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 놀러가면 시커멓고 큼지막한 인켈 전축이 있었다. 행여 나처럼 나이 어린 조카들이 장난쳐 고장이 날까봐 항상 굳게 닫혀 있던 유리 문이었지만, 간혹 고모나 삼촌들을 졸라 열 수 있었다. 화려한 이퀄라이져나 버튼이 가득한 튜너도 재미있는 장난감(?) 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관심을 끌던건 다름아닌 커다란 헤드폰 이었다.

 

스피커 볼륨을 조금씩 높이다가 여차하면 애써 열었던 유리 문이 다시 닫겨야 했지만, 헤드폰을 사용하면 어떤 라디오나 CD를 듣던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자유 라는 달콤함을 헤드폰 하나로 깨닫게 되었다.

 

하이파이 유저들에게 있어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제약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소리를 만들어내는 중요함에 있어 반 이상을 차지하는 공간은 두말할 것도 없고, 외딴 곳에 혼자 살고 있지 않는한 스피커 시스템으로 음악을 즐기는데 시간적인 제한 역시 중요한 방해 요소 이다. 아파트 같은 공동 주택에서 가장 질좋은 전원을 끌어올 수 있는 시간대가 야간임에도 오디오를 마음껏 들을 수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 하다.

 

이러한 이유는 하이파이 유저들이 Head-Fi 에 눈을 돌려보게 할 빌미를 제공한다. 잘 구성된 헤드폰 시스템은 비슷한 가격대의 스피커 시스템에 비해 몇 가지 점에서는 더 나은 결과를 보여줄 수도 있다.

 

본 리뷰에서는 하이파이 유저 입장에서 바쿤 AMP-11R 과 젠하이저 HD800 의 가능성을 중점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이미지 출처 : http://www.head-fi.org/forum/thread/435840/head-fi-wallpapers-thread>

 

   HI-FI 에서 파생한 단어들이 최근 많이 눈에 띈다. Head-Fi 역시 또 다른 형태의 HI-FI 임을 강조하고자 하는 표현일 것이다. 보통 하이파이 유저들은 몇 가지 고정 관념때문에 헤드폰 시스템을 얕보는 경향이 있는데, 위에서 언급한 시공간에 대한 자유와 함께 여러 장점도 있다.

 

헤드폰은 고려해야 할 공간상의 펙터가 귀를 덮고 있는 이어패드와 고막 까지이기 때문에 시뮬레이션 데이터로 규격화된 형태를 개발하는데 용이하다. 따라서 공간 이라는 중요한 변수를 배제하고 시스템을 구성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을 갖는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실제 공간에서 만들어내는 입체감이나 음장/임장감을 비롯해 대역별 표현력을 흉내내기 위해 더 왜곡된 소리를 만들어 내야 하는 한계는 분명히 있다. 더구나 음이 만들어내는 공기의 파동/진동, 예를 들어 심장을 치는 저음역대의 음압 등을 헤드폰에서 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다른 특징은 헤드폰의 임피던스가 높기 때문에 헤드폰 전용 앰프가 필요하긴 하지만 작은 전류를 댐핑하면 되므로 앰프의 출력 부담을 덜어준다는 것이다. DAC 의 출력에 앰프 단을 간단히 설계해서 추가해도 그 자체로 쓸만한 헤드폰 앰프가 된다. 다만, 주파수에 따라 순간 임피던스가 증감할 경우 이에 대한 앰프의 반응성이 청음상으로 바로 드러날 수 있어 앰프나 소스기기 등의 선택 & 매칭에 더 세심한 고려가 필요하다.

 

 

장소는 방배동에 위치한 하이파이클럽 청음실에서 진행되었다. 대여를 해서 제대로 청음 및 측정 테스트를 해보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여건은 되지 못했기에, 짧은 시간에 최대한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사전 조사를 하여 준비해갔다.

 

하이파이 청음실에는 소스 기기로 패토스 시디피와 솔루스를 인터페이스로 하는 메르디안 풀시스템, 린데만 DAC 를 사용한 PC-FI 가 준비 되어 있었다.

 

바쿤 5513 파워앰프와 B&W signature 805, QBD76 를 서재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익숙한 앨범으로 스피커 시스템과의 비교에 주력하되 헤드폰 시스템이 갖는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단시간에 집중해서 여러 번 반복 청음 하였다.

 

 

 공식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바쿤 AMP-11R 과 HD 800 의 스펙은 아래와 같다.

