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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돌비 애트모스니 DTS-X니 새로운 포맷이 연달아 등장해서, 홈 씨어터 부분이 활기차다. 쉽게 말해서 천장에도 스피커를 달아서 보다 입체적인 사운드를 즐긴다는 것인데, 실제로 시청회같은 데에서 들어보면 절로 탄성이 나올 만큼 압도적이다. 특히, 비가 내리거나, 비행기가 이륙하는 등, 천장에서 나오는 음이 아니면 안되는 장면들을 접할 땐, 왜 이제야 이런 포맷이 나왔나 아쉬울 정도다.

그러나 이런 포맷을 보다 풍부한 음악성과 더해서 들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에는 좀 망설이게 된다. 이렇게 쓰면, 홈 씨어터에 무슨 음악성, 운운할 수 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 늘 우리가 영화나 미드만 보는가? 오히려 음악 팬들에겐 각종 공연 실황이나 뮤직 비디오 등이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특히, 4K로 영상이 진화한 지금, 뮤지션의 땀구멍까지 보일 정도인 마당에, 왜 사운드는 뒤쳐져 있는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보급형 일제 리시버를 넘어서는 제품을 고르라고 한다면, 갑자기 “0” 하나가 더 붙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 중간에 있는 넓은 간격은 아직도 그대로 방치된 상황이다.

이 와중에 노련한 애호가들이 찾는 브랜드가 있으니, 바로 로텔(Rotel)이다. 여기서 내놓은 일련의 AV 리시버들은 가격도 착하고, 음악성도 좋으며, 특히 2채널 하이파이로 들어도 손색이 없는 퀄리티를 보여줬다. 최근의 제품들을 일별해 봐도 위에 언급한 포맷을 커버하면서 역시 수준급의 음질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로텔은 대체 어떤 회사일까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했다. 누군 일제라고도 하고 또 누군 영국제라고도 한다. 창업자는 대만 사람이지만, 물론 대만제는 아니다. 이런 태생적인 궁금증부터, 로텔만의 특별한 레시피까지, 기본적인 사항은 여기서 좀 짚고 넘어가야 할 듯싶다.

로텔의 초기 역사를 훑어보면, 우선 창업자가 대만 출생이지만, 일본에서 살고 또 일한 분임을 알 수 있다. 정확한 이름은 토모키 타치카와. 지금은 그의 아들이 가업을 맡아 운영중이다.

처음 시작한 일은 저 멀리 195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때 미국산 실바니아 TV를 수입하는 일을 했다. 이렇게 소개하면, 아니 일본에서 무슨 미국 TV를 쓰느냐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일본엔 아직 소니, 파나소닉, 도시바 등이 등장하기 전으로, TV는 어마어마한 사치품에 속했다. 그런데 미국과 일본은 전기 상황이 다르므로, 이 부분을 조정하고 또 수리하는 과정에서 전원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사실 이 부분은 나중에 로텔만의 정식 음향 철학으로 발전한다. 어떤 제품이건, 그게 앰프건 CDP건 튜너건 일단 전원부가 제일 중요하다는 믿음이다. 따라서 신제품을 구상하면, 전용 토로이달 트랜스 제작 팀에 연락한다. 그럼 이들은 전압, 전류, 트랜스의 크기 등을 연구해서, 각 제품에 최적화된 모델을 내놓는다.

이렇게 전원부가 튼실하기 때문에, 로텔의 제품은 잔고장이 거의 없다. 실제로 동사의 서비스 센터에 가보면, 만든 지 30년이 지난 제품도 가끔 수리한다. 그만큼 오랜 기간 사용해온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TV 수입으로 사업을 시작하다가, 1961년부터 오디오쪽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작은 수입상이 갑자기 오디오 메이커로 변신할 수는 없는 노릇. 당시 일본에선 얼토당토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일단 OEM부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1973년, 미국의 저명한 콘슈머 리포트에서 RX-402라는 리시버 앰프를 베스트 바이에 추천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것은 로텔에서 OEM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 이에 고무되어, 1979년, 정식으로 로텔을 창업하기에 이른다. 우리 기술로도 세계 시장에 얼마든지 통한다는 자신감이 생겼던 것이다.

1970년대라는 시기는, 오디오 역사에서는 일종의 황금기에 속한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도 결혼할 때 일종의 혼수품으로 자리잡을 정도였다. 따라서 무조건 만들기만 하면 팔리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부가 기능을 잔뜩 달아서, 제품 사이즈만 키운 것들이 당당히 팔리곤 했다.

