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시대가 변하고 아무리 새롭고 혁신적인 제품이 출시되어도 고전적이며 전통적인 지위가 견고한 제품이 있다. 이제 그 아성이 무너질 만도 한데 여전히 신제품보다 더 고가인 것은 물론 세월이 지나면 오히려 더 가치가 올라간다. 오롯이 대명사로 지위를 획득한 해당 제품은 그 분야의 알파와 오메가, 따라서 유행을 타지 않으며 후대에게 단순히 하나의 상품을 넘어 예술적, 역사적 가치를 부여받는다. 때때로 우리는 이것을 ‘클래식’이라고 말로 치환한다. 무릇 클래식은 대단히 한정적이며 수십 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하지만 요즘 들어 클래식은 과도한 마케팅적 단어 소비로 인해 그 의미가 퇴색된 바도 없지 않다.

그래서 때로 클래식을 복원하거나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시키기도 한다. 단지 클래식이라는 가치를 그대로 보존하기보다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신선한 모습으로 우리 시대에 복귀시키는 작업이다. 가라드, 토렌스, 렌코 또는 PE 등 우리가 턴테이블 역사에서 마주치는 이름들이 엄청난 복원비용 투입으로 통해 되살아나기도 한다. 때로 과거 웨스턴 일렉트릭 시절 앰프를 리메이크하기도 한다. 때로는 현재 다이내믹 드라이버에서 절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역사적 혼 스피커나 풀레인지 유닛이 새로운 뼈대와 기술 위에서 새로운 에고로 잉태한다. 이를 ‘모던 클래식’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옥타브의 모던 클래식"

최근 독일 진공관 앰프 메이커가 모던 클래식이라고 부를만큼 매력적인 앰프를 하나 소개했다. 모델명은 V16 싱글 엔디드. 나는 진공관과 트랜지스터 앰프를 막론하고 싱글 엔디드, A클래스 앰프가 적어도 음색적인 측면에서는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메인 앰프로는 출력이 높고 대역 소화와 트랜지언트 능력이 좋은 앰프를 사용하지만 항상 서브 앰프로는 진공관 앰프나 저출력 A클래스 TR앰프를 탐하곤 한다. 더불어 진공관 앰프는 300B 앰프를 하나 가지고 있으면서도 캐리 845같은 파워앰프를 항상 노린다. 최근엔 TDL이라는 저출력 A클래스 진공관 앰프에서 서정적인 달콤함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앰프들, 3극관이면서 A클래스 싱글엔디드 제품은 그 마약같은 중독성과 깨끗하며 매력적인 음색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만들기 어렵다. 더불어 때로는 좁은 주파수 응답, 증폭 특성에 더해 저역 제동에서 단점을 드러낸다. 또한 어마어마한 열은 전기세와 셋업의 불편함을 초래하기도 하며 내구성을 떨어뜨리곤 한다. 그래서 최고의 음색을 가진 3극관 앰프에 대한 진공관 DIY 마니아들과 앰프 제조사들은 여전히 궁극의 진공관 앰프를 만들기 위해 지금도 불철주야 진공관에 불을 당긴다.

옥타브는 바로 이런 상황에 진공관 앰프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고찰, 살짝 비틀고 새롭게 제단해 혁신적인 앰프를 만들어냈다. 옥타브가 누구인가? 1968년 독일 호프만 트랜스포머라는 트랜스포머 제조사로부터 그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 굉장히 정밀한 기술을 요구하는 의료용 기기 제조에 사용하는 트랜스포머와 코일을 제작하던 곳이다. 결국 호프만 트랜스포머의 축적된 기술은 대표의 아들 안드레아스 호프만이 회사를 물려받아 운영하면서 하이엔드 진공관 앰프 제조사로 거듭나는데 필요한 커다란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인간의 청각과 연계한 대중 예술 장르 음악을 다루는 오디오 제작에 필요한 트랜스포머는 결정적인 소재가 되었다.

"V16 싱글 엔디드"

이미 그 어느 진공관 메이커보다 우수한 트랜스포머 제조 능력을 갖춘 옥타브는 광대역, 높은 트랜지언트 능력과 SN비, 낮은 왜곡을 자랑했다. 그리고 KT88, KT120, KT150, 6550 등을 활용한 대출력 앰프들이 그들의 주 종목이었다. 음압이 낮고 순간 높은 전류 공급을 요구하는 현대 하이엔드 스피커 등에 무난하게 대처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옥타브가 V16라는 싱글 엔디드 저출력 앰프를 들고 나왔다. 도대체 무슨 의중이 담겨있는 걸까?

