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오디오의 심장, 전원과 접지

오디오의 심장은 무엇보다 전원부다. 제아무리 뛰어난 신호 전송, 증폭 회로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전원이 공급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자면 아무리 훌륭한 두뇌와 체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심장에서 제대로 혈액을 공급하지 못하면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심장은 산소와 영양분을 실은 피를 온몸에 공급하며 이것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면 사람은 죽고 마는 것과 같다. 

이런 이상 징후를 막기 위해 모든 전자제품은 전원부에 신경 쓰지만, 특히 하이엔드 오디오에서 전원부의 완성도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이 곧 음질에 막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극성을 맞추는 일은 당연하며 때로 오디오 메이커는 극성을 잘못 맞추어 전원 케이블을 꽂았을 때 디스플레이 창에 이를 표기해주기도 한다. 제조사마다 약간씩 그 위치가 다르긴 하지만 갈수록 극성이 통일되고 있어 극성 맞추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라운드 전압, 즉 접지에 관련해서는 여전히 난관에 부딪히곤 한다. 접지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누설전류는 화재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우린 지금 그런 수준의 이야길 하자는 게 아니다. 단지 접지가 되었는가, 되지 않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완벽하게 되었는가를 따지자는 것이다. 어떤 제품이든 지구 대지에 누설 전류를 흘려 전위차가 0V가 되면 완벽하지만, 실재 가정 내에선 거의 불가능하다. 대개 스튜디오 공사에 수십 개의 접지 봉을 땅에 매설하기도 하고 때로 주변에선 새롭게 단독주택을 지으면서 접지공사를 하지만 그만큼 많은 돈이 든다. 슬프게도 아파트나 빌라 등 공동주택에 사는 대부분의 오디오파일은 이런 일은 꿈도 못 꾸는 실정이다.

인크레커블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하이파이 오디오 메이커들은 가상접지 장치를 만들어 판매해왔다. 접지에 관해 무지했던 과거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어설픈 가상접지 장치를 만들어 판매하곤 했지만 이젠 상황이 변했다. 전원에 관해 이미 많은 실패를 거듭한 오디오파일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최근 접했던 제품 중 유일하게 그 설계와 퍼포먼스에서 만족할만한 모습을 보여준 것은 텔로스 GNR 정도였다. 액티브 방식 회로를 가진 GNR은 각 컴포넌트마다 다른 전위차를 균질하게 낮추어주는 환상적인 접지 장치였다.

그러나 가격대를 생각하면 접지공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다. 그렇다면 이즈음에서 오디오파일은 망설인다. 접지공사를 하고 두꺼비집도 오디오용으로 따로 빼서 설치하는 대대적 공사를 감행할 것인가? 간단히 가상접지 기기를 들일 것인지. 그러나 최근 그리 크지 않은 예산 안에서 가상 접지를 할 수 있는 모델을 입수했고 테스트해 들어갔다. 만일 어느 정도 이상의 성능만 나와 준다면 필자 또한 별다른 고민 없이 이 모델을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주인공은 인크레커블(Increcable)이라는 메이커에서 출시했다. 

MVD EARTH

인크레커블이 출시한 접지 액세서리는 바로 MVD EARTH. 크기는 손바닥만 한데 무게는 꽤 묵직해서 마치 탁상용 미니 앰프 같은 모습이다. 알루미늄 바디 상단에 두 개의 접지 모듈을 설치해놓은 형태다. 상단엔 총 네 개의 입력단을 마련해놓았는데 각각 INPUT과 LINK라고 적혀있다. 별도로 제공되는 6N 은도금 OFC 케이블 두 개 중 하나는 LINK 끼리 연결하고 또 하나는 INPUT과 두 개 모듈 사이에 설치된 단자에 꽂으면 사용할 준비는 끝난다. 그리고 몸체 중앙에 스피커 터미널처럼 만들어진 단자에 제공되는 접지용 케이블을 기기와 직접 연결해 사용하면 그만이다. 연결 포인트는 RCA 단자나 섀시 등이고 이에 따라 인크레커블은 다양한 iGROUND 케이블을 별도로 판매 중이다.

