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앰프를 향한 집념
Audionet


지난 해 1월, 나는 좀 비장한 결심을 하고 L.A.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사실 굳이 이 여행을 할 필요가 없었는데도,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로 무려 10시간이 넘는 비행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그 사유는 아주 간단하다. “굿바이 CES”.

 

사실 언제부터인가, 매년 초에 미국을 가는 것이 일종의 관례가 되어버렸다. 아무래도 1월 초에 라스 베가스에서 열리는 CES 때문인데, 솔직히 연중 가장 비싼 시기에 떠나야 한다. 그러므로 항공료 관련해서, 12월 말에 가면 좀 더 유리한 면이 있다. 그래서 일단 L.A.에 도착해서 며칠 시간을 보낸 후, 베가스로 입성하는 패턴을 지켜왔다.

 

이번 여행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CES가 다가올 수록, 마음은 무거워져갔다. 앞으로 다시 이 시즌에 여기에 올 수 있을까?

 

이윽고 CES가 시작되고, 오디오 부문이 열리는 베네시안 호텔에 갔다. 군데군데 룸이 비어있거나, 다른 IT 관련 업체가 들어선 모습부터 마음이 아팠다. 그래, 올해가 마지막이구나. 실제로 전문적인 오디오 부스에 가 봐도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어떤 룸에는 나 혼자 앉아 있던 때도 있었다. 덕분에 실컷 음을 들을 수 있었지만, 막상 나가기가 뭐할 정도로, 흥행면에서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래, 올해가 마지막이구나.

 

그러다가 어느 스위트 룸의 널찍한 부스를 찾은 순간, 반가운 얼굴들이 연달아 나타났다. YG 어쿠스틱스, 크로노스, 쿠발라 소스나 그리고 오디오넷. 그리고 거기에 설치된 제품들은, 이 모든 아쉬움과 무거움을 단번에 떨쳐버릴 만큼 하이 퀄리티한 면모를 과시하고 있었다. 소냐 XV를 중심으로 긴밀하게 짜여진 기어들의 완벽한 컴비네이션. 특히, 스피커 사이에 우뚝 선 오디오넷은 아주 널널하고, 다정다감하게 XV를 컨트롤하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 스피커가 아닌 인간 소냐가 건네는 커피를 마시면서, 이 황홀한 향연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이후, 오디오넷의 변모가 놀라웠다. 갑자기 거대한 제품들이 속출한 것이다. 특히, 하이젠베르크라 명명된 플래그쉽 파워 앰프의 존재감이 대단했다. CES 이후 불과 몇 달만에 벌어진 뮌헨 쇼에서, 이 회사는 단연코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이제 1년이 지난 올해, 나는 뮌헨 하이엔드 쇼에서 정식으로 새 기어을 감상하고, 주재자인 토마스 게슬러(Thomas Gessler)씨와 자리를 함께 했다.

 

 

 

 

참고로 뮌헨 하이엔드 쇼가 열리는 MOC라는 곳은, 무척 거대한 곳이지만, 주변이 주택가인 관계로 레스토랑이나 카페같은 공간이 전무하다. 단, 1층 양 사이드에 두 개의 공간이 비는 바, 이 지역을 다인오디오와 오디오넷이 각각 차지하고 있다. 덕분에 나는 오디오넷의 카페에서 편하게 커피와 다과를 즐기면서 게슬러씨와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기사에서 게슬러씨를 영문 이니셜 TG로 표기해둠을 밝힌다.

 

 

 

 

-인터뷰는 오랜만에 하는 것같습니다. 애호가들을 위해 기본적인 질문부터 하겠습니다. 간략하게 오디오넷의 역사에 대해 짚어주십시오.

 

TG : 저희 회사는 보쿰에서 1994년에 시작했습니다. 실제로는 보쿰 대학의 테크놀로지 센터 기관에 속한 리서치 컴퍼니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의료용 장비를 만들면서, 아주 미세한 신호를 포착해서 증폭하는 계측기를 개발하는데 역점을 뒀습니다. 이 증폭은 순수한 아날로그 방식이었습니다. 매우 정교하고 또 정확해서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의료용 기기로 시작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TG : 당시 저희는 젊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모두 음악과 오디오를 좋아했으므로, 이 기기를 기반으로 한번 앰프를 만들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아주 객관적인 방식으로, 노이즈를 최소화한 설계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든 프로토타입 제품이 빠르게 알려지면서, 이듬해에 대만에 수출하는 개가를 올립니다. 지금은 업계의 선두주자로 발돋움했다고 생각합니다.

