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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관련 다큐멘터리가 새로 제작되어 발표되었다. ‘두 번째 인생(The Second Life)’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이 DVD는 에릭 슐츠 감독이 이전에는 공개되지 않았던 카라얀의 레코딩과 콘서트 영상물들, 프로듀서인 권터 헤르만과의 현장 통화 장면들 및 인터뷰들을 다큐멘터리 필름으로서는 대단히 아름답게 연출된 영상과 함께 제작한 것으로서, 현장에서의 보여지는 카라얀이 아니라 그에게는 제2의 삶이었던 스튜디오 내에서의 장면들로 엮어진 새로운 스토리 보드가 시청자에게 전혀 새로운 감동과 보다 한층 강해진 존경심을 유발시킨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그의 음반에는 우리가 미처 알 수 없었던 그의 넘치는 낭만성과 분석적인 해석력이 뒷받침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현장음과는 전혀 다른 재생음(카라얀은 음반의 사운드는 연주회장의 제각기 다른 사운드가 아니라 포디움 위에서 지휘자가 듣는 소리라 묘사했다)으로서의 새로운 사운드를 창조해냈는가를 깨달을 수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생음을 들으며 자신의 취향과 음악의 리얼함을 중요한 요소로 평가한다. 그러나 정작 오디오를 통한 재생음 그 자체로서의 인공적인 현장감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음 하나, 배음 하나, 표현력 하나를 만들어내는 오디오 제작자들의 고행에 가까운 노력은 인생의 절반을 스튜디오에서 보내며 노력했던 카라얀의 열정과 진배 없는 것으로서 특히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제품을 생산하는 오디오 제작자들의 숙명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 가운데에서도 자신만의 관점과 철학을 유지하며 현실적인 타협에 응하지 않는 고집스러움 또한 카라얀을 포함한 오디오 제작자들 같은 창조적인 사운드 메이커들을 존경해야 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청명하고 정돈된 음색과 넓지만 절제된 사운드 스테이징으로 스피커 재생음의 새로운 지평을 연 THIEL 오디오의 창립자인 짐 틸이 세상을 떠난 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애호가들 사이에서 틸의 죽음으로 인해 이 브랜드에 대한 상업적인 신뢰도가 조금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카라얀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리마스터링과 기획을 통해 그의 존재감과 완성도는 고스란히 보존되는 것처럼, 짐 틸이 유작인 CS 3.7을 통해 “음악의 충실도는 곧 음악적 신호에 있어서의 완벽하고 정확한 해석을 의미한다”라는 의미를 구현한 그 숭고한 의지는 지금까지도 계승되고 있음을 이번에 새로 발표한 CS 2.7 3웨이 플로어 스탠딩 스피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먼저 그 모양새부터 틸 브랜드의 전형적인 모습을 띄고 있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다. 길죽한 높이와 날씬한 폭, 경사진 전면 배플의 디자인 모두 우리가 선망했던 틸 스피커의 바로 그 전형적인 모습을 견지하고 있는 CS 2.7은 한 동안 감쇄되었던 THIEL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를 다시 회복시키기에 충분하다. 모양 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 있어서도 전통과 발전 모두를 아우르고 있어 더더욱 신뢰감을 준다. 우선 CS 2.7은 THIEL의 플래그쉽 모델인 CS 3.7과 동일한 동축 트위터/미드레인지 유닛을 탑재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으로서 이전 2.0라인에 채택된 코인시던트 트위터 & 미드레인지 드라이버에서 과감히 탈피했다. 