옥타브는 3극, A클래스, 싱글엔디드라는 고음질을 위한 세 개 조건을 만족시키는 앰프를 개발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옥타브는 이런 특성을 갖춘 앰프들이 그 반대로 야기하는 약점들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저역 확장이 쉽지 않아 저역을 오가는 악기만 나오면 왜소해지는 특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모델에 따라 고역 롤오프 때문에 악기 본연의 사운드를 왜곡시키고 착색을 만들어내곤 한다. 이는 분명 호불호가 갈리는 특성이지만 옥타브가 철학으로 여기는, 진공관을 통한 왜곡 없는 소리의 재생에 부합하지 않다. 이 외에도 종종 험이나 노이즈에 취약한 부분들도 있다. 옥타브는 이런 단점을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의 설계를 진행했다.

우선 전통적인 직렬 3극관 방식이 아니라 KT120을 사용하되 3극 ‘Tridoe’ 서킷 상에서 작동시키는 방식을 개발, 적용했다. 가로로 좁고 위로 높게 설계한 V16를 보면 KT120 두 알이 정상을 탈환한 듯 우뚝 서있다. 당연히 V16은 ‘푸시풀’이 아니라 ‘싱글엔디드’ 증폭이다. 진공관마다 +, - 신호를 따로 증폭하는 것이 아니라 각 채널의 모든 신호를 하나의 진공관이 모두 도맡는다. 출력은 작지만 크로스토크 왜곡이 적어 순도 높은 사운드를 얻을 수 있다. 대신 출력 모드는 두 종류로 나누어 ‘High’ 모드에서는 채널당 8와트, ‘Low’ 모드에서는 채널당 5와트를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KT120 외에 KT150, KT88, 6550, EL34도 적용할 수 있다.

참고로 프리앰프 쪽에는 ECC82 진공관 한 알과 EF800 두 알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V16은 유사한 설계 특성을 가진 앰프들에서 도달할 수 없는 광대역을 구사한다. 이는 옥타브의 드라이버 스테이지 설계와 피드백 최적화 등 그들만의 회로 및 트랜스포머 제작 기술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결과적으로 V16 싱글엔디드 앰프의 밴드위스(Bandwidth)는 10Hz에서 약 100kHz에 이르고 있다.

옥타브는 보편적인 A클래스 싱글엔디드 앰프들의 작동 편의성과 엄청난 발열 등에 대해서도 무척 합리적인 설계 패턴을 개발, 적용했다. 싱글 엔디드 A클래스지만, A클래스 레벨이 고정이 아니라 가변 방식이다. 스피커 또는 헤드폰에 걸리는 임피던스 변동에 따라서 A클래스 레벨을 35%에서 최대 100%까지 변화할 수 있도록 한 것. 그리고 수동이 아니라 자동 변환 방식이기 때문에 사용자가 별도로 조작할 필요도 없다. 이는 장시간 사용 시 앰프의 평균 발열 온도를 혁신적으로 낮추게 해주며 앰프의 생명 또한 연장시켜준다. 더불어 전기 효율까지 높여주니 일석삼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셋업 & 리스닝 테스트"

옥타브 V16을 ‘High’ 모드로 세팅하고 예열시간을 충분히 가진 후 여러 음악을 통해 음질적 특징을 테스트했다. 사용한 기기는 소스기기에 웨이버사 WCORE 및 WNAS3 그리고 이태리 Formula DAC 그리고 저출력 V16에 제격인 아방가르도 혼 스피커 Trio Classico XD를 연결했다. 더불어 초저역 재생을 위한 아방가르드 전용 액티브 서브우퍼 BASSHORN XD도 동원했다.

Diana Krall - a Case of you

Live in Paris

고작 8와트 출력을 내는 V16이지만 107dB에 이르는 고능률 스피커 아방가르드를 만나면 물길을 자유롭게 노니는 송어처럼 음악의 길을 새로 낸다. 그 길은 보편적인 스펙으로 일반화된 흔한 하이파이 오디오와 다르며 저능률 초스피드, 적막 같은 배경으로 점철된 하이엔드 메인스트림 하이엔드 사운드 조류와도 다른 결을 가진다. 예를 들어 다이애나 크롤의 ‘A case of you’같은 곡에서 다이애나는 어깨에 힘들 빼고 무척 커다란 홀에서 연주하고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보컬 포커싱은 상당히 큰데 마치 녹음한 홀로 들어간 듯 어느 자리에 있는 관객도 소리의 폭포수 안으로 끌어들인다.

