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사운드카드여! 하이파이와 PC를 연결하라
최근 필자는 줄잡아 10종이 넘는 사운드카드를 연이어 시청했다. 내장 사운드카드로는 온쿄의 SE-200PCI ― 현재 필자는 이 제품을 데스크 탑 PC에 설치하여 초소형 PC 파이 시스템의 사운드카드로 사용하고 있다 ―, 외장 사운드카드로는 스타일오디오의 캐럿-패리도트와 캐럿-루비, SOtM(솜이라고 읽는다)의 mDAC-2v ․ dx-USB, 케임브리지 오디오의 DAC 매직, 에이프릴 뮤직의 스텔로 DA 100 Signature , 코드 일렉트로닉스의 코데트 ― 이 회사의 레퍼런스 모델인 QBD76은 아직 시청하지 못했다 ―, 벤치마크의 DAC1 USB와 DAC1 프리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최근 슬림 디바이스의 스퀴즈 박스 듀엣, 몬도 시스템의 민트 등과 같이 무선 스트리밍 기능을 중심으로 하이파이 시스템과 PC를 통합하는 제품 또한 시청한 바 있다.
최근 시청한 제품 목록을 적고 보니, 꽤나 필자가 많은 제품들을 시청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최근 PC 파이 분야가 오디오 시장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사운드카드가 PC 파이의 핵심 파트로 부각되면서, 전 세계의 쟁쟁한 하이파이 전문회사들이 사운드카드 시장의 주도권을 쥐기 위하여 일전을 불사할 각오로 다양한 제품들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버클리 오디오 디자인, 바이스 엔지니어링, 브라이스턴, 벨칸토, 오디오 리서치, PS 오디오, 뮤지컬 피델리티, 파이어스톤 오디오 등이 이러한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회사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사운드카드라는 용어에 대한 논란이 그것이다. 하이파이 오디오의 관점으로 보면, PC 내장형을 제외하고는, 이상에서 열거한 제품은 모두 DA 컨버터로 분류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자리에서 사운드카드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이유는 이들 제품이 USB 2.0 단자를 구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품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PC와 연결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사운드카드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밝혀 두고 싶다.
다음으로 이번에 이루어진 시청회와 관련된 사항 몇 가지를 밝혀 두어야 할 것 같다. 가장 먼저 이번 시청에서 사용한 미디어플레이어 소프트웨어로는 요즘 PC 파이 애호가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푸바 2000과 전문 스튜디오에서 녹음 ․ 편집 ․ 리마스터링 작업을 하는 데 사용하는 디지털 오디오 워크스테이션(DAW)인 세쿼이아(버전 7.22) 등이 2종을 사용했으며, 이들 소프트웨어는 플러그인 프로그램인 ASIO4All(버전 2.8)을 구동하여 미디어플레이어와 사운드카드를 직결하였다. 마지막으로 이번 시청회에서는 CD에서 1:1로 리핑한 웨이브 파일을 시청용 음원으로 사용했음을 밝혀 둔다. 다음은 이번에 시청한 음반 목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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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 부조니 : 샤콘느 D단조 - 예프게니 키신 ( 피아노 ) / RC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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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 : 피아노 협주곡 제1번 D단조, Op.15 - 크리스티안 치메르만 ( 피아노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사이먼 래틀 ( 지휘 ) / DG<초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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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 겨울 나그네 -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 바리톤 ) - 알프레드 브렌델 ( 피아노 ) / Philip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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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 디베르티멘토 D장조, K 136 -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 페트라 뮐레얀스 ( 지휘 ) / harmonia mundi |
이번에 있었던 시청회를 진행하면서 필자는 이제 하이파이와 PC 파이의 결합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연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새로운 매체와 기술을 도입하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다는 것은 음반 산업과 오디오의 역사가 충분히 증명하고 있는 만큼, 하이파이 오디오, 특히 하이엔드 오디오의 음향 표준을 PC 음향으로 단시간에 따라잡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번에 시청한 사운드카드들은 ‘PC 파이 음향 = 열등한 하이파이 음향'이라는 선입견을 불식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음향 그 자체로 들려주고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 시청회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에이프릴 뮤직의 스텔로 DA 100 Signature 는 하이파이와 PC 파이의 중도노선을 걷는 기기라고 할 수 있다. 하이파이의 관점에서 보면, 현재 통용되고 있는 디지털 입력 대부분을 지원하는 강력한 확장성을 갖고 있는 DA 컨버터가 분명하지만, PC 파이의 관점에서 보면, PC 파이 전용 사운드카드의 한계를 뛰어넘어 PC 음향 또한 본격 하이파이 음향에 근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 기기가 바로 DA 100 Signature 였던 것이다.
DA 100 Signature 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시중에서 흔히 접하는 PC 파이 전용 사운드카드 제품들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장중하면서도 당당한 음향을 자신만만하게 연출하는 모습이었다. 이러한 면모는 치메르만과 래틀이 협연한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키신이 연주하는 바흐 - 부조니의 샤콘느 등의 녹음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브람스의 협주곡에서는 베를린 필하모닉 특유의 육중한 텍스추어를 적극적으로 이끌어 내는 모습이 볼 만했다. 특히 음향 몸체나 윤곽을 예리하고 정교하게 다듬어 내기보다는 올이 굵은 선율선과 낙폭이 넓은 다이내믹을 유연하게 통합해 내고, 색채 표현 또한 순도 그 자체보다는 자연스러운 색감 그 자체를 연출하는 데 초점을 맞춘 음향은 DA 100 Signature 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이었다. 그 결과 뮐레얀스가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같은 정격음악에서는 고악기 특유의 소박한 음색과 가냘픈 선율선 등을 적확하게 연출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지만, 선율선과 다이내믹을 유연한 시각으로 통합하여 음악의 흐름에 추진력을 살려내는 모습이 볼 만했다.
