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만일 여러분이 제조업체를 하나 만든다고 하면, 과연 공장의 풍경은 어떤 것이 될까? 물론 생산하는 품목에 따라 그림이 달라지겠지만, 오디오와 같은 전통적인 제품은 아무래도 자동차나 냉장고를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을까 싶다.

트락스(Tharx)를 주재하고 또 칩 디자이너로 일하는 루멘 아르타스키(Rumen Artarski)씨는 일본을 방문하면서 겪은 일을 테마로 삼고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어떤 전통적인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에 가보니, 숙련된 장인들이 주축이 되어, 깨끗하고, 정숙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엔 인공 로봇도 없고, 컴퓨터로 제어되는 오토메이션도 없다. 경험 많고, 지식이 풍부한 어른들 사이로, 젊고 창의력이 넘치는 젊은 인재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선배가 경험을 가르치면, 후배는 참신한 착상으로 대답한다. 이런 광경에 좋은 인상을 받은 아르타스키씨는 후에 트락스를 만들면서, 이런 형태의 이상적인 작업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사실 트락스가 불가리아의 소피아에 위치한 브랜드라고 설명하면, 잠시 의아한 분들이 있을 것이다. 불가리아? 우리가 아는 것은 겨우 요구르트 정도? 장수 마을이 많고, 무공해 지역이 많다는 것 정도?

그러나 냉전 시절, 동구권에서 불가리아는 다양한 첨단 산업을 유치한 적이 있고, 이 지역 특유의 깊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따져 본다면, 오디오쪽에서 단연코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또 최근에 경제 개발에 따른 이 지역의 오디오에 대한 수요는, 비단 불가리아뿐 아니라 동유럽 전체의 오디오 시장을 서서히 달구는 중이다.

개인적으로 트락스를 흥미있게 지켜보는 것은, 아무래도 온기가 있고, 투명하면서, 감촉이 좋은 음에 있다. 한 마디로 풍부한 음악성을 자랑한다. 분명 하이엔드 테크놀로지를 포함하고 있지만, 그 마무리에 있어서 오랜 경륜이 담긴 음이 나오는 것이다. 중립적이다, 컬러링이 없다, 라는 기술지향적 메이커의 제품도 좋지만, 거기에 음악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바탕으로 음악성을 구축하는 메이커는 흔치 않다. 따라서 원산지에 대한 불리함을 극복하고, 트락스 역시 우리나라에서 서서히 애호가층을 넓혀가는 중이다.

바로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위에서 설명했듯, 경험과 기술, 장인과 엔지니어링을 적절히 혼합한 데에 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앰프에서 기본이 되는 3극관, 그것을 싱글 엔디드로 만드는 SET 방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동사의 앰프는 진공관이 주류를 이루고, 여기에 하이브리드가 더해진다. 이렇게 완성된 테크놀로지는 소스기라던가 인티 앰프(동사는 이것을 모듈라 오디오파일 시스템이라 부른다) 등에 차례로 이양되고 있다.

사실 아무리 첨단 기능을 장착하고, 앞선 기술을 투입해도, 오디오의 사명은 최종적으로 음을 내는 것이다. 바로 그 종착역에 있어서, 얼마만큼 음악성을 담아내냐가 결국 시장에서의 성패를 가름한다. 이 점에서, 온고지신의 미덕을 담고 있는 트락스의 유니크함이 돋보인다 하겠다.

이번에 만난 막시미누스(Maximinus) DAC는, 이렇게 탄탄한 아날로그 실력을 바탕으로, 전가의 보도를 하나 투입했다. 삼국지로 치면 제갈 량을 영입한 형국인데, 그 주인공이 바로 MSB의 DAC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종래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칩을 쓰지 않고, 그렇다고 엄청난 인력과 투자를 필요로 하는 독자적 개발은 아직 요원한 상태에서, 과감히 MSB의 서포트를 받은 것이다.

MSB의 DAC는 자사 개발의 칩을 쓰고 있는데, 이것을 단순히 칩으로 만들지 않고 디스크리트 회로로 꾸몄다. 사실 DAC 칩의 현황을 보면, 버 브라운과 필립스 등이 떠오르지만, 트락스가 보기엔 문제가 많다. 20여 년전의 기술에 머물거나, 비트레이트의 한계를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풀 디스크리트 회로로 꾸민 MSB의 DAC는 최첨단 기술을 품고 있는 디바이스라고 봐도 좋다.

또 종래의 DAC 설계를 보면, 칩과 출력단이 분리되어 있는 문제가 있다. 실은 칩을 사다가 적절하게 아날로그단을 보조하는 선에서 그치는 경우가 태반이다. 나름대로 디스크리트 회로를 꾸몄다고 하지만 OP 앰프 수준에 머문 것도 많다. 사실 이런 전통적인 DAC는 버퍼나 필터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OP 앰프가 필수인 것이다. 또 I/V 변환이 이뤄진다는 것도 단점으로 꼽힌다. 결국 OP 앰프의 레벨이 DAC의 퀄리티를 결정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셈이다.

