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게티(Joseph Szigeti)의 무반주을 듣고서]

오늘 이곳에 가입한 클래식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일전에 쓴 감상글이랍니다. [시게티(Joseph Szigeti)의 무반주을 듣고서]-거친 삼베 옷같은 꺼칠꺼칠함이 돋보이는 영혼의 소리! by BACH2138 시게티의 무반주, 이거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연주이다. 매끄러운 음색의 미세한 울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바이올린선율의 아기자기한 맛도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연주다. 더군다나 기교적으로도 그렇게 썩 빼어나게 들리지 않는다. 또한 어떤 곳은 뚝뚝 끊기거나 강약조절이 지나치게 과장된 것 같은 선율진행에서의 어색함도 보이고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음이 갈라져서 삐걱거리거나 새는 곳도 있다. 이곡을 바라보는 음악 감상자들의 의견도 날카롭게 대립되어서, 격해지면 서로 간에 얼굴을 붉히게 할 수도 있다. 바흐아래서 도저히 인정 못할 연주라고 말하는 분도 있다. 더 나아가 시게티에게 더 이상 속지 말라고 극언을 가하는 분도 있다. 이에 반해 시게티의 무반주를 호의적으로 보는 분들은 하나같이 시게티가 불어넣은 해석의 정신적인 깊이에 주목한다. 이분들은 대체로 음악적 내면화를 통해서 감명을 전하는 연주의 대명사로 시게티의 연주를 들기까지 한다. 우아함의 극치를 실현했던 그뤼미오나 목석같이 강인한 연주로 일세를 풍미했던 헨릭 셰링 더 나아가 초절한 기교미로 바흐를 탈바꿈시켰던 밀스타인조차도 시게티에 이르면 무색하다고 이들은 암묵적으로 주장한다. 이것을 보면, 시게티의 무반주는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그야말로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논란의 와중에서도 시게티는 글쓴이에게 그 의미가 상당히 큰 존재이다. 바흐의 음악가운데서 무반주에 관한한 최초로 들어본 음악이 이 시게티의 연주였으니까 말이다. 그때 들었던 시게티는 정식 CD음반(정식음반으로 들은 것은 한참 후였다.)이 아니라 테이프에 복사한 것이었는데, 녹음기에 넣어 참 많이도 들었었다. 하도 많이 들어서 지금은 거의 재생이 안 될 정도다. 처음에 글쓴이가 시게티의 무반주를 접했을 때 받은 느낌은 두 가지였었다. 하나는 뭐랄까 나락(벼)집단처럼 거칠고 정제되지 못한 음악이었다는 느낌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내면세계를 신비스럽게 그려내고 있구나하는 느낌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시간이 흘러 여러 무반주와 비교감상하면서 고민해 봐도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그런데 시게티 무반주에서 표출되어지는 이 두 가지 느낌은 아이러니하게도 찬사와 비판이라는 양립 불가능한 극단적인 평가를 낳게 한 이유와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글쓴이는 시게티의 연주를 상당부분 좋게 평가하는 입장이다. 조야하고 때로는 무뚝뚝하게 들려지는 연주자체의 외형적인 모양새에 불구하고 곡이 발산하는 경건함을 높이 평가한 때문이다. 어떤 분의 말씀처럼 감정의 정화감같은 뉘앙스가 곡 밑바닥에서부터 느껴진다. 시게티의 연주에 이르게 되면 기교나 기술적인 문제점들은 많은 부분 상쇄가 되는 것 같다. 워낙 곡에 대한 주관적인 내면화(혹은 감정이입)가 탁월하기 때문이다. 이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시게티의 음악을 들으면서 글쓴이는 나름대로 감명을 받는다. 그다지 서정적으로 들리지는 않지만, 다른 무반주는 따를 수 없는 영적인 신비스러움이 꺼칠꺼칠한 음색에서 광채를 발휘한다. 이런 꺼칠꺼칠한 음악이야말로 어쩌면 바흐에서 표출되어지는 숭고성을 가장 잘 담을지 모른다는 생각마저도 든다. 