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회 하이파이클럽 시청회 후기
평생 한두 번 접할 법한 초하이엔드 매칭의 소름 대잔치
그야말로 초하이엔드 오디오들이 만났습니다. 지금까지 하이파이클럽 시청회에서 수많은 하이엔드 오디오 기기들이 실력을 뽐냈지만, 이번 268회 시청회는 남달랐습니다. 모노블럭 파워앰프는 댄다고스티노(Dan D’Agostino)의 플래그십 Relentless, 스피커는 윌슨 오디오(Wilson Audio)의 서열 3위 Alexx, DAC는 MSB 테크놀로지(MSB Technology)의 플래그십 Select DAC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디스크/네트워크 트랜스포트는 MSB의 플래그십 Reference Transport, 네트워크 뮤직서버는 오렌더(Aurender)의 플래그십 W20입니다. 스피커 케이블은 트랜스페어런트(Transparent)의 플래그십 Magnum Opus입니다. 한마디로 하이엔드 브랜드의 플래그십 회담 같습니다. 사실 수입사도 달라 이런 매칭을 일반 시청회에서는 보기조차 힘들죠. 그래서인지 시청회에 참여하신 분들도 이들 조합이 어떤 소리를 들려줄지 크게 궁금해하신 모습이었습니다.
시청회는 1,2부로 나눠 진행됐습니다. 1부에서는 먼저 네트워크 렌더러 모듈을 장착한 셀렉트 DAC을 이용해 룬(Roon) 음원을 들어봤습니다. 룬 코어는 웨이버사(Waversa)의 W Core(W코어)를 활용했고, 셀렉트 DAC과 릴렌트리스 모노블럭 파워앰프는 XLR 인터케이블로 직결했습니다. 이후에는 오렌더의 W20을 투입, 오렌더 자체 앱으로 네트워크 음원을 재생했습니다. 2부는 MSB 레퍼런스 트랜스포트를 활용해 디스크를 재생했습니다.
Diana Krall - A Case Of You
Live in Paris
거두절미하고 이들 초하이엔드 시스템은 어떤 소리를 들려주었을까요. 하이파이클럽 시청회에서 자주 듣는 다이애나 크롤(Diana Krall)의 ‘A Case Of You’가 1부 시청회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습니다. 이 곡은 룬으로 들었는데, 처음부터 피아노의 강력한 타건음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배음과 울림이 풍부한 음이며, 다이애나 크롤 그녀가 무대에 올라 노래하는 광경을 직접 지켜보는 것 같습니다. 관객들의 박수 소리마저 차원이 다르네요. 맞습니다. 이번 시스템의 첫인상은 ‘소름 돋는 현장감’이었습니다.
Select DAC
소스기기쪽부터 살펴봅니다. 셀렉트 DAC은 R2R 래더 DAC 설계로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MSB의 플래그십입니다. ‘하이브리드(Hybrid) DAC’ 모듈이 모두 8개나 투입됐습니다. 이에 비해 MSB 차상위 제품인 Reference(레퍼런스) DAC은 4개의 하이브리드 DAC 모듈이, 그 아래 Premier(프리미어) DAC과 Discrete(디스크리트) DAC은 하이브리드 모듈을 2/3분의 크기로 줄여 트리클다운시킨 ‘프라임(Prime) DAC’ 모듈이 각각 4개, 2개 투입됐습니다. 엄격하게 서열이 매겨진 셈이죠.
반듯한 알루미늄 섀시에 담긴 하이브리드와 프라임 DAC 모듈 모두 1개가 좌우 2채널을 담당하며, 각 채널은 플러스(+)와 마이너스(-) 위상을 각각 처리, 노이즈를 없애는 풀 밸런스 방식입니다. 따라서 모듈 수가 늘어날수록 다이내믹 레인지와 SNR에서 유리해집니다. 그리고 잘 아시겠지만, R2R 래더 DAC은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 신호로 바꿔주는 DAC 방식 중 하나로, 2개의 서로 다른 저항값을 갖는 저항 수십~수백개를 조합, 입력되는 디지털 신호를 즉각적으로 아날로그 전압값으로 변환합니다. 한 저항(resistor)이 다른 저항에 비해 정확히 2개의 저항값을 갖고 있어서 ‘R2R’, 표면실장 또는 디스크리트 구성의 저항이 늘어선 모습이 사다리를 닮았다고 해서 ‘래더’(ladder)입니다.
