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르면서 또 통하는 두 장의 재즈 음반
이광조 - I am Old Fashioned / 이부영 with Vadim Neselovskyi

• 작성자 : 이종학   • 등록일 : 2016년 6월 15일 수요일  • 조회수 : 4,542 •
개인적으로 재즈라는 음악은 일종의 집처럼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오디오 평론이라는 직업적인 일을 잠시 접고, 이번에는 새로 녹음된 재즈 음반을 만나면서 오랜만에 안도감을 느낀다. 내 아이덴티티의 중심엔 역시 재즈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간 오디오가이가 해온 여러 레코딩과 작업은, 개인적으로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재즈의 경우, 외국의 신예 아티스트의 내한 공연과 녹음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멋지게 포획한 일이 많아, 음반 시장의 침체기에서 일종의 탈출구를 제시하지 않았나 평가하고 싶다. 그간 직업에 충실한 결과, 오디오가이의 분투(?)를 멀리서 관망만 해온 터라 약간 미안한 감도 있었는데, 이번에 신작 두 개를 리뷰하게 되어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lee_00.jpg

이번 리뷰의 주인공은 모두 한국인이다. 즉, 한국인이 만든 재즈 음반인 것이다. 모두 보컬로, 한 명은 이광조이고, 또 한 명은 이부영이다. 이광조? 예전에 해바라기에서 활동했고, 솔로 뮤지션으로 큰 족적을 남겼던 그 이광조를 말하는 것인가? 맞다. 
  
lee_02.jpg

그럼 본격적으로 이광조의 신작을 논하기 전에, 두 앨범에 칭찬하고 싶은 말부터 넣어보자. 무엇보다 이광조의 앨범은 LP와 SACD 모두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SACD가 무슨 의미가 있나 반문하는 독자도 있을 터이지만, 제대로 재생된 SACD 음원의 가치는 굳이 오디오적인 수사학을 동원하지 않아도 충분하리라 본다.
  
또 녹음에 있어서 홀톤을 강조하고, 적절한 잔향 처리로 실재감을 풍부하게 하며, 보컬의 맛과 개성을 일체의 화장기 없이 직접적으로 살리는 등, 가히 녹음 엔지니어로서 무르익은 기량을 마음껏 발휘한 대목도 인상적이다. 이른바 원 테이크 녹음으로, 중간에 일체 끊지 않고, 나중에 편집이나 오버더빙도 없는, 선도 높은 음원을 추구하는 점은, 과거 블루 노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루디 밴 겔더의 솜씨와 통하는 면도 있다. 어쨌든 이 부분은 오디오가이를 이끄는 최 정훈씨의 뛰어난 공로라 하겠다. 
  
참고로 이부영씨를 재즈 평론가 김현준씨가 인터뷰 한 내용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실 개인적으로, 난 젊은 목소리에 그리 흥미를 느끼지 않습니다. 재즈에 어울리는 목소리는 세월의 흔적이 많은, 약간 과장하면 노성이라 생각하는 쪽이죠.”
  
재즈 평론가 김현준의 평인데, 백번 천번 맞는 말이다. 두 보컬은 젊지 않다. 그러나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그 무르익은 기량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재즈는 하이틴용 팝이 아니다. 어느 정도 음악적 내공과 인생 경험을 두루두루 쌓아야 다가오는 장르다. 그래서 어중간하게 음악을 들어온 사람은 감히 재즈에 접근할 엄두를 못내는 것이다. 그런 노성, 노장의 내공이 이광조, 이부영뿐 아니라 전체를 총괄한 최정훈에게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lee_01.jpg

그럼 우선 이광조부터. 사실 재즈 애호가로서 그간 느꼈던 것은, 우리 대중 음악계의 몇몇 가수들은 재즈나 블루스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는 것이다. 다만, 히트 곡이라던가 음반 순위라던가 소속사와의 관계라던가 여러 부분에서 걸림돌이 많기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했던 것이다. 바로 그 금기(?)를 이번에 이광조가 과감히 깼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외국에서 대중 음악 가수가 재즈로 전환해서 빛을 본 사례는 사실 여러 차례 있다. 우선 언급할 가수는 린다 론스태트. 이른바 컨츄리 팝으로 해서 70년대에 올리비아 뉴튼 존과 차트를 양분했던 그녀가 어느 순간 화려한 드레스로 성장을 하고, 빅 밴드의 호화로운 백 업을 받으며 재즈를 부른 것은 이제 전설이 아닌 상식에 속한다. 최근만 해도 로드 스튜어트가 미국의 스탠다드 팝을 재즈로 소화해서 상당한 성공을 거둔 바가 있다. 우리라고 그러지 말란 법도 없는 것이다.
  
lee_07.jpg

이래서 쭉 음반을 들어보니, 가장 우려되었던 발음이라는 부분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영어로 노래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왜냐하면 발음 그 자체도 어렵지만, 그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발성이 아닌, 맛깔나게 불러줘야 한다는 점에서 큰 장벽이라 하겠다. 
  
