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유혁준의 음악이야기
체코음악의 아버지 드보르자크

• 작성자 : 유혁준   • 등록일 : 2016년 12월 16일 금요일  • 조회수 : 4,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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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모자만 벗는다면 이마에 지혜가 있음을 알 수 있으리라."
"그래서 나의 영혼은 뮤즈가 그에게 은총을 내린 것에 큰 기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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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의 독일어권 국민 시인으로 알려진 휴고 살루스(Hugo Salus)의 시 ‘드보르자크’. 지난 5월 7일 방문한 프라하 북쪽 블타바(독일어로 몰다우) 강 상류에 위치한 안토닌 드보르자크(1841~1904)의 생가에는 이 시가 거실 벽면에 붙어 있었다. ‘체코 음악의 아버지’ 드보르자크. 그는 스메타나의 뒤를 이어 체코 음악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또한 스메타나, 야나체크와 함께 체코 민족주의 운동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다. 민족주의적인 어법과 교향악적 전통을 가장 잘 결합시키는데 성공했고, 다른 관현악 작품과 합창음악, 오페라 그리고 실내악 분야에서도 평생을 두고 조국 체코의 마음을 투영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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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예술의 도시 프라하를 품고 있는 체코. 그 역사적인 아픔은 우리와 비견된다. 1620년 체코 귀족들이 ‘하얀산의 전투’에서 합스부르크 제국에 패하고 이내 그 속국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언어와 종교의 자유조차 강탈당한 억압적인 상황에 대항하는 체코인의 의지는 19세기 민족부흥운동에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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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역사적인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서 드보르자크는 태어났다. 1841년 9월 8일 프라하 북쪽의 작은 마을 넬라호제베스의 푸줏간 집 맏아들로 태어난 드보르자크. 어릴 때부터 음악적인 천재를 보였지만 장남이 가업을 잇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뜻에 의해 푸줏간 일을 배워 음악사상 정식 정육업 면허를 딴 처음이자 마지막 음악가가 되었다. 그러나 음악에의 열정은 16세의 드보르자크를 혈혈단신 프라하로 이끌게 된다. 이때부터 1875년 교향곡 3번을 스메타나가 직접 청중 앞에서 지휘해주면서 성공을 거두기까지 오랜 세월을 드보르자크는 무명 작곡가로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이후 드보르자크는 체코 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 ‘보헤미아의 브람스’로 불리며 명성을 떨쳤다.

무려 30배의 급료를 주는 파격적인 조건에 이끌려 1892년에 미국행을 택한 드보르자크는 광활한 신대륙에서 소중한 경험을 하는데, 그해 12월에 뉴욕 필하모닉에 의해 초연된 교향곡 9번 ‘신세계에서’는 미국음악계를 뒤흔드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교향곡에서 들리는 미국적인 요소는 그러나 다분히 체코적이다. “그것은 모두가 체코 음악이며 앞으로도 그렇게 남아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한 작곡가의 조국사랑은 향수병에 시달리게 했으며 2년 만에 프라하로 돌아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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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은 돌아온 대작곡가를 영웅으로 대했다. 1904년 봄에는 제1회 체코 음악축제가 드보르자크를 중심으로 열렸고 전국에서 76개의 합창단이 모여들어 드보르자크의 교회음악을 불렀다. 수천 명의 청중은 ‘신세계’ 교향곡이 끝나자 일제히 기립했다. 그러나 뇌일혈이 악화된 드보르자크는 불과 한 달 후인 5월 1일 눈을 감고 말았다. 그의 장례 행렬에는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렸으며 유해는 블타바 강이 프라하에 이르러 우러러보는 체코인의 마지막 안식처인 비셰흐라드 성의 묘지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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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은 드보르자크가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되던 해였다. 프라하 중앙역에서 남서쪽으로 가다보면 케카로부 20번지에 드보르자크 기념관이 있다. 필자가 2004년 1월 4일에 찾은 바로크 양식의 단정한 2층집은 이른 오전 시각임에도 방문객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교향곡 외에 드보르자크가 생애 전반에 걸쳐 천착한 분야가 실내악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만년의 걸작 현악 사중주 작품.105의 ‘칸타빌레’ 악장의 선율이 가슴으로 밀려들어온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신과 사랑과 조국, 오로지 이것만이 궁극적인 행복을 가져다준다’ 라는 드보르자크의 좌우명이다. 신에 대한 그의 경외감은 ‘레퀴엠’과 오라토리오 ‘성 류드밀라’ 그리고 오르간 작품들로 구체화되었는데, 마침 다가오는 5월 ‘프라하의 봄’ 음악축제 때 공연될 ‘성 류드밀라’의 악보가 전시되어 있었다. 스메타나에게 발탁될 때까지 국립극장에서 비올라 주자로 활동하며 어려운 시절을 보냈던 드보르자크의 비올라는 세월을 고스란히 증언하며 유리장 안에 세워져있다. “드보르자크는 우리의 자랑이자 그의 음악은 바로 체코인의 정신입니다.” ‘드보르자크의 해’를 맞는 감회를 기념관 관리인은 이렇게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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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5중주 A장조, Op.81"


