PSC의 대표인 마크 모즈가와(Mark Mozgawa)는 케이블 이외에도 ‘WHT’ 브랜드 스피커의 개발자이기도 하다. 그는 독일 스튜디오에서 10년간의 레코딩경력이 있으며, 대략 25년 정도의 오디오 전용 케이블 관련 이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마크 레빈슨 등의 일부 하이엔드 CEO 들이 그래왔듯이 마크 모즈가와 또한 첼로와 바이올린, 그리고 기타 등을 연주하는 뮤지션 이력도 갖고 있다. 이런 연주자들이 종종 그렇듯이 현장에서의 어쿠스틱이나 실제 악기의 음색에 꽤나 친숙해 있어서 PSC의 제품 제작시에 과장이나 왜곡이 없는 실제의 소리가 반영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동사에서 표방하는 이상적인 오디오 케이블이란 ‘음반에 녹음된 신호의 손실이 없는 채로의 자연스러움’이다.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인지도를 감안해 볼 때, PSC는 지면광고나 마케팅으로 제품을 전면에 내세우는 정책보다는 그리 소란스럽지 않고 조용히 20년 가까운 명성을 쌓아왔다. 제품의 등급 자체가 초 하이엔드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이엔드 케이블 유저의 특성에 근거한 독자적인 방식을 채택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PSC의 제품은 스테레오파일 인터커넥터와 스피커케이블 부문에 지속적으로 추천되어 왔다. 특히 프리스틴 R50 스피커 케이블, R30 인터커넥터 등은 관록의 평론가인 래리 그린힐의 레퍼런스 케이블로 오랜 동안 그의 시청리스트에 등장하고 있다. 

선재와 그 제조방식에 대해 주로 얘기하려니 얘기가 좀 따분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내용은 PSC 제품의 핵심이다. PSC는 자신들이 제작하는 전 제품에 걸쳐 최고의 선재를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특히 은을 기본소재로 하는 회사특성에 따라 타사제품과 차별화되는 4N 등급을 기본으로, 최대 9N 등급의 고순도 은을 사용해서 제조하고 있으며 이 9N 실버 제련방법은 특허 출원중이라고 한다. 이러한 특별한 재료와 가열방식을 통해 균열이 생기지 않는 괴를 만드는데, 보석가공 수준의 수작업 공정을 거치지만 기계를 이용한 대량생산을 하지 않는 점이 보석가공과 다른 점이다. 

원재료 가공 이후의 PSC의 제품 제조 방식은 자사 홈페이지에 비교적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요컨대 전 대역에 걸쳐 임피던스 특성이 적도록 설계해서 서로 다른 다양한 사용자의 환경에서도 동일한 전송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제작한다는 것을 마스터플랜으로 하고 있다. 다양한 사용자의 제품에 따른 변화율이 낮고 환경변화 특성이 우수해서 소리의 변화에 민감한 오디오파일들일수록 기존에 사용하고 있는 제품과의 차이점을 쉽게 느낄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에너지 로딩이 크지 않게 제작되어 맑은 재생 특성에 우수한 한편, 특히 낮은 대역에서의 댐핑이 덜 걸리도록 제작해서 저역을 풍성하게 만들거나 하는 성향은 아니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은선의 장점을 그대로 담고있다. 아울러 스피커 케이블의 경우 다양한 스피커의 크로스오버에서 음색변화가 적으며, 다이나믹의 변화를 좀더 정확하게 재생하고, 마찰음을 더 자연스러운 프레즌테이션으로 표현하며, 전반적으로 좀더 응집력있는 사운드품질의 제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본 모노리스(Monolith) XLR Mk1은 순은 선재로 제작된 PSC의 플래그쉽 제품이다. 3년에 걸친 고순도 정제방식의 성과로서 호주산 9N 등급의 고순도 은을 확보할 수 있었고, 3-6회 반복 가열 및 냉각 과정을 통해서 리본타입으로 넓은 단면적의 띠형태의 선재로 제작했다. 이 과정에서 균열을 없애기 위한 수많은 시행착오는 유사 은선브랜드들이 접근하기 힘든 영역을 쌓아놓았는데 시드니 대학 재료공학팀과의 공동작업으로 진행된 본 방식은 현재 4개의 특허가 출원되어 있다. 

