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과 정명훈이 빚어낸 말러 교향곡 1번 ‘거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레이블인 도이체 그라모폰(이하 DG)과 전격적으로 계약을 맺으며 세계 무대를 향해 뻗어나가고 있는 서울시향과 상임 지휘자 정명훈. 대한민국 오케스트라가 메이져 음반사에서 내수용이 아닌 인터내셔널 버전으로 음반이 발매된 것은 건국 이래 최초의 일로서, 정명훈이라는 불세출의 지휘자의 각별한 노력으로 재탄생한 서울시향이 세계의 유수 오케스트라들과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세계무대에서의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에 여러 모로 자긍심을 가질 만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고급문화로서, 서울이라는 메트로폴리스를 상징하는 문화 아이콘으로서, 정명훈-서울시향의 파트너쉽이 앞으로 더욱 발전하여 21세기를 대표하는 명반을 탄생시킬 그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본다. 

이번에 그들의 두 번째 작품이 발매되었다. 지난 번 드뷔시-라벨 앨범에 이어 이번에는 유럽, 특히 오스트리아-독일 레퍼토리의 가장 핵심적인 작품인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을 발표했다. 2010년 11월 3일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열린 음악회 실황을 기록한 것으로서(물론 후보정을 위한 녹음이 편집되었다), 정명훈에게 있어서는 그가 지난 2년 동안 서울시향과 함께 걸어온 말러 교향곡 사이클(2011년 12월 8번 교향곡 연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그가 지난 세월 동안 닦아온 말러에 대한 이해를 처음으로 공표하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지금까지 정명훈이 여러 교향악단을 지휘하며 말러 교향곡 1번을 자주 연주해왔던 바, 충분히 노련한 것은 물론이려니와 작품에 대한 이해 또한 명쾌하고 말러에 대한 심리적인 분석 또한 독창적임을 이 음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서울시향의 입장에서도 최근 프랑스로부터 선발해온 여러 파트의 수석들의 맹활약에 힘입어 단체의 정체성, 즉 사운드 밸런스와 음색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창조적인 발전을 보여준다. 지휘자의 지도력과 스타일,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현미경 같은 표현력에 있어서 서울시향-정명훈의 말러 1번 레코딩은 적어도 20세기에 태어난 지휘자들이 메이저 레이블에서 녹음한 아날로그 레코딩들과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음악의 현대적인 세련미와 레코딩의 사운드 퀄리티는 훨씬 높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정명훈의 극단적인 대비와 멜로디에 대한 집중력은 듣는 이를 압도한다. 1악장에서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도입부와 화려한 전개부에서의 템포와 음량의 대비는 엄청난 임팩트를 불러일으키고, 아바도처럼 지나치게 세부의 멜로디들을 강조한다기보다 스승인 줄리니처럼 큰 멜로디의 움직임에 치중하는 정명훈의 해석 방식 또한 한결 자연스러운 느낌을 전달해 준다. 단순한 에피소드의 모음을 패러디했다는 인상보다는 세상의 모든 첨예한 요소들을 대비시키며 극적인 세계를 향한 일종의 서주와 같은 느낌을 바로 정명훈이 연주한 1악장에서 느낄 수 있다. 2악장의 템포 또한 맹렬하기 그지 없다. 저역 현의 과하지도 않으면서도 독특한 질감을 주는 16분음표의 행진을 바탕으로 유려한 포물선을 그리며 비상하는 바이올린과 금관의 질주는, 곧 이어지는 느린 트리오와 훌륭한 대비를 이룬다. 특히 포근하고 짙게 울려퍼지는 더블베이스의 스타카토 위에 펽쳐지는 바이올린과 오보에의 2중주는 정명훈만이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정점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3악장 장송 행진곡은 정명훈의 말러에 대한 관점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중요한 대목이다. 너무 비감함을 강조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무심하지도 않은 독특한 정서를 보여준다는 점이 놀랍다. 특히 정명훈이 운용하는 극단적인 템포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서울시향의 앙상블과 반응력도 뛰어날뿐더러, 그 음향 또한 정명훈이 자아내는 잿빛 정서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특히 5분대에서 등장하는 수석 스베틀린 루세브의 감각적인 비브라토가 한줄기 빛처럼 솟아오르며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4악장 피날레는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질주의 쾌감을 안겨준다. 거칠게 달아오르다가 미끄러지듯 추락하는 절망감이 리드미컬한 흐름을 통해 적나라하게 표현되었기 때문으로서, 말러의 오페라적인 극적 완결성을 그 누구보다도 정명훈은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순수 교향곡으로서의 구조적 완결성보다 이 작품이 원래 의도된 표제음악으로서의 장면적 성격이 마치 파노라마를 보는 듯 재현되는 모습이 그러하다.