이러한 면모는 피셔-디스카우와 브렌델이 호흡을 맞춘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같은 성악 재생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시청 시간의 제한 때문에 초반부의 서너 곡 정도를 감상할 수밖에 없었지만, DA 100 시그니처는 이들 가곡에서 피셔-디스카우 특유의 호흡이 긴 선율을 유연한 표정으로 살려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다음으로 시청한 사운드카드는 코드 일렉트로닉스의 코데트 젬 이였다. 하이파이 디지털 입력 계통 거의 대부분을 수용하는 DA 100 시그니처와 비교해 보면, USB 입력, 언밸런스 출력, 무선 스트리밍을 위한 안테나 등과 같은 단출한 입출력 계통만을 갖추고, PC 음악 재생과 블루투스 기능에만 전념하는 기기인 코데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코드는 역시 코드이다'라는 평범한 사실이었다.
코드의 제품으로는 보기 드문 염가 기종이지만, 코데트에서도 코드 특유의 정묘한 음향 조형 능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형 PC 파이 시스템에서 사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기획한 기기인 만큼, 음향의 스케일이 그리 크지 않고, 다이내믹 레인지 또한 그리 넓지 않지만, 색채의 경계를 섬세하면서도 명료하게 살려내고, 선율선의 표정을 또렷하게 포착해 내는 모습은 코데트 또한 코드 가문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면모는 율리아 피셔와 성 마틴 합주단이 협연한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a단조, 그리고 뮐레얀스가 지휘한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D장조 등의 녹음에서 확연하게 살아나고 있었다. 피셔가 연주하는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녹음에서는 피셔 특유의 정묘한 선율선과 화사한 음색이 손에 잡힐 듯한 표정으로 살아나고 있었으며, 뮐레얀스가 지휘한 모차르트 녹음에서는 정격음악 특유의 경쾌한 선율선과 고악기 특유의 질박한 음색이 삼삼한 표정으로 살아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시청에서 코데트 젬은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같은 편성이 큰 음악으로 오면, 확연한 음악의 골격과 폭발적인 다이내믹의 관점에서 조금은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 그러나 이러한 면모를 두고 딱히 코데트의 약점으로 거론하는 것은 무리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코데트가 소형 PC 파이 시스템을 위한 기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필자가 갖추고 있는, 두 조의 PC 파이 시스템에 코데트를 연결해 보면, 중형 이상의 시스템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골격과 폭발력을 이끌어 낸다 . 이렇게 보면, 코데트는 소형 PC 파이 시스템 환경에 최적화된 사운드카드라고 해도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스튜디오용 디지털 음향 장비 분야를 대표하는 강자인 미국의 벤치마크 DAC1 USB 는 이번 시청에서 어떤 음향을 들려주었는가? 이번에 DAC1 USB를 시청하면서 필자는 앞으로 하이파이와 PC 파이의 만남을 이끌어 낼 주역은 벤치마크처럼 프로용 디지털 음향 장비 분야에 뿌리를 두고 있는 전문회사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 시청에서 가장 고가의 기기이기도 했지만, 이번 시청에서 가장 강력한 음향을 들려 준 것이 바로 DAC1 USB이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시청에서 DAC1 USB는 DA 100 Signature 와 코데트 젬이 저마다 보여 주었던 장점을 한데 모아 놓은 듯한 음향을 들려주었다. DAC1 USB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초점이 명확하지만, 자극성과는 거리가 먼 자연스러운 표정을 이끌어 내는 음상이었다. 무엇 하나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안정감을 이끌어 내는 정연한 대역 밸런스, 불필요하게 둔중해지거나 들뜨는 법이 없는 선율선과 다이내믹,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흐려지는 법이 없는 세부 표정과 색채 표현 등이 정묘하게 조화를 이룬 음향이 DAC1 USB에서 살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시청회에서 마지막으로 시청했던 몬도 시스템의 민트 는 어떠한 음향을 들려주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까지 언급했던 3종의 사운드카드와는 시각을 달리하는 기기인 까닭에, 함부로 이야기하기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지만, 이번 시청에서 필자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 준 시스템이 바로 민트였다. 가격대로 보나, 음향의 완성도로 보나 전형적인 보급형 시스템이었지만, 민트 시스템이 무선 스트리밍 방식으로 들려주는 음향은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이었다.
민트 시스템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바로 무선 스트리밍 기능으로 재생하는 음향이었다. 한 마디로 USB 포트를 이용한 유선 연결을 능가하는 정보량과 안정감을 갖춘 음향을 민트 시스템의 무선 스트리밍 접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음향의 완성도만 놓고 보면, 민트 시스템은 본격 하이파이 음향이라기보다는, 보급형 시스템이 들려주는 음향을 들려주었지만, 이 시스템의 가격대를 떠올려 보면, 이만한 가격대에서 이만한 수준의 음향을 무선 스트리밍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던 것이다.
전체로 놓고 보면, 민트 시스템이 들려주는 음향은 고성능 FM 라디오 수준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사족을 달아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있다. 여기서 필자가 언급하고 있는 고성능 FM 라디오 음향이란 비판이 아니라 찬사라는 사실이다. 광대역 재생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고, 다이내믹 레인지 또한 그리 넓지 않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안정감을 잃지 않고, 자연스러움을 이끌어 내는 음향이 바로 고성능 FM 라디오가 들려주는 음향이기 때문이다.
-llhtmll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