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아 셰니에] 혁명과 사랑에 대한 애증의 찬가

아마도 AV에 열광하는 마니아라면 다니엘 크레이그가 주연한 007 ‘퀀텀 어브 솔러스’에서 등장하는 오스트리아 보덴 호숫가의 야외무대에서 펼쳐지는 브레겐츠 페스티벌 ‘토스카’ 무대를 기억할 것이다. 음악은 1막 마지막, 스카르피아가 카바라도시를 잡기 위해 토스카에게 밀정을 붙이는 대목으로서 “가라, 토스카”라는 대사와 함께 펼쳐지는 장대한 테 데움이 압권이었다.
 
커다란 눈동자가 인상적인 이 프로덕션의 스펙타클한 무대와 리얼한 연기는 영화상에서 아주 짤막하게 나왔지만, 영화 애호가들은 이 장면을 통해 악은 현격하게 구분되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일반적인 심상들과 뒤섞여 있는 복합적인 것임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그 많은 오페라 청중들 가운데 악의 세력과 손을 잡은 사람들(기업가 및 정치가를 포함하여)이 그렇게나 많다니, 악의 화신으로 묘사되어온 스카르피아 또한 토스카의 상대적 객체가 아니라 절대적 주체로 보았을 때는 대단히 의지가 강한 행정가로 해석할 수도 있을 듯하다. 

 


2년마다 새로운 프로덕션을 선보이는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2011년 여름 상연작은 베리즈모 오페라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셰니에’. 이전 ‘아이다’에서의 자유의 여신상, ‘토스카’에서의 눈동자, ‘라 보엠’에서의 식탁, ‘가면 무도회’에서의 해골 등등과 같이 이번에도 역시 특징적인 거대 상징물이 등장했다. 그것은 바로 프랑스 혁명기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그림인 ‘마라의 죽음’ 속의 주인공 마라(당통, 로베스피에르와 더불어 쟈코뱅파에 속한 프랑스 대혁명의 3대 주역의 한 사람. 목욕 중에 지롱드파를 지지하는 한 소녀인 샤를로트 코르데에게 암살당했다)의 토르소를 거대하게 제작한 것이다.
 
호숫가 위에 덩그러니 세워진 이 장-폴 마라(Jean-Paul Marat, 1743~1793)라는 인물은 실제 오페라의 주인공, 즉 프랑스 혁명 후 숙청된 프랑스 시인이자 외교관 앙드레 셰니에(1762-1794. 오페라에서는 이탈리아어로 이름을 표기해 ‘안드레아’가 되었습니다)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인물로서 스토리와 연출의 동시대적 일체감을 배가시켰음은 물론이려니와, 시대를 특징짓는 명화를 세트 디자인으로 사용함으로써 청중들의 이해와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극적 설득력 또한 높이는데 일조하는데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마라와 셰니에 두 명 다 민중을 해방코자 했지만 결국 공포정치에 희생당한 운명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에 이러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무대로 옮길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기념비적인 무대는 인간이 만들었다기보다는 주위의 허드렛것들을 정리하고 치워내어 원래 이 호숫가에 숨겨져 있던 보물을 발견해낸 듯한 감동을 자아낸다. 
 

이 마라의 토르소는 시각적으로도 스펙터클할 뿐만 아니라 작동되는 메카니즘 및 성악가들이 움직이는 동선 설계 또한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우선 마라의 목과 어깨 주변에 계단들을 설치해 출연자들이 오르내리게 만들었고 이는 정신을 상징하는 마라의 머리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마라가 살해당할 당시 들고 있었던 코르데의 거짓 탄원서는 정면으로 향하게 꺾여 주무대로 설치되었다. 게다가 이 토르소는 각 막마다의 의미와 극적 효과를 높이는데 효율적으로 사용된다. 1막 처음에 마라는 천으로 얼굴이 덮여져 있다가 성난 시민들이 쿠아니 백작부인의 성으로 침입해 들어오면서 걷히며 혁명의 아침이 밝았음을 상징한다. 3막에서 마달레나의 아리아 장면에서는 눈을 감고 있던 마라의 눈에 불이 들어오며 격변하는 제라르의 심정과 숭고한 사랑에 대한 자각을 상징하며, 이어지는 혁명재판소가 열리는 장면에서는 60톤이나 되는 마라의 목이 뒤로 꺾이면서 목 속에 설치한 붉은 조명의 재판소 무대가 드러나는 부분은 관객들을 압도하는 엄청난 스펙터클한 효과를 발산한다. 이어지는 4막에서는 누워있던 칼이 서서히 마라의 가슴에 꽂히게 올려지며 그 죽음이 곧 주인공들의 죽음임을 상징한다.
 


이렇듯 연출을 맡은 케이스 워너의 대담한 연출력과 탁월한 상상력은 이 거대한 구조물뿐만 아니라 작품의 세부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더군다나 이 야외무대에 어울리는 막강한 성악진이 등장하여 오픈 세트의 한계를 뛰어넘어 극적 몰입도를 높인다. 멕시코 출신의 드라마틱 테너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엑토르 산도발의 영웅적인 모습은 대단히 눈여겨볼 만하다. 볼로냐 실황에서 최고의 셰니에를 선보인 바 있는 호세 쿠라의 오텔로적인 광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젊은 시절 도밍고가 보여주었던 서정적인 호소력과 다채로운 연기력에는 충분히 비견할 만하다. 제라르 역의 스코트 헨드릭스의 연기는 복수심으로 가득 찬 셰니에의 반대파의 연기와 사랑에 감복하는 감성이 충만한 옹호파의 표현력 모두를 완벽하게 그려냈다. 한편 유럽에서 최근 가장 각광받는 멀티플레이어적인 소프라노 노르마 판티니는 순종적이고 서정적인 측면보다 한결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이미지를 발산하며 이 캐릭터의 새로운 상을 만들어낸다.
 
