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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오디오파일들의 공통적인 꿈은 좋은 소리를 만드는 것일 것이다. 험난한 시련을 겪으면서 나름대로의 소신을 투영시킨 오디오 세팅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오디오파일로서 일종의 숙명인 것이다. 그러한 오디오파일들을 위해 오디오파일용 음반이 존재한다. 자신의 오디오의 현재 소리를 체크하고 어느 부분이 좋고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 파악을 하기위해 애청하는 음반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중에는 수많은 오디오파일용 테스트, 샘플러 음반들이 있다. 하지만 그 음반들에게서는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 몇몇 뛰어난 음질에 명연주의 음반도 있지만 대부분이 음악성이 떨어지고 오묘한 소리만을 갖고 만든 음반들이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오디오파일용 고음질 음반이나 샘플러 등은 몇번 들어보고는 CD랙에만 꼽혀있는 그야말로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최고의 명연주와 오디오파일이 만족할만한 고음질을 가진 샘플러는 어디 없을까? 그 해법을 유니버설에서 "Classic Music for Audiophile", "Jazz Music for Audiophile" 두 종류의 음반을 내놓았다. 그것도 2 for 1의 가격으로. 각각 2장씩 구성된 CD는 그야말로 역사적으로 최고의 명연주들이 모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이 음반은 한국을 대표하는 오디오 평론가이자 재즈 칼럼니스트로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종학씨가 선곡을 하였고 오디오파일 관점에서 각각의 곡에 대한 포인트 및 청취방법에 대한 해설지를 포함하고 있다. 국내 유수의 오디오 전문 잡지를 비롯하여 여기 하이파이클럽을 통해 오랜 동안 오디오 평론가로 활동해온 이종학씨는, 기기에 대한 탁월한 감식력과 음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 추진한만큼 그 선곡에 있어서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한 감수성을 보여준다. 클래식과 재즈 장르를 통틀어 전세계 오디오 애호가들이 테스트용 음반으로 가장 많이 사용해온 트랙들을 집대성했다는 점이 바로 그것으로서,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메이져 음반사의 음원을 오디오파일용 음반으로 사용했다는 대범한 발상 또한 이 기획만의 놀라운 특징이라 말할 수 있다.

 

 

오래전부터 많은 애호가들로부터 메이져 음반사, 특히 유니버설 음원들의 탁월한 레코딩 퀄리티는 권위의 봉인을 받아왔다. 세계 초일급 연주자들의 최고의 예술성이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레코딩팀을 보유해왔던 DG, DECCA, Philips, Archiv(현재는 모두 유니버설 산하 레이블) 등의 메이져 레이블을 통해 포착되었던 만큼, 이들의 음반은 LP시대로부터 CD 시대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애호가들의 플레이어에 가장 많이 재생되었다고 말한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최고의 연주와 최고의 레코딩 퀄리티를 담은 ‘본격 감상용 오디오파일 음반’이 유니버설에서 발매되었다는 것은 오히려 너무 늦은 감이 있다고 생각될 정도다.

 

당시 각 메이져 레이블들을 대표하는 프로듀셔들과 레코딩 엔지니어들이 회사의 명예를 걸고 최고의 레코딩 퀄리티를 만들기 위해 기기 개발과 마이크 세팅, 이퀄라이징, 프레싱까지 모든 작업을 자신들만의 노하우를 통해 작업해왔고, 이러한 전통은 구조적 경량화에 따라 모든 작업이 분업화된 현재까지도 이어져내려온다. 그렇기에 60년대 이후부터 가장 최근까지의 음원들을 선별한 이 두 장의 오디오파일용 음반을 듣노라면 각 시대에 따른 레코딩의 경향과 이를 관통하며 끊임없이 발전해온 레코딩의 역사를 일별할 수 있기에 감상자로 하여금 오디오 세팅에 따른 음향 선택의 폭을 폭넓게 제공함과 동시에 감상적인 측면에서의 흥미로움을 더한다.

