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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에서, 주로 하이엔드급 제품들을 리뷰하다보니, 자기도 모르는 새에 익숙한 정황이 생겼다. 즉, 소파에 앉아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음악을 듣고 있으면, 일정 수준의 음이 늘 나온다는 느낌이 그것이다. 물론 가격대나 모델 모두 제각각이지만, 항상 일정한 수준은 견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느 제품을 선택하건, 늘 그렇거니 하는 믿음 같은 것이 있다. 그런데 이번 제품을 리뷰하면서, 나도 모르게 익숙한 상황에 빠져들었다가 잠깐 깨어났다. 가만, 이번 매칭은 하이엔드급이 아니잖아. 그런데 이런 하이퀄리티는 대체 뭐람? 혹 다른 조합을 듣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솔직히 이번 조합은 그간 내가 하이파이클럽의 시청실을 부지런히 다니면서 들은 조합중 제일 싼 것에 속한다. 아니, 이 정도 클래스의 제품을 리뷰한 적이 아예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익숙한 퀄리티의 음이 나온다는 것은, 아무튼 대단한 사건에 속한다. 사실 숱한 제품을 리뷰하면서, 이른바 “심봤다~!”라고 비명을 지를 만한, 높은 가성비를 지닌 제품은 일 년에 하나 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 경우, 진심으로 추천하게 된다. 사면 이득이라는 말이 이런 경우에 속하리라.

한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지금 들은 것은 두 개의 제품, 그러니까 스피커와 앰프의 조합으로 들었으므로, 대체 뭐가 물건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대략 상상해보면, 주로 스피커라는 것은 수동적인 존재이므로, 앰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러므로 아마도 앰프쪽에 더 많은 비중을 둬야할 것같다. 또 엘락으로 말하면, 그간 많은 제품이 리뷰되어 있으므로, 새삼 여기서 그 장점을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같다. 말하자면 기본기가 탄탄한 엘락에다 처음 만나는 인티앰프가 생각 밖의 선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온쿄의 신작 인티를 먼저 다뤄야 할 것같다. 모델 명은 A-9150. 가격도 그리 높지 않고, 디자인도 평범하기 짝이 없다. 출력이라고 해봐야 4오옴에 60W니, 8오옴으로 치면 30W 내외가 되지 않을까 싶다. 따라서 아무도 본 기에 주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내 본능은, 한번 자세히 이 제품을 들여다 보라고 권하고 있다. 그래서 보다 자세한 검증을 해볼까 한다.

사실 우리에게 온쿄라는 브랜드는 그리 낯설지 않다. 주로 AV 리시버로 유명하고, 현재 많은 분들이 애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간간히 인티와 CDP가 나오기는 하지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한 상황이다. 그러나 최근에 보다 하이파이 지향의 제품을 만들기로 하면서, A-9010을 내놓은 것을 계기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격대에 다양한 기능을 추가함으로써, 오디오를 처음 시작하거나 혹은 시스템을 단촐하게 꾸미고 싶은 분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물론 상도 많이 받았다. 본 기는 바로 그 후속기인 것이다.

사실 일본 안에서도 기라성같은 브랜드가 넘쳐난다. 따라서 정말 빼어나게 잘 만들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그 점에서 온쿄의 내공이랄까 실력을 일단은 인정할 필요가 있을 것같다. 또 70년이 넘는 온쿄의 역사를 일별해보면, 결코 만만치 않은 회사임을 알게 된다. 온쿄가 오사카에서 처음 창업한 때가 1946년 4월. 창업자인 타케시 고다이씨는, 순수한 일본제 스피커를 만들겠다는 야심으로 출사표를 냈다. 하지만 첫 작품은 의외로 카트리지 픽업이었다. 대신 개발에 개발을 거듭, 당시 수입에 의존하던 페이퍼 콘을 직접 제조하는 쾌거를 이룩한다.