한데 MSB의 경우, 래더 방식을 쓰기 때문에, 컨버션의 저항이 바로 출력단과 연결이 된다. 중간에 OP 앰프가 개재할 이유가 없다. 또 마무리에 출력 트랜스를 투입해서, I/V 변환을 대체한다. 즉, DAC와 출력단이 하나로 결합한 방식인 것이다.

이런 MSB의 DAC를 채용함에 따라, 현재 막시미누스는 해외 마켓에서 무척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실제로 음을 들어보면 동사의 앰프에서 느낄 수 있는 높은 음악성이 잘 구현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또 제품의 퀄리티를 볼 때, 높은 가성비를 갖고 있는 점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하긴 극도의 완성도를 추구하는 MSB에서 아무 회사한테 DAC를 납품할까? 아마 내가 MSB라고 하면, 타사에 납품 자체를 꺼려할 것이다. 그럼에도 과감히 트락스를 선정했다는 것은, 역으로 이 회사의 높은 음악성과 기술력을 인정했다는 뜻도 된다. 따라서 구태여 본 기의 장점을 일일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트락스를 좀 더 소개해보자. 일단 동사의 앰프군을 보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기본기에 충실하다. SET, 3극관, 노 피드백, 클린 파워, 정숙한 배경, 짧은 신호 경로, 밸런스 회로 ... 이런 아날로그 기술을 배경으로 디지털 기기를 만들면서, 동사는 3가지 항목에 주목하고 있다.

1) 컨버전 프로세스

2) 컨버전 이전 단계의 DSP.

3) 타이밍. 바로 클락의 문제.

여기서 멀티비트가 낫냐, 원 비트가 낫냐 하는 논쟁은 삼가기로 하자. 단, 멀티비트의 경우, 정확한 시행 능력이 돋보이는 반면 높은 해상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여러 개의 칩을 병렬로 동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제대로 구성하기도 힘들고, 또 단가도 올라간다.

이 부분은 위에서 설명한 대로 MSB의 DAC가 멋진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덕분에 384KHz까지 오버샘플링이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디지털 프로세싱의 경우, 현재는 24비트가 주류를 이루는데, 본 기는 32비트 선에서 시행되고 있다. 당연히 여기서 얻는 이점이 한 둘이 아니다.

또 컨버전 프로세스가 이뤄질 때 언급할 것이 바로 타임의 문제다. 이것이 헝클어질 경우 당연히 지터가 발생한다. 그래서 클락을 뭘 쓰느냐가 또 관건이 된다. 하지만 동사는 클락에 루비듐을 쓰던 오토믹을 쓰던, 그런 문제보다 선행되는 것이 바로 정확한 디자인이라 본다. 제대로 계측하고 연산해서 최선의 디자인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맞는 말이다.

이런 여러 사항을 체크해서 만들어진 본 기는, 매우 준수한 스펙과 빼어난 음악성으로 시스템 전체의 퀄리티를 확실하게 올려줄 기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DSD에도대응하고, 어떤 음성 신호든 32/384 사양으로 올리며, 자체 내부 클락으로 지터를 제어한다. 또 리클라킹, 업샘플링 등의 레벨도 애호가가 선택할 수 있게 했으며, 실제로 음을 들어보면 음성 신호에 따라 무조건 최상의 사양으로 올려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직접 들어보고 결정해야 한다. 게다가 4개의 디지털 필터 중 하나를 선택해서 들을 수 있으니, 장르에 따라 또 취향에 따라 선택지가 다양하게 있는 셈이다.

기본적으로 본 기는 모듈 방식이다. 따라서 새로운 포맷이 나오거나, 업그레이드가 필요할 경우, 해당 모듈을 교환하면 된다. 지속적인 펌웨어 업그레이드도 이뤄지고 있다. 한번 사두면, 계속해서 서비스를 받아 늘 신품과 같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변화가 많고, 신기술이 자주 출몰하는 디지털 분야를 생각하면, 이런 방식의 제품이 주는 장점은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라지 않다.

과연 좋은 음이란 무엇일까? 트락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영상을 조정할 때, 콘스라스트 항목을 예로 들고 있다. 만일 너무 강하게 해서 블랙이 덮어버리면, 당연히 해상도가 떨어진다. 윤곽이 뭉개지고, 여기저기에 블랙이 번지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반대로 너무 밝게 하면 눈이 아프다. 붕 뜬 화면이 이어진다.

