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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시그널 전송에는 언밸런스 방식과 밸런스 방식이 있다. 언밸런스는 대개 RCA 방식이라고 불리는 2극단자로 마무리되고, 밸런스는 캐논 단자, 혹은 XLR 이라고 불리는 3극단자를 사용한다. 밸런스·언밸런스 전송의 장단점을 비교한다는 것은 이제 철지난 논쟁인가. 대부분 하이엔드 오디오 기기는 밸런스 전송을 기본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오디오 회로의 디자인도 이러한 밸런스 전송을 전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언밸런스만을 고집하는 오디오 제품도 존재한다.

밸런스 전송에 필요한 캐논잭, 즉 XLR 커넥터를 구비하고 있는 기계라고해서 언제나 풀 밸런스 회로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밸런스 시그널 전송에는 소위 “핫”(hot)이라고 불리는 정상신호와 “콜드”(cold)라고 불리는 역상신호를 동시에 보내고 받아야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회로가 복잡해지고, 기기의 가격이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무늬만 밸런스, 즉 단자는 밸런스이지만 그 내용은 언밸런스 회로에 기반을 두는 기기도 많은 것이다. 

게다가 밸런스 전송의 기본 방식으로 자리를 잡은 캐논잭의 경우 XLR 단재배열의 완전한 표준화가 이루어져있지 않았다. 유럽방식과 미국방식이 달랐는데 두 방식 모두 접지, 즉 어스 단자는 맨 왼쪽으로 고정되어 있으나 핫 시그널을 보내는 단자는 서로 달랐다. 통상적으로 맨 오른쪽 단자를 2번, 가운데 단자를 3번으로 명칭 한다면, 미국업체는 대개 3번을 핫 단자로 사용하는 반면 유럽업체들은 2번은 핫 단자로 사용하였다. 그런데 이 또한 공식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미국업체들과는 달리 오디오 리서치는 2번을 핫 단자로 디자인했고, 유럽의 브랜드 FM Acoustics는 반대로 3번을 핫 단자로 디자인했다. 마크 레빈슨이나 첼로 또한 2번을 핫 단자로 사용하는 것을 고수하고 있다.

서로 다른 핫 시그널 단자를 사용하는 기기를 서로 연결해도 소리는 나온다. 전기적으로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고의 음질을 추구하는 오디오파일 입장에서 문제는 단순치가 않다. 케이블에서 이러한 문제를 보정해주지 않는다면 (즉 2번을 3번으로, 3번을 2번으로 연결) 재생 시그널의 위상이 반전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위상이 반전되면 소리가 부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협주곡 레코딩의 경우 솔로이스트가 오케스트라 뒤에 서있는 무대가 연출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투자한 것만큼 원하는 최상의 음질을 얻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디지털 소스에서 위상은 매우 중요하다.

통상적으로 오디오파일은 밸런스와 언밸런스 단자의 기기를 연결하는데 있어서 가장 쉬운 방법으로 XLR-RCA 변환단자를 선택한다. 고급으로 마무리된 변환단자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뉴트릭 단자, 그걸 카다스 케이블로 마무리한 제품이 가장 인기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밸런스와 언밸런스 전송의 차이를 알게 된다면 별도의 변환기를 사용하는 것이, 소위 말하는 정공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 소개하는 Flex Connect라는 제품은 트랜스포머 테크놀로지를 근간으로 인풋·아웃풋에 각기 밸런스·언밸런스 단자를 제공함으로서 그 조합을 통해 파워앰프-프리앰프, 혹은 프리앰프-소스기기 간 시그널 체인에서 다양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변환기, 다시 말해서 커넥션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제품을 제작한 SMc 오디오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중소 오디오 디자인 생산업체인데 웹사이트를 들어가 보니 본 제품이외에도 트랜스포머를 기반으로 하는 프리앰프도 생산하고 있고, 미국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듯하다.

회사이름이 왜 SMc 인가했더니 설립자 겸 수석 엔지니어인 스티브 맥코맥 (Steve McCormack)의 이름을 줄여놓은 것이다. 오래된 오디오파일, 특히 미국을 드나들며 오디오를 했던 분들은 80년대 중후반에 등장했던 모드 스쿼드(Mod Squad)라는 브랜드의 제품을 기억할텐데 맥코맥이 바로 그 회사를 만든 장본인인 것이다. 원래 오디오 세일즈맨이었던 그는 후에 다이나코 앰프, 쿼드 405 앰프, 하플러 파워앰프를 개조·판매해서 이름을 알렸고 80년대 후반에는 직접 프리앰프, 포노앰프 등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실로 25년 만에 다시 접하는 이름이다.

