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개인적으로 그동안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가장 ‘할 일’이 없었던 것은 눈이었다. 오디오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상 귀는 사운드스테이지와 이미지, 다이내믹 레인지, 다이내믹스, 노이즈 등을 체크하느라 언제나 열일을 했지만 눈은 클래식이 흘러나오는 스피커나 앰프를 응시하는 정도에 그쳤다. 가장 바쁜 경우라고 해봐야 인터넷에서 찾았거나 룬(Roon)에 뜬 해당 곡에 대한 정보를 읽는 수준이었다. 아니면 ‘죽기전에 들어야 할 클래식 1001’이나 안동림 교수의 ‘이 한장의 명반’을 뒤적이거나.

물론 CD 재킷이나 속지, 박스전집의 소책자를 읽기도 했다. 그러나 깨알같은 글자를 한두 페이지 읽다보면 어느새 피곤이 몰려와 스르륵 잠이 들기 일쑤였다. 더욱이 오디오 환경이 스트리밍 시대로 접어든 이후부터는 CD를 잘 안 사는 편이어서 마음에 드는 레퍼토리도 충분치 않은 형편이다. 그나마 가장 나은 방법은 블루레이 디스크를 플레이하는 것. 블루레이 디스크 10장에 담긴 파보 예르비의 말러 전집을 사서 모니터 화면으로 줄창 감상한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이 때도 엇비슷하게 반복되는 연주화면으로 인해 책자를 읽거나 검색을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앨범재킷을 4K UHD 화면으로,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발상"

이러던 차에 하이파이클럽에서 쎄티오(Satio)의 울트라 오디오(Ultra Audio)라는 고품질 음악방송을 거의 하루종일 시청할 기회가 있었다. 쎄티오는 한국디지털음악방송이 2002년 개국한 고음질 음악방송이고, 울트라 오디오는 쎄티오가 스카이라이프에만 제공하는 클래식(199번 ‘CD클래식’) 및 최신가요(200번. ‘K-POP’) 채널이다. 두 채널을 하이파이클럽에 설치된 150인치짜리 초대형 스크린으로 번갈아가며 집중 시청해본 것이다.

그런데 울트라 오디오 채널을 보다가 무릎을 친 것은 바로 스크린을 꽉 채운 앨범 앞뒤 재킷과 부클릿이 전해주는 엄청난 정보량이었다. ‘K-POP’ 채널의 경우에는 직접 편집한 아티스트 정보와 간결한 곡 설명이 눈길을 끌었다. 더욱이 4K UHD 화면이라 150인치로 보는데도 글자나 이미지가 깨지지 않았다. 특히 글자의 경우 4,5m 떨어진 거리에서도 모두 읽을 수 있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오리지널 앨범 재킷을 포함한 각종 풍성한 정보를 읽는다’는 이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발상에 시청 내내 감탄했다.

"고음질의 비결, WAV 파일을 384kbps로 전송"

너무 화면 얘기만 했지만 울트라 오디오의 ‘오디오’ 품질은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깨끗하고 정보량이 많았다. 그야말로 잘 녹음된 CD를 직접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에서 플레이한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쎄티오의 울트라 오디오 채널은 세계 최초로 384kbps(초당비트수)로 전송되는 고음질 방송이기 때문. 미국의 위성방송사인 디렉TV(DirecTV)나 일본의 위송방송사인 스카이퍼펙TV(SkyPerfecTV) 등이 192kbps 또는 160kbps에 그치는 점을 감안하면 전송용량이 2배나 되는 것이다.

그러면 384kbps라는 전송용량이 어느 정도나 되는 고음질일까. 멜론이나 벅스 등 스트리밍 음악서비스의 전송용량은 최대 192kbps에 그치고, mp3 음원은 아무리 용량을 늘리려고 해도 320kbps가 한계다. 참고로 FM라디오는 아날로그 전파라 일대일 비교는 힘들지만 디지털로 환산했을 때 128kbps 정도, 오디오 애호가들의 호평 속에 방송중인 영국 린(Linn) 라디오도 320kbps에 그치고 있다. 결국 전송용량이 384kbps로 높다는 것은 음을 구성하는 정보량 자체가 많다는 뜻이다.

사실 쎄티오에서 클래식 채널 이름앞에 ‘CD’를 붙인 것도 CD와 거의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고음질 음악을 방송한다는 의미다. CD의 정보량은 bps로 환산하면 800~1200kbps 정도인데, 384kbps만 되면 전문가도 CD와 구별하기 힘들다.