 

 

 

 

-오디오넷 하면, 가격대비 성능이 우수한 브랜드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TG : 맞습니다. 특히 클래식 시리즈의 경우, 자이언트 킬러란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작은 몸체에 가격도 높지 않지만, 어지간한 대형기를 위협할 정도로 퍼포먼스가 뛰어나니까요. 앱솔루트 사운드를 비롯한 여러 저널에서 상을 받은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디오넷은 창업 초기부터 좋은 평을 받은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TG : 바워스 앤 윌킨스에서 오리지널 노틸러스를 만든 후, 여러 앰프 회사에 의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8채널분의 파워 앰프를 공모했던 것이죠. 물론 널리 홍보한 것은 아니고, 그냥 업계 사람들끼리 아는 선에서 구한 것입니다. 90년대 당시 난다긴다하는 메이커가 모두 참여할 정도로, 실제로는 무척 큰 행사였습니다. 거기서 저희 회사 제품이 선택되었답니다. 비록 제품화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업계 사람들이 저희를 빠르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죠. 또 창업 초기에는 많은 스피커 회사에 크로스오버를 제작해주는 일도 했습니다. 이후 경영이 호전되면서, 곧 저희 제품 개발에만 전념하고 있죠.

 

-그런데 최근에 얼티미트 시리즈를 런칭했습니다. 아무튼 덩치가 크고, 스펙도 엄청나서 개인적으로 놀랐습니다. 종전까지 갖고 있던 오디오넷의 이미지와 좀 다르다고 할까요?

 

TG : 이 시리즈를 개발하면서 저희의 목표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세계 최고의 앰프를 만들자”. 그간 쌓아올린 지식, 기술, 경험 등을 모두 아우르는 최상의 제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외관이 다소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더 이상 작게 만들 수 없을 정도로 꽉꽉 채워 넣었습니다. 다른 업체라면 좀 더 크게 만들지 않았을까요?(웃음)

 

-사이즈 더즈 매터(Size does matter)라는 영화 카피가 생각납니다. 애호가 입장에선 앰프가 크면 클수록 보다 신뢰감이 깊어지는 경향도 있습니다. 다 퀄리티 때문에 이런 사이즈로 만들지 않았나 싶군요. 그런데 이 제품의 디자인도 만만치 않더군요.

 

TG : 실은 이전까지는 제가 디자인에 관여했는데, 얼티미트 시리즈는 외부의 디자이너에게 의뢰했습니다. 바로 하트무트 에슬링커(Hartmut Esslinger)씨입니다. 아주 전설적인 분이죠. 처음에는 소니쪽에서 일하면서 도쿄에서 15년간 살았고, 이후 캘리포니아로 가서 애플의 제품들을 담당했습니다. 여기서 10년간 다양한 제품을 발표한 다음, 지금은 상하이에서 디자인 스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럼 얼티미트 시리즈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시죠.

 

TG : 우선 핵심이 되는 테크놀로지는 바로 아날로그단에서 최상의 리니어리티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단순한 리니어리티가 아니라, 울트라 리니어리티를 추구하는 것이죠. 이것을 위해선 모든 부분이 정확해야 합니다. 또 어떤 왜곡이 발생하면 바로 수정할 수 있어야 하고요. 이 모든 것을 아날로그상에서 해결하는 것입니다.

 

-앰프가 갖고 있는 순수한 증폭의 기능에 최대한 충실하자는 것이군요.

 

TG : 사실 좋은 음이 뭔지 규명하기는 힘듭니다. 이 부분은 애호가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앰프를 예로 들면, LP나 CD 혹은 스트리밍을 통해 들어온 음성 신호가 레퍼런스가 되고, 이것을 최대한 왜곡없이 증폭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다시 말해, 이 레퍼런스에 담긴 음성 신호뿐 아니라 뮤지션이나 프로듀서의 감정, 음악성 등 모든 것을 다 담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선 우선 해상도가 담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군요.

