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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쇼가 열리는 8월 초는 그야말로 무더위가 절정에 달할 때다. 무엇보다 습도가 엄청나서 잠시 거리에 나오면 온통 땀에 젖는다. 그러다 찬바람이 씽씽 부는 실내로 들어오면 갑자기 시베리아에 온 듯하다. 감기 걸리기 딱 좋은 순간이다. 나는 이런 무더위를 체질적으로 싫어하지만, 홍콩 쇼가 바로 이 시기에 열려서 어쩔 수 없이 참는다. 그래도 정신없이 쇼장을 다니다 보면, 나름 재미있는 부스도 발견해서 사진 찍기에 바쁘다. 그중 한 군데가 참 묘하다.

일단 부스에 들어서면 주위가 환해진다. 마치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온 듯, 풋풋한 아가씨들 여럿이 스피커 옆에 나란히 서 있는 것이다. 그 각각이 하나씩의 스피커를 옆에 끼고 활짝 웃음 짓는데, 거기에 그만 녹고 만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관람객들도 마찬가지. 갑자기 카메라 셔터 소리가 소나기 쏟아지듯 터진다. 한꺼번에 수십 명이 몰아쳐서 눌러댈 때엔 무슨 전쟁이라도 벌어진 것 같다.

그러다 나는 아주 흥미로운 제품을 하나 발견했다. 온통 금박으로 장식된 물건이다. 세상에 많은 스피커를 만났지만, 온통 금으로 바른 스피커는 처음이다. 그런데 그 자태가 결코 만만치 않다. 워낙 중국인들이 금을 좋아해, 그런 허점을 노려서 제작한 것 같지는 않다. 그냥 메이커의 컨셉이 그런 것이다.

나중에 나는 아가씨들이 없어서 부스가 비었을 무렵, 그 스피커를 들으러 갔다. 차분히 앉아서 집중해보니 여간한 내공이 아니다. 전대역이 마치 풀레인지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베일을 여러 겹 벗겨진 듯한 신선함에다가 특히 개방적인 고역이 무척 아름다웠다. 이런 음은 저렇게 금박으로 무장한 디자인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리고 그 메이커가 엠메(Emme)라는 것도 알았다. 엠메? 금시초문이지만, 아무튼 흥미로웠다.

이번에 하이파이 클럽 시청실에서 만난, 어찌 보면 흉물스럽기까지 한(?) 자태의 스피커가 바로 엠메에서 만든 최신작이라는 것을 알고 우선 웃음부터 나왔다. 정말 이 사람들 대단하구나. 하긴 이런 자태는 보는 이에 따라 무척 고급스럽고 세련되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엠메는 밀라노산이다. 세계 패션계를 좌지우지하는 도시가 아닌가? 나는 수차례 밀라노를 방문한 바 있고, 특히 대성당의 우아하면서 압도적인 자태에 수도 없이 입이 벌어진 바 있다. 대체 어떻게 저런 건축물을 사람이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거기에 수많은 명품이 늘어선 몬테 나폴레오네 거리부터 알찬 브랜드가 가득한 브레라 지구에 이르기까지, 눈요기 하나는 정말 톡톡히 한다. 또 밀라노는 아르마니의 본산지여서, 이곳에서 마시는 커피 맛은 각별하기도 하다. 바로 그 밀라노에서 만든 스피커가 엠메인 것이다.

엠메의 특징은, 무엇보다 빼어난 인클로저 제작 솜씨에 있다. 워낙 손재주가 뛰어나고, 장인이 득실거리는 이태리지만, 엠메의 지극정성엔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제품의 종수가 적고, 생산량도 극히 미미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의 공정이 정교한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엠메의 제품을 구매한다는 것은, 몬테 나폴레오네에 진열된 명품을 얻는 것과 다름없다고 하겠다.

우선 그 지난한 제작 공정을 간략히 살펴보자. 일단 CNC 머신으로 가공한 MDF를 적측하는 구조로 캐비넷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그 MDF의 두께나 재질에서 조금씩 차이가 난다. 이것은 인클로저 자체의 공진 방지나 댐핑에 관련된 것으로, 매우 현명한 접근법이라 하겠다.

여기서 금박이라고 하면, 얇은 금이나 은 혹은 동을 이파리처럼 엷게 펼쳐서 인클로저를 감싸는 공정을 말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오로지 사람의 감각과 손길을 필요로 하는, 지극히 까다롭기 짝이 없는 내용을 갖고 있다.