 

이륜(二輪)의 물망초(勿忘草)라고 말할 수 있는 이 두 장의 앨범에는 한 곡 한 곡마다 작품해설과 더불어 오디오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이종학씨의 가이드가 적혀 있어 시청 및 오디오 세팅을 위한 기준으로 참고할 수 있다는 특별한 아이디어 또한 이 기획물만의 장점이다. 이종학씨의 오랜 실전 경험이 녹아있는 글인 만큼 이 앨범들의 가장 중요한 셀링 포인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불어 이들 음반은 새롭게 리마스터링 작업을 가하지 않은 만큼 오리지널 사운드 퀄리티를 고스란히 즐길 수 있다는 점 또한 오디오파일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라고 하겠다.

 

 

 

클래식 앨범의 경우 수록 순서는 레코딩 연대기순으로 되어있지 않지만, 이 지면에서는 그렇게 소개해보도록 한다. 가장 먼저 1960년대 DECCA 사운드를 대표하는 미에치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와 벤저민 브리튼이 연주한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가 눈에 띈다. 이들의 녹음은 자칫 오케스트라나 오페라 녹음에서 엄청난 다이내믹과 디테일, 음장감을 선사했던 데카 사운드가 실내악에서도 유효할지라는 생각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하다. 또렷한 선율미와 인토네이션을 바탕으로 한 두 연주자의 예술적인 교감이 오롯이 떠오르는 이 레코딩은 이미 오디오파일들 사이에서 레퍼런스로 자리잡은지 오래된 명반이다. 더불어 이종학씨는 스피커를 듣는 것이 아니라 악기를 듣는다는 관점에서 이 트랙과 가장 잘 어울리는 스피커로 탄노이를 추천한 것 또한 강한 설득력을 자아낸다.

 

1970년대 DG의 명반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칼 뵘과 빈 필하모닉이 연주한 모차르트의 레퀴엠 가운데 키리에가 선곡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환영할 만하다. 특유의 느린 템포와 비장한 분위기가 감도는 뵘의 해석 하에, 합창단의 묵직하면서도 깊은 음향과 오케스트라의 애절한 선율미가 정묘하게 떠오르는 이 트랙은 1980년대 성음-라이센스 시절부터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명대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기는 음악적으로나 레코딩적으로 카라얀-베를린 필의 시대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음악적으로 가장 성숙한 단계에 진입한 카라얀이 적극적으로 레코딩에 개입을 하여 자신만의 음향을 연출해낸 역사적인 시대였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레코딩의 끝자락에 녹음된 카라얀의 베토벤의 3중 협주곡은 그의 EMI 레코딩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안네-조피 무터를 비롯한 젊은 연주자들의 생동감이 빛을 발하는 한편 입체감 높은 오케스트라 밸런스 및 독주 악기들의 운동감과 정위감이 명 프로듀서인 귄터 브레스트에 의해 적나라하게 포착된 트랙이다.

 

디지털 레코딩 시대에서는 안네-조피 무터와 제임스 레바인이 함께 한 카르멘 환상곡 앨범이 빠질 수 없다. 그녀의 금빛 찬란한 바이올린 음향과 빈 필의 부드러우면서도 청량한 사운드로 구축된 그 화려한 감각의 제국은 오디오파일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정명훈과 바스티유 오페라오케스트라와의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도 독특한 색채와 각 장면들마다의 타악기나 금관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효과음이 훌륭하다. 그리고 마틴 그루빙거의 타악기 음향과 저역 악기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며 이국적인 느낌과 충격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공현 대축일 트랙은 오디오적인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이 클래식 앨범의 백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최근의 연주로는 리카르도 샤이가 이끄는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미모의 여류 바이올리니스트 야니네 얀센이 함께 한 멘델스죤 바이올린 협주곡과 율리아 피셔가 연주한 파가니니의 카프리스가(모두 DECCA) 돋보인다. 디테일, 다이내믹 레인지, 투명도, 음장감 모두에서 최고 수준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이들 녹음은, 최신 디지털 레코딩 퀄리티가 이토록 향상되었는가를 절감케 해 준다. 한편 Philips를 대표하는 명 프로듀서인 빌헬름 헬벡의 영항을 직접적으로 받은 바 있는, 한국을 대표하는 명프로듀서인 최진이 녹음한 조수미가 부른 도나 도나 또한 가수의 성악적 질감과 악기들의 손에 잡힐 듯 투명한 디테일이 만들어내는 앙상블이 압권이다.

