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얼마 전 우연히 용산의 아는 숍에 들렀다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매장 안에 루멘 화이트의 스피커가 있었는데, 종래 들었던 음과는 전혀 다른, 매우 투명하면서도 찰기가 있는 음이 나와 어리둥절하게 했던 것이다. 특히 바이올린의 호소력이 대단해서 과거의 명녹음은 물론 최신의 녹음까지도 일관되게 중독성 있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예를 들어 벤겔로프의 솔로 연주를 들어보면, 바이올린의 몇 번 줄을 긋고 있는지, 운지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하는지, 보잉이 어떤 각도에서 이뤄지는지가 눈앞에 생생하게 전개되는 듯했다. 게다가 그의 호흡까지 낱낱이 포착이 되어 좀 과장하면 벤겔로프의 바이올린에 바싹 고개를 들이대고 청취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사실 아큐톤 유닛이란 게 워낙 성능이 뛰어나고, 왜곡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잘만 받쳐주면 엄청난 소리가 난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그 유닛의 가능성을 100% 발휘했을 때의 소리가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과연 어떤 앰프가 장안의 고수들에게 좌절과 고통을 안겨준 루멘 화이트를 완벽 구동한다는 말인가 싶어 둘러보니 거기엔 에지가 있었다. 그렇다. 에지와 루멘 화이트는 마치 잉꼬부부라도 되는 듯 정겹게 오디오의 새로운 경지를 들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에지에게 받은 충격은 또 하나 있다. 진상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나, 많은 파워 앰프들을 좌절하게 만들었던 록포트의 메락 2+세리탄 2 시스템과의 놀라운 조우! 워낙 생긴 것도 거창하고, 인클로저 옆구리에 달린 거대한 포컬 우퍼의 난공불락에 가까운 험난함을 감안하면 아무리 힘깨나 쓴다는 파워도 비실비실 맥을 못 추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데 에지를 걸자 언제 그랬냐는 듯 고역부터 저역에 이르기까지 빼어난 밸런스를 갖추고 음악적인 에너지와 오디오적 쾌감을 동반한 지극히 자연스럽고 품위 높은 사운드가 전개되는 것이다. 시청을 위해 걸었기 때문에 그냥 에지와 잘 맞는군 하는 생각이었지만, 시청 후 록포트를 다른 앰프와 걸자 그 차이는 확연해졌다. 멍멍하고, 굼뜨고, 생기가 없는 음. 과연 이 소리가 록포트에서 재생되는 것이 맞나 다시 한 번 스피커를 바라볼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1987년 미국에서 창업한 에지는 90년대 말부터 미국의 하이엔드 씬에서 큰 주목을 받은 브랜드다. 그러므로 우리의 오디오 시장이 일본의 오디오 잡지와 평에 종속되어 있는 것을 감안해도 이런 제품이 이제야 우리에게 소개된다는 것은 좀 창피한 일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에 소개할 시그너처 1.2 프리앰프와 NL12.1 파워 앰프는 그 수상 경력도 화려하고, 생김새도 남달라 음을 듣기 전부터 좋은 이미지로 다가온다.

시그너처 1.1은 특히 앱솔루트 사운드의 사랑을 듬뿍 받은 프리앰프다. 이 잡지의 편집장은 진공관 프리앰프의 열렬한 애호가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이 제품만은 자신이 직접 사용할 정도로 애정을 보였을 뿐 아니라, 6회에 걸쳐 에디터스 초이스를 부여한 바 있다. 그럼 NL 12.1은 어떤가? 역시 앱솔루트 사운드의 2005년도 2만불 이하 앰프에서 골든 이어 어워드를 수상한 바 있다. 그 외 스테레오파일이나 저명한 웹 사이트에서 추천 리스트에 올린 일들을 일일이 여기서 소개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럼 에지의 소리가 왜 이리 훌륭하고, 특히 진상으로 알려진 옹고집쟁이 스피커들을 무슨 수를 썼기에 탁월하게 구동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NL 12.1에 대해 말해보자. 얼마 전 숱한 애호가들에게 좌절을 안겨준 안드라 1을 붙이자 갑자기 콧대 높던 자세를 숙이더니 에지가 하자는 대로 굴복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B&W 800D 역시 에지를 만나자 모든 유닛에 생기가 돌면서 스피커 전체가 신나게 노래하는 것을 목격한 일도 있다. 괴물 같은 베리티 오디오의 로엔그린 역시 양순한 처녀로 변신해서 싱싱한 표정으로 한껏 매력을 발산한 모습도 놀랄 일이 아니다. 대체 무슨 이유인가 ?

NL 12.1의 공식 출력은 8옴에 300W. 와트 수로만 따지면 그리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엄청난 근육질을 자랑하는 600W급 이상의 많은 파워 앰프들에서 볼 수 없는 미덕이 이 안에 숨어 있다. 바로 정확한 바이어스 공급. 예를 들어 스피커를 보자. 보통 4옴 혹은 8옴짜리들이 많고 개중에는 6옴도 있지만, 이것이 항시 일정한 것은 아니다. 네트워크 박스를 통해 다양한 음악 신호가 입력됨에 따라 그 옴수는 2옴으로 떨어질 때도 있고, 16옴으로 높아질 때도 있다. 이렇게 옴수가 바뀔 때마다 얼마나 