연결방식은 무척 간단하다. 앰프 또는 소스기기의 입력단 중 남는 단자가 있다면 좌측 채널용 RCA 입력단에 꽂아서 사용한다. 그리고 또 하나. MVD EARTH는 종 두 가지 모델로 출시되었다. 우선 디지털 전용으로 개발한 EBD-1이 있다. 이것은 DAC에서 여분의 디지털 입력단이나 출력단 또는 섀시에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아날로그 전용으로 정확한 명칭은 EBA-1이다. 이것은 프리앰프의 RCA 입력단이나 섀시 파워앰프 또는 아날로그 소스기기 등에 사용할 수 있으며 파워앰프 같은 경우 - 입력단에 사용하도록 권하고 있다. 이 외에 턴테이블의 경우 턴테이블의 접지단 또는 포노앰프의 입력/출력 또는 섀시에 사용할 수 있다. 특히 EBA-1이 그 용도가 다양한데 언급한 기기들 외에도 스피커에 사용할 수 있다. 스피커에 사용할 경우 파워앰프와 마찬가지로 - 쪽 터미널에 꽂아 사용하면 된다. 이 경우 스피커 유닛이 작동하면서 생길 수 있는 일종의 역기 전류를 제거해 음질을 상승시켜주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한다.

MVD-EARTH에서 MVD는 사실 ‘Mechanical Vibration Decoupler’의 이니셜이다. 다름 아닌 진동 제어 기능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 액세서리의 바닥을 보면 홈이 파여있는 고무가 붙어있다. 이것은 인크레커블에서 별도로 개발, 판매 중인 MVD-1으로 EBD와 EBA 모두 각각 두 개의 MVD-1을 바닥에 적용해놓은 모습이다. 코르크를 중심으로 네오프렌을 두 겹의 샌드위치 방식으로 결합해놓은 것으로 진동 전이를 막는 데 매우 효율적이라고 설명하며 측정 그래프까지 공개하고 있다. 

테스트 I : EBD-1

Youn Sun Nah - Isn't It a Pity

Immersion

먼저 디지털용 EBD-1 테스트는 웨이버사 W 코어와 W 스트리머에 연결한 맨하탄 II DAC의 아날로그 입력단에 적용해 진행했다. 변화를 예감한 것은 사실이지만 첫 곡부터 긍정적인 변화는 쉽게 감지된다. 특히 배경이 더 깨끗하고 앰비언스 표현은 더 좋아진다. 예를 들어 나윤선의 신보 중 ‘Isn’t it a pity’를 들어보면 보컬의 음상이 선명해지고 그 뒤로 고요한 배경이 형성된다. 좌/우로 현의 튕김 강도가 더 미세하게 구분되면서 생생한 실체감도 높아진다. 

Jan Gunnar Hoff - Living

LIVING

중역과 고역 사이 주변부, 즉 인간에게 가장 민감한 3~5kHz 구간에서 그 영향은 좀 더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었다. 얀 군나르 호프의 ‘Living’(MQA, 24/352.8)에서 한층 깨끗해진 피아노 타건을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앨리스 사라 오트와 올라퍼 아르날즈의 쇼팽 ‘녹턴’에선 미세한 약음 처리 능력에서 매우 섬세한 강, 약 조절이 이루어지면 마치 해상력이 상승한 듯한 뉘앙스를 주었다.