 

    1) Bakoon AMP-11R
     
 Maximum Power Output : 10 watts (8 Ω, 1 kHz) 
 Gain : 20 dB maximum 
 Frequency Response : 10 Hz ~ 1 MHz (gain at + 10 dB) 
 Input : 1 SATRI-LINK (BNC), 1 Voltage (RCA) 
 Input Impedance : 3.68 Ω (SATRI-LINK), 100 KΩ (Voltage) 
 Output : 5 Way Cardas Binding Post, 헤드폰 
 Signal/Noise Ratio (Output Noise) : 50 μV 이하 (gain at + 0 dB) 
 DC Offset Drift : 1 mV 이하 
 Power Consumption : 10 watts idle, 50 watts maximum 
 Dimensions : 195 mm (W) x 195 mm (D) x 40.5 mm (H) 
 Shipping Weight : 3.7 kg (AMP-11), 6.4 kg (AMP-11 Reference) 

 

    2) Sennheiser HD 800

 

 Transmission range : 6~51000 Hz (-10 dB), 14~44100 Hz (-3 dB)
 Transducer principle : open, dynamic (ring radiator)
 Frequency response : 8~50,000 Hz
 Nominal impedance : 300 ohm
 Sound pressure level (@1 kHz) : 102 dB SPL (1kHz, 1 Vrms )
 Max. nominal long-term input power : 500 mW in acc. with EN 60-268-7
 Harmonic distortion : < 0.02% (1 kHz, 1 Vrms )
 Contact pressure : approx. 3.4 N ± 0.3 N
 Ear coupling : circum-aural
 Weight (without cable) : 330 g
 Jack plug : ¼" (6.3 mm) stereo
 Connecting cable : silver-plated, oxygen free (OFC),copper cable, symmetrical, Kevlar reinforced, 3 m
 Operating temperature : - 10 °C to + 55 °C
 Packaging dimensions (W x H x D in mm) : 273 x 348 x 149
 Units per carton : 4

 

 

 

 

SATRI 는 바쿤이 자랑하는 설계 기술이다.

 

앰프는 소스 기기에서 들어오는 신호를 잘 증폭해서 스피커가 주파수에 따라 임피던스가 변해도 왜곡되지 않게 전달해주는게 목적이다. SATRI 는 입력으로 전압 뿐 아니라 전류로 받아 전체 신호 처리를 전류 레벨에서 진행한다. 전압이나 전류나 같은 전기신호 아닌가라고 생각한다면 사트리는 그냥 방식이 좀 다른 앰프 기술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차원이 전혀 다르다.

 

전류 베이스로 설계할시 이점은 다음과 같다.

 

- 같은 목적의 회로라도 전압이 아니라 전류 기반으로 설계하였을 경우 트랜지스터의 동작이 바뀌는 지점에서 반응이 더 빠르다. 하지만 실제로 바쿤 앰프의 음 성향이 오버해서 스피디 하다고는 생각들지 않는게, 단순히 빠르기로 본다면 경험상 골드문트가 그런 성향이 더 컸다.

 

바쿤의 장점은 빠르기 보다는 정확한 타이밍의 댐핑으로, 치고 들어가야 할때와 빠져야 할때가 매우 정확하다. 그래서 듣다보면 소리가 전대역에 걸쳐 자연스럽고 유려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으며, 음 성향이 투명해서 레이어 표현에 유리하다.

- 전류 신호의 경우 외부의 노이즈로부터 영향을 적게 받을 수 있다. 댐위의 물이 갖는 위치에너지를 전압이라고 봤을때 전류는 떨어져내리는 물의 유속이라고 할 수 있다. 댐위의 물은 바람이나 외부 요인에 의해 흔들리기 쉽지만 강하게 떨어지는 물의 흐름은 어지간히 강한 외부 충격이 있지 않는한 변함없이 유지된다.

 

실제로 바쿤 앰프를 사용해보면 전체적인 노이즈 특성이 체감이 될 정도로 훌륭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급되는 전원 품질에 따라 차이는 다소 있지만, 같은 환경에서 비교했을 때 비교적 뒷 배경이 깔끔한 다른 앰프들 보다도 더 적막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S/N 비가 좋고 무입력시의 화이트 노이즈 역시 매우 적은 수준이다. 헤드폰 앰프로서 최고의 장점이 될 수 있다.

- 앰프에서 왜곡이 발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입력 신호의 다양한 주파수를 증폭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하모닉 성분 때문도 있고, 트랜지스터의 동작 특성상 발생하는 시간축 지연도 있겠다.

