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폰, 이어폰 리뷰의 어려움
우리가 음악을 듣는 장치는 여러 하드웨어들의 집합이다. 그 중, 전기신호를 받아 최종적으로 음파신호로 바꾸어 주는 역할을 하는 하드웨어가 스피커이다. 그 스피커를 사람의 귀에 가까이 대도록 하여 혼자 음악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하드웨어가 헤드폰이다. 그 헤드폰을 더욱 축소시켜서 아예 귓속에 끼우도록 만든 하드웨어가 이어폰이다.
스피커와 헤드폰, 이어폰의 그 기본적인 역할은 동일하다. 그러나 스피커를 리뷰하는 방법론으로는 헤드폰과 이어폰을 다룰 수 없다. 스피커와 헤드폰 사이에는 생각보다 상당히 많은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당장 가장 큰 문제는 사운드이다.
스피커는 일단은 무향실에서 플랫한 사운드를 내는 것이 객관적으로 좋은 스피커로 인정받기 쉽다. 또한 그렇게 만들기도 쉽다. 물론 대역폭은 별개의 문제지만, 대역폭을 제외하고 보자면 음색 자체는 일정 수준 이상의 스피커들은 대체적으로 평준화되어 있다. 하이파이를 추구하든 모니터링을 추구하든 시작점만 다를 뿐이지 결국 목표로 하는 지향점은 주파수 응답 면에서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스피커의 방법론을 헤드폰과 이어폰으로 옮겨와서 그대로 평가하면 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스피커와 헤드폰 간의 가장 큰 차이는 하드웨어와 청취자 사이에 공간의 유무이다. 스피커는 넓은 공간을 거쳐서 청취자에게 사운드가 전달된다. 그에 비해 헤드폰은 그 공간이라는 변수가 완전히 생략된 채로 하드웨어가 내는 사운드를 바로 귀로 듣는다.
측정치가 플랫한 스피커라도 우리가 귀로 들을 때, 정확히 말하면 고막에 도달했을 때의 사운드는 플랫하지 않다. 우선 스피커에서 출력된 사운드는 공간을 거치면서 고음이 감쇄되고 수많은 반사음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청취자에 도달한 사운드는 다시 사람의 머리 모양에 의해 변형된다. 고막에 도달하기 전에 사람의 귓바퀴와 외이도의 형상에 따라서도 사운드가 변형된다. 결과적으로는 스피커에서 플랫하게 재생해내도 사람의 고막에 도달하는 사운드는 주파수 응답이 전혀 플랫하지 않다. 여기에 반사음과 잔향을 고려한 시간축 특성을 고려하면 더욱 골치가 아프다.
그런데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을 때는 그러한 공간과 사람의 머리 모양에 의한 변형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이어폰의 경우에는 아예 귓바퀴와 외이도의 모양에 의한 영향까지도 생략되어 버린다. 따라서 헤드폰이나 이어폰으로 플랫한 스피커를 듣는 느낌을 내려면, 플랫한 스피커의 사운드가 귀나 고막에 도달했을 때의 변형된 주파수 응답을 흉내 내야 한다.
물론 똑똑한 엔지니어들이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를 금방 인지하였다. 그래서 자유음장응답(Free-Field Response)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이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에 잔향이라는 변수까지 고려해서 확산음장응답(Diffuse-Field Response)이라는 개념으로 보완까지 되는 시기가 이미 1980년대이다.
확산음장응답에서 보이는 주요한 특징은, 3kHz를 중심으로 주파수응답 그래프가 전체적으로 솟아있다. 이는 대부분 귓바퀴와 외이도에서 일어나는 증폭 현상이 반영된 것이다. 사람의 청각이 3kHz 부근이 가장 민감한 이유가 이와 관련이 깊다. 따라서 플랫한 스피커에서 재생하는 사운드가 고막에 도달할 때는 3kHz를 중심으로 중고음이 강조된 주파수응답이 된다. 그러므로 헤드폰이나 이어폰이 확산음장응답에 맞추어 주파수 응답을 튜닝하면 플랫한 스피커가 내는 사운드의 느낌을 낼 수 있게 된다.
확산음장응답 개념은 1980년대에 처음 등장한 이래로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헤드폰을 개발하는 데에 있어서 절대적인 기준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확산음장응답도 만능은 아니다. 사람의 얼굴 생김새가 다 다르듯이, 사람의 두상도 다 다르고 귓바퀴의 모양도 다 다르다. 그런데 확산음장응답은 그러한 개개인별 차이를 무시하고 응답 특성을 전체적으로 평균화시켜놓은 결과이다. 따라서 확산음장응답에 맞춘 헤드폰은 대체적으로 플랫하게 들릴 '가능성'이 크다 뿐이지, 누구에게나 플랫한 스피커의 느낌으로 들린다고는 할 수 없다.