실제로 이 기술은 이태리의 중세 및 르네쌍스기에 개발되어, 오로지 장인-도제식의 관계에서만 전수가 되고 있다. 특히 이파리를 붙이기 전에 행하는 작업이 바로 “미씨오네” (missione)인데, 오일과 레진 등 여러 물질을 섞어서 골고루 인클로저 위에 바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칠이 마르기전에 한 번에 이파리를 덮어야 한다. 그 타이밍과 감각이 얼마나 섬세하고 정교해야 할지는 물어보나 마나.

여담이지만 바로 이 기술에 착안한 클림트가 자기 그림에 이런 금박을 화려하게 수놓아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바 있다. <키스>나 <유디트> <성취> 등 후반기에 나온 걸작들은 전적으로 이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수법이 엠메에 동원된 것이다. 이런 역사와 자존심이 있는 기술을 오로지 중국 부자 몇 명을 위해 썼을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엠메의 특징은 그들이 PSX, BSSE 등으로 부르는 몇 가지 기술로 요약된다. 우선 PSX로 말하면, 패럴렐 크로스오버라는 기법을 동원해서, 두 개 이상의 우퍼가 각각의 독립성을 갖고 작동하게끔 만드는 데에 핵심이 있다. 거기에 되도록 대역을 넓힌 트위터의 존재도 빼놓을 수 없다.

한편 BSSE는 인클로저에 관계된 것으로, 이른바 밀폐형이라 부르는 박스를 제조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그게 대충의 밀폐형이 아니다. 이들은 아예 봉인했다고(sealed) 주장하는 바, 전술한 수 차례의 래커 및 페인트 칠로, 아예 밀봉해버린 것이다. 그게 고도의 공진 방지 및 댐핑에 관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이들의 외관은 좀 이상하다. 받아들이기에 따라 기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밀한 계측과 연구 끝에 나온 형상으로, 특히 두 대의 스피커가 서로 연동해서 빼어난 3D 이미지 및 포커싱을 연출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일단 음을 들어보면, 마치 풀레인지를 듣는 듯한 일체감과 뛰어난 음장감에 놀라게 된다.

본 기의 경우, 아직 홈페이지에 오르지 않을 정도로 최신작이면서 플래그쉽 모델이다. 개당 무게가 80Kg이나 할 정도로 무겁고, 센서티비티도 86dB에 불과하다. 게다가 메이커에선 최소 300W의 출력을 요구하고 있다. 결코 호락호락한 물건이 아닌 것이다.

본 기의 시청을 위해 앰프는 스펙트럴의 DMC-30SS 프리와 DMA-360 파워를 동원했고, 소스기로는 브리카스티 M1과 오렌더 W20의 조합을 사용했다. 참고로 시청 트랙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첫 곡으로 들은 프로코피에프. 이렇게 으슬으슬 한기가 밀려오는 때에 더 없이 적합한 곡이다. 왜냐하면 더 추워지니까. 우선 눈을 감으면 시베리아의 삭막한 풍경이 떠오른다. 거기에 첼로 하나가 처연하게 노래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데 오케스트라와 첼로의 앙상블이 지극히 자연스럽다. 스피커의 구조상 우려할 수밖에 없었던 중고역과 저역의 타임 얼라인먼트에 하등 문제가 없다. 완전한 일체감을 갖고 움직인다. 또 음색 자체가 지성적이라고 할까? 일체 과장이 없이 조용히 다가온다. 그러면서 깊은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정말 만만치 않은 실력이다.

베토벤 - 교향곡 5번 운명 1악장 -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
Ludwig van Beethoven - Symphony No,5 C minor. op 67 - Herbert von Karajan, Berlin Phil

이어서 베토벤의 유명한 5번. 듣자마자 깜짝 놀랐다. 전 오케스트라 단원이 일체 흐트러짐 없이 움직인다. 누구나 아는 테마를, 우선 바이올린군이 솜씨 좋게 휙휙 긋고 나면, 관악기가 거침없이 받아서 터트린다.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중간중간에 교묘한 베어리에이션이 들어가 정신없이 몰아친다. 그 스피드와 대역 밸런스, 청량감, 다이내믹스 등이 현란하면서 또 정교하다. 흥미진진한 재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