 

TG : 그런데 빼어난 해상도를 얻으려면 전제 조건이 하나 붙습니다. 바로 스피드. 이 스피드가 받쳐주지 않으면 원하는 해상도를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질문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맞게 하고 있나? 대체 어떤 게 잘못되었나? 정확한 계측과 계산이 서지 않으면 스피드와 해상도는 절대로 따라오지 않습니다.

 

 

 

 

-오디오넷은 앰프뿐 아니라 소스기도 만듭니다. CDP, 네트웍 플레이어 등이 있는데, 그럼 디지털쪽에선 어떤 부분에 최대한 신경을 쓰는지 궁금합니다.

 

TG : 디지털상에선 시그널 프로세서가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것은 우리만의 순수한 기술로 만들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퀄라이제이션. 즉, 지터가 일체 없는 음을 실현하려면 역시 스피드가 중요해집니다. 시그널 패스를 최대한 줄이면서, 스피드가 뛰어나면 지터가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현재 얼티미트 시리즈에 런칭된 것은 슈테른 프리와 하이젠베르크 파워 두 종입니다. 이 제품들에 관해 간단히 설명해주시죠.

 

TG : 우선 슈테른으로 말하면, 전원부 분리형으로 꾸몄습니다. 단, 파워 서플라이쪽 설계를 대충하지 않고, 포지티브 및 네가티브 신호를 나눠서 별도의 토로이달 전원 트랜스를 투입했습니다. 50VA급 사양입니다. 한편 일체 자성이 있는 부품을 쓰지 않고, 기본적으로 플로팅 방식의 설계를 택했습니다. 그럴 경우, 미세 진동이나 발열에서 자유롭게 됩니다. 채널 분리도도 극상으로 추구했고요.

 

-중앙에 있는 커다란 디스플레이가 인상적입니다.

 

TG : 모든 기능은 마이크로프로세서로 콘트롤합니다. 또 전원부의 상태도 계속해서 체크하고요.

 

-하이젠베르크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시죠.

 

TG : 모노블록 사양의 제품입니다. 8오옴에 530W의 출력을 내고, 이것은 4오옴에 1,050W, 2오옴에 2,100W를 정확히 냅니다. 따라서 임피던스가 낮은 스피커에도 얼마든지 대응합니다. 전원부에도 신경을 많이 써서, 입력 및 드라이브단에 50VA급, 출력단에 1,200VA급 전원 트랜스를 각각 공급하고 있습니다. 발열을 빠르게 해서 앰프의 기능에 지장을 주는 법도 없답니다.

 

-그런데 오디오넷은 밸런스 회로엔 일체 관심이 없더군요. 타사는 밸런스 회로야 말로 왜곡이나 노이즈에서 자유롭다고 보는데 말이죠.

 

TG : 밸런스 회로는 기본적으로 싱글 엔디드 회로의 두 배를 씁니다. 따라서 싱글 엔디드에서 나오는 왜곡이나 노이즈가 두 배가 됩니다.

 

-그렇군요. 또 최근에는 보쿰을 떠나 베를린으로 생산 기반과 해드쿼터를 이전했습니다. 여기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TG : 보쿰이라는 도시는 기본적으로 철강업을 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쪽 산업이 시들합니다. 실업자도 많고, 여러 면에서 뒤떨어진 상태랍니다. 특히, 젊은 엔지니어를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젊고 재능있는 친구들이라면 뮌헨이나 베를린으로 가지, 보쿰을 선택하지 않고요. 그래서 25년간 지내면서 정이 든 보쿰을 떠나, 베를린으로 온 겁니다.

 

 

 

 

-예전에 한국에 왔을 때 우리가 만났죠? 그 때 한국을 무척 좋아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TG : 그렇습니다. 지금도 항상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한국은 아시아에서 독일과 같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저희처럼 전쟁의 참화를 겪었고 또 분단의 아픔도 갖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근면성실하게 일해서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했습니다. 제가 한국에 가서 인상적으로 느낀 것은,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좋은 교육을 받고, 정직하며,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장점들이 잘 어우러져 오늘날의 한국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물론 음식도 좋고요. 언제고 다시 방문하면 바베큐도 먹고 싶고, 많은 애호가들도 만나고 싶습니다.

 

-그럼 다시 한국에서 만나길 희망하며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TG : 감사합니다.

 

 

이 종학(Johnny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