 

바쿤은 위의 1,2번 장점 덕분에 굳이 feedback 구조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어 시간축 지연을 줄일 수 있고, 넓은 대역 증폭에도 유리하다. 이런 이유로 작은 볼륨부터 큰 볼륨까지 소리가 흐트러지거나 잡신호의 가감 없이 리니어하게 정확한 출력을 내보내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장점이 많은 전류 증폭 방식을 다른 오디오 회사들은 왜 사용하지 않는걸까?

 

가장 큰 이유는 대출력 설계가 아주 어렵다는 것이다. 출력이 커질 수록 앰프를 구성하는 모든 소자들은 높은 내압 특성을 지녀야 하는데, 아무리 내압이 올라가더라도 큰 전류가 직접 흐르게 되면 쉽게 데미지를 입는다. 혈류가 쌔지면 평소 문제가 없던 혈관벽이라도 터지는 것처럼 전기적으로 분리가 되어 있던 부분도 펑펑 뚫릴 수 있다. 이때문에 전류 패스에 사용되는 active/passive 소자들은 상당히 고품질을 사용해야 하며, 상당한 설계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바쿤의 앰프 중 AB 클래스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pure A 클래스에 출력이 낮은 것은 이런 한계를 오히려 장점으로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비록 출력이 낮아 loud volume 를 낼 수는 없지만 구동력은 여타 앰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다. 10W 의 AMP11R 역시 중형기인 B&W 802D 를 여유있게 쥐고 흔드는 수준은 아닐지라도 구동하는데 거의 무리가 없을 정도였으며, 실제로 울리기 까다로운 초대형 스피커들을 바쿤의 모노블럭 앰프로 구동시키는 하이엔드 유저가 꽤 있다.

 

 

 

<이미지 출처 : sennheiser HD800 Datasheet>

 

작년에 HD 800 을 처음 봤을 때도 느꼈지만 첫 인상은 아웃도어 용으로 못쓰겠다라는 것이었다. 헤드폰으로서는 헤비급 덩치에 디자인도 범상치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달리 말하면 거치형으로 최적화되어 있다는 의미 일 것이다. 330g 무게에 큰 사이즈 이지만 의외로 착용감은 편했다. 헤드밴드가 누르는 압박감도 거의 없었고, 이어패드 역시 오픈형으로 귀를 자연스럽게 덮는 느낌이라 꽤 오랜 시간 연속 사용을 해도 크게 무리가 없는 수준이었다. 눈을 감고 자연스럽게 음악에 빠지다보면 무의식 중에 헤드폰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좋은 느낌이었다.

 

또한 유닛 사이즈가 그만큼 크다는 것으로 헤드폰의 물리적인 드라이버 특성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설계자의 의도가 보였다.

 

HD800 의 스펙을 사전조사 하면서 느낀거지만 하이파이 앰프나 스피커들이 공개된 측정 데이터를 찾기가 정말 힘든데 반하여, 헤드폰 쪽은 개발사의 공식적인 데이터 뿐 아니라 커뮤니티에서 독자적으로 측정한 데이터도 제법 있었다.

 

직접 측정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아 headroom 의 측정 데이터를 차용하였으며, 비교 대상은 동사의 아래 모델인 HD650 과 비슷한 가격대의 Ultrasone Edition 8 이다.

헤드폰 측정은 더미 헤드의 퀄러티나 측정 세팅에 따라 천차만별이기에 절대 수치 보다는 다른 기기와의 비교 값 정도에 의미를 두는게 좋다.

(링크 : http://www.headphone.com/headphones/sennheiser-hd-800.php)

 

 

 

<frequency response>

 

가청 대역(20Hz ~ 20kHz) 에서 얼만큼 신호 레벨 감쇄가 일어나는지 확인하기 위한 그래프 이다. HD800 은 저역에서도 상당히 완만하게 떨어졌고 고역 역시 다른 모델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여준다.

 

<Harmonic Distortion of a 500Hz Sine Wave Input>

500Hz 의 single-tone 을 입력했을 때 얼만큼 왜곡이 생기는지에 대한 그래프 이다. 희안하게 HD650 의 0dBr 본래 신호가 500Hz 에서 벗어나 있다. 측정시 세팅이 잘못된거 같은데, 이 항목 자체가 앰프 특성을 많이 받는 부분이라 크게 의미를 두기는 어렵지만 HD800이 -100dBr 기준으로 하모닉 성분 말고 불쑥불쑥 튀어오르는 것도 좀 의아하다.