쎄티오가 이렇게 384kbps로 송출할 수 있는 것은 음원소스로 CD만을 사용하기 때문. 클래식 음악의 경우 쎄티오가 보유한 1만2000여장의 CD에서 무손실(lossless), 무압축(uncompressed)의 WAV 포맷으로 파일을 추출, 라이브러리를 꾸렸다. 물론 이 과정에서 원음을 왜곡시키는 이퀼라이저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후 이 WAV 파일을 위성으로 송출할 때 딱 한 차례 384kbps로 변환하는데, 이 때에도 컴프레서(compressor. 곡마다 다른 헤드룸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 투입되는 장비. 피크시 볼륨초과로 인한 클립현상을 막는 용도로 쓰인다) 같은 장비를 쓰지 않는다. 컴프레서가 원음의 다이내믹 레인지에 손상을 주기 때문이다.

"울트라 오디오 CD클래식"

채널별로 좀더 찬찬히 살펴봤다. 우선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에서의 시청환경은 스카이라이프 셋톱박스에서 HDMI 케이블로 브라이스턴의 DAC ‘BDA-3’를 연결하고 이후 XLR 밸런스케이블로 프리앰프에 물렸다. 프리와 파워앰프는 댄다고스티노의 ‘Momentum Pre’와 모노블럭 ‘M400 Power Amplifier’, 스피커는 아방가르드의 ‘TRIO Classico XD’와 ‘BASSHORN XD’ 조합. 사용된 프로젝터는 엡손의 플래그십 ‘EH-LS10500’이었다.

사진1. 아론 필산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악장’ 화면

‘CD클래식’ 채널의 경우 스크린 왼쪽에는 방송중인 곡의 CD 앞 재킷, 오른쪽에는 해당 트랙에 빨간색 삼각형이 표시된 CD 뒤 재킷(혹은 부클릿)이 투사되고 있었다. 위 사진은 필자가 직접 스마트폰으로 찍은 아론 필산(Aaron Pilsan)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악장’ 방송화면인데, 150인치 화면인데도 글자와 이미지가 매우 선명하다. 9분50초짜리 곡이라 듣는 내내 재킷에 담긴 모든 정보를 천천히 읽을 수 있었다. 앨범 제목, 베토벤의 생몰연도, 곡 제목, 레코딩 프로듀서, 밸런스 엔지니어, 녹음 장소와 연월일, 여기에 아론 필산 사진까지. 그야말로 정보의 바다였다.

사진2. 사라 장의 ‘사랑의 인사’ 화면

다음 곡은 사라 장(Sarah Chang)의 ‘Debut’ 앨범에 실린 3분1초짜리 ‘사랑의 인사’(Salut d’amour). 피아노 연주자로 산드라 리버스(Sandra Rivers)가 나섰으며, 1991년 3월16일과 19,20일, 4월16일 뉴욕 미국예술문학아카데미에서 녹음돼 1992년에 EMI 산하 레이블인 에인절 레코드(Angel Records)에서 출시된 앨범임을 알 수 있다. “사라 장은 지금까지 내가 들어본 바이올리니스트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완벽하며 이상적이다”라는 예후디 메뉴인의 극찬도 보인다. 데뷔 당시 앳된 사라 장의 모습도 반갑다.

그러면 울트라 오디오의 ‘CD클래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같은 CD 정보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쎄티오에 따르면 CD 재킷과 부클릿에 인쇄된 그대로를 화면에서 재현시키기 때문에 곡 제목은 물론이고 녹음 정보, 악기 정보, 앨범 재킷 정보, 작곡가 및 연주자 사진, 녹음 연월일과 출시 레이블 정보 등을 모두 제공한다. 이밖에 영국 그라모폰이나 BBC 뮤직, 프랑스 디아파송 추천음반의 경우에는 이 사실도 알려준다. 에디터스 초이스(Editor’s Choice)나 수상음반(Award Winner)도 알 수 있다.

‘CD클래식’ 편성 기준은 매우 엄격하다. 우선 명반 명곡 위주다. 쎄티오에서는 ‘명반’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그라모폰 선정 위대한 레코딩 100선’ 등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이탈리아 일본의 권위있는 음반상 수상작들의 리스트를 망라했다. 최신 디아파송이나 BBC 뮤직 추천음반을 적극 소개하는 것은 신구 명반의 조화를 위해서다. 쎄티오에서는 월 수백장의 신규 CD를 영국에서 직접 수입해오며, 희귀 타이틀이 자주 리마스터링돼 출시되는 일본에서도 CD를 들여온다고 한다. SACD, UHQCD, Blue Spec CD 등 고음질CD와 오디오 애호가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은 일본 에소테릭이나 스테레오 사운드 CD도 입수, 방송한다.