전면과 후면이 동일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본 제품은 매우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데 이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언밸런스 RCA로 출력이 가능한 프리앰프와 밸런스 대응 파워앰프를 연결하거나 밸런스 단자 프리앰프를 언밸런스 파워앰프와 연결할 때, (2) 언밸런스 프리앰프의 출력단자를 긴 길이의 케이블로 파워앰프까지 연결해야 할 때 (임피던스가 높은 진공관 기기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3) 감도가 높고 게인이 많은 프리앰프의 볼륨 컨트롤을 충분한 음량으로 사용하기 위해 아웃풋 레벨을 감소시켜야 할 때 (4:1 비율), (4) 각종 소스기기의 밸런스 출력을 프리앰프의 언밸런스 RCA 입력으로 연결할 때, 그리고 (5) 각종 시그널 노이즈 (험, 버즈), 디지털 소스에 발생하는 컴퓨터 노이즈, 다중 접지에 의한 노이즈, 그리고 라디오 노이즈 (RFI) 등을 완전히 제거하는 용도 등이다.

일단 본 기기가 4:1의 비율로 출력 게인을 낮추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한다. 약 12db 정도 게인을 감소시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효율 스피커나 게인이 원래 낮은 프리앰프를 사용하는 이들에게는 사용상 주의를 요한다. 하지만 내장된 트랜스포머가 임피던스를 매칭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청감상 감쇄효과는 그리 극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한편 출력과 입력의 단자를 거꾸로 연결하면 4:1의 감쇄기능 대신 1:4의 증폭기능을 내어주는 기기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이론적으로 12db 게인을 더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이다. SMc 오디오에서는 이렇게 사용하는 것을 권하지 않고 있는데, 필자가 직접 실험해보니 음량이나 소노리티가 풍부해지는 효과는 있지만 디테일의 섬세함이 많이 감소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바람직하지 않는 사용방법이겠다. SMc 에 의하면 곧 1:1 게인 매칭 버전도 출시한다고 한다.

본 제품의 성능및 용도를 알아보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해보았는데 (1) 프리앰프와 파워앰프 사이에 장착해서 두 기기 사이의 게인 밸런스를 바꾸어보는 것 (XLR-RCA, XLR-XLR, RCA-XLR), (2) 서브시스템인 파이널 연구소 프리 파워 사이에 연결해서 (RCA to RCA) 고감도 혼 스피커의 노이즈를 얼마만큼 억제하는가를 알아보는 것, 그리고 (3) 포노앰프 하이게인 MC 입력 모듈에 연결 (75db 게인), 데논 102 모노 카트리지 (고출력) 에서 얼마나 정제된 소리를 만들어내는지 등이었다.

어떠한 용도로 사용하던 간에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본 기기의 특성은 노이즈 잡음을 현격하게 줄여준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운드 스테이지의 배경이 훨씬 정숙해질 뿐 아니라 소리의 가닥추림이 훌륭하게 제어되면서 디테일이 획기적으로 개선된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필자가 사용하는 105db 효율의 혼 스피커에서 히스 노이즈가 완전히 사라지는 경험, 그러면서도 프리앰프의 게인을 매우 높게 설정할 수 있다는 대목에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혼 스피커 특유의 쏘는 소리성향을 많이 안정시켜준다. 고역이 잘리는 게 아니라, 고급스럽게 연출된다고나 할까. 전체적인 음악의 밸런스가 안정되는 느낌을 준다. 특히 복잡한 화성의 대편성 관현악을 재생하는데 실력이 나온다. 돈값을 하는 제품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고감도 고효율 스피커에 게인이 높은 파워 프리앰프를 매칭하여 사용하는 오디오파일, 그래서 프리앰프의 볼륨을 8시 방향 이상으로 올리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음악을 듣는 이들은 일단 관심을 가져볼 기기이다. 어찌 보면 이 기기는 프리앰프의 개성을 극대화 하는데 필요한 재밌는 장난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RCA-XLR 변환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고 노이즈를 획기적으로 줄여준다는 이점도 있다. 이 기계가 필요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우선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로더, JBL, 탄노이, ALTEC 계열의 고감도 스피커를 구동하면서 빈티지, 최신기기를 가리지 않고 공격적 매칭을 즐기는 오디오파일의 모습이다. 필자는 본 기기의 1:1 게인 버전 출시를 기다려볼까 한다.

허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