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최근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공부를 했다. 시험을 같이 보자는 딸들의 성화 때문이었다. 2월 시험 날짜가 하필 필자가 진행을 맡기로 한 부산 모 시청회 날짜와 겹쳐 공부를 중단했지만, 느낀 바가 많았다. ‘심화’ 선택 시 최고 1급까지 딸 수 있는 이 한능검에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응시한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따지고 보면 세상 모든 분야가 치열한 검정시험의 현장이다. 오디오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업체들이 매해 이 사운드능력검정시험에 응시하지만 일부 내로라하는 브랜드만이 영예의 1급을 받는다. 예를 들어 스테레오파일이 해마다 선정하는 올해의 기기는 그 시험을 통과한 이들에게 주는 일종의 자격증 같은 것이다.

물론 매체만 시험을 주관하는 것은 아니다. 애호가들도 저마다 시험을 통해 오디오 기기들을 걸러낸다. 사운드를 집중적으로 체크할 수도 있고, 외관이나 내부 설계, 아니면 인터페이스에 배점을 더 높여 매길 수도 있다. 각자 마음이다. 어쨌든 그 시험을 1급으로 통과한 제품만이 애호가의 거실이나 시청실에 입성할 수 있다.

거의 매주 오디오 기기를 리뷰하는 필자 역시 나름 철저한 사운드능력검정시험을 통해 해당 제품을 선별한다. 이건 무슨 특권이나 호사스러운 선택이 아니라 리뷰어에게 주어진 엄정한 책무다. 그리고 지금 필자가 쓰고 있는 ‘내돈내산’ 제품은 이 시험에서 1급을 통과한 제품들이다. B&W 801 D4, 드보어피델리티 Orangutan O/96, 일렉트로콤파니에 AW250R, 패스 XP-12, 코드 M-Scaler 등이 바로 그러하다.

필자의 이 1급 리스트에 추가할 제품이 생겼다. 최근 리뷰한 일본 에소테릭(Esoteric)의 복식조다. N-05XD 네트워크 DAC 겸 프리앰프와 S-05 스테레오 파워앰프인데, 소리가 말도 안 되게 좋았다. 티악(TEAC)에게는 안된 말이지만 특히 음의 입자감이나 SN비, 스피드에서 격차가 컸다. 단 2대로 룬(Roon) 네트워크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점과 파워앰프가 클래스 A 증폭인 점도 남달랐다.

N-05XD 살펴보기

에소테릭은 티악이 1987년에 론칭한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다. 첫 제품으로 CD 트랜스포트 P-1과 DAC D-1을 내놓았다. CD 재생을 위한 분리형 시스템이 탄생한 것인데, P-1에 들어간 티악 자체 개발의 디스크 드라이브 시스템이 바로 해외 유명 하이엔드 업체들이 앞다퉈 사용하는 VRDS(Vibration-free Rigid Disc clamping System)다.

에소테릭 라인업은 플래그십 그란디오소(Grandioso)와 일반 에소테릭 라인업으로 나뉜다. 에소테릭 라인의 경우 모델명에 들어간 숫자가 낮을수록 상위 제품인데, 네트워크 플레이어의 경우 N-01XD와 N-01XD SE가 플래그십, N-05XD가 엔트리 모델이다. 스테레오 파워앰프 역시 S-02, S-05 순. 그리고 숫자 다음에 붙는 영문은 업그레이드 에디션으로, X 에디션이 2014년, Xs 에디션이 2018년, XD 에디션이 2019년에 나왔다.

N-05XD는 네트워크 플레이어 겸 프리앰프다. 룬(Roon) 프로토콜과 블루투스 aptX HD/LDAC 코덱을 지원하고, PCM 32/384, DSD512 스펙의 디스크리트 DAC을 내장했으며, QVCS 볼륨과 HCLD 버퍼단, 풀 밸런스 헤드폰 출력단, 리니어 전원부로 중무장했다. 이상이 필자가 파악한 N-05XD의 핵심이다. 오리지널이 2016년, XD 에디션이 2022년에 등장했으며, 중간에 X, Xs 에디션은 없었다.