빠른 로테이션도 ‘CD클래식’ 편성의 큰 특징. 스카이라이프라는, 다양한 시청자 기호에 부합해야 하는 대중방송매체를 통해 방송되는 만큼, 교향곡 협주곡의 경우 1악장 단위로 방송한다. 그러나 연이어 들어야 효과적 감상이 되는 트랙은 연이어 방송하기도 한다. ‘CD클래식’ 선곡표를 보면 솔로곡이나 실내악의 비중이 높은데 이는 곡당 러닝타임을 8분대로 짧게 유지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같은 앨범은 20일이 지나야 선곡이 될 수 있도록 시스템 록(lock)이 걸려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물론 1만2000여장의 CD를 근간으로 한 쎄티오의 방대한 라이브러리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24시간 365일, 재방없이 순수 선곡에 의해서만 방송되는 채널에서 ‘20일 동안 겹치는 앨범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놀랍다. 현재 쎄티오 클래식 라이브러리에 담긴 작곡가수는 876명, 연주자수는 4608명. 이 수치도 연주자의 경우 서로 다른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조합에 상관없이 대표 연주자만 카운트한 것이라고 한다.

"울트라 오디오 K-POP"

‘K-POP’ 채널은 말 그대로 최신 인기가요를 앨범 재킷과 함께 방송하는데, 세티오에서 일일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텍스트 정보의 범위가 무척 꼼꼼하고 넓다. 곡이 방송되는 3,4분 동안 화면을 보며 이 정보를 습득한다면 한 달만 지나도 K팝의 주인공들인 아이돌에 대한 전문가가 될 수 있을 정도다.

사진3. 방탄소년단의 ‘Best Of Me’ 화면

요즘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의 ‘Best Of Me’를 보자. 왼쪽 화면에는 앨범 재킷, 오른쪽 화면에는 해당 곡에 대한 정보가 뜬다. 맨 위부터 앨범 제목(Love Yourself 承 Her), 곡 제목, 아티스트 이름, 소속사, 데뷔 연도와 앨범, 공식 팬틀럽, SNS 주소, 작사가, 작곡가, 장르, 기획사, 유통사, 발매일이 총망라돼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본명과 생일까지 공개했다는 점. 여기에 ‘전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프로듀서인 체인스모커와 콜라보레이션으로 탄생한 곡’이라는 깔끔한 곡 소개도 덧붙였다.

사진4. 나얼의 ‘널 부르는 밤’ 화면

아이돌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나얼의 ‘널 부르는 밤’도 방송이 돼 집중 시청을 해봤는데, 역시 노이즈가 없이 깨끗한 음질에 정보량이 많은 사운드였다. ‘솔로 2집 정규앨범의 타이틀곡으로 흑인냄새가 많이 나도록 의도한 나얼의 음악세계를 보여주는 곡’이라는 일목요연한 곡 설명이 마음에 든다. 더욱이 이 앨범 발매일이 3월28일, 쎄티오 시청을 위해 하이파이클럽을 찾은 날이 4월4일인 것을 보면, ‘K-POP’ 채널은 그야말로 따끈따끈한 신곡까지 감상할 수 있는 채널이었다.

그러면 ‘K-POP’ 채널 선곡은 어떻게 이뤄질까. 쎄티오에 따르면 멜론과 벅스, 엠넷, 가온차트 등 10여개 차트를 비교해 150곡의 리스트를 만든 후 순위가 높은 곡일수록 자주 방송되도록 편성했다. 이 편성작업은 월~금 매일 이뤄지기 때문에 매일 새로운 곡이 ‘핫 150’ 리스트에 포함되고 인기가 떨어진 곡은 자동 삭제가 된다. 이밖에 리스트에는 들지 못했지만 주목할 만한 곡은 추천곡으로 20~30곡을 선정, 방송한다. 방송매체 성격상 욕설이 들어간 곡은 아무리 순위가 높아도 편성에서 제외된다고 한다.

"총평"

쎄티오의 두 울트라 채널을 시청하면서 그 깨끗한 음질과 촘촘한 정보량, 그리고 CD 재킷을 바탕으로 한 엄청난 텍스트 정보량에 놀랐다. 만약 타사 스트리밍 서비스와 듣는 것과 비교해본다면 그 음질과 정보량에서 비교가 안될 정도. 또한 음악을 들으면서 인터넷 검색이나 책자를 뒤적이는 수고에서 해방된 자유도 만끽했다. 특히 ‘K-POP’ 채널이 정성껏 마련한 아티스트와 곡 정보는 ‘이걸 언제 다 했나’ 싶을 정도로 방대했다. ‘CD클래식’ 채널은 내로라하는 신구 명반을 계속해서 들을 수 있는 점이 기특했다. 울트라 오디오 채널 감상을 위해서라도 집에 스카이라이프를 설치해야겠다. 

- 김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