헤드폰 및 이어폰 평가의 어려움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평가를 하는 리뷰어가 사운드에 대해 좋게 평가를 해도, 누군가는 그 평가와는 전혀 상반되게 나쁘게 들릴 가능성이 상존하는 것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성립한다. 이는 심오한 음악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생물학적 차이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헤드폰과 이어폰의 사운드에 대해 평가할 때는 텍스트가 평균과 예외를 동시에 반영하고 있는지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론 이는 스피커의 사운드를 평가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스피커를 평가할 때에는 개개인별 생물학적 차이보다는 음악적 취향의 차이가 더 신경쓰이는 문제이다.
더욱 골치가 아픈 것이, 헤드폰과 이어폰은 이어패드나 이어팁을 교체함으로써 사운드 튜닝에 변화가 가능한 설계를 가진 경우가 많다. 이어패드와 이어팁, 혹은 기타 특정 부품의 형상이나 재질이 바뀌면 사운드도 확연히 바뀐다. 그 바뀌는 정도에 비하면 스피커에서 그릴을 씌우고 벗기는 수준은 차이가 없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이다. 그래서 헤드폰과 이어폰의 평가에서 부속품 튜닝에 의한 사운드 변화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그런 변화를 고려하면서 특정 제품의 사운드를 하나의 이미지로 텍스트화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다.
한편, 헤드폰과 이어폰은 신체와 직접 맞닿는 하드웨어이다. 스피커는 그냥 공간에 세워두기만 하면 되고, 인체공학적 고려는 드라이버의 높이를 귀에 맞추는 정도이다. 그에 비해 헤드폰과 이어폰의 리뷰에서 인체공학적 디자인 평가는 사운드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전문 리뷰어라면 어느 제품이 인체공학적으로 왜 / 어떻게 좋고 나쁜지를 분석해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인체공학적 요소에 대한 평가는 사운드 평가만큼이나 심도 있는 지식과 경험이 필요한 영역이다.
이 인체공학적인 문제는 단순히 착용감이 좋고 나쁘냐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헤드폰과 이어폰에서 인체공학적 요소는 사운드와도 직결된다. 인체공학적으로 적절한 설계를 가지지 못하면 헤드폰과 이어폰이 본래 의도한 사운드가 청취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이어패드의 밀착이 좋지 못해 저음이 새어버리거나, 이어폰의 삽입 깊이가 충분치 못해 초고음이 잘려나가거나 하는 식이다. 게다가 여기서도 개인차가 심각하게 벌어진다. 사람의 두상과 귓바퀴 모양이 다 다르기 때문에, 누구에게는 완벽한 착용감을 제공하는 헤드폰이 누구에게는 전혀 맞지 않을 수 있다.
인체공학적으로 좋은 디자인을 가진 헤드폰이라고 해도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스피커가 설치 위치나 각도 등에 따라 사운드가 바뀌듯이 헤드폰과 이어폰도 착용 위치에 따라 소리가 바뀌어 버린다. 다시 말해, 착용에 문제가 없어도 사람마다 착용 위치가 달라지면 소리도 달라진다. 그런데 그 소리가 변화하는 양상이 또 헤드폰과 이어폰마다 다르다. 드라이버의 지향성이 강하고 구경이 큰 헤드폰은 착용 위치에 따라 소리가 많이 변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삽입형 이어폰은 삽입 깊이에 따라 초고음 피크의 중심점이 크게 달라진다. 특정 헤드폰과 이어폰의 사운드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을 오갈 때는 보통 이런 인체공학적인 문제가 내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헤드폰과 이어폰은 일종의 패션 아이템이기도 하다. 그래서 디자인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이 스피커보다 훨씬 민감하다. 누군가는 헤드폰과 이어폰을 고를 때 사운드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단순히 외관만 보고 구입하기도 할 정도이다. 심미적인 스타일링 역시 리뷰어라면 왜 / 어떻게 좋고 나쁜지를 분석해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리뷰어 본인의 수준 높은 심미안과 지식 및 경험을 요구하며, 평가 시 대중적인 기호를 잘 반영하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대상 제품의 타깃 소비자층을 고려해서 타깃의 기호에 맞는지까지 정확히 평가할 수 있다면 훌륭하다.
헤드폰과 이어폰의 리뷰는 단순히 사운드만 얘기해서는 반쪽짜리이다. 지금까지 설명했던 대로 사운드와 더불어 인체공학, 디자인 등 상당히 다양한 시각에서 풀어나가야 한다. 여기에 개개인별로 다르게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이 스피커보다 훨씬 크다는 변수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헤드폰, 이어폰 리뷰의 어려움은 비단 리뷰를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만 어려운 것 아니다. 리뷰를 보는 입장에서도 그런 다양한 시각과 개개인별 변수를 고려해서 글을 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리뷰어의 입장에서 쓴 글이지만 주어를 바꾸어 독자의 입장으로 주어를 바꿔 읽어도 그대로 통용될 수 있을 것이다.
- 테크니컬 라이터 여진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