드보르자크는 1887년 삶의 의미를 통찰하던 47세의 나이에 프라하 남쪽 비소카에 있는 별장에서 ‘피아노 5중주’ 라는 흔치 않은 분야의 명곡을 탄생시켰다. 어쩌면 가장 ‘드보르자크’ 다운 선율과 형식미를 치밀하게 갖춘 이 매력적인 곡은 체코인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한 가장 ‘체코적인’ 음악이다.
드보르자크 음악의 틀은 과연 무엇인가? 그건 바로 ‘둠카’로 대표되는 슬라브 민족의 발라드다. 드보르자크의 어느 작품에서나 ‘둠카’가 직접적으로 제시되거나 ‘둠카’가 교묘하게 변형되어 나타난다. 즉, 슬픔과 기쁨의 교차, 느림과 빠름의 엇갈림, 극히 애상적이었다가 하늘 높이 솟아나는 환희에의 열락이 그것이다. 끝간데 없이 달콤하고 애틋한 정서의 멜로디가 흐르다가도 어느새 광풍처럼 몰아치는 ‘포르티시모’의 한바탕 춤이 이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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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5중주 A장조도 이러한 ‘드보르자크의 틀’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1악장, 꿈결 같은 피아노의 분산화음을 타고 첼로가 보헤미안 처녀의 맑은 눈동자처럼 투명한 노래를 하면 느닷없이 전합주로 솟구친다. 이건 곡의 마지막까지 요동을 반복하는데 드보르자크의 어느 작품에나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행보이다. 2악장은 ‘둠카’다. 피아노가 고음으로 지저귀면 또다시 첼로가 낮은 음성으로 도드라진다. 어김없는 ‘드보르자크의 틀’이다. 늦가을 체코 들녘의 추적추적함이 여기에 있다. 곧이어 빠르고 정열적인 가락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휘몰이는 곧 애초의 눈물을 머금은 채 사그라들게 마련이다.

3악장은 ‘스케르초’ 인데, 보헤미안의 민속 춤곡인 ‘푸리안트’가 등장한다. 우리네 풍물패를 연상케하는 군무(群舞)가 펼쳐진다. 잔칫날의 북적임과 소란이 거기에 있다. 하지만 ‘드보르자크의 틀’은 여기서도 쉬어가는 느린 발걸음을 내딛는다. ‘포코 트랑퀼로’가 듣는 이로 하여금 가만가만히 눈을 감게 한다. 3부는 극히 격하다. 4악장의 리듬은 제1, 제2주제를 연주하는 바이올린이 한껏 자신을 부각시킨다. 소박한 체코 보헤미안의 촌부가 허연 이를 드러내며 수확에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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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3중주 Op.90 ‘둠키’"


