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타의 음악 바다를 종횡무진 헤엄쳐 다니는 아코디언

아코디언이라는 휴대용 기명악기가 자아내는 그 묘한 향수감과 매력은 남미의 저 반도네온보다 덜 직접적일 수 있지만 한층 깊고 아려한 감수성을 자극한다. 19세기인 1820년대 초반 베를린의 F. 부슈만이 발명한 것이라고 하며, 당시에는 한트에올리네(Handäoline)라고 불렸다. 1829년 빈의 C. 데미안이 다소 개량하여 아코르디온(Akkordion)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전음계가 버튼식으로 된 것으로 하모니카와 같이 밀 때와 당길 때 소리가 달라지는 구조로 되어 있고 왼손 쪽에 으뜸화음과 딸림화음 등의 버튼이 달려 있었다. 이런 종류의 소형은 장난감으로 보급되었으며 그것은 C장조 음계밖에 내지 못하는 전음계식이었기 때문에 디아토닉 아코디언이라 했고, 오늘날과 같은 반음계식은 크로마틱 아코디언이라고 부른다. 이후 19세기 말경 결정적인 악기의 진보가 이루어져 리드가 증가했고 건반의 증가에 따라 풀무의 움직임과는 관계없이 각 키에 하나의 음만을 대응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아코디언은 멜빵이 달린 작은 피아노로서 작은 교회에서 오르간 대신 반주를 맡은 역할도 했지만 대부분 카페나 캬바레에서 반주용으로 사용되었고 고유의 음 외에는 내지 못하는 소리나는 기계로서 가장 천대받던 악기 가운데 하나였다. 이러한 편견은 지금까지도 쉽게 깨지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진솔한 감정적 전달력에 관심을 기울인 많은 연주자들의 노력에 의해 점차 반주악기에서 콘서트용 악기로 그 위상이 달라져왔다. 특히 G. 오릭이나 J. 프랑세 등의 프랑스 작곡가들은 아코디언의 가능성을 인정하여 이를 효율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인물들로서 이 악기에 ‘진지함’을 더하기 시작했다.
 
아코디언의 사촌격인 반도네온에 진정한 생명력을 불어넣은 장본인으로 반도네온 연주자 겸 작곡가인 아르헨티나의 아스트로 피아졸라를 꼽는다면, 아코디언에 있어서 리차드 갈리아노를 꼽는 데에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는 1950년 이탈리아 출생으로서 현재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세계적인 활동을 벌이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아코디언 연주자다. 특히 피아졸라의 탱고와 유럽 스타일 재즈에서 강한 영향을 받은 음악가로서 그 명성이 높다. 음악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클래식 음악교육을 받기 시작한 리차드 갈리아노는 학창시절부터 대위법과 화성학 등의 음악이론 뿐만 아니라 피아노, 트럼본, 아코디언 등 다양한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1966년과 1967년 2년 연속으로 국제 아코디언 콩쿠르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하는 동시에 1968년에는 샤를르 드골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상을 수여해 재즈계를 비롯한 모든 음악계를 놀라게 했다.