그래서 1948년에 나온 ED-100이라는 모델은, 일본 오디오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명기로 자리잡았다. 이후, 1950년에 논 프레스 방식의 콘을 제조하기에 이르는데, 이것은 당연히 특허를 취득했을 뿐 아니라, 지금도 생산중이다. 무려 70년간 말이다! 이후 TV, 라디오, 컴포넌트 오디오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며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두 개의 모델을 지켜본 적이 있다.

하나는 1984년에 나온 GS-1이라는 스피커다. 그리 크지 않은 몸체지만, 올 혼 방식으로 꾸며져, (저역까지 혼 타입이다!) 그야말로 혼 타입을 좋아하는 분들에겐 일종의 로망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금도 중고 마켓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또 하나는 인테그라 시리즈. 즉, 온쿄에서 제대로 된 하이엔드 클래스의 앰프를 만들겠다는 야심으로 따로 런칭시킨 브랜드인데, 그 역사는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발표한 701, 725 등의 인티는 당연히 큰 화제를 낳았고, 지금도 그 전통이 본 기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일본 오디오 시장이 정점을 구가하던 8~90년대엔 대출력 하이엔드급 파워를 만들기도 했고, 고품질의 분리형 AV 앰프도 발표해서, 큰 화제를 낳기도 했다.

이런 배경을 살펴보면, 비록 출력도 낮고, 외관도 평범하지만, 본 기의 핏줄이나 태생이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된다. 실제로 음을 듣고 깜짝 놀랐을 만큼, 상당한 내공을 보여줬다. 의외로 출력을 상회하는 스피커 구동력도 자랑하는데, 거기엔 동사만의 특허 기술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선 본 기의 컨셉은 인티지만, 실제로는 DAC, 프리, 파워, 포노 그리고 해드폰 앰프까지 망라된, 무려 5개의 컴포넌트가 합체했다. 쉽게 말해, “파이브-인-원”(Five-in-One)인 셈이다. 일단 DAC부를 보면, USB단을 이용해 PC를 쓰게 하지는 않지만, 대신 동축과 광 단자를 각각 2개씩 제공하면서 사용성을 높이고 있다. 투입한 칩은 AKM의 AK4452. 이로써 24/192까지 신호를 받고, 32/768의 업샘플링으로 출력한다. 따라서 순수한 CD 트랜스포트나 네트웍 플레이어 정도만 접속하면, 본 기의 강점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프리단을 보면, 전통적인 다양한 기능이 돋보인다. 즉, 트레블, 베이스, 밸런스단이 존재하는 바, 실제 사용해보면 상당히 편리하다. 개인적으로는 트레블을 좀 더 올렸을 때, 내 취향에 맞는 음이 나왔음을 밝힌다. 또 볼륨 컨트롤부도 이 가격대의 제품에 걸맞지 않게 고사양을 투입해서, 특히 낮은 레벨에서도 디스토션이 없는 음을 가능케 하고 있다.

다양한 입출력단도 흥미롭다. 무려 4개의 RCA단이 있고, 라인 아웃, 프리 아웃, 메인 인이라는 부가 단자도 포착된다. 대개 프리 아웃은 흔하지만, 녹음을 위한 라인 아웃이라던가 별도의 파워를 쓰는 메인 인과 같은 단은 요즘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로써 다양한 프리 및 파워 앰프와 연결할 수도 있게 되었다.