드보르자크를 위시한 체코 작곡가의 본령은 아무래도 실내악이다. 실내악이야말로 소박하고 로맨틱한 체코의 정서를 올곧게 구현하는 장르가 되었다. 드보르자크, 수크, 야나체크의 실내악 곡들은 아련한 향수를 품고 우리 품성과도 잘 어울리는 격조를 지녔다. 애상적이고 느린 부분이 지나면, 한을 가득 품은 격렬하고 빠른 악장이 뒤를 잇는 구조는 체코 작곡가의 작품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형식이다. 이것은 ‘둠카’로 불리는 고유한 틀로 자리잡았다. 필자가 피아노 5중주 A장조에서 줄곧 사용했던 ‘드보르자크의 틀’이다.

집시음악에서도 유용한 악기인 바이올린은 체코 음악에서도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악기였다. 체코 작곡가들의 바이올린 음악은 흐느끼면서도 고양하는 기쁨이 있으며, 여인의 수줍은 미소를 머금다가도 하늘 높이 솟구치는 기개가 있다. 더구나 유능한 비올라 주자였던 드보르자크는 현악기를 적시적소에 배치하곤 했다. 이러한 면은 피아노가 포함된 실내악곡에서도 곳곳에서 그 진가가 드러나는데, 피아노 3중주 ‘둠키’는 그 전형이다.

1890년 말에서 91년 초에 걸쳐, 작곡가로서 드보르자크의 최전성기에 쓰여진 ‘둠키’ 트리오는 음악사적으로도 불멸의 걸작으로 꼽힌다. 그때까지 어떠한 작곡가도 쓸 수 없었던 드보르자크만의 음악어법이 극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베토벤, 브람스로부터 받은 정통 고전음악 형식에 반기를 들고 과감히 체코인에 의한 체코음악형식을 탄생시킨 것이다. 즉 기존의 소나타 형식을 탈피해서 ‘둠카’ 모음곡 형식의 유니크한 ‘드보르자크의 틀’이 구축되기에 이르렀다. ‘가장 체코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라는 표현이 적절할까? 그야말로 드보르자크 음악이 세계 음악계에서 인정받는 역할을 한 일등공신이 바로 이 ‘둠키’ 트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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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지방의 발라드 풍의 슬라브 민요의 일종으로 애가(哀歌) 부분과 즐거운 부분이 급속하게 교차하는 점이 특징인 것이 ‘둠카(dumka)’인데 그 복수형이 바로 ‘둠키(dumky)’다. 드보르자크는 이 ‘둠카’를 병렬로 배열함으로써 자신의 새로운 음악질서를 확립했던 것이다. 그래서 ‘둠카’의 나열은 무려 6악장으로 확장이 가능하게 했다.

E단조의 음울한 조성은 피아노와 첼로의 격렬한 대립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드보르자크의 틀’인 ‘둠카’는 다시 평화를 가져다 준다. 11마디에 이르러 바이올린이 4분음표의 정연함으로 나타나면 첼로가 이를 되받는다. 마디 하나 하나에서도 다이내믹의 변화가 심하게 구현되는데, 이 또한 미세한 ‘분자(分子) 둠키’라 할만하다. ‘알레그로’에서 세 악기는 더없이 활기찬 춤을 추다가도 곧바로 나락으로 떨어진다. 종국은 현악기의 강렬한 트릴에 의한 요란한 ‘투티’로 마감된다.

