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오디오 애호가들에게 스피커를 선택하는 것은 상당한 중대사에 속한다. 취업이나 결혼, 이사 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오디오라는 취미를 놓고 보면 첫 번째로 중요한 항목에 속한다. 물론 그렇다고 전체 시스템에서 스피커에 제일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소스나 케이블류에 돈이 더 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스피커만큼 전체 시스템의 성격이나 목적을 결정짓는 컴포넌트는 없기에 선택에 애를 먹는 것이다.

그런데 이 스피커라는 것이 참 요물단지다. 개인적으로 정말 수많은 스피커를 접했지만, 뭐라고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이것대로 좋고, 저것은 저것대로 좋다. 행사나 설명회에서 가끔 쓰는 말이지만, “그 어떤 스피커도 완벽하지 않다”라고 한 데이빗 윌슨씨의 이야기는 정말로 명 대사에 속한다. 하긴 그래서 오디오라는 취미가 질리지 않고 재미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모든 스피커는 자기 나름대로 장점을 갖고 있다. 혼 스피커는 마이크로 다이내믹스가 뛰어나고, 북셀프는 공간감을 표현할 때 좋으며, 톨보이는 좁은 공간에서 저역을 충분히 뽑아낼 때 유리하다. 또 유닛들마다 개성이 넘쳐서, 비단 혼뿐 아니라 아큐톤이냐 다인오디오냐 스카닝이냐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여기에 크로스오버에 들어가는 부품까지 거론하게 되면 머리가 지끈 아파온다. 또 이런 스피커들은 모두 단점을 갖고 있다. 뭐는 이게 불만이고 뭐는 저게 불만이다. 예전에 어느 애호가 집에 갔더니 방에 11조의 스피커를 모셔두고 있었다. 피아노 들을 때는 요놈으로 하고, 대편성에는 저놈, 재즈에는 뭐 ... 저 양반 과연 제정신일까, 걱정부터 들었다. 정말로 하나의 스피커를 선택해서 애지중지한다면, 그 단점까지 보듬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오랫동안 살림을 차릴 수 있다.

 

그럼 이번에 소개할 T&F(정식으로는 Trenner & Friedl)의 엘라(Ella)라는 스피커의 장점은 무엇일까? 아주 간단하게 말한다면, 작은 공간에서 하이엔드급의 실력을 발휘하는 스피커라 말하고 싶다. 특히, 중고역의 나긋나긋함이나 고품위한 점은 어지간한 하이엔드 스피커들도 흉내내기 힘든 맛이 있다. 거기에 저역도 생각보다 튼실해서 클래식뿐 아니라 록, 가요, 재즈 등을 두루 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도 짚고 넘어갈 만하다. 특히, 재즈에서의 재생은 특필할 만한 부분으로, 나중에 시청기에 쓰겠지만 정말로 깜짝 놀랐다.

그럼 단점은 무엇일까? 일단 가격표가 부담스러울 것이다. 또 약간 왜소해 보이기도 한다. 적어도 사진상으로는 그렇다. 바닥을 쾅쾅 두드리는 저역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좀 더 알고 나면 그리 문제될 것도 없다. 뭔가가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그뿐 아닌가? 이 부분은 아무래도 글을 읽고, 행간의 의미를 생각하고 실제로 들어봐야 알 수 있으므로, 긴 설명은 피하겠다.

 

그런데 하필 모델명이 왜 엘라냐? 이 대목에 이르면 눈치 빠른 독자분들은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금세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전설적인 재즈 보컬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에서 따왔다. 감히 흉내내기 힘든 3옥타브에 걸친 광대역과 깊이 있는 울림은 듣는 순간 소름이 돋으며, 특히 루이 암스트롱과 벌인 일련의 레코딩은 재즈사의 찬란한 한 페이지를 장식한 바 있다. 감히 이런 레전드를 스피커명에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품질에 자신이 있다는 뜻도 되리라.

 

참고로 본 기의 시청은 지난 11월 말에 이뤄졌다. 그 후 자료를 검색하다가, 정확히 3년전인 2009년 11월에 T&F에서 만든 또 하나의 걸작 마일스(Miles)의 리뷰가 나온 점도 흥미롭다. 그러니까 정확히 3년의 간극을 두고 나는 T&F의 두 스피커를 모니터링한 셈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마일스로 말하면 본격파 3웨이인데다 크기도 작지 않으며, 가격도 상당해서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에 반해 본 기는 2웨이임에도 사이즈나 가격, 퀄리티 면에서 상대적으로 접근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므로 오히려 엘라부터 먼저 국내에 소개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오스트리아산 제품들이 조금씩 애호가들을 사로잡는 상황에서 어쨌든 T&F의 상륙이 반갑기만 하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마일스와 엘라가 커버하는 주파수 대역이 그리 차이가 나지 않다는 점이다. 전자가 25Hz~40KHz라면, 후자는 27Hz~40KHz다. 불과 2Hz 정도밖에 차이가 없다. 물론 양감이라는 점, 특히 마일스에 달린 10인치 구경의 우퍼가 내는 펀치력을 감안하면 청감상의 차이는 크지만, 어쨌든 스펙상으로는 대동소이하다.