그렇다. 이 콘트라스트를 제대로 조정하면 컬러가 살아나고, 다양한 디테일이 포착된다. 바로 그런 단계의 음을 구현하는 것이 트락스의 음향 철학이다. 이렇게 비유하면, 아마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본 기의 시청을 위해 스피커는 바워스 앤 윌키스의 802 D3, 앰프는 매킨토시의 MA9000 그리고 소스는 주로 룬(Roon)을 사용했다. 참고로 시청 트랙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1악장> 프리드리히 굴다(피아노)

-베토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9번 “크로이체르” 중 1악장> 파트리시아 코파친스카야(바이올린)

-다이애나 크롤 <‘S Wonderful>

-핑크 플로이드

Fridrich Gulda - "Beethoven" Piano Concertos

Wiener Philarmoniket, Hent Stein

우선 굴다의 연주부터. 데카 전성기의 녹음답게, 전체적인 스케일이 크고, 디테일이 풍부하며, 감촉이 좋은 음이 나온다. 그런데 일절 애매한 구석이 없는, 매우 명료하고, 영롱한 음이 나와서 놀랐다. 마치 최신의 녹음을 접하는 듯하다.

장중한 인트로 이후, 피아노가 본격 연주할 때, 그 맑고 경쾌한 느낌은 무척 신선하다. 심지어 익히 들어온 바워스 앤 윌킨스와 매킨토시 조합의 음도 보다 밝고 명랑하게 바뀌었다. 그러나 차분히 들어보면, 마치 3극관을 듣는 듯한 온기와 질감도 느껴진다. 게다가 투티에서 위풍당당하게 몰아칠 때 저역의 펀치력이 무척 일품이다. 여러모로 풍부한 음악성을 갖춘 재생이라 하겠다.

Patricia Kopachinskaja - Beethoven Violin Concerto

Orchestre des Champs Elysees

두 번째 트랙으로 가면, 개인적으로 코파친스카야에 관심이 많은데, 이번에 집중해서 들어보니 그녀의 스타일이 가진 강점이 잘 부각되고 있다. 몰도바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에 자란 독특한 이력은, 자유분방하면서, 호쾌하고 또 기품이 있는 음을 연출하고 있다. 오로지 피아노와 바이올린 두 개의 악기로 구성되었지만, 일체 빈 곳이 없다.

특이한 것은 오른쪽과 중앙에 피아노가 있는 반면, 왼쪽에 바이올린이 쏠린 점이다. 덕분에 더욱 선명하고, 간섭이 없는 바이올린을 들을 수 있다. 정교치밀하면서 박력 만점의 연주인데,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하다. 또 피아노의 명징하면서 강력한 타건은 듣는 내내 긴장감을 선사한다. 해상도의 끝을 보는 듯한 묘사력에 마이크로 다이내믹스의 철저한 재현으로, 계속 집중해서 듣게 만든다.

Diana Krall - S' Wonderful

S' Wonderful

크롤의 트랙은 익히 들은 바 있지만, 여기서 그 전모가 확연히 드러난다고나 할까? 우아하고 광대한 오케스트라를 배경으로, 탄력있는 저역을 기초로 한 캄보 밴드의 경쾌함 그리고 크롤의 달콤하면서 농염한 목소리는, 한번 들으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마력을 선사한다. 마치 맑은 시냇물을 보듯, 베일을 몇 겹 벗긴 듯한 해상도는 두 말하면 잔소리고, 거기에 매우 럭셔리한 느낌이 고급 하이엔드 기기를 듣는다는 느낌을 확실히 전해준다. 눈을 감으면 어디 클럽 메드에서 휴양을 하며 맛있는 칵테일을 마시는 듯하다.

Pink Floyd - Time

The Dark Side of the Moon

마지막으로 핑크 플로이드. 초반에 다양한 시계가 요란하게 울부짖는데, 그 위치라던가 개성이 일목요연하게 파악이 된다. 이후, 마치 심장이 뛰듯 두근거리는 음이 다가오고, 불안감을 동반한 이펙트 음이 나타난다. 기본적으로 현대인의 정서적인 불안감을 표현하고 있는데, 다양한 음의 오버 더빙이 무리없이 표현된다.

이윽고 본격 연주가 시작되면, 록 특유의 야성미와 에너지가 일체 가감없이 나온다. 고역의 개방감과 저역의 펀치력 중역의 밀도감이 골고루 어우러져, 저절로 미소짓게 한다. 중간에 나오는 기타의 장렬한 솔로는 가슴 깊이 각인될 정도. 록에서 이런 활기는 요즘 쉽게 만날 수 있는 대목이 아니다.

결론) 전체적으로 빼어난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바탕으로, 여기에 갈고 닦은 풍부한 음악성을 담아, 요즘 보기 드문 완성도를 보이고 있다. 또 원산지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는 추세라, 굳이 불가리아라는 출신지를 따지고 들 필요도 없으리라. 투명함, 다이내믹스, 해상도 등을 골고루 갖추고 있으면서도 기본적으로 럭셔리하고 격조가 있다. 소스의 체인지에 따라 전체 시스템이 얼마나 급수가 올라가는지 경험해볼 좋은 제품이라 본다.

이 종학(Johnny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