 

 

<Impedance VS Frequency>

 

HD800 은 스펙상으로 HD650 과 같은 300ohm nominal impedance 를 갖지만 실제로 100~200Hz 대역에서 두배 넘게 커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앰프의 출력 임피던스에 따른 구동력이 떨어질 경우 저역대에서 감쇄가 크게 발생할 수 있을듯 보인다. 울트라손 제품은 포터블 환경을 고려하여 낮은 임피던스로 전대역 고정시켜놓은 특징을 보인다.

 

<Isolation Response with Pink Noise Input to Monitor>

 

핑크 노이즈를 인가하고 얼만큼 이를 감쇄 시켜 주는지 보는 그래프 이다. 젠하이저 제품군이 0dB 에서 상당히 완만하게 떨어지는데반해 울트라손은 중역대에서 필터링 되는 크기가 제법 된다. 주파수 응답특성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케이블까지 커패시턴스가 작게 만들어진 HD800 인지라 앰프의 특성을 고스란히 담아 가기에, 생각하기에 따라 일장일단이 있을 것이다.

 

 

<Square Wave Response 500Hz>

 

<Square Wave Response 50Hz>

 

500Hz 와 50Hz 의 사각파를 입력하였을 때 transient 특성을 보는 테스트로 희안하게 50Hz 의 경우 여기서도 HD650 은 위상이 틀어져 있다. 울트라손 제품을 직접 사용해보지 않았지만 과도응답특성이 특이한 형상을 띄는걸 보니 실제 소리 역시 독특한 특징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Simon Rattle, Mahler Symphony No.2 'Resurrection'

 

- HD800 이 헤드폰 임에도 스테이징이 넓게 나온다는 얘기를 미리 들었던지라 대편성 앨범을 통해 그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말러를 빼놓고는 대편성을 논하기 어렵고, 사이먼 래틀의 말러 교향곡 2번은 하이파이 시스템의 오케스트라 실력을 가늠하는데 많이 사용되기에 가장 중점을 두고 청음을 진행했다.

 

말러가 보여주는 복잡한 세계관과 표현력은 곡이 진행되면서 이해가 되는듯 하지만 또 다시 미궁에 빠지는 시간의 연속이다. 앨범 하나에 드라마가 몇 편이 포함되어 있는건지...

 

바쿤과 HD800 가 보여주는 대편성의 가능성 역시 나에게는 물음표였다. 소스 기기가 시스템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패토스 시디피나 린데만 DAC를 사용한 PC-FI 에서는 지나치게 여운이 길거나 평면적이었다.

 

하지만 메르디안 솔루스 시스템에서는 스테이지가 그려지기 시작했고 팀파니가 그제서야 뒤로 빠지면서 제 자리를 찾았고, 목관악기의 울림에도 윤곽이 생겨났다. 스테이징이 넓지는 않지만 헤드폰에서 이정도면 되지 않을까? 란 느낌은 분명히 주었다.

 

 

Sarah Chang "Sweet Sorrow"

 

- 그녀가 너무도 어린 나이에 EMI 독점 계약을 맺은게 개인적으로 정말 아쉽다. 음반을 듣다 보면 아 조금만 더 수준 높은 레코딩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매번 뒷골이 당긴다. 이 앨범 역시 실제 공연으로 들었다면 어느 정도의 감동이 올지 가늠이 안될 정도로 비탈리의 샤콘느를 애닯게 연주 했다.

 

본 기기들의 조합은 확실히 현에서 강점을 보이는 듯했다. 그녀 특유의 폭넓은 비브라토의 맛을 상당히 잘 이끌어 내었으며 슬픈 감성적 느낌을 나름 잘 표현해 내었다. 다만,  후반 부 다이나믹의 폭이 넓게 나와주지 못하는게 다소 아쉬웠다.

 

Anna Netrebko "Souvenirs"

 

- 오페라를 그다지 즐기지 않지만 안나 네트렙코가 내한한다면 꼭 한번 보고 싶다. 그만큼 그녀의 매력적인 보이스와 연기,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매혹적인 외모는 그녀가 왜 그토록 잘 나가는 소프라노의 아이콘인지를 보여준다.