후반부에 부연하겠지만 PSC의 제품설명을 보다 보면, 고순도 은을 최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이론 기반 - 도체에 대한 상당히 다양한 이론과 논문 등 - 을 폭넓게 동원해서 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제품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근거자료를 적소에 제시하고 있다. 본 제품은 외관이 상당히 눈에 띄게 디자인되었다. 유광 실버톤의 크로코 스킨(통칭 악어가죽) 패턴은 제품은 물론, 전용 파우치에도 디자인되어 있어서 기본적으로 화려한 느낌을 준다. 제품의 등급으로 보아 실제 악어가죽을 사용 못할 리는 없지만, 케이블 피복용의 소구경 원통형으로 제작하기에는 부작용이 많아서 아마도 PU 재질을 사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필자가 아는 남반구의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디자인이다. 

 

앤드류 맨츠가 연주하는 바하의 관현악 모음곡 중에서 ‘Air’는 앞서의 경우보다 단정함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그 이상이 있었는 지 몰랐던 뒷 배경이 좀더 정숙해져 있어서 더욱 그런 느낌이 강화된다. 그리고 선명하고 미세한 곡면의 묘사가 대단히 뛰어나다. 미세한 그라데이션으로 그려진 소묘를 보는 듯해서, 현이 반듯이 나가지 않고 비틀리거나 이탈하는 경우가 바로 모니터될 것만 같다. 원래 그럴 일이 없는 이 곡을 연주 내내 과도하게 장식하거나 모호하게 처리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없다. 낮은 대역에서의 다이나믹스는 좀더 치밀해져 있어서 전 대역의 이동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게 되었다.

스크로바쳅스키와 미네소타 심포니가 연주하는 브루크너 교향곡 9번 스케르초 도입부 또한 모범적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감성적으로 흐른다던가 감정이 치우치게 만든다기 보다 므라빈스키가 지휘봉을 잡고 있는 것처럼 절도있고 일사분란한 스피드로 투티로 몰아간다. 긴밀한 스타카토와 그림자 같은 베이스가 한 몸처럼 움직이는 도입부에서도 다른 뉘앙스가 느껴지며 마치 북쉘프 스피커에서와 같은 위상일치를 보여준다. 슬램으로 시작되는 대편성이 되자 모노리스가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음량과 다이나믹스가 변동하는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빠른 속도로 늘어난 정보량을 유연하게 쏟아낸다. 낮은 대역은 강렬하고 거침없으며, 짧은 순간에도 고역이 순간 순간 잘 피어오름을 느끼게 해준다. 혼탁해질 것에 대한 불안감 없이 유연한 곡면을 움직이듯 대편성을 쉽게 쏟아 놓고 있다. 예상과 달리 대편성에서 돋보이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헤레베헤와 콜레기움 보칼레가 연주하는 바하 칸타타 중에서 ‘Was Willst Du Dich, Mein Geist Entsetzen’은 전후간 입체감이 좀더 정교해져 있다. 특히 현악기의 찰랑거리는 느낌은 앞서와 뉘앙스가 많이 달라져 있다. 좀더 얇은 패널들이 일정한 간격을 왕복하며 미세하게 찰랑거린다는 느낌을 준다. 스트록시의 두터움과 윤기가 줄고 음이 끝날 때마다의 광채가 생겨났다. 하모닉스도 다소 감소해서 잔향이 짧아져 있으나 섬세한 새김은 좀더 극명해져 있다. 특히 컴팩트한 잉글리쉬 혼의 음색이 실제 거리에 있는 악기 사이즈로 느껴지며 생동감이 더해져 있다. 듣기 좋은 음의 촉감이면서도 좀더 바삭거리는 회고조의 분위기가 되었다.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의 고전 ‘Killing In the Name’과 같은 강한 훅을 가진 곡에서도 모노리스의 가치는 적극적으로 부각되었다. 스피드가 뒷받침되어서일까? 공격적이고 분명한 느낌의 베이스리프가 좀더 번득이며 빛을 발한다. 해머를 휘두르는 듯한 베이스리프가 창의 움직임처럼 날카롭게 파고드는 듯 하다. 명쾌한 스트록과 함께, 소리가 들리는 건 아니지만 바람을 가르는 듯한 동작의 느낌이 선명하다. 톰 모렐로의 오버드라이브 가득한 기타 또한 시스템에 따라 뉘앙스를 달리하는 부분이다. 음표 하나를 빠뜨리거나 하면 바로 파악될 만큼 빠른 리프에서도 동작과 입자의 느낌이 선명하다. 가늘게 느껴지는 리프이지만 초킹의 아찔한 느낌도 음끝까지 선명하게 연주한다.