파워단으로 말하면, 특주한 고전류 사양의 트랜스도 뛰어나고, 이와 매칭되는 캐패시터도 오디오 그레이드를 동원했다. 오디오에서 전원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는데, 그런 면에서 본 기의 전원부는 매우 인상적이다. 따라서 출력의 경우, 스펙상의 숫자에 크게 연연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특히, 동사가 제안하는 “프렉트라모듈”(SpectraModul)은, 광대역을 실현하면서도 뛰어난 리니어리티를 함께 추구하고 있다. 그 대역이 메가헤르츠 단위인 만큼, 이 부분은 하이엔드 제품에서나 볼 수 있는 사양이다. 따라서 악기 분리도라던가 다이내믹스 표현 등에서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또 헤드폰 잭도 보이는데, 전문적인 헤드폰 앰프를 집어넣고 있다. 단, 6.3mm 사양의 잭임을 밝힌다. 포노 앰프의 경우, MM뿐 아니라 MC도 대응한다. 특히, MC를 제대로 구축하기 위해 헤드 앰프까지 만들어서 삽입했다. 요즘 LP가 새롭게 인기를 얻고 있는데, 본 기를 통해 별다른 디바이스 없이 MC 카트리지를 쓸 수 있는 것이다.

자, 이와 매칭되는 엘락의 경우, 새삼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브랜드다. 그러나 한동안 고가의 제품군에 집중한 바 있고, 지금은 거기서 쌓아올린 노하우를 보급형에 이양하는 단계. 그래서 나온 게 데뷔(The Debut) 시리즈다. 마치 초심으로 돌아간 듯, 스피커의 A부터 Z까지 새롭게 따져보면서, 합리적인 가격대의 제품들을 런칭하고 있다. 이번에 만난 F6는, 그 데뷔 시리즈 중의 하나. 여기서 F는 프런트를 뜻하고, 6는 제일 탑 모델이다. 그 아래로 F5가 있다.

한편 데뷔 시리즈는 홈 씨어터와 병행하는 것으로 개발이 되어, 리어와 사이드, 서브우퍼 등도 골고루 런칭되어 있다. 흥미가 있다면 한번 살펴보길 바란다. 여기서 F6의 외관을 보면 전형적인 톨보이 형태로, 무려 두 발의 우퍼를 탑재해서 39Hz까지 커버하는 사양을 갖추고 있다. 즉, 드라이버의 사이즈 자체는 6.5인치에 불과하지만, 두 발을 채용하면서 양감과 스피드 모두를 충족하고 있는 것이다. 또 실제 시청을 해보면 따로 서브우퍼가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저역에 관한 한 큰 불만이 없다. 이 부분 또한 본 기의 강점이라 하겠다.

채용된 드라이버를 보면, 우선 트위터로는 1인치 사양의 천으로 만든 돔(Cloth Dome)이 쓰였다. 매우 자연스럽고, 디스토션이 적은 재생음을 자랑한다. 그 바로 밑에 6.5인치 사양의 미드레인지가 보인다. 이것은 우퍼처럼 아라미드 파이버 콘을 채용하고 있는데, 단, 일종의 직조 방식을 택해, 파이버 섬유가 빈틈 없이 진동판을 채우고 있다.

본 기에서 미드레인지가 담당하는 대역이 무척 넓다. 무려 100Hz~3KHz에 이른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중요한 음성 신호는 미드레인지에서 처리한다고 보면 된다. 많은 스피커 회사들이 광대역의 미드레인지를 지향하고 있는 바, 본 기에 투입된 모델은 그런 면에서 매우 이상적인 형태라 하겠다.

이어서 두 발의 우퍼는 미드레인지와 같은 구경. 또 진동판의 재질도 같다. 스피드와 양감이 골고루 섞인 저역을 들려주는 바, 매우 공들여 만든 드라이버임을 알 수 있다.

원래 엘락이란 회사는 드라이버를 자체 개발해서, 상위 클래스부터 채용한 후, 나중에 하위 모델로 이양한다. 그러므로 본 기의 경우, 가격을 훨씬 상회하는 고품질의 드라이버가 장착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디스토션이 적고, 내구성이 높아 한 번 사두면 잔고장 없이 오랜 기간 사용할 수 있다. 한편 본 기의 감도를 보면 6오옴에 87dB. 이렇게 보면 다소 출력이 높은 앰프가 필요해 보이지만, 실제로 5.4 오옴 이하로 떨어지는 법이 없다. 따라서 앰프 역시 일반적인 수준이면 족하다. 이번에 매칭된 온쿄의 인티로도 충분히 구동되는 것을 보아, 기본적으로 앰프 친화적인 스피커라 해도 무방하다. 메이커에서는 30~150W 사이의 제품을 추천하고 있다.

