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요 며칠…
작은 애가 어제, 혹을 하나 딱 붙이고선 물난리에서 살짝 비켜 선 동네로 갔던 신혼여행에서 돌아 와 하루 밤을 머물고서 오늘 오후 신행을 간다. 최근 몇 년 주말 당직이 아니면 거의 언제나 집에 와 30년을 익숙해 진 제 엄마의 음식을 맛 있게 먹던 아이인데 이젠 내 집이 녀석에겐 백업 디스크가 돼 버렸다. 마음이 텅 빈다.
어제 오후엔 다행인지 또 하나의 고민꺼리가 될 지 알 수 없지만, 내 서재에 들어 와 관심을 보이는 작은 사위녀석을 붙들고, 오디오에 대한 일장 연설과 운용실습을 해 줬다. 설마 나 없을 때 만지다 소리통 터뜨려 먹어도 물릴 수 없는 일이니 사전 대비 차원이다. 대학 다니면서, 요트 탄다고 한 해 유급을 당한 배포를 보면 꽤나 낭만적인 구석도 있고, 밴드에서 기타를 친 경력으로 보면 음악적 감수성도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가능성으로 본다면, 내 음반들의 다음 주인은 이 녀석이 아닐까 하지만 뉘라서 알겠는가! ^^ 우선 오디오 친구가 되어 주면 좋겠다. 그러자면, 한 세트 마련해 줘야 할 텐데…
지난 7일은 내가 첼로라는 악기를 가슴에 품은 지 일년이 되는 날이었다. 정확히 216만원의 레슨비와 기타 부대비용을 치르고 얻은 건, 왼 손 손가락의 굳은 살과 지지부진한 진도에 대한 좌절감이다. 비브라토는 아직 꿈도 못 꾸고, 2포지션에 진입하자 마자 엉망으로 흐트러져 버리는 음정들이 세상에 만만한 것은 없고 더구나 비올족 악기에 있어서는 그 정도가 심각하다는 깨달음도 함께 얻었다고 해야 할 테니 그게 소득이라면 소득이겠다.
그저 께, 아릿따운 내 첼로 선생에게 처음으로 악보 하나를 요청했다.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다. 이 곡을 두고 머릿 속에서 정보가 별로 검색되지 않는다면 이 글을 읽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니 서핑은 다른 데가 낫겠다. 베토벤선생이 고전시대와 낭만시대를 이었다면, 매카트니는 이 곡을 통해서 록과 클래식을 이었다는 건 이미 상식이 된 지 오래지 않은가?!! 그 곡이 내 활대에 의해서 앞으로 언제쯤 제대로 울릴지는 알 수 없지만, 인생은 시도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는 게 내 용기의 기반이다.
탄노이 스털링과 에이프릴 스테이트먼트2 는 웬만큼 에지가 풀렸는지 음량과 유연성이 이제 정상상태에 들어 섰다. 오래 된 가요반에는 확실히 감칠 맛 있는 스털링이고, 피시파이는 스테이트먼트다. 둘 다 아담한 내 방에서야 그 밸런스가 훌륭하기 이를 데 없고 이 녀석들을 통해 듣는 음악은 여전히 좋다.
가을이 발 걸음을 재촉하는 요즘 탁구장의 공기는 차갑지만, 시간이 갈수록 상대의 강한 스매싱이 한결 눈에 잘 보이고 반사적으로 내 민 내 라켓의 반발력이 강력한 회전으로 일그러 졌을 공으로 상대의 깊은 구석을 공략하는 희열은 뜨겁다. 마치고 갈증을 달래려 들르는 값싸고 푸짐한 호프집 뒤풀이엔 이젠 익숙해져 친 동기간처럼 여겨지는 동네 아저씨 아지매들과의 대화 또한 내 늙으막 일상의 놓칠 수 없는 활력소다. 50전후의 중년 부인들에게서 인간으로서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 들 눈에도 내가 그리 보였으면 좋겠다.
추수가 끝나 황량해진 들녘 사이로 차를 몰고 아침 저녁 다니다 보면, 마음이 허허롭다. 철 들고 부터의 오랜 의문…삶이란 무엇인가?...은 여전한 내 화두이지만, 걱정하지 말자. 대충 살면 되는 게 아닐까! 삶은 어차피 선택과 우연의 중첩이며, 불확실성과 확률의 교합이다.
어제 저녁에, 새로 얻은 작은 아들과 함께 발렌타인 30년과 21년 술 병 둘을 땄다. 21년의 톡 쏘는 맛은 이후 30년의 술병을 자주 기울이게 하는 효과를 발휘했는데, 나는 아우들 생각이 나서 몇 잔으로 그칠 생각이었지만, 속 모르는 사위녀석은 입맛을 쩍 다셔가면서 희희낙락이다. 술통의 크기를 불문하고 좋은 술은 좋은가보다. 친 조카 결혼식이라도 그럴까 싶게 성심으로 도와 준 아우님들에게도 한 잔씩은 돌려야 할 일이고…^^
좀 있다 한 시쯤에, 회사 사람에게 전후 사정을 일러 주고 사무실을 나가 애를 시댁에 데려다 줄 작정이다. 사람 사는 게 늘 이런 건가 보다.
- 한림의 골방에서 無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