그런데 셀렉트 DAC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전원부를 별도 섀시에 담아 분리시켰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본체의 디지털과 아날로그 파트 각각에 전원을 공급하는 듀얼 모노 구조를 채택했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듀얼 파워베이스’( Dual Powerbase)입니다. 좀 더 음질을 향상시키고 싶다면 이 전원부를 하나 더 추가해 ‘모노 파워베이스’로 구성할 수도 있습니다. 모노, 즉 전원부가 2덩이가 되면 디지털 담당 전원부와 아날로그 담당 전원부가 물리적으로 완전히 분리되는 만큼 전기노이즈가 더욱 줄어들게 됩니다.
Espen Lind - Hallelujah
Hallelujah-Live
두 번째 곡으로 에스펜 린드(Espen Lind)의 ‘Hallelujah’를 들어봤습니다. 현재 셀렉트 DAC과 릴렌트리스 모노블럭 파워앰프는 직결한 상태인데, 사전 테스트를 해보니 프리앰프 없이 직결했을 때 음이 좀 더 시원시원하게 빠져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볼륨은 1dB 스텝씩 작동하는 셀렉트 DAC의 내장 패시브 정임피던스 어테뉴에이터를 활용했습니다.
곡이 시작되자마자 또 소름이 돋습니다. 그냥 현장으로 타임슬립해 들어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처음 껄껄껄 웃는 소리 자체가 역대급인데다, 음끝은 깨끗하고 배경은 적막하기 짝이 없습니다. 노이즈가 완전히 궤멸된 수준입니다. 여기에 시청실에 펼쳐지는 까마득한 공간감과 너무나 생생히 구분되는 4명의 음색에 깜짝 놀랐습니다. 특히 3번째로 등장한 보컬에서는 이 남자가 흉성으로 노래한다는 느낌까지 잘 전해집니다. 모노블럭 파워앰프의 초저 임피던스(0.03옴)와 광대역에 걸쳐 플랫한 스피커의 주파수응답특성(20Hz~31kHz/-3dB)도 이 같은 음만들기에 크게 일조했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룬이 아닌 오렌더 W20으로 네트워크 플레이를 해봤습니다. 그런데 W20과 셀렉트 DAC 사이에 투입된 ‘Pro USB’라는 일종의 어댑터가 눈길을 끕니다. W20에서 디지털 아웃돼 나온 USB 케이블을 입력단에 꽂으면, 출력단으로 MSB가 자랑하는 Pro ISL 케이블이 빠져나오는 구조입니다. Pro ISL(Isolated Synchronous Link)은 2개의 광섬유 케이블을 통해 디지털 아웃은 물론 클럭 동기화와 오류 수정 같은 기능을 구현할 수 있으며, USB 케이블보다 음질적으로도 훨씬 유리하다고 합니다. 물론 셀렉트 DAC에는 Pro ISL 입력단이 마련됐습니다.
이 대목에서 셀렉트 DAC의 마지막 특징이 드러납니다. MSB의 다른 DAC들과 마찬가지로 입출력단을 모듈식으로 구성, 청취 상황과 업그레이드 필요에 따라 적극 대응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번 시청회에서 셀렉트 DAC으로 룬 플레이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시청회에 등판한 셀렉트 DAC에 네트워크 렌더링을 할 수 있는 렌더러 모듈이 장착됐기 때문입니다. 룬 레디와 MQA 디코딩은 기본이지요. 또한 Pro ISL 입력 모듈이 2개나 장착돼, 하나는 Pro USB 어댑터를 거쳐 W20과, 다른 하나는 MSB 레퍼런스 트랜스포트와 연결됐습니다.
Dire Straits - Sultan Of Swing
Dire Straits
W20으로 들은 곡은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의 ‘Sultan Of Swing’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어깨가 들썩입니다. 신나는 음악의 힘이죠. 이 비싼 초하이엔드 오디오 기기들이 일제히 사라지고 시청실에는 밴드와 그들을 둘러싼 매캐한 공기만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음의 윤곽선에 일체의 색 번짐이 없는 점이 대단합니다. 일렉 연주의 순간적이면서도 강력한 다이내믹스를 보면, 역시 2옴에서 6000W까지 뿜어내는 릴렌트리스 모노블럭 파워앰프가 마침내 그 숨겨놓은 발톱을 드러냅니다.