 

이 앨범에서는 놀랍게도 스피커 시스템보다 우월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소프라노의 고역대에서 터져나오는 달콤한 성량이 귀 뒤쪽으로 퍼져가면서 정수리를 간질하는 맛은 헤드폰 쪽의 그것이 확실히 더 두근거림을 주고, 소름을 돋게 하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Dark knight OST

 

-  저음역대의 특성이 어떤지를 확인해보기 위해 사용할 음원으로 참 좋은 소스 이다. 특히 1번 트랙 3분대 부터 잠시 동안 귀가 아니라 가슴을 치는 저역의 음압이 터져나오는데, 대형 시스템에서 큰 음량으로 듣게 되면 순간 비릿하고 불쾌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당연하겠지만 HD800 에서는 음압이 아니라 소리로 들린다. 저주파수 대역을 완벽히 표현해 내기에는 헤드폰의 유닛 스케일이 작은게 사실이다. 수백Hz 아래에서 낮게 퍼지는 저역은 제법 내주었지만 가청 범위 까지 순간적으로 쭉 내려가는 맛을 기대하기는 다소 벅차다.

 

장기하와 얼굴들 2집 "장기하와 얼굴들"

 

- 최근 가장 유쾌한 대중 가요를 시도하는 젊은이라 생각한다. 새 앨범 역시 재미있다. 참 웃긴데 왜 그리 진지하게 부르는지 그게 듣는 사람을 더 즐겁게 만든다.

 

클래식에서는 나름 깜짝 놀라게 하는 실력이 있었는데, 오히려 기대했던 뽕짝 끼 있는 소리는 의외로 재미가 덜했다. B&W 맛이 나왔다. 이런 음악에는 이런 정석적인 소리가 오히려 실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전자음을 제외하고 유심히 장기하의 보컬에 집중해보면 또박또박한 발성이 이보다 더 잘 들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독특한 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Jason Mraz "We sing. We Dance. We steal Things"

 

- 역시 리뷰에 므라즈를 뺄 수 없다. 수백번도 더 들은 익숙한 음원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체크 해보는건 기본 중 기본일 것이다.

 

이런 어쿠스틱한 음원의 포인트는 스트링이 떨리면서 나오는 특유의 잔향, 그 표현이 어떠냐 일 것이다. 보컬 표현력은 집에서 듣는 시그니쳐805 + 바쿤 5513 과 매우 닮아 있어서 익숙했지만, 어쿠스틱 기타에서도 그 색깔이 상당히 흡사했다. 패토스 시디피에서는 너무 라이브 해서 거부감이 들었지만 린데만이나 솔루스에서는 확실히 좋은 느낌을 받았다.

 

 

 

 

비록 이벤트 참여로 인해 작성한 리뷰였지만 기기의 가능성과 한계를 명확히 제시하고 싶었다.

 

그 어떤 기기라도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고, 좋은 점만 볼 수도 있겠지만 제품 구매를 고려하는 유저에게 필요한건 장점 보다는 무엇이 부족한지, 그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 리뷰의 핵심적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고자 한다.

 

 1) Head-Fi 는 기존 하이파이 유저에게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음악에 좀 더 집중 할 수 있게끔 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2) 바쿤 앰프의 특징인 SATRI 기술은 기존 앰프가 전압을 증폭하여 사용하는데 반해 스피드와, 노이즈, 적은 왜곡을 실현하게 하는 전류 증폭 설계를 하였다. AMP-11R 의 경우도 출력이 10W 뿐이지만 구동력에 있어서 뛰어났고, 바쿤 오리지널 앰프의 특징을 잘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3) 젠하이저 HD800 은 클래식, 보컬 위주의 팝에서 기대보다 좋은 결과를 보여주었다. 넓지는 않지만 스테이지를 독특하게 그려내는 능력이 있었으며, 편안한 착용감으로 헤드폰 특유의 압박감 없이 음악을 즐기기에 적당했다.

하지만 저역대를 풀어내는 양과 깊이에서 부족함이 있었고 중고역에서 약간의 착색과, B&W 류의 정확하지만 다소 심심한 성향은 유저에 따라 호불호가 있을거 같다.

 

4) AMP-11R 과 HD800 의 매칭은 매우 긍정적이었는데, 출력이 높지 않은 대신 유려한 음색과 매우 낮은 출력 노이즈 레벨의 바쿤은 중소형 스피커 뿐 아니라 헤드폰 앰프로서도 유리한 장점을 다수 갖고 있다.

 

하지만 두 기기 모두 힘 보다는 자연스러움을 토대로 소리를 풀어내기에 소스 기기에서는 윤곽이 확실하고 힘이 있는 기기가 좋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