Patricia Barber - Regular pleasure

Verse

고역을 롤오프로시키는 모습은 거의 없어 상당한 사실감과 실체감 있는 중, 고역을 들을 수 있다. 주파수 영역에서 베이스혼과 함께 재현해내는 저역이 실제보다 더 크고 웅장하다. 확실히 빠르고 분석적인 고해상도 저역이 아니라 무척 풍만하며 포만감 충만한 사운드가 5미터 뒤까지도 감쇄 없이 전해와 몸을 감싼다. 파르리샤 바버의 ‘Regular pleasure’에서 더블 베이스의 크기가 무척 크며 능글맞을 정도로 육감적인 사운드를 내준다. 마치 동네 작은 극장에서 보던 영상을 아이맥스로 보는 듯 확장된 거대 스케일 아래 악기들이 굴고 힘차게 전진한다.

Herbie Hancock - Chameleon

Head Hunters

옥타브 V16은 전혀 기죽는 모습이 없다. 단, 기존에 댄 다고스티노와 엮었을 때 아방가르드 사운드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힘의 강/약 조절과 빠른 반응 특성 및 정교한 맛은 덜하다. 대신 배음이 훨씬 더 풍부하며 온건해 긴장을 이완시키는 넉넉한 풍채가 눈앞에 그려진다. 허비 행콕의 ‘Chameleon’같은 곡에서 건반의 펑키한 리듬은 번개 같은 속도감을 뒤로 하고 커다란 폭으로 넘실대는 옥타브 변환의 파도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너울거리는 탄력감은 무척 커다란 덩어리감과 함께 육중하고 진득한 느낌을 자아낸다.

Tharaud -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2

Royal Liverpool Philharmonic Orchestra

8와트 싱글 엔디드 앰프를 만난 아방가르드는 숨죽이는 긴장감과 타이트한 텐션에서 해방되어 스트레스 없이 소리를 풀어낸다. 이런 특성은 사운드 스테이징에서도 전이되어 드러나는데 전/후 깊이를 여러 단위의 레이어링으로 정교하게 풀어내지 않는다. 대신 모든 악기들이 커다란 물방울처럼 넘실거리며 어울리고 해체한다. 알렉상드르 타로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같은 관현악을 들어보면 악기 위치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후려하게 타격하면서도 그 끝이 날카롭지않고 둥글어 자극적이지 않다. 사운드 스테이징의 크기 자체는 좌/후로 무척 넉넉하게 펼쳐지므로 왜소하거나 답답한 느낌이 없고 웅장한 콘서트 현장처럼 활기차다.

"총평"

옥타브 V16으로 울리는 아방가르드 대형 혼스피커는 여유로운 무대와 현장감이 배가된 사운드로 혼 본연의 넉넉하고 자연스러운 음결을 뿜어낸다. 단 8와트의 위력은 이렇게 대단한 것이라는 걸 증명하듯 옥타브는 V16을 통해 혼 스피커의 이면을 탐험해보라고 손짓하고 있다. 싱글엔디드 A클래스 8와트는 최신 대출력 하이엔드 앰프들이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증폭의 세계를 완성하고 있다.

음원의 바닥까지 헤집어 분석하고 높은 침투력으로 감상자를 순간적인 쾌감으로 몰아갈 때 우린 감동한다. 그러나 그 감동은 종종 참을 수 없는 대출력의 한계 지점에서 또 다른 양날의 검이 우리의 감성을 향해 비수처럼 날아들기도 한다. 쉽게 지치고 피로하며 청자를 끝없이 다그치기도 한다. 옥타브 V16과 아방가르드가 그리는 재생음은 인위적으로 감상자를 무대 안으로 들어오라 손짓하거나 성급하게 보채지 않는다. 이들이 놓인 공간 전체가 모두 무대고 연주회 현장이기 때문이다. V16 은 옥타브의 진보적 테크놀로지와 진공관 앰프에 대한 이해 및 설계 노하우 위에 꽃핀 우리 시대 ‘모던 클래식’이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