Relentless Monoblock Power Amplifier
‘술탄 오브 스윙’을 들으면서 유심히 지켜본 것은 댄다고스티노 릴렌트리스 파워앰프의 대형 파워미터였습니다. 바늘이 쉴새 없이 9시~10시 방향까지 왔다 갔다 합니다. 차상위 파워앰프인 Momentum(모멘텀)의 파워미터 바늘이 웬만해서는 꿈쩍도 안 하는 점과는 큰 차이네요. 어쨌든 에메랄드 바다 빛을 바탕색으로 한 대형 파워미터와 휘황찬란한 알루미늄과 황동을 조합한 섀시, 큼지막하고 촘촘한 측면 방열핀 문양이 이 앰프의 힘과 구동력, 열기를 강렬히 상징합니다.
릴렌트리스는 8옴에서 1500W, 4옴에서 3000W, 2옴에서 6000W를 내는 대출력 파워앰프입니다. 더욱이 100W까지는 클래스 A 증폭입니다. 댄다고스티노에서 이 앰프를 ‘벨벳 해머’(Velvet Hammer)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부드러운데 강력하게 내려찍는다. 이런 의미겠지요. 어쨌든 임피던스가 반으로 떨어질 때마다 출력이 정확히 배로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전원부가 강력하다는 증거입니다. 실제로 릴렌트리스는 5.5kW 규모의 전원트랜스와 60만uF 용량의 커패시터라는 초강력 전원부를 갖췄습니다.
출력단도 어마어마합니다. 한 채널(블럭)당 128개의 바이폴라 트랜지스터를 출력단에 투입, 64개가 플러스(+) 신호, 다른 64개가 마이너스(-) 신호를 담당해 노이즈를 박멸시켜버립니다. 왜율이 0.006%에 그치는 결정적 이유입니다. 전에 빌 맥키건 댄다고스티노 사장과 인터뷰를 할 때 물어보니, 댄다고스티노에서 출력단 트랜지스터로 바이폴라를 쓰는 것은 전류를 많이 흘려보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JFET이나 MOSFET은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실제로 릴렌트리스 앰프의 최대 출력전압은 무려 400A에 달합니다.
James Blake - Limit To Your Love
James Blake
릴렌트리스의 파워를 실감해보기 위해 2부 첫 곡으로 들은 곡은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의 ‘Limit To Your Love’입니다. 그리고 이 곡부터 네트워크 플레이가 아닌 디스크 플레이로 진행됐습니다. 디스크 트랜스포트는 MSB의 Reference Transport(레퍼런스 트랜스포트)이고, 셀렉트 DAC과 연결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Pro ISL 케이블로 이뤄졌습니다. 레퍼런스 트랜스포트는 4K UHD 블루레이, 블루레이, DVD, CD 같은 표준 광학디스크를 모두 재생할 수 있고, USB 하드디스크 및 플래시 드라이브도 연결할 수 있습니다. 로컬 네트워크를 통해 UPnP/DLNA 플레이도 즐길 수 있습니다.
‘Limit To Your Love’에서 또 소름이 돋습니다. 보컬과 피아노 왼손 저역이 너무나 사실적으로 들립니다. 특히 저역의 울림은 마치 시청실 벽이 꿀렁거리면서 소리를 내지르는 것 같습니다. 고막은 덜덜 떨리고, 심장은 앞뒤로 마구 요동을 치네요. 이게 바로 20~30Hz까지 떨어지는 초저역의 가공할 힘일 것입니다. 이 곡에서는 릴렌트리스의 파워미터 바늘이 12시까지 움직입니다. 윌슨 오디오 스피커 알렉스의 공칭 임피던스가 4옴이니, 현재 릴렌트리스는 최소 3000W 이상을 낼 수 있다는 얘기이고, 바늘이 12시까지 오르내린다는 것은 순간순간 1500W라는 어마어마한 출력을 내뿜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다이내믹 헤드룸에 여유가 있다 보니 클리핑 우려 따위는 접어놓아도 될 것 같습니다.
Alexx Speaker
이제 음의 최종 출구인 스피커를 살펴보겠습니다. Alexx(알렉스)는 기본적으로 공칭 임피던스 4옴에 감도가 91dB에 달하는 고감도 스피커, 주파수응답특성이 20Hz~31kHz(-3dB)에 달하는 광대역 스피커입니다. 그러나 최저 임피던스가 무려 1.5옴까지 떨어지기 때문에 전원부가 튼실하지 않은 파워앰프라면 매칭은 엄두도 못 낼 그런 스피커입니다. 또한, 1개 무게가 205kg이나 됩니다. 높이는 158cm, 인클로저는 윌슨 오디오에서 ‘X-Material’이라고 명명한 재질입니다.