시게티의 무반주에서 감미로운 음악적 흐름을 찾는다는 것은 상상 밖의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게 오히려 바흐 연주에 보약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바흐음악의 숭엄한 분위기는 미(美)이전의 어떤 불가해한 실체를 갖는 지도 모르는데, 이것을 시게티가 생생하게 끌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삼베옷같이 거친 음악! 여름이 되면 글쓴이는 삼베옷을 자주 입는 편이다. 어머니가 젊은 시절에 짠 그 삼베로 만들어진 옷을 걸치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기분 좋은 일이다. 참고로 40여년 이전 시골의 어머니 연배 되시는 분들에게 길쌈은 그야말로 생계의 수단 중 하나였었다. 그런데, 이 삼베옷이라는 게 참으로 묘한 존재다! 처음 입으면 도저히 입을 수가 없다. 피부가 아리기도하고 뭔가 포대기를 두른 듯 아주 어색하다. 더구나 부드러운 천으로 된 근사한 옷이 많은 요즘에, 삼베옷을 입는다는 게 어찌 보면 건방지거나 우스꽝스러울 수 있다. 그런데, 입어본 사람은 삼베옷의 위력을 대충은 알 것이다. 땀이 흘러도 옷이 몸에 감기지도 않으며, 통풍도 잘 되어서 아주 시원하다. 선풍기(부채는 제외하고^^)도 에어콘도 없었던 옛적 사람들이 입었던 옷이란 걸 생각하면 삼베옷이 여름옷으로 최고라는 것에 대해서 동의할 것이다. 무더운 여름, 삼베옷에 한번 맛들이면 다른 옷은 옷 같지가 않다. 옛적에는 이 삼베옷이 서민의 의복의 대명사로 군림했지만, 요즘은 상당히 비싼 고급 옷에 속한다. 어쨌건 이 거친 삼베옷이 드러내는 매력은 비할 데 없이 비범하다. 촌스럽거나 고지식한 외관에도 불구하고 발휘하는 그 기능성 때문에 글쓴이도 여름만 되면 삼베옷을 찾게 하는 모양이다. 이처럼 시게티의 무반주는 글쓴이에게 삼베옷과 유사한 관념으로 다가온다. 관조적으로 생각하기 싫어하는 요즘의 우리 현대인들은 조미료로 뒤범벅된 감미로움에 너무나 저려져 있는지도 모른다. 해서 거친 것이라면 무조건 배척하고 감미로움만을 최고로 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차원의 예술적 체험과 감명은 결코 밖으로 비춰진 외양에만 머무는 것이 아닐 거라는 게 글쓴이의 일관된 생각이다. 시게티의 연주는 분명히 기교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많은 부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미사여구 같은 껍데기에 매달리지 않고서 내면적인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은 장점중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시게티의 무반주가 발산하는 매력은 바로 삼베옷이 여름옷으로 주는 멋과 비슷하다. 시게티의 무반주는 삼베옷처럼 빳빳함. 고지식함 혹은 꺼칠꺼칠함 등이 겉으로 드러나는 특징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뛰어난 품격을 선보이고 있다. 한편 소탈함 순수함이란 측면에서 바라보아도 시게티의 무반주는 다른 이의 무반주와는 비교되는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요컨대, 시게티의 무반주는 삼베옷 같은 꺼칠꺼칠함이 돋보이는 영혼의 선율이라 할 수 있으며, 결코 자기과시 하지 않는 순수한 관념체로 평가하고 싶다. 소름끼칠 정도의 거친 활 쓰기 속에서 피어나는 시게티의 감동어린 해석은 음악을 넘어선 뭔가를 갈구하고 있는 듯 들린다. 끊임없는 공부와 자성(自省)적인 고찰을 통해 바흐의 신성에 도달하려는 듯 말이다. 바흐 무반주에서 시게티만큼 적나라하게 듣는 이의 감성과 지성을 자극하는 음악은 드믈 것이다. 오늘도 무반주바이올린 선율 배후에 내재된 영혼의 소리를 들으며 바흐와 시게티가 부여했음직한 신비스런 평정의 내적 세계로 들어가 보고 싶다.(BACH2138) 청취음반 시게티/ 뱅가드 클래식(오아시스 레코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