사실 엘락으로 말하면 과거에 공장 탐방을 한 적도 있고, 다양한 제품을 리뷰한 기억도 난다. 그러나 이렇게 홈 씨어터와 병행할 수 있는 보급형 모델은 처음 만난다. 그래도 그 명성이 어디 갈까? 얼마 전에 무려 140Kg이나 하는 콘센트로를 듣고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하위 기종에서 또 한 방 먹고 말았다. 더욱 동사의 제품에 믿음이 갈 수밖에 없다.

본 인티 및 스피커의 시청을 위해 소스기는 웨이버사의 DAC III MK II를 동원했고, 타이달과 룬의 음원을 적절히 사용했다.

Otmar Suitner - Wagner Lohengrin Overture

Staatskapelle Berlin

우선 바그너부터 보자. 비장한 바이올린군의 인트로로 시작해서, 점차 스케일이 커가는 형식이다. 일단 투명도, 해상도, 다이내믹스 모두 만족스럽다. 고역이 쭉쭉 위로 뻗는 가운데, 튼실한 저역은 나중에 투티에서도 제대로 폭발한다. 널찍한 무대를 그리면서 바그너의 카리스마와 마성이 제대로 그려진다. 사실 이 가격대의 조합으로 바그너라니? 누가 들으면 미쳤다고 하겠다. 그런데 가능하다!

Diana Krall - Temptation

The Girl in the Other Room

크롤은 풍부한 베이스라인이 우선 귀를 사로잡는다. 드럼의 타격감도 일품이다. 이렇게 리듬이 살아있으면, 그 위에 얹히는 보컬과 각종 악기는 쉽게 쉽게 갈 수 있다. 듣고 있으면, 크롤은 리듬이라는 파도를 타고 유유히 서핑하는 듯하다. 정말 기막히게 리듬을 갖고 논다. 또 중간에 피아노에서 잠깐 올갠으로 바꿀 때, 순간 소울풍으로 분위기가 바뀌는 대목도 절묘하다. 이런 미묘한 변화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

Dire Straits - Money for Nothing

Money for Nothing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곡 초반은 스팅의 보컬로 시작한다. 다소 환각적이고, 반복적인데, 그렇게 애매한 듯 가다가 갑자기 드럼이 폭발하고, 기타가 돌진한다. 이런 기막힌 드라마가 멋지게 표현된다. 일단 저역이 튼실하니, 절로 발장단이 나온다. 마크 노플러 특유의 무덤덤하면서 건조한 보컬이 여기서는 꽤나 매력적이고, 신기의 핑거링은 듣는 내내 감탄하게 만든다. 전체적으로 음이 활력이 있고, 기세가 좋다. 계속 과연 이게 진짜일까, 이 가격대로, 이 조합으로 가능하까, 계속 의구심을 가지면서 빠져들고 말았다.

Pink Floyd - One of These Days

Fearless

마지막으로 핑크 플로이드. 71년의 녹음이지만, 그 이펙트나 지향하는 음향은 생생하게 살아있다. 마치 요즘 녹음한 듯, 활력이 넘친다. 눈을 감고 듣고 있으면 어느 미지의 세계로 가는 듯하다. 환각적인 기타 연주가 이어지고, 빠른 템포의 드럼이 달리는 가운데, 기묘한 음색의 신디가 미친 듯이 밀어닥친다. 이런 부분을 일체 엉킴이나 혼동이 없이 제대로 표현한다. 이 가격대의 퍼포먼스는 분명 아니다. 저절로 "심봤다" 라고 외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은가?

- 이 종학(Johnny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