그래서 자세히 유닛을 살펴봤더니, 마일스에는 미드에 6인치 아큐톤이 쓰인 반면, 엘라에는 6.5인치짜리가 쓰였다. 사실 아큐톤에 6.5인치짜리가 없고, T&F에서 밝힌 대로 특주한 모델이다. 바로 이 육반짜리 유닛이 이 어마어마한 스펙을 가능하게 만든 주인공인 셈이다. 세라믹을 소재로 한 아큐톤을 쓴 스피커는 수도 없이 접한 바, 가장 큰 장점은 왜곡이 극히 적다는 점이다. 또 해상력이 기가 막혀, 거의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빠른 리스폰스나 극적인 다이내믹스의 표현에 이르면, 그야말로 달리 할 말이 없는 유닛이기도 하다.

 

단 이 유닛을 극대화하려면 여러 조치가 필요한 바, 우선 단단한 인클로저는 필수고, 크로스오버에 문도르프의 부품을 빼놓을 수 없다. 당연히 엘라도 이런 기본은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또 내부 배선재에도 신경을 쓴 바, 카다스제 SE9 케이블이 동원되었다. 스피커 터미널 역시 순동으로 만든 카다스제다.

참고로 여기서 인클로저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워낙 민감하고, 정교한 유닛이기 때문에 인클로저를 대충 설계하면 그 악영향이 그대로 반영이 된다. 따라서 최대한 공진을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되도록 스피커의 폭을 줄이고, 안길이를 깊게 하는 대신 프런트 배플에 일정한 흡수 기능을 하는 장치를 배치하는 것이 좋다. 제일 좋은 것이 가죽으로, 본 기엔 최상급 승용차에나 쓰일 가죽이 도입되었다.

또 인클로저로 말하면 무려 6겹을 입힌 목재이며, 그 위에 7회에 걸쳐 래커칠을 실시했다. 한 눈에 봐도 럭셔리한 느낌이 우러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쉽게 말해 유닛의 장점을 극대화하면서 어느 정도 미적인 센스가 가미된 캐비넷이라는 것이다.

 

이전에 마일스를 소개할 때도 썼지만, T&F는 피터 트레너와 안드레아스 프리들 두 사람에 의해 운영된다. 둘 중 누가 디자이너인지 혹은 둘 다 디자이너인지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스피커에서 우러나오는 감성이나 예술성 못지 않게 정확한 데이터를 신경질적으로 추구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각종 계측 장비가 공장에 가득하며, 뭐 하나라도 맞지 않으면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바로 이런 디테일, 열정, 연구가 제품이 담겼기에 소비자들이 구매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그런 완벽주의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아무래도 본 기는 사이즈에 비해 다소 가격이 높다고 보는 분들도 있을 듯싶다. 하지만 음질을 놓고 보면 어지간한 하이엔드 부럽지 않다. 또 작은 공간에서 최고로 잘 조율된 음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싶다. 본 기의 시청을 위해 앰프는 에밀레의 참을 골랐고, 소스는 맥북 에어와 오라릭 ARK MX+ DAC를 동원했다. 시청곡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브람스 《교향곡 4번 1악장》 번스타인 지휘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1악장》 칼 뵘 지휘
-마일스 데이비스 《Bag's Groove》
-에릭 클랩튼 《Double Trouble》
 
우선 브람스를 들으면, 대편성임에도 악단이 일절 흐트러짐 없이 기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각 악기의 위치가 명료하고, 안길이도 깊으며, 뉘앙스 자체가 아름답다. 즉, 음 자체가 상당히 매혹적인데, 이런 것을 착색이라 말하지 않고, 예술성이라 표현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참과의 매칭도 괜찮다고 보는 바, 아큐톤이 너무나 정직하고 또 약간 차가운 맛도 있으므로, 진공관의 온기로 적절하게 보듬는 면이 청감상 괜찮다. 평생 고독하게 살다간 브람스의 내면이 잘 드러나는 재생이라 하겠다.

이어서 모차르트를 들으면, 역시 약간 밝고 경쾌한 모습 이면에 잠재되어 있는 불안이나 슬픔이 교묘하게 배어나온다. 그 점에서 확실히 트랜스듀서로서 본 기가 가진 실력이 잘 나타나고 있다. 또 음 자체가 상당히 럭셔리해서, 어린 시절의 모차르트가 뛰어놀던 쉔브룬 궁전에 온 듯하다. 하긴 이 정도 외관이면 와이프한테 잔소리 들을 일은 없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마일스를 듣고 깜짝 놀랐다. 혼 타입의 스피커에서나 가능한 생생함과 마이크로 다이내믹스, 디테일 등이 가감없이 나왔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마일스가 가진 다소 클래시컬한 트럼펫 톤이 그대로 살아있으면서, 녹음 당시의 약간 거칠고 어수선한 느낌도 잘 포착된다. 또 밀트 잭슨이 중간에 펼치는 화려한 비브라폰 솔로는 절실하게 마음에 다가온다. 재즈에서 이처럼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 제품은 드물기에 계속 감탄했다.

마지막으로 에릭 클랩튼. 40대 중반 무렵 일본 부도캉에서 벌인 라이브인데, 비교적 젊은 에릭의 수려한 솔로를 들을 수 있다. 록이라면 우선 피가 끓는 느낌이 있어야 하지만, 이처럼 오소독스한 연주가 주류를 이루는 록도 있다. 그런 부분에서 본 기가 가진 강점이 잘 살아있다. 어택감이 좋은 킥 드럼에 나른하게 흐르는 올갠 그리고 보텀 엔드를 확실히 지키는 베이스. 그래서 애드립할 때 에릭이 펼치는 화려한 핑거링, 초킹 등이 가감없이 드러난다. 적당한 날카로움과 에너지도 갖추고 있어서 집중하며 듣게 만든다. 엘라가 가진 잠재력이 상당하다고 느낀 순간이다.

 

이 종학 (Johnny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