 

재즈 앨범은 재즈의 명가로 손꼽히는 Verve와 Impulse 레이블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이 총출연한다. 오스카 피터슨, 헬렌 메릴, 스탄 게츠, 듀크 엘링턴, 빌 에반스, 폴 데스몬드, 투츠 틸레만, 조지 벤슨 등등의 전설적인 재즈 아티스트들이 연주한 독주, 트리오, 성악 등등의 다양한 편성의 음악을 통해 다양한 리스닝 포인트를 경험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들 재즈 아티스트들이 만들어내는 그 아날로그적인 감수성과 음악적인 쾌감은 타장르의 음반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부분으로서, 오디오에서 이를 재생한다는 것은 음향적인 정확성도 중요하지만 사용자의 음악적 감수성도 대단히 큰 요소로 작용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의 첫 곡으로 선곡된 오스카 피터슨-레이 브라운-에드 틱펜 라인업의 고전적인 트리오가 만들어내는 ‘You Look Good to Me’는 이러한 재즈의 오디오파일적 조건들을 충족시키기에 모자람이 없다. 브라운 특유의 짙은 더블 베이스 주법과 피터슨의 감각적이면서도 포근한 스윙이 어우러지며 듣는 이를 유혹하는 한편, 각 악기들의 정확한 움직임과 표정들이 인상적이다. 한편 마지막 트랙으로 선곡된 폴 데스몬드의 ‘Outubro’는 피아노, 기타, 베이스, 드럼의 앙상블 위에 펼쳐지는 그의 알토 색소폰이 따뜻한 밀도감과 아름다운 음색 배합, 연주의 정확한 비트감이 낭만적이면서도 모던한 느낌을 전달해 준다.

 

한편 비교적 큰 규모의 앙상블, 와일드 빌 데이비슨이나 찰리 헤이든, 빅 밴드의 대명사 듀크 엘린턴의 작품들에서는 각 악기들의 표정이나 음색, 정위감 등등이 펼쳐지는 음원으로서, 재생시 기기들의 매칭은 물론이려니와 방진과 리스닝 룸 컨디션, 스피커의 토인과 위치 등등과 같은 오디오와 관련된 모든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이들 밴드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 독특한 에너지감과 분위기로서의 톤 컬러는 단순히 기기 매칭으로만은 구현할 수 없는 섬세하면서도 예민한 사용자의 하이파이적 노련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빌 에반스의 솔로 피아노로 연주되는 ‘Here’s That Rainy Day’에서 배어나오는 그 피아노 특유의 리듬감과 연주자 특유의 집중력 높은 터치는 오디오에서 반드시 선결되어야 하는 음악 밸런스를 체크하기에 그만이다. 그리고 투츠 틸레만스의 하모니카 연주는 다소 만족스럽지 못한 레코딩 퀄리티에도 불구하고 하모니카 특유의 음역대가 만들어내는 느낌과 성향은 듣는 이에게 아련한 향수감을 자아내끔 한다. 이러한 감성적인 측면에 있어서의 호소력은 빌리 홀리데이가 부른 ‘Blue Moon’에서 극대화한다. 찰리 세버스의 트럼펙과 플립 필립스의 테너 섹소폰, 오스카 피터슨의 피아노, 바니 케슬의 기타, 레이 브라운의 베이스와 같은 황금의 라인업을 배경으로, 홀리데이가 뱉어내는 그 독특한 질감과 발성은 오디오로 하여금 다양한 특성을 체크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명연주로 체크해보는 나의 오디오 시스템. 그야말로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음반이라 할 수 있겠다. 역사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 명연주들과 오디오파일로서 그 곡을 듣는 포인트까지 알려줌으로 자신의 오디오 시스템에서 이 음반에 있는 곡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집중하여 비교하여보는 재미까지 더하는 음반이다. 그러다 지치면? 그냥 소파에 기대어 느긋하게 명곡을 감상하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