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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란 나라의 지도를 살펴보면, 마치 사람의 형상을 닮은 것 같아서 흥미롭다. 물론 여기서 팔 다리는 빼고, 목과 몸통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이중 얼굴에 대한 부분은 유틀란트 반도라고 해서, 덴마크가 상단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독일과는 무관하다. 그 이후, 목 부분에서 몸통에 달하는 쪽이 독일령인 셈이다.

여기서 독일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것이 프랑크푸르트이고, 베를린은 오른편 가슴 부위에 있다. 여기엔 드레스덴, 라이프치히 등, 동독 시절의 영토가 포함된다고 보면 된다. 반면 왼편 가슴을 보면, 그야말로 찬란한 리스트가 출현한다. 뒤셀도르프, 도르트문트, 하노버, 브레멘, 함부르크 등으로 이어지는 도시들은, 긴 역사와 빼어난 공업력을 바탕으로 독일이라는 전차의 엔진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데 이 지역에 숨은 보석이 하나 있으니, 바로 헤르포르트(Herford)라는 곳이다. 고작 인구가 6만6천에 불과하지만, 자체 오케스트라부터 성당, 연구소 등 없는 것이 없다. 여기에 자리잡고 있는 “T+A”는 아직도 우리에게 그 전모가 별로 밝혀진 바가 없다.

독일제 오디오가 인기를 끄는 우리나라에서 이것은 좀 기이한 현상이다. 왜냐하면 뮌헨 쇼를 중심으로 여러 차례 독일을 방문한 바에 따르면, 정말로 독일 많은 지역에서 T+A의 대리점을 만날 수 있고, 유럽이나 아시아권에서도 자주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브랜드가 이번에야 한국에 소개된다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T+A는 외관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탄탄한 독일의 장인 정신을 기반으로, 제품으로서 완전무결한 만듦새를 자랑하며, 내구성 또한 상당하다. 원래 독일인들이 뭘 하나 사면 정말로 꼼꼼하게 이것저것 따지는 게 많고, 한번 집에 들이면 여간해서 바꾸지 않는다. 즉, 제품으로 출시할 경우, 적어도 2~30년은 별 고장 없이 작동해야 한다. 거기에 음질도 중요한데, 사실 클래식 제국의 독일이 아닌가? 새천년에 들어와서 독일 브랜드가 승승장구하는 데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사운드 퀄리티와 테크놀로지 그리고 디자인이 적절히 조화된 부분이 가장 크게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 T+A는 그런 독일 브랜드 중에서도 정평이 있고, 가성비가 높으며, 긴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커라 하겠다.

이 회사가 설립된 시기는 1978년이다. 벌써 40년에 가까운 이력을 자랑한다. 또 소스기부터 스피커까지 심지어 여러 액세서리까지 다 만든다. 그러나 라인업이 너무 복잡하지는 않고, 일반 애호가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격대부터 하이엔드급까지 두루두루 만든다. 이번에 만난 제품들은 이중 플래그쉽에 해당하는 HV 시리즈에 속해있다. 참고로 그 밑으로, R과 E 시리즈가 런칭된 상태다.

HV 시리즈는 2013년에 정식 발표가 되어, 하나씩 하나씩 신제품이 출현하고 있다. 당초 PA3000 및 3100이라는 인티와 MP3000이라는 미디어 플레이어로 시작해서, 이번에는 프리, 파워 앰프 및 파워 서플라이라는 라인업을 공개하고 있다. 이번에 들은 것은 바로 이 세 가지 모델인 셈이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PS3000이라는 이름이 붙은 파워 서플라이다. 사실 오디오에서 전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고, 그 덕분에 다양한 전원 장치와 케이블이 시장에서 소개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별도의 파워 서플라이를 만든 이유가 뭘까?

사실 이 부분을 공부하면 공부할 수록 알게 되는 것은, 어떤 파워 서플라이를 만든다고 치면, 해당 제품에 거의 특화될 수록 효과가 좋다는 것이다. 통상의 전원 장치는 두루두루 다양한 모델을 커버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타협이 필요한 반면, 이번에 만난 PS3000이라는 파워 서플라이는 오로지 PA3100과 A3000에만 작동한다. 심지어 동사의 프리나 미디어 플레이어에 연결할 수도 없다. 기본 성격이 지극히 배타적인 만큼, 그 효과에 있어서는 따로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는 셈이다.