하지만 로텔은 달랐다. 오디오의 기본, 그러니까 음질에 치중하고, 내구성도 좋아야 하며, 가격적인 면에서도 합리적이어야 한다, 라는 원칙을 잊지 않았다. 이런 탄탄한 기본기는 지금까지도 쭉 이어져 오고 있다.

한편 일본 기업이긴 하지만, 발 빠르게 영국에 진출한 점도 고무적이다. 즉, 창업 후 바로 영국에 연구소를 설립한 것이다. 여기서 신제품을 개발하고, 각종 측정도 하고 또 파인 튜닝도 한다. 일본에서는 생산만 한다. 이렇게 보면 실질적인 영국 기업이라 해도 무방하다. 실제로 이 시기에 바워스 앤 윌킨스와 공조해서 마케팅도 하고, 시장 개척도 하는 등, 지금까지 무척 우호적인 관계가 이어져 오고 있다.

사실 오랜 기간에 걸쳐 높은 평가를 받는 앰프 메이커들을 보면, 흥미롭게도 트랜스를 직접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방문해서 인상 깊었던 매킨토시와 옥타브가 그 예에 속한다. 만일 로텔을 찾게 되면, 제일 먼저 트랜스 감는 지역부터 보고 싶다. 그 정도로 이 기술은 앰프 회사의 핵심에 속한다.

뭐 이렇게 쓰면, 코일 감는 것 정도에 불과한 기술이 뭐 그리 대단하냐 반문할 듯도 싶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겉으로 보면 단순해도, 실제로 파고 들어가면 절대 단순하지 않다. 트랜스 역시 마찬가지.

가장 애를 먹이는 것은, 이를테면 46회 감았을 때와 47회 감았을 때 음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또 한 방향으로 계속 감는 것과 중간에 되돌려서 감는 것 심지어 감다가 되돌리고 그러다 원 방향으로 다시 감고 하는 식으로, 감는 방향의 변화에 따라 역시 전혀 다른 음이 나온다. 거기서 자신의 음향 철학과 제품 설계에 부합하는 최적의 솔루션을 찾아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트랜스가 운다거나 진동이 심하다거나 아무튼 기계적인 처리도 중요하고, 이와 매칭할 캐패시터도 잘 선별해야 한다. 대충 이 정도만 설명해도 머리가 아파오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 만난 것은 RC-1572 프리와 RB-1582 MK2 파워 그리고 RCD-1572 CD 플레이어다. 한데 이 모델 모두 15로 형번이 시작된다. 동사는 15 시리즈라 부르고, 그 안에 여러 모델을 두고 있다. 최상급은 1590인 만큼, 그 바로 밑의 제품들임을 알 수 있다. 단, CDP는 1572 본 기가 플래그쉽이다. 그 위에 1590은 없다.

그럼 일단 프리앰프부터 시작해보자. 상급기 RC-1590의 핵심 서킷은 대부분 이양한 가운데, 보다 현실적인 가격으로 구현한 점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입력 모두 대응하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평하게 하이 퀄리티를 실현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아날로그 신호를 선택할 때 통상의 IC 베이스의 스위치가 아닌, 릴레이 스위치 방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은 고급 프리에서나 볼 수 있는 사양이어서 흥미롭다.

일단 아날로그 입력단을 보면, RCA 및 XLR 모두를 제공한다. 거기에 LP 팬들을 위해 MM 포노단을 주는 것은 고맙기만 하다. 요즘 LP 리바이벌 붐이 불어서, 새롭게 레코드사에서 찍어낸 제품도 많고, 중고 LP 시장도 활성화되었으며, 덩달아 다양한 턴테이블이 등장하는 중이다. 무척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입력단이라 본다.