서울시향과 정명훈이 발표한 첫 DG 앨범인 프랑스 관현악 작품집에 비하여 사운드 퀄리티에 있어서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 레코딩 팀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앨범에서 아쉬움으로 남았던 희미한 뒷배경과 악기별 밸런스 문제가 보다 통일성 높은 방향으로 해결되었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띈다. 이와 더불어 각 파트마다의 균일한 톤, 적절한 길이의 소노리티 등등, 이 앨범을 통해 비로서 서울시향의 사운드 특성이 결정지어졌다고도 말할 수 있지 싶다. 더군다나 조금 앞으로 튀어나오는 듯한 개방감 및 에너지감 높은 레코딩으로 변화한 만큼 깊이감 혹은 무게감이 부족하다고 느낄 애호가가 혹시라도 있겠지만, 이것은 홀 특성의 한계 혹은 현재 만들어가고 있는 서울시향 사운드의 특성 쪽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사실상 이 음반에는 음향적인 매력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현재 서울시향의 음향적 특징을 주도하고 있는 현악군의 미끈한 아름다움은 생생하게 포착되었고, 조금은 수줍은 듯한 목관 파트의 섬세한 속삭임도 훌륭하거니와, 금관의 직선성과 통통 튀는 듯한 독특한 질감의 팀파니의 임팩트 또한 특징적이다. 특히 한국 청중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아드리앙 페뤼숑의 현란한 연주가 생생하게 포착되어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 밖에 정명훈 특유의 스타일로서 프레이징 첫 머리를 진득하게 눌러주는 모습과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프레이징의 단위 또한 훌륭하게 포착되었는데, 특히 4악장 5분대의 바이올린 파트의 어딘지 데카당스한 분위기와 다가올 폭풍에의 전조를 엔지니어팀은 정확하게 포착해냈다.
3악장 첫 대목에서 등장하는 첼로 솔로의 흐느낌은 조금 두드러지는 듯하면서도 상당한 청량감을 수반하고 있고, 4악장 첫 총주 또한 깨끗함과 온도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이후에 펼쳐지는 음량과의 정교한 다이내믹 대비를 표현해낸 레코딩 팀의 감각적인 이퀄라이징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지난 드뷔시 앨범에서도 인상적이었던 더블베이스 파트의 육중하면서도 두터운 무게중심과 표현력이 더욱 잘 살아났다. 우퍼에서 울려나오는 기분 좋은 에너지감을 통해 음반 듣기의 재미를 새록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저역대의 특성은 고역대 음향에서의 정명훈 특유의 지중해적인 투명함과 이질감을 생성하지 않아 더욱 훌륭한 오케스트라 블렌딩을 보여준다. 역시 오케스트라 이미지의 완성은 녹음과 편집에서 결정됨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특히 프로듀서인 마이클 파인의 공로가 크다. 서울시향의 자문을 맡으며 DG와의 계약을 이끌어낸 장본인으로서, 그는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특성과 방향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앞으로 서울시향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이 음악적인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현재 유럽에서 정명훈은 프랑스 라디오 방송 교향악단 상임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수석 객원 지휘자를 겸임하고 있다. 여기서 쌓인 경험과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서울시향에 투영시키며 더욱 고매해진 음악성을 이끌어 낼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문화는 창조가 아닌 축적의 산물인 만큼 정명훈에게 거는 기대가 더욱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 발매될 서울시향-정명훈의 세 번째 앨범에서는 또 어떤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지,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예측조차 할 수 없다는 것에 조바심만이 증폭될 뿐이다.
음반정보
지휘 : 정명훈
오케스트라 : 서울시립교향악단



CD Track
01. [Symphonie Nr. 1 D-Dur] I. Langsam. Schleppend. Wie Ein Naturlaut. Im Anfang Sehr Gemachlich
02. II. Kraftig Bewegt, Doch Nicht Zu Schnell - Trio. Recht Gemachlich
03. III. Feierlich Und Gemessen, Ohne Zu Schleppen
04. IV. Sturmisch Bewegt






Mahler Symphony no.1
음반사 유니버설뮤직
음반사 홈페이지 http://www.universalmusic.co.kr/
가격 17,700원
구입처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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