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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니제티가 작곡한 [마리아 스투아르다]는 1834년 나폴리 극장과 매년 신작 오페라 한 편을 올린다는 계약을 맺은 뒤 처음으로 작곡한 오페라로서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마리아 스투아르다)과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엘리자베타)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쓴 쉴러의 희곡을 토대로 했다.

 

로마니가 완성한 리브레토로 1834년 여름 도니제티는 빠른 속도로 작품을 완성했지만 당시 검열 당국은 주인공인 마리아 스투아르다의 처형장면을 문제 삼는 바람에 다른 오페라인 [부온델몬테]를 급하게 작곡하여 무대에 올릴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이듬해 밀라노의 라 스칼라 오페라 하우스에서 [마리아 스투아르다]가 초연되었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의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말리브란의 컨디션 난조로 실패하고 말았다.

 

이 비운의 오페라는 20세기 중반까지 간헐적으로 연주될 뿐 거의 잊혀졌다가 1958년 작곡가의 고향인 베르가모의 도니제티 극장에서 올리비에로 데 바프리티스의 지휘로 재상연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알려질 수 있었다. 그리고 조안 서덜랜드, 몽세라 카바예, 비버리 실스 등의 명가수들 덕분에 이 작품은 [안나 볼레나]와 [로베르토 데브뢰]와 더불어 여왕 3부작의 계보를 잇는 도니제티의 걸작으로 재평가받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두 명의 여가수(엘리자베타와 스투아르다)가 동시에 주인공으로서 여대여(여자VS여자)의 불꽃 튀는 대결을 펼치는 특이한 구성과 벨칸토 성악의 정점을 요구하는 스타일로서 성악가들이 노래하기에 대단히 어려운 작품으로 손꼽힌다.

 

여기 2008년 라 스칼라 실황으로 발매된 [마리아 스투아르다]는 고화질의 화면과 고음질의 녹음을 바탕으로 최상의 가수들과 피에르 루이지 피치가 제작한 최고의 연출을 자랑하는, 서덜랜드-카바예-실스 이후에 제작된 최고의 [마리아 스투아르다] 영상물로 추천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가장 먼저 도니제티의 오페라 서곡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서곡부터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안토니노 포질리아니의 경쾌하고 박진감 넘치는 지휘로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는 이탈리아적인 도니제티 사운드를 폭발적으로 터뜨린다. 피치의 무대는 철골 구조물을 연상케 하는 노란색 배경의 성곽을 중심으로 완벽하게 고증된 시대 의상을 입은 연기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엘리자베타의 우아한 아리아 ‘아아, 청순한 사랑이 나를 결혼의 제단으로 인도하네’를 노래부르는 안나 카테리나 안토나치가 등장한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카르멘] 프로덕션에서 섹시하고 정열적인 카르멘을 먼저 본 사람이라면 이 절제된 고전극 무대에 선 안토나치가 조금 낯설 수도 있지만 적어도 조금은 진부한 듯한 이 아리아를 특유의 뻗어나가는 힘과 정교한 테크닉으로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중요한 테너 아리아로서 레이체스터 백작을 맡은 프란체스코 멜리가 부르는 ‘아아, 이 아름다운 용모를’에서 음색은 전형적인 벨칸토 리릭이지만 고음 지구력에서 조금 아쉬운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진정한 실력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레이체스터 백작이 엘리자베타에게 간청하는 2중창은 동상이몽을 꿈꾸는 두 배역의 섬세하고도 미묘한 감정표현이 압권으로서, 특히 안토나치가 부르는 카발레타 풍의 ‘라이벌이 이제는 내 왕관에 마수를 뻗치네’에서의 압도적인 가창력이 일품이다.

 

이어 커다란 나무와 잔디밭으로 무대가 바뀌고 마리엘라 데비아가 스투아르다의 애절한 아리아 ‘잔인한 구름은 날아가버리고’를 부르며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안토나치의 강렬한 목소리에 비해 훨씬 고급스럽고 청아한 느낌이 강조되어 좋은 대비를 이룬다. 역시나 파치 특유의 어두우면서 간결한 무대가 성악가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지게끔 하고 두 여왕이 만나는 1막 클라이막스에서는 다시 앞선 무대로 변환되며 조명은 이전의 노란색에서 청회색톤으로 바뀐다.

 

여기서 레이체스터 백작을 사이에 둔 두 여왕의 피가 튀기는 대결이 드라마틱하게 펼치는 첫 번째 만남이 펼쳐지는데, 서로를 모욕하고 저주하는 살벌한 대사와 격정에 격정을 더하는 가창이 더하며 오페라의 하이라이트를 화려하게 수놓는다. 안토나치를 압도하는 데비아의 지옥불 같은 저주의 아리아는 듣노라면 소름이 돋을 정도다.

2막의 무대 또한 커다란 변화 없이 피치가 만들어놓은 어두운 구조물을 배경으로 진행되고 탈보와 레이체스터의 대화 부분만 붉은 조명으로 바뀐다. 음악은 점점 타이트롤인 마리아 스투아르다로 맞추어지며 처형장면이 다가온다. 데비아는 간절함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실은 라르게토 아리아인 기도장면에서 합창단과 구슬픈 클라리넷 독주에 힘입어 호소력을 배가시키고, 엘리자베타가 도착하는 소리를 듣고 부르는 카발레타에서 최고의 연기력과 폭풍 같은 가창을 선보이며 라 스칼라의 청중을 압도해버린다.

 

스투아르다가 자신의 발로 당당하게 단두대로 걸어가 머리를 내밀며 막이 내린 뒤 가장 먼저 등장한 데비아에게 쏟아지는 관객들의 엄청난 환호, 뒤이어 등장하는 그녀의 숙적 엘리자베타 역을 맡은 안토나치를 향하는 우레와 같은 갈채를 보고 있노라면 그녀들의 뜨거운 여대여 대결을 다시 한 번 리플레이해서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음성은 PCM Stereo와 DD 5.1을 지원하는데 DTS 5.1이 빠진 것이 조금 아쉬움을 남긴다. 그렇지만 충실한 한글자막과 더불어 피치가 이야기하는 무대 뒤 이야기가 보너스 트랙으로 삽입되어 있어 극과 연출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어느 덧 스물 타이틀 이상의 한글자막 라이센스 DVD를 발매하고 있는 아울루스 미디어의 배려와 노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도니제티의 여왕 3부작을 갖추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소장용 아이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