설계디자인 측면에서 보자면, 알렉스는 무엇보다 미드레인지 드라이버 2개와 트위터가 MTM(Midrange-Tweeter-Midrange) 배치를 취한 점, 그리고 이들 드라이버가 각각의 챔버에 수납된 점, 이들 챔버의 각도 조절을 통해 타임 얼라인먼트를 할 수 있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사실 이 3가지야말로 X-1 Grand SLAMM 모델 때부터 시작된, 윌슨 오디오 스피커를 관통하는 강렬한 키워드이지요.
구체적으로 보면, 맨 위 페이퍼 펄프 미드레인지 드라이버가 5.75인치, 가운데 실크 돔 트위터가 1인치, 아래 셀룰로오스/페이퍼 펄프 미드레인지 드라이버가 7인치입니다. 각 챔버는 차례대로 후면 벤트, 밀폐형, 바닥면 벤트 구조를 취했습니다. 그리고 밑에 있는 별도 인클로저에는 10.5인치 우퍼와 12.5인치 우퍼가 위아래로 수납됐습니다. 진동판 재질은 모두 하드 페이퍼 펄프입니다.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는 환경에 따라 전면 포트나 후면 포트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three kingdoms: Resurrection of the Dragon - the five generals
알렉스의 내공을 절감한 곡은 2008년 개봉한 유덕화 주연 영화 ‘삼국지 용의 부활’의 OST ‘The Five Generals’였습니다. 마치 원시 부족이 신성한 의식을 치를 때 등장할 법한 악기들이 섬뜩할 정도로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냅니다. 그것도 지저분한 구석이 전혀 없는 깨끗한 저역이 처음부터 시청실을 장악해버립니다. 그 살기와 결기에 살이 베일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음의 두터움과 밀도감, 중량감, 펀치감은 파워앰프도 중요하지만, 스피커의 저역 재생능력이 받쳐주지 못하면 그야말로 공염불이지요. 역시 10.5인치, 12.5인치 우퍼와 넉넉한 베이스 캐비닛 볼륨이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3dB 기준으로 20Hz까지 평탄하게 떨어지는 저역 주파수 응답특성이 괜한 수치가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이 곡에서는 평생 한 번 들어볼까 말까 한 엄청난 저역의 에너지에 또다시 소름이 돋았습니다.
Lady Gaga - Always Remember Us This Way
Always Remember Us This Way
이 밖에도 여러 곡을 들었습니다. 레이디 가가(Lady Gaga)의 ‘Always Remember Us This Way’에서는 편안한 고역에서 약간의 온기가 느껴졌고, 빅밴드로 연주한 ‘Blues In The Basement’에서는 광활한 공간감과 통통 튀는 탄력감이 돋보였습니다. 음의 실험실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다양한 악기의 음들이 난무하는 모습도 멋졌습니다. 마르쿠스 슈텐츠(Markus Stenz)가 지휘한 말러 3번은 마치 로마 병사들의 진군 같은 가열차고 늠름한 음의 기백에 또 소름이 돋았습니다. 알렉스 스피커로부터 빠져나온 초저역이 시청실 바닥은 물론 고막과 가슴팍까지 박박 긁어댔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피아니시모 파트로 넘어갈 때는 비행기가 착륙할 때 귀가 먹먹해지는 그런 현기증이 느껴져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SNR이 그만큼 엄청났다는 얘기죠. 이날 시청회에서 마지막으로 소름이 돋았던 이유입니다.
시청회를 마무리하며
초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을 원 없이 들을 수 있었던 시청회였습니다. 여느 시청회 때보다 신청곡이 많았던 것도 이들 조합의 독보적인 희귀성, 재생음의 압도적인 완성도 때문이었겠지요. 물론 가격은 상상 그 이상이지만, 이들이 들려준 소리는 거의 지구별 최강이라 할 만했습니다. 생체병기처럼 늠름하게 버티고 선 알렉스 스피커의 당당한 위용과 플랫하고 조용한 음, 이 알렉스를 때로는 해일처럼 무지막지하게, 때로는 엄마 손처럼 다독다독거린 릴렌트리스의 존재감, 그리고 이들에게 깨끗하고 순결한 음원을 전해준 셀렉트 DAC과 W20, 레퍼런스 트랜스포트에 감탄한 시청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소름 대잔치’였습니다. 시청회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