2악장은 흑과 백의 대비가 선혈이 낭자하게 선명하다. ‘A-B-A-B'의 구성인데 B는 또다시 격한 민속춤을 선사한다. 가슴은 풍선처럼 부풀려졌다가 힘없이 쪼그라들기를 반복한다. 선과 악,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3악장 중간부의 ‘비바체 논 트롭포’ 또한 ‘드보르자크의 틀’의 전형이다. 피아노의 오스티나토 리듬과 바이올린의 느긋한 움직임에 첼로가 노래하는 주제가 매력적인 4악장은 론도이며, 웅장한 도입부로 시작하는 5악장은 다소 ‘드보르자크의 틀’에서 벗어나 시종일관 밝음을 지향하고 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들린다. 6악장은 다시 ‘둠카’로 회귀한다. 석양이 엄습하는 몰다우강의 침울한 정적과 새벽을 깨우는 일출의 화려함이 순간순간 옷을 바꿔 입고 이방인의 마음을 뒤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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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협주곡 A단조, Op.53"


집시음악에서도 유용한 악기인 바이올린은 체코 음악에서도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악기였다. 체코 작곡가들의 바이올린 음악은 흐느끼면서도 고양하는 기쁨이 있으며, 여인의 수줍은 미소를 머금다가도 하늘 높이 솟구치는 기개가 있다. 더구나 유능한 비올라 주자였던 드보르자크는 현악기를 적시적소에 배치하곤 했다. 이러한 면은 그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첼로 협주곡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드보르자크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오히려 베토벤, 브람스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민속음악적인 요소가 곳곳에 녹아들어 가장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음악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또한 음악형식미에 있어서도 거의 완벽에 가까운 관현악법을 구사하고 있다.

드보르자크는 그의 현악 4중주와 6중주를 연주해주었던 존경하는 선배 요아힘에게 헌정할 목적으로 바이올린 협주곡을 썼다. 1880년 헌사와 함께 악보를 보냈으나 요아힘은 이 곡을 초연하지 않았다. 결국 1883년 프라하에서 체코 바이올리니스트 프란티섹 온드리체크에 의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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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악장은 웅장한 투티로 문을 연다. 4마디 후에 곧바로 독주 바이올린이 강력한 더블 스토핑을 동반하며 드라이브를 건다. 무반주로 높은 E음까지 상승하며 올라가는 고음은 아찔할 정도다. 마치 브루흐의 협주곡을 보는 듯 화려하다. 이 주제 하나가 하위테마와 어울려 기나긴 여정을 이끌어간다. 종횡무진 누비는 솔로 바이올린과 대위법적으로 진행하는 관현악반주는 참으로 드보르자크 적이다. 신비롭기까지 하다. 전개부의 새로운 선율은 대단히 부드럽다. 재현부에서 오케스트라가 당당하게 주제를 연주하면 6마디의 짧은 카덴차가 있고 ‘아타카’로 2악장으로 이어진다.

아! 가장 예쁜 멜로디가 2악장에 흐른다. 아다지오의 2악장은 시작부터 잔물결로 출렁인다. 목관악기의 뒷받침이 그 느낌을 배가시킨다. ‘둠카’가 역시 비켜갈 수 없다. 집시풍의 정열적인 두 번째 주제가 독주 바이올린에 얹혀진다. 그리고 다시 템포는 느려져 중간부는 갈무리된다. 트럼펫의 독특한 리듬으로 3부에 들어서면 오보와 클라리넷의 움직임도 다채롭다. 1악장과 달리 바이올린은 튀지 않고 어우러진다.

3악장은 완벽한 ‘둠카’다. 푸리안트 춤을 기본으로 하고 빠르고 느린 부분을 론도 형식으로 펼친다. 2주제는 그래서 부드럽기가 하늘과도 같다. 현악기 군의 반주는 마치 민속 악기 두디와 같은 효과로 극대화된다. 이어지는 ‘둠카’의 애수에 찬 3주제는 눈물을 속으로 머금는다. 하지만 역시 빛나는 피날레는 한바탕 춤판으로 마무리된다. 1주제의 변화무쌍함은 3악장의 성격을 결정짓는 열쇠와도 같다. 비르투오적인 기교 뿐 아니라, ‘둠카’라는 체코 음악의 에센스를 이해해야만 제대로 된 음악을 들려줄 수 있다.


- 음악칼럼니스트 유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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