이전 발매작인 CS 2.4SE까지만 하더라도 전면 배플과 연결된 메이플 목재가 직각으로 연결된 것에 비해, 이번 CS 2.7은 CS 3.7에서 사용한 기술, 즉 실제 원목을 라운딩하여 전면 배플을 결합시킨 독창적인 인클로져 디자인(bend plywood sidewall)을 적용했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더불어 인클로져 진동이나 공진을 최소화함은 물론 내부 브레이싱에도 공을 들였다. 이렇게 CS 3.7로부터 물려받은 트위터/미드레인지 유니트와 목재 라운딩 캐비넷 사용으로 인해 CS 2.0대 시리즈는 진정으로 THIEL사의 영혼을 반영하는 본격적인 중심 라인으로 승격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CS 2.7은 2.0라인보다는 3.0라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데, 가격상승만큼은 애호가들에게 조금 부담스러운 요소로 작용할 수 있겠지만 상급기의 퀄리티를 이 가격대로 접할 수 있다는 요소 또한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이전 CS 2.4SE에서 사용한 8인치 우퍼와 패시브 베이스 라디에이터는 그대로 사용했고 위상 오차를 줄이기 위하여 배플을 기울인 것, 직접적인 음의 반사를 줄이기 위해 배플의 면을 줄인 디자인, 전체적인 외관의 디자인 모두 전통적인 THIEL의 기술을 고스란히 계승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구성과 디자인에 맞추어 설계한 크로스오버 네트워크를 통해 THIEL의 고유한 청명한 음색과 오리지널 음원의 퀄리티 보존, 독특한 스테이징을 더욱 현대적으로 발전시켰다. 이 CS 2.7은 과거로부터의 전통을 유지하되 이를 발전시키기 위한 정교한 실험이 가미된 일종의 하이브리드적 모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세팅을 마친 뒤 음악을 울리기 시작하는 CS 2.7의 소리를 듣노라니 감회가 새롭지 않을 수 없었다. THIEL 특유의 깨끗하고도 리얼한 음색을 중심으로 CS 3.7에서 느낄 수 있었던 중고역의 더욱 호방한 개방감과 적절한 에너지감의 조화로움, 그리고 2.0라인 특유의 깔끔하면서 엣지 있는 배음과 정확하고도 스피디한 음가로 이루어진 익숙하지만 전혀 새로운 사운드로부터 “나는 틸이다”를 당차게 외쳤던 과거의 영광이 다시 한 번 눈 앞에 재현되는 듯했기 때문이다. 더 없이 탄력적이고 단단하되 멜로디를 침범하지 않는 절제된 저역을 바탕으로 대역별 다이내믹 레인지는 마치 군대를 사열하는 듯 일사분란하게 펼쳐지는 동시에 투명한 음색을 통해 다채롭고도 섬세한 디테일들이 아로새겨지는 이 CS 2.7의 사운드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임이 분명하다. 분명 이 CS 2.7은 이전 CS 2.4 SE나 CS 3.7과는 구분되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음향을 갖고 있는 모델이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고 아날로그로 녹음한 브루크너 교향곡 7번(EMI)을 Esoteric에서 SACD로 복각한 음반을 서둘러 울려보았다. 첫 인상은 조금 차갑다고나 할까? Esoteric에서 발매하고 있는 SACD들 특유의 플랫하면서도 투명한 사운드가 음악이 시작되자마나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펼쳐지는 현악군의 두터운 배음과 절제된 잔향이 Esoteric이 만들어낸 개성적인 공간감과 온도감에 더해 CS 2.7 특유의 틀에 맞추어져 표현되고, 음악이 진행될수록 이 모델의 정확하고도 견고한 음향 밸런스에 빠져들게 되었다. 무엇도 목관과 혼의 정확한 움직임은 다른 스피커를 통해 쉽게 감지하기 힘든 모습으로서, 음색은 따스하다기보다는 화사하고 양감은 풍부하다기보다는 밀도감이 높다. 다이내믹 레인지 또한 동축 유니트의 특성상 위쪽이 많이 개방되었음을 느낄 수 있는데, 오케스트라 총주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도 안정감 높은 밸런스가 펼쳐지며 CS 3.7에 비견할 수 있을 만한 균일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고역을 경험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Esoteric SACD에 의뭉스러운 생각을 갖고 있는 애호가라면 그 정보량과 디테일함이 얼마나 풍부하게 복각되었는지 반드시 CS 2.7로 들어보라는 조언을 남기고 싶다. 

Ben Webster Meets Peterson(Verve)을 들어보며 CS 2.7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테너 색스폰의 볼륨감이 지나치지 않은 선에서 공간을 가득 팽창시키는 듯 표현되는 동시에 텅깅과 호흡이 바로 옆에서 느껴질 정도로 음악 데이터를 촘촘하게 미분하는 듯한 느낌, 그리고 음영의 농담을 끈적거리지 않고 매우 평탄하게 만들어내어 흐름을 대단히 미끈하게 이어나가는 모습이 무엇보다도 인상적이다. 여기에 오스카 피터슨의 피아노 소리는 부드러우면서 명징한 색채를 또렷이 이끌어내고 타건에 따른 울림의 응답속도 또한 대단히 신속하게 재생되었다. 무엇보다도 When your lover has gone에서 레이 브라운이 구사하는 스윙감과 리듬감의 리얼한 재생은 의자에서 몸을 무의식적으로 들썩이게끔 한다. 보컬 음반들의 재생력 또한 명불허전. 많은 애호가들이 THIEL을 통해 감동했던 바로 그 보컬 재생 특징을 바탕으로 입자감과 개방감, 다이내믹 등등이 업그레이드 된 소리를 만날 수 있다. 

전통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의지와 새로움을 향한 진일보된 발전이 어우러진 CS 2.7. THIEL의 명성은 짐 틸의 죽음과 함께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임을 알리는 신호탄임을 바로 이 새로운 모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THIEL의 ‘두 번째 인생’이 펼쳐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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