우선 외관부터. 오리지널 N-05에 비해 디스플레이가 커지고 전에 없던 4핀 밸런스 헤드폰 잭과 6.3mm 언밸런스 헤드폰 잭이 눈에 띈다. 오른쪽에는 USB 메모리 재생용 USB-A 단자와 알루미늄 재질의 볼륨 노브가 있다. 특이하게 상판이 약간씩 움직이는데 에소테릭에 따르면 이 세미 플로팅 패널(semi-floating panel)이 재생음의 개방감을 높여준다고 한다.

후면은 이더넷 단자를 비롯해 디지털 입력단자로 동축 2개, 광 2개, AES/EBU 1개, USB-B 1개, 아날로그 입력단자로 XLR/RCA 1조씩 마련됐다. 출력단자는 XLR/RCA 1조가 있는데, XLR 단자는 에소테릭 기기끼리 연결하는 용도(ES Link Analogue)로도 사용할 수 있다. 외장 10MHz 마스터 클럭 연결을 위한 BNC 단자도 보인다.

네트워크 플레이는 룬을 통해 타이달과 코부즈, 인터넷 라디오를 이용할 수 있고, 에소테릭 사운드 스트림(Esoteric Sound Stream) 앱도 있어서 타이달과 코부즈, 스포티파이를 인앱으로 즐길 수 있다. 블루투스의 경우 aptX HD(24/48), LDAC(24/96) 코덱을 지원, 24비트 고해상도 음원을 무선으로 들을 수 있다.

설계상으로는 DAC 파트의 변화가 단연 눈길을 끈다. 오리지널 모델의 경우 AK4490 스테레오 칩을 4개 투입했지만, N-05XD는 에소테릭이 직접 디스크리트로 델타 시그마 DAC 회로를 짰다. 그란디오소 D1X 모노블록 DAC에 처음 투입됐던 마스터 사운드 디스크리트(Master Sound Discrete) DAC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 N-05XD 내부를 보면 16개의 저항과 플립플롭 조합, 아날로그 로우패스 필터가 보인다.

위 그림은 에소테릭이 공개한 N-05XD 블록 다이어그램인데, 자일링스 FPGA 칩을 빠져나온 멀티비트(PCM) 혹은 싱글비트(DSD) 신호가 디스크리트 DAC(저항+플립플롭)과 아날로그 로우패스 필터(LPF)를 거쳐 최종 아날로그 신호로 출력되는 것을 알 수 있다. DAC 회로를 빠져나온 아날로그 신호는 QVCS(Quad Volume Control System) 볼륨단, HCLD(High Current Line Driver) 아날로그 버퍼 회로 또는 헤드폰 앰프(32옴 1500mW)를 거친다.

QVCS 볼륨단은 저항 퍼텐쇼미터 방식이 아니라 OP 앰프를 통해 게인 자체를 조절(어테뉴에이터)하는 방식이다. 또한 ‘쿼드'(Quad)라는 말 그대로 L+, L-, R+, R- 4개 회로의 게인을 모두 조절, 특히 낮은 음량에서 좌우 채널 볼륨 값이 달라지는 현상을 없앴다.

HCLD 버퍼 회로는 고전류로 작동하는데다 채널당 플러스, 마이너스 2개 회로로 구성돼 SN비와 다이내믹 레인지를 높였다. 슬루 레이트가 2000V/us에 달하는 점도 놀랍다. 토로이달 전원 트랜스 2개를 비롯해 전원부와 아날로그 파트 모두 듀얼모노로 구성됐다.

출력 방식 중에서는 에소테릭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ES-LINK Analog가 눈길을 끈다. HCLD 버퍼 회로 성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개발한 것으로, 연결은 기존 XLR 케이블을 사용하지만 전류 전송 방식을 채택해 신호 경로상의 임피던스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실제로 예전 SACD 플레이어 K-01XS 리뷰 당시 XLR 방식과 ES 링크 아날로그 방식을 1 대 1 비교해봤는데, 그 차이는 놀라웠다.