하지만 여기서 그 부분은 그렇게 큰 단점으로 부각되지 않는다. 특히, 익히 알려진 명곡을 부를 때, 이런 대목이 지적 사항이 되기 쉬운데, 실제로 들어보니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마도 오랜 기간, 팝이나 재즈를 개인적으로 자주 불러오지 않았나 생각이 된다.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굳이 흠잡을 데가 없었다.
  
lee_08.jpg

한편 수록곡을 보면, 뉴욕,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서울이 나온다. 뉴욕은 'Theme from New York, New York' 이란 노래로 나타나는데, 이 대목에서 당연히 프랭크 시나트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광조의 경우, 다소 멜로우하면서, 노련하게 리듬을 타며 소화하고 있는데, 약간 박력을 넣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느낌도 있다.
  
이어서 . 익히 알려진 곡인만큼, 심지어 내 자신도 가끔 흥얼거릴 정도로 좋아하는 곡인데, 여기서 프로 가수로서 이광조의 원숙함이 잘 드러난다. 곡의 의미나 맛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그 감성을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 중간중간 기타가 간략하게 삽입하는 음에서 더욱 노스탤직한 감성이 흘러나오고 있다.
  
마지막 트랙으로 자리잡은 '서울의 밤은 비에 젖어'는 우리말로 노래한 곡이다. 역시 이광조표 발라드의 진수라고 할까? 가만히 들어보면 전성기 때의 목소리가 전혀 퇴색하지 않고, 서정적이면서 미성의 매력을 듬뿍 간직하고 있는 부분에서 놀랐다. 정말로 목소리 관리가 잘 되었다는 느낌이다. 
  
아무튼 한동안의 공백을 깨고 발표한 음반이, 일반 대중과는 한참 거리가 먼 재즈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환영이지만, 본인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음악적인 도전은 그 자체로 아름답거니와, 본 작의 훌륭한 성과는 앞으로도 좋은 사례로 자리잡을 것 같다. 향후 이런 시도를 더해줬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본다.
  
lee_05.jpg

이제 두 번째 음반인 이부영 'Bu Young Lee(이부영) with Vadim Neselovskyi - Little Star' 로 가보자. 개인적으로 그간 이름만 알고 있다가 이번에 뒤늦게 음반을 접하게 되었는데, 매우 흥미로운 뮤지션이라 하겠다. 사실 재즈라는 음악이 정통적인 접근법으로 갈 경우, 이전에 쌓아올린 많은 업적에 짓누르게 된다. 100년이 훨씬 넘는 기간 동안 축적된 숱한 경험치와 명연들을 단숨에 뛰어넘기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반면 재즈를 연주하되 자신의 어법으로 승화했을 경우,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럴 때 오로지 판단 기준으로 등장하는 것은 뮤지션의 개성과 완성도다. 그 점에서 이부영의 접근은 매우 신선하고 또 시의적절하다.
  
사실 전체적으로 피아니스트 바딤 네셀로프스키의 반주를 받으면서, 일종의 모놀로그와 같은 형식으로 진행되는 본 작은 별은 흔히 접하는 스탠다드 재즈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이럴 경우, 과연 이것이 재즈인가 하는 의문도 생길 법하다.
 
lee_04.jpg
 
하지만 가만히 듣고 있으면, 중간중간 재즈의 기본기에 충실한 대목이 자리잡고 있으며, 재즈를 자기 내면으로 끌어들인 음악이라는 결론을 쉽게 얻을 수 있다. 물론 재즈냐 아니냐 하는 논쟁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지만.
  
쭉 음반을 들어보면, 이부영의 보컬에 약간 주술적인 느낌도 나고, 흡인력도 상당하다. 마치 카산드라 윌슨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음악의 근원으로 가면 당연히 제식이 나오게 되고, 그 행사를 주관한 무녀도 등장한다. 재즈 역시 마찬가지. 그 점에서 상당히 진보적이면서도 또 원초적이다.
  
lee_06.jpg

무엇보다 눈에 띠는 것은, 재즈를 자기 몸으로 체화시켰다고 할까? 노래나 감정 전달이나 여러 면에서 상당히 노련하고, 능수능란하다. 투수로 치면, 제구력도 좋고, 경기 운영면에서도 나무랄 데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음악 자체가 기본적으로 친절하진 않다. 듣는 이가 집중해서 따라가야지, 처음부터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듣게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너무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중간중간 유려하면서 매혹적인 피아노 솔로가 깔리면서, 피아노와 보컬의 대화라는 구성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별로 지루할 틈은 없다. 오히려 틀에 박힌 재즈에 이골이 났다면, 이런 시도를 신선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본다.
  
돌이켜 보면, 이광조의 경우 정통 어법에 충실한 음반을 낸 반면, 이부영은 자기 주장이 강한 음반을 냈다. 서로 다른 접근법이지만, 또 통하는 면도 없지 않다. 그래서 전혀 어색함이 없이 연달아 두 앨범을 만족스럽게 들을 수 있었다.


- 이 종학(Johnny Lee)



하이파이클럽 Tel : 02)582-9847 Fax : 02-582-9849

주소 :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 바우뫼로 27길 7-11(양재동 70-2번지) 대송빌딩 2층 / 상호 : (주)하이파이클럽 / 대표 : 한창원(HAN CHANGWON -hificlub@hificlub.co.kr)

사업자등록번호 : 220-86-86440 / 통신판매업신고 : 2012-서울서초-0229 / 개인정보관리책임 : 안승찬 (hificlub2@hificlub.co.kr)

Copyright(c) 2000-2016 HIFICLUB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