물론 야외무대인 탓에 전체의 사운드가 전적으로 마이크에 의존해야 한다는 단점이 나타나기도 한다. 가끔씩 성악가들의 최고음에서 클릭하는 듯한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노장 울프 슈리머가 지휘하는 빈 심포니커의 오케스트라 음향이 조금 이질적으로 들리는 현상도 나타난다. 그러나 다른 평면적인 야외무대 오페라 영상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동선을 소화해내야 하는 만큼 기술적인 한계는 인정해야 할 수밖에 없고, 오히려 입체감과 음장감에 있어서는 훨씬 다이내믹하고 효과적인 음향을 즐길 수 있어 이 무대만의 특성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영상미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각 막 마다 특징적인 조명색이 등장하며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강조하는 한편, 영화를 방불케하는 다양한 공간 사용 및 다채로운 카메라 워크 및 앵글이 등장한다. 무엇보다도 기존 오페라 무대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적인 오브제들이 야외무대로서의 가능성과 표현력을 극한으로 높이는 모습에서 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1막은 쿠아니 백작부인의 성이 무대로서 화려한 옷을 입은 귀족들이 하나 둘 씩 모여들며 셰니에가 등장한다. 이 때 마라의 머리와 거대 팬던트에서는 줄 하나에 의지한 채 공중연기를 펼치는 집단 아크로바틱이 펼쳐져 축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모습이 인상적인데, 공연이 끝난 뒤 호수로 바로 입수하는 것 또한 무대의 영역을 확장시킨 공간사용 또한 신선함을 던져준다. 산도발의 엄청난 성량과 도취적인 표현력으로 ‘어느 날 푸른 하늘을 보며’를 부른 뒤 펼쳐지는 가보트 장면은 그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혁명군이 들이닥쳐 귀족들의 옷을 벗기며 파괴를 향해 치닫는 장면에서 그 이미지를 배가시키기 위해 전자기타와 신디사이저가 악보의 어쿠스틱 음향과 오버랩되며 사운드적인 낯설음을 배가시키기 때문이다. 얼마간 프로그래시브 락을 연상시키는 이 이질적인 음향을 시도한 것이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내지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전통을 벗어나는 파격적인 시도로서 야외무대로서의 폭발적인 시청각적 에너지가 일품이다.
 


2막 거리 장면에서 3막 재판소로 전환되는 것 또한 제라르가 호수로 나갔다가 들어옴으로써 효과적인 공간이동을 표현해낸 것 또한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말할 수 있고 3막 시작부에서 자신의 아들을 혁명군에게 보내는 노파가 마라의 입에서 등장하여 마라의 혁명정신을 대변하는 듯한 연출 또한 너무도 효과적이다. 제라르의 ‘조국의 적’과 마달레나의 ‘돌아가신 어머니’, 셰니에의 격정적인 자기변호 아리아 ‘나는 한때 군인이었습니다’와 같은 굵직한 아리아 세 개가 등장하는 3막 전체는 가수들의 피끓는 절창과 관찰자의 변화무쌍한 시선의 연출이 어우러지며 새로운 개념을 보여준 오페라 영상물로서의 한 획을 그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4막의 숭고한 사랑의 2중창 또한 산도발과 판티니의 매력과 감정이 뒤섞이며 극적인 고양감을 높이는데, 특히 거대 팬던트에서 쏟아지는 물의 샤워 커튼을 배경으로 악마가 든 거대한 낫에 피가 머금는 슬라이드 영상이 비추어지며 이들의 비극적인 죽음을 상징적으로 처리한 장면은 색다른 감동을 주는 클라이맥스라고 말할 수 있다. 
 


전통과 모더니즘, 건축과 명화, 아크로바틱과 록음악이 뒤섞여 프랑스 혁명기의 혼란함과 그 역사적인 의미를 종합적으로 표현해낸 ‘안드레아 셰니에’는 21세기의 오페라 무대가 지향해야 할 가장 훌륭한 음악적, 연출적 모범이 아닐까 싶다. 뮤지컬이나 서커스와 같은 대중적인 극무대의 스케일과 아이디어를 능가하는 동시에 전통적인 관점에 있어서 총체예술로서의 오페라의 의미를 한층 심화시킨 무대로서 이 브레겐츠 페스티벌에서의 혁명적인 무대가 갖는 의미는 대단히 높다고 말할 수 있다. 음악적, 연출적 완성도는 차치하더라도 흥미로운 볼거리와 시네마스코프적인 영상미, 한글 자막 지원 및 HD급 화질과 같은 장점과 더불어 AV 소스의 새로운 레퍼런스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Umberto Giordano ANDREA CHENIER
지휘 : Ulf Schirmer
오케스트라 : Wiener Symphoniker
노래 : Rosalind Plowright
노래 : Norma Fantini
노래 : Scott Hendricks
노래 : Hector Sandoval


조르다노 : 안드레아 세니에
수입사 : 아울로스미디어
수입사 전화번호 : 02) 922-0100
수입사 홈페이지 : http://www.aulosmus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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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 46,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