머룬 5의 ‘Moves Like Jagger’는 특유의 업 비트가 선명한 윤곽으로 바닥을 내리닫으며 악기를 늘려간다. 펑키 그루브가 생동감이 더해져 최상의 상태가 되어있다. 빠르지만 둔탁하거나 거칠지 않고 매끄럽고 유연한 선을 그리며 옥타브를 이동한다. 아담 레바인의 머리가 약간 작아져 있는 듯 느껴지는 컴팩트한 음상이 또렷한 포커싱을 보이며 이동한다. 음량이 크게 이동하는 곡이 아니지만 빠른 패시지에서도 미세한 음의 차이도 또박 또박 잘 들린다. 투명하고 명쾌한 이 곡의 장점을 부각시키면서 고급스러운 공기의 흐름이 주위를 감돌고 있다.

 

PSC에서 제조시에 가장 중요시하는 포인트를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제조방식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동사의 케이블에 대한 분명한 소신, 예컨대 케이블은 이래야 한다… 는 개념이 잘 설명되어 있어 보인다.

 

다수의 케이블 제조사들이 테플론을 공기 이외의 최고의 절연물로 소개하고 있는데, 공기를 완벽한 절연체로 사용하려면 도체를 금이나 은으로 제작했을 때 가능하다. 동은 공기와 만나면 산화된다는 단점말고도 다른 많은 절연물에 반응한다는 문제가 있다. 반대로, 은은 쉽게 산화되지도 않을 뿐더러 산화된다하더라도 그 자체로서 훌륭한 도체이다. 황에 노출되면 도체가 검게 되는데, 도체에 공기가 섞이거나 공기를 통한 오염이 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된 PSC의 은선은 이와 무관하다. 

공기 순환이나 접촉이 없으면 은은 오염되지 않는다. PVC, 테플론 같은 다른 절연체들은 신호전송에서 왜곡을 일으킨다. 테플론의 단점은 테플론 분말을 녹여서 액화상태로 도체를 도포시키려면 화씨 600도 이상의 고열이 필요한데, 이 온도는 도체용 동에 주석코팅을 할 경우 주석과 동 모두를 산화시킨다는 데 있다. 대부분의 케이블 제작자들 6N, 7N이라고 주장하는 무산소동은 실험실에서 단지 몇 초 동안만 가능한 것들이다. 그만큼 동은 빠르게 산화되어 성능이 저하된다. 

 

PSC 케이블은 Litz 구조, 단심선, 트위스트 방식 등의 세 가지 방식의 조합으로 제작된다. 독립시킨 개별 도체들(Litz)은 여러 가닥으로 뭉쳐진 경우(연심선)에 비해서 높은 대역 전송에 유리하다. 비합금 도체는 일반 전송에 비해 대전류와 높은 대역의 전송에 유리하다. 트위스트 방식으로 다양한 실험을 거친 PSC의 제품은 다시 40종의 하이엔드 제품을 통해 테스트를 거쳐 제작되었다. 

 

잠시 환기할 사안은 1미터 길이의 이 제품의 대략적인 가격이 2천만원대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인터커넥터 부문에서는 필자가 아는 실텍의 ‘왕실’ 시리즈나, 카르마의 이니그마 라인업 등도 이 가격대에는 다소 못 미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반적인 하이엔드에 사용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가격대의 제품이다. 그 이유는 이미 설명한 바, 9N 등급의 순은선재를 사용한다는 점과 선재의 가공방식, 그리고 무엇보다 공기를 유전체로 사용하는 저항 제로 설계 방식에 대한 투자비용 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청을 해보면 익숙한 이 곡에서 또 뭔가를 더 듣겠는가 싶은 상황을 잠시 후에 전환시키고 음악을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자연스러움을 추구하지만 강한 존재감을 포함한 자연스러움이라는 데 본 제품의 의미가 있다. 

시청을 진행하면서 이 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 사용자는 제한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과 동시에 시스템 또한 케이블 가격 이상의 등급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케이블 매니아들에게는 조금 다른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을 수도 있어 보인다. 좀더 다양한 연결을 통한 시청 또한 필요해 보인다. 디지털 기기와 프리앰프 사이에 사용하면 좀더 확연한 결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경이로운 투명함과 떨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시청을 거듭할 수록 아직 필자가 발견한 것은 일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