1970년대부터 그는 프랑스의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과 협력하여 자신의 음악세계를 넓혀갔고, 80년대에는 쳇 베이커, 조 자비눌, 투츠 틸레망, 미셀 페르투치아니, 엔리코 라바, 얀 가바렉 등등의 정사급 아티스트들과 음악작업을 해 나가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확립해 나아갔다. 이 가운데 그는 1983년 피아졸라가 ‘한 여름 밤의 꿈’을 위해 작곡한 부수음악을 연주한 것을 계기로 이 두 명의 연주자는 음악적 공통분모를 나누었고, 이 시기부터 갈리아노는 피아졸라의 음악세계에서 강한 영향을 받게 되었다. 피아졸라는 갈리아노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다고 한다. “재즈 아코디언 연주자로서 자네의 음악적 상상력은 너무나 미국화 되어가고 있는 것 같네. 그건 결코 좋은 것이 아니야. 자신의 프랑스적 감성을 다시 발견하여 차라리 뮤제트(프랑스 전통의 3박자 춤곡) 같은 것을 더 발전시켜보면 어떻겠나... 내가 누에보 탱고를 만들어낸 것처럼 말일세.”
리차드 갈리아노는 로타의 음악에 관심을 보인 최초의 재즈 음악가는 아니지만, 오랜 동안 로타의 유명한 곡들을 재해석하고 싶어했다. 실제로 갈리아노는 어린 시절 고향인 니스의 영화관에서 상영한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을 관람했을 때 받은 충격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특히 성공한 재즈 아코디언 연주자가 되었을 때에도 “평생 나와 함께 하고 있다”라고 말할 정도로 이 영화의 주제곡을 잊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영향은 로타가 영화음악을 담당한 다른 영화들, 특히 ‘대부’ 3부작 또한 여전히 유효하다. 갈리아노가 로타의 음악에 매료된 것은 단순히 음악 그 자체라기보다 음악이 영상과 함께 어우러지며 생성해낸 고유의 영혼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클래식 음악 전문 레이블인 DG에서 갈리아노와 같은 월드뮤직&재즈 아티스트를 영입하여 음반을 발매한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그의 첫 번째 앨범인 바흐 편곡 앨범 또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지만, 특히 이 두 번째 앨범인 니노 로타 앨범이야말로 갈리아노의 음악성과 상업성을 극대화시킨 경우로서 여러 측면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더블베이스와 소프라노 색소폰, 색소폰, 클라리넷, 알토 클라리넷, 트롬펫, 드럼과 타악기 등등의 악기들을 배경으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갈리아노의 아코디언이 로타의 음악 바다를 종횡무진 헤엄쳐다니는 이 앨범은, 신파적인 감성과 향수에 대한 본성을 쉴 새 없이 자극하는 황홀한 음악적 순간들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는 듯한 사려 깊은 프로그램 구성과 고급스러운 편곡 또한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첫 곡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대부’의 저 유명한 왈츠 주제를 갈리아노가 솔로 트럼본으로 연주하며 일종의 전주곡으로서의 진한 향수감과 기대심리를 팽창시킨다. 이어지는 ‘길’의 저 낭랑한 주제선율이 등장하며 일종의 이 앨범에 대한 음악적 행보를 제시하는 한편 다양한 주제적 변주를 가능케 한다. 이후 ‘길’의 여러 주제들과 ‘대부’의 인상적인 장면들, ‘비텔로니’, ‘8과 2분의 1’, ‘카비리아의 밤’, ‘달콤한 인생’, ‘영혼의 줄리에타’ 등등 다수의 페데리코 펠리니 영화들과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영화에서 등장했던 멜로디들의 자극적인 편곡음악이 수직교차하며 일종의 변주적 진행을 이룬다. 특히 중간 부분에 등장하는 ‘길’의 젤소미나에서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듯한 진한 감동을 받을 뿐만 아니라 ‘대부’의 사랑의 테마에서는 더블 베이스 위로 노래하는 아코디언의 처연한 흐느낌에 눈물샘이 자극됨을 느낄 수 있다.

재즈적인 분위기와 탱고적인 리듬이 기민하게 혼합되며 이탈리아 감독들과 이탈리아 작곡가 로타가 만들어낸 저 이탈리아적인 낭만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 갈리아노의 천재적인 음악적 성과물인 이 니노 로타 아코디언 헌정 앨범은 음악적 완성도뿐만 아니라 오디오파일적인 관점에 있어서도 새로운 청각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마법상자와도 같다. 갈리아노의 이 로타 앨범을 음반 라이브러리에 꽂아놓는 것은 곧 오디오 연주자로서 자신의 감성적 정체성을 과시하는 일종의 자기PR에 다름 아니다.
Richard Galliano - Nino Rota
01. Waltz [1”37] The Godfather
02. Tema[2’46] La Strada
03. Temi [5’43] I Vitelloni
04. I tre suonatori [0’46] La Strada
05. La Processione[2’55] La Strada
06. La Passerella d’addio [5’19]Otto e mezzo
07. Solitudine di Gelsomina [2’18] La Strada
08. Il Circo Giraffa[1’46] La Strada
09. Il matto sul filo [1’55] La Strada
10. Love Theme[4’20] The Godfather
11. Gelsomina[1’51] La Strada
12. Tema [4’22] Le Notti Di Cabiria
13. Zampan? e la vedova [3’46] La Strada
14. La partenza del convento [2’35] La Strada
15. Addio del matto [1’58] La Strada
16. Temi [4’26] La Dolce Vita
17. Rosa Avrata [5’48] Giulietta Degli Spiriti
18. Le manine di primavera [1’47] Amarcord
19. Tema [2’25] Amarcord
20. Nino [3’08]


리차드 갈리아노 - 니노 로타
음반사 유니버설뮤직
음반사 홈페이지 http://www.universalmusic.co.kr/
가격 16,500원
구입처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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