각설하고, 차근차근 이번에 들은 라인업부터 정리해보자. 우선 프리앰프로 P 3000 HV이 있고, 파워로 A 3000 HV 이 있으며, 파워 서플라이로 PS 3000 HV 가 있다. 여기서 3000이라는 영어 앞에 있는 대문자가 각각 Preamp, Amp, Power Supply라는 것을 모르는 분은 없으리라.

우선 위 라인업의 외관을 보면, 사이즈라던가 디자인 컨셉에서 일정한 통일성이 느껴진다. 이것은 과거 독일산 오디오를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또 그 디자인이 역시 독일제라는 느낌을 줄 정도로 약간 회고적인 느낌이 가미되어 있다. 일종의 레트로 풍이라고나 할까? 다만, 너무 화려하게 보이는 분들도 있을 터인데, 빛의 밝기를 조절할 수 있는 장치가 있고, 심지어 아예 꺼버릴 수도 있으니, 이 부분에 대한 우려는 너무 하지 않아도 좋을 듯싶다.

그럼 일단 P 3000 HV 부터 알아보자. 일단 프리앰프치고는 상당히 몸집이 크다. 그도 그럴 것이, 전원부에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솔직히 양질의 프리앰프는 볼륨단과 전원부가 핵심이다. 그러니 플래그쉽 모델로 만들어진 본 기에 어느 정도의 전원부가 투입되었을지는 불문가지.

기본적으로 본 기를 컨트롤하는 마이크로 프로세서 및 디스플레이를 담당하는 디지털 섹션과 순수한 오디오 파트인 아날로그 섹션을 완전히 분리해서 전원 공급이 이뤄지고 있다. 이 부분에서 일단 안심이 된다.

이어서 전면을 보면, 왼쪽에 셀렉터, 오른편에 볼륨 그리고 가운데에 디스플레이 창이 나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숨은 기능이 몇 가지 추가된다. 이것은 디스플레이를 터치해서 하나씩 조작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점에서 큰 메리트가 있다.

일단 톤 컨트롤이 가능하다. 취향에 맞게 베이스와 트레블을 조정할 수 있다. 또 라우드니스 기능이 있는 바, 이 또한 매우 요긴하다. 이를테면 스피커 감도가 떨어질 경우 라우드니스를 틀면 효과가 있다. 반면 너무 근접한 시청이 이뤄질 경우, 꺼버리는 편이 낫다.

한편 저역부, 즉, 20~500 Hz 사이는 세 개의 밴드로 나눠서 각각 조절할 수 있게 했다. 즉, 각각의 청취 환경에 맞춰서 저역의 양을 줄이거나 특정 대역을 미세하게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세팅이 너무 복잡하지 않으므로 큰 염려할 필요가 없다. 이를 위해 동사는 세팅용 CD라던가 윈도우를 통한 조작도 제안하고 있으니, 사용자를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볼륨단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리앰프의 음질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본 기에는 전자식 볼륨 컨트롤이 제공되고 있는데, 저항을 적절히 배열하면서 금도금이 된 릴레이까지 투입해서 미세 조정이 가능하다. 정확히 1 dB 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음량을 매우 섬세하고 포착할 수 있다.

한편 MM/MC를 지원하는 포노단을 옵션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한 평이 좋기 때문에, 별도의 포노단을 사용해도 좋지만, 이렇게 아예 기기 안에 장착하는 것도 좋은 방편이라 생각한다.

이어서 A 3000 HV 를 보면, 출력이 8오옴에 채널당 300W를 낸다. 그러나 높은 전압을 컨트롤할 수 있게 서킷이 준비되어, 무려 1000W급의 전원 트랜스가 배치되어 있다. 당연히 서킷과 트랜스간에 완벽한 아이솔레이션이 이뤄지고 있어서, 왜곡이나 간섭을 사전에 배제하고 있다. 출력 소자는 MOSFET으로, 여기에 온도 감지 센서까지 부착해서 과열이 될 경우를 항상 대비하고 있다.