S-05 살펴보기

S-05는 클래스 A 증폭으로 8옴에서 30W, 4옴에서 60W를 내는 스테레오 파워앰프다. 에소테릭에 따르면 그란디오소 M1X 모노블록 파워앰프에 투입된 여러 기술과 노하우가 트리클 다운됐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바이폴라 트랜지스터를 3페어씩 푸시풀로 구동하면서도 바이어스 전류를 세게 흘려 클래스 A 증폭시킨 점이 남다르다.

외관을 보면 우선 덩치가 가로폭이 445mm, 높이가 191mm, 안길이가 444mm, 무게가 30.7kg에 달할 정도로 보무당당하다. 후면은 XLR/RCA/ES Link Analogue 입력단자가 채널별로 1조씩, 스피커 케이블을 연결하는 바인딩 포스트 역시 채널별로 1조씩 마련됐다. S-05가 한 대 더 있으면 모노 브리지 연결이나 바이앰핑도 할 수 있다. 모노 브리지로 연결하면 8옴 출력이 이론상 최대치인 120W로 올라간다.

파워앰프 설계상으로는 스테레오 앰프이지만 모든 스테이지를 듀얼 모노로 설계한 점과, 흔히 사용되는 토로이달 전원 트랜스 대신 940VA 용량의 EI 코어 전원 트랜스를 투입한 점이 솔깃하다. 파워 커패시터는 1만uF 짜리 ‘그란디오소급’ 커패시터를 채널당 4개씩 투입했다. 동상 노이즈 유입을 막기 위해 입력단을 밸런스로 설계한 점도 임팩트가 있다. 입력단에서 확보하는 전압 게인은 28.5dB이다.

시청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에서 진행한 에소테릭 N-05XD, S-05 시청에는 뵈레센의 X3 스피커, 스피커 케이블은 안수즈의 C2 케이블을 동원했다. 두 기기 간 연결은 에소테릭 권장사항인 ES 링크 아날로그 단자를 이용했다. 음원은 룬으로 타이달과 코부즈 스트리밍 음원을 들었다.

아티스트   Paul Simon
곡   Kodachrome
앨범   There Goes Rhymin’ Simon

본격 청음에 앞서 김윤아의 ‘Going Home’을 들어봤는데 따뜻하고 정갈한 음이 인상적. 이어 본격적으로 폴 사이먼의 ‘Kodachrome’을 들어보면 그 흥겨운 리듬감에 몸이 저절로 반응한다. 김윤아 곡에서도 그랬지만 네트워크 DAC 겸 프리앰프와 클래스 A 파워앰프 조합이 들려준 사운드는 잡내가 1도 없고, 음 하나하나가 선명하고 싱싱하다. 특히 보컬의 목소리가 메마르거나 푸석하지 않고 촉촉한 점이 매력이다.

파워앰프 S-05에 집중해 보면 바이어스를 세게 준 클래스 A 증폭의 선한 영향력이라고 할까, 스피커가 아주 즐겁게 노래한다는 인상. 클래스 B나 클래스 AB 증폭의 골칫거리인 크로스오버 디스토션이 태생적으로 없기 때문이다. 대신 무대 배경이 적막하고 스톱앤고가 확실하다. 악기들 사이의 숨 쉴 공간이 충분한 것은 N-05XD가 그만큼 프리앰프로서 책무도 다했다는 증거다.

아티스트   Musica Nuda
곡   Come Together
앨범   Live à Fip

처음부터 저음을 확 긁어온다. 악기 베이스의 에너지감이 하도 대단해서 귀가 멍할 정도. 뮤지카 누다 여성 보컬의 화려한 목소리 기교가 이날따라 생생하게 파악되는데, 이는 전적으로 에소테릭의 디스크리트 DAC 설계 덕일 것이다.