한편 디지털쪽을 보면, 상급기와 동일하게 AKM의 DAC 칩을 썼다. 무려 32/768 사양이다. 디지털 입력단은 무려 4개나 되는 바, 동축이 2개, 옵티컬이 2개나 된다. 이를 통해 TV의 셋탑 박스나 블루레이 디스크, PS4와 같은 기기를 풍부하게 연결할 수 있다. 한편 PC-USB 단자도 있어서, 이를 통하면 32/384 사양의 고음질 파일은 물론 DSD 파일도 처리한다. 요즘 필요한 기능들을 골고루 담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어서 RB-1582 MK2를 보자. 형번에서 알 수 있듯, 1590의 바로 밑에 위치하며, 버전 2로 진화한 모델이다. 제일 관심을 끄는 출력은 8오옴에 200W다. 상당히 양호한 스펙이다. 당연히 전원 트랜스와 전원부 구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슬릿 포일” 타입의 캐패시터를 채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무척 스피디하게 전기를 머금고 또 뱉는다. 그만큼 음성 신호의 처리가 빨라진다는 뜻이다. 다이내믹스 면에서 상당히 유리한 내용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RCD-1572 CD 플레이어를 보자. 이미 1989년부터 CDP를 만들어온 로텔인지라, 이 부분에 대한 노하우는 상당하다고 보면 된다. 무엇보다 CD에 담긴 아주 미묘한 뉘앙스까지 모두 잡아내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는 바, 실제 음을 들어보면 상당히 충실한 재생이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DAC 칩은 정평 있는 볼프슨의 WM8740으로, 24/192 사양이다. 레드북 CD를 업샘플링하는 데에 있어서 최고 사양을 제공한다고 보면 된다. 또 디지털 신호의 처리 속도를 최대한 빠르게 하는 부분에도 많은 기술을 투입하고 있다. 거기에 충실한 아날로그단은, 오랜 기간 앰프 제조를 통해 얻어진 내공과 직결되므로 더 이상 언급은 피하겠다.

자, 본 세트의 시청을 위해 스피커는 바워스 앤 윌킨스의 702 S2를 연결했다. 본격적인 3웨이 타입이므로, 본 시스템과 좋은 매칭을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실제 시청에서 이 부분은 만족스럽게 확인되었다. 참고로 시청 트랙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Lang Lang, Vadim Repin, Mischa Maisky - Tchaikovsky Trio Elegiac

Tchaikovsky, Rachmaninov Piano Trios

첫 곡을 들어보면, 일단 강력한 중역대를 바탕으로, 호소력이 높은 음이 연출된다. 피아노의 타건 하나하나가 명료하면서 또 힘이 있고, 배후에 나직이 흐르는 첼로의 존재감도 뚜렷하다. 그러다 바이올린이 등장하는데, 길고 우아하게 보잉할 땐 심금을 울릴 정도로 매혹적인 음색이 나온다. 기본적으로 미음이며, 정교치밀하면서도 차갑지 않다. 세 악기의 음색이 정확하게 구분이 되고, 그 각각의 개성이 충만하다. 저절로 귀를 열고 기울이게 한다.

Rafael Kubelik - Dvorak Symphony No.2

Berliner Philharmoniker

이어서 드보르작을 들으면, 장엄하게 관악기의 움직임이 포착되는 가운데, 처연한 메인 테마가 흘러나온다. 마치 타향살이의 설움을 담은 느낌이다. 또 멜로디나 분위기가 보헤미아 특유의 민족성과 관계가 되는 듯싶은데, 그 정서가 아름답게 표현이 된다. 이게 또 우리네 감성에 쉽게 어필되는 부분도 있다. 지긋하게 눈을 감고, 소파에 몸을 파묻고, 귀를 열어두게 되는 음이다. 이런 클래식 음악에선 크게 지적할 만한 사항이 없다.

Diana Krall - All or Nothing at All

The very best of Diana Krall

이어서 크롤을 들으면, 여기서 확실히 그녀의 개성과 테크닉의 실체가 뭔지 알려준다. 사실 일반적으로 그녀는 쉽게 쉽게 노래한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마치 혼 악기를 불듯, 발성 하나하나에 힘을 주고, 적절한 뱃심을 담고 있다. 여기서 그 에너지가 충분히 재생이 된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미음이라, 사람의 마음을 끄는 구석이 분명 있다. 배후의 더블 베이스, 피아노, 기타 등이 정치하게 엮여서 멋진 하모니를 연출하는 부분도 잘 살아있다. 정교함과 공간감을 바탕으로, 마치 스튜디오에 들어와서 듣는 기분이라고 할까?

Whitesnake - Fool for Your Loving

Fool for your Loving

마지막으로 화이트스네이크.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곡이다. 기본적으로 파괴력과 거친 부분이 살아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는 약간 고상하다고 할까? 그러나 이런 재생도 흥미롭다. 재생음으로만 따지면, 바닥을 치는 킥 드럼의 어택, 샤우트하는 창법, 공격적인 베이스 등 여러 면에서 만족스럽다. 중간에 후렴구를 합창하는 부분도 정확하게 재현된다. 약간 갱스터 같은 느낌이 있으면 더 좋지만, 그러면 잃는 것이 더 많을 것같다. 중간에 기타 솔로가 튀어나올 땐 말 그래도 손가락이 춤을 춘다. 일체의 로쓰 없이 모든 음성 신호를 충실하게 전달한다. 전체적으로 좋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 이 종학(Johnny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