테스트 II : EBA-1

Jennifer Warnes - Way Down Deep

The Hunter

이번엔 아날로그용 EBA-1을 플리니우스 파워앰프의 RCA 입력단에 연결해 테스트해보았다. 여러 테스트 시그널을 흘려도 보고 음악들을 재생해보았으나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저역 부분이었다. 특히 파워앰프의 경우 섀시 접지 및 완전히 접지를 없앨 수 있는 기능이 장착되어 있는데 XLR입력을 사용할 때는 섀시 접지를 해주어야 험이 뜨지 않는다. EBA-1을 연결했을 경우 특히 저역 해상력이 상승하며 저역이 좀 더 맑고 타이트하게 들린다. 예를 들어 제니퍼 원스의 ‘Way down deep’에서 무대가 뒤로 약간 물러나지만 아주 큰 폭은 아니고 대신 저역 해상도의 상승이 돋보인다. 필자의 시스템에선 소스 기기보단 그 변화폭이 적었다.

EBA-1에서 사실 가장 기대되는 기능은 스피커의 역기전력을 없애주는 것이다. 접지율을 높여주고 제품 위에 올려놓기만 해도 진동 제어에 효율적인 액세서리지만 만일 역기전력까지 낮추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다. 이런 종류의 액세서리는 무척 비싸기도 하며 때로 스피커에 이런 기능을 갖춘 경우 굉장히 비싸기도 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부분에서도 실질적인 청감상 효과가 있다면 이 액세서리는 정말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RATM - Take The Power Back

Rage Against the Machine

결과적으로 스피커의 양쪽 채널에 EBA-1을 – 신호 쪽에 적용했을 때 변화는 긍정적이었다. 예를 들어 RATM의 ‘Take the power back’ 같은 긴박한 리듬과 강도 높은 타격감이 반복되는 곡에서 그 변화는 확실하게 감지되었다. 저역의 강약은 약간 줄어든 모습이지만 대신 정확한 표적을 때리듯 순간적 펀치력과 응집력이 상승했다. 더불어 더 날렵하고 선명하게 들리는데 역시 저역 해상도의 상승을 그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을 듯하다.

Thierry Fischer, Utah Symphony Orchestra - Sturmisch bewegt

Mahler: Symphony No.1 "Titan"

티에리 피셔 지휘, 유타 심포니가 연주한 말러 심포니 1번 ‘Titan’ 중 4악장 ‘Sturmisch bewegt’에서 초반 광폭한 총주가 서문을 열 때부터 심상치 않은 변화가 포착된다. 역시 같은 변화 양상인데 전반적으로 불필요한 잔상이 사라져 약간 더 깨끗해진 음색을 보인다. 정갈하고 투명한 사운드로 전이된 이 녹음은 원래 레퍼런스 레코딩스의 ‘Fresh’ 시리즈로 나온 고음질 녹음으로 다이내믹스 측면에서 테스트하기 좋은 DSD 음원이다. 악기의 두께는 약간 얇아진 듯하나 어색할 정도는 아니며 다이내믹스 손상 없이 선예도가 높아진 인상이다.

총평

MVD EARTH라는 신선한 접지 액세서리는 인크레커블이라는 브랜드를 다시 시험대 위에 올려놓게 만들고 있다. 사실 이전에 인크레커블에서 만든 케이블을 리뷰했던 적이 있었는데 신생 메이커라고 하기엔 그 기술적 깊이와 음질적 완숙함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알고 보니 인크레커블의 수석 엔지니어 D’Show Collins는 30여 년간 하이엔드 오디오 업계에서 일해 온 베테랑이었다. 어쭙잖은 평론가보다 더 고집이 있고 비평적 식견을 가지고 있으며 여러 이론과 기술에 해박하며 자신감이 충만해 측정치를 버젓이 공개하기도 한다. 

그러나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스펙만 열거하는 것이 아닌 하모닉스 특성 등 실제 음질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에 대한 식견이 높다. 틈새시장을 노린 액세서리 전문 메이커가 아니라 진공관 앰프 등 완성품을 독자적으로 개발, 생산하는 메이커는 다르다. 이번 MVD EARTH에서도 이는 충분히 증명되고 있다. 고해상도 음원 시대, 갈수록 복잡해지는 디지털 기기와 앰프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접지, 진동 문제에 대해 인크레커블은 MVD EARTH 시스템으로 합리적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Written by 오디오칼럼니스트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