한편 순동을 깎아서 로듐을 입힌 스피커 터미널은 상당히 호화스러운데, 무려 2조나 제공이 된다. 이것을 프런트 패널에서 온/오프 조작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두 조를 동시에 사용해서 바이 와이어링 할 수 있고, 또는 각각에 다른 스피커를 연결해서 그때 그때 선택해서 쓸 수도 있다. 이런 방식의 파워는 개인적으로 처음 만나서 무척 흥미롭다. 거기에 모노/스테레오 선택 사항이 있어서, 본 기를 모노 블록으로 전환해서 쓸 수 있다는 점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여기에 파워 앰프의 전류 및 전압의 핸들링 능력을 높이기 위해, PS 3000 HV 라는 파워 서플라이를 더할 수도 있다. 이 경우 특별히 출력이 올라가지 않지만, 안정성이 더해져 음질적인 장점을 보다 더 획득할 수 있다.

이번 시청은 위에 언급한 세 개의 기기에 동사에 PDP 3000 HV를 DAC로 사용했고, 네트웍 플레이어는 오렌더 N10을 동원했다. 스피커는 WHT의 PR2. 참고로 시청 트랙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사무엘 바버 <현을 위한 아다지오> 레오나드 번스타인

-차이코프스키 <호두까끼 인형> 찰스 매케라스 (지휘)

-아델

-마일스 데이비스

Samuel Barber - String for Adagio

Barber, Leonard Bernstein

우선 바버의 곡을 들으면, 구슬프고, 처연한 분위기가 절실하게 재생이 된다. 서서히 슬픔이 밀려들어 옴싹달싹 못하게 한다고나 할까? 현의 음색이 너무 밝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어둡지도 않다. 차분하고, 질서정연한 현악군의 움직임이 정교치밀하게 재생이 된다. 특히, 클라이맥스에서 치고 올라가는 부분은 가벼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승용차로 치면 배기량이 크면서 토크 능력도 상당하다고 할까? 스피커를 아무렇지도 않게 구동하고 있다.

Sir Charles Mackerras - Tchaikovsky Nutcracker

London Symphony Orchestra

이어서 차이코프스키를 들으면, 무대 위에 아름다운 발레리나가 춤추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음의 이탈감이 좋고, 전체적인 밸런스가 뛰어나서, 리얼 타임으로 음이 재생되고 있다. 특별한 컬러링이 일체 없이, 오로지 소스의 장점과 특색을 살리는데 주력하는 인상이다. 특히, 투티에서 몰아칠 때의 기세나 파워가 압도적이다. 어지간한 스피커는 모두 구동이 가능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Adele - Hello

Hello

올해도 그래미를 석권한 아델. 여기서는 너무 거칠거나 에지가 까칠까칠한 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잘 다듬어지고, 조율된 음이 나온다. 매우 노련한 튜닝 솜씨를 엿볼 수 있다. 또 처음 등장하는 피아노의 경우, 배음이 적절하고, 울림이 깊어서 그랜드 피아노 특유의 존재감을 잘 어필하고 있다. 중간에 고역으로 치달으면서 아델 특유의 파워가 폭발할 땐, 그 에너지가 차고도 넘친다. 굳이 가창력이라 표현하기는 뭐하지만, 아무튼 듣는 내내 어안이 벙벙할 정도.

Miles Davis - Bye Bye Blackbird

Kind of Blue

마지막으로 마일스의 작품. 사실 트럼펫이라는 악기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면 고역부가 찢어지거나 거칠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너무 온건하게 악기 자체의 맛이 없다. 그런 면에서 마일스 특유의 고상하면서 세련된 느낌을 살리면서도 적절한 금속성 느낌이 묻어있는 재생음은 인상적이다. 가볍게 움직이는 리듬 섹션을 따라 정말 흥이 한껏 고조된 연주를 만날 수 있다. 특히 베이스의 재생이 두드러져, 성큼성큼 워킹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포착된다. 더불어 시원스럽게 뻗는 심벌즈의 레가토는 더욱 스윙감을 고조시킨다.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감상할 수 있는 순간이다.

이 종학 (Johnny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