네트워크 플레이어로서 N-05XD의 해상력이나 분별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보컬의 고음은 그 어떤 막힘도 없이 위로 쭉쭉 뻗어 그 쾌감이 장난이 아니다. PRaT(페이스, 리듬, 타이밍)도 흠잡을 데가 없다. 

지휘   Thierry Fischer
오케스트라   Utah Symphony
곡   Symphony No.1 In D Major 'Titan'
앨범   Mahler: Symphony No. 1 In D Major "Titan" (Live)

오케스트라의 수많은 음들이 시네마스코프처럼 화려하게 펼쳐진다. 특히 두 조합이 일궈낸 스피드가 발군이어서 이 대편성곡을 좇아가는데 부족함이 전혀 없다. 만약 트랜지언트 능력 검정시험이 열린다면 거의 만점에 받을 만한 수준이다. 역시 N-05XD HCLD 버퍼 회로의 2000V/us라는 슬루 레이트 수치가 괜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곡에서 가장 크게 감탄한 것은 S-05의 스피커 드라이빙 능력. 8옴 30W라는 다소 왜소해 보이는 출력임에도 뵈레센 스피커를 마음껏 요리했다. 거의 ‘나의 전기 맛을 보거라~~’ 식. 여기에 각 악기들의 화려한 색채감까지 고려하면 역시 음악 신호가 요란하게 입력될수록 클래스 A 증폭이 위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S-05가 요리조리 완급이나 강약 조절을 하는 것을 보면 얄미울 정도다.

아티스트   Duke Jordan
곡   No Problem
앨범   Flight to Denmark

처음부터 무대 가운데에 퍼커션의 이미지가 또렷하게 맺힌다. 이렇게 음상이 정확히 맺히는 것은 스피커 역할도 크지만 소스기기부터 좌우 채널을 듀얼 모노로 관리한 덕도 무시할 수가 없다.

퍼커션 앞에 베이스와 피아노가 자리 잡은 모습이 잘 드러나고, 왼쪽의 드럼 연주에서는 심벌의 움직임까지 훤히 보이는 듯하다. 베이스가 계속해서 들려주는 낮고 견고한 저음, 선명한 윤곽선이 대단하다. 지금이 스트리밍 음원 재생인데도 무대 앞이 무척 투명한 점에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아티스트   Hilary Hahn
오케스트라   Los Angeles Chamber Orchestra
곡   Concerto for violin, strings & continuo No.2
앨범   Bach Concertos

첫 음이 흘러나오자마자 이 엄동설한 와중에도 봄이 저만치 오는 것 같다. 시청실이 갑자기 환해지고 필자의 기분까지 좋아진다. 비유컨대, 여리고 작은 음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살뜰히 포대에 담는 것 같다.

확실히 클래스 A 30W로 듣는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거의 적수가 없다. 음이 하나같이 풍성하고 윤택하며, 어디 거칠거나 모난 구석이 전혀 없다. 하긴, 단 2대의 조합으로 스트리밍 음원을 이렇게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점부터가 대단하다.

총평

에소테릭 제품을 리뷰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 특유의 고운 입자감과 거의 ‘갑자기’ 수준의 순간 가속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일체형 SACD 플레이어 K-01Xs였는데 마치 15g 짜리 디스크 한 장을 위해 에소테릭에서 진수성찬을 차린 듯했다. 분리형 P-05X와 D-05X도 막내이긴 하지만 넘사벽의 퍼포먼스를 과시했었다.

이번 N-05XD와 S-05도 예외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네트워크 DAC을 클래스 A 증폭의 스테레오 파워앰프와 단출하게 연결, 룬으로 스트리밍 음원을 품격 있게 들을 수 있는 점이 남달랐다. 네트워크 플레이어는 빠릿했고, 파워앰프는 찰졌다. 특히 얌전하게 생긴 S-05의 스피커 드라이빙 능력에 크게 감탄했다. 이것저것 따져봐도 이 복식조에는 무조건 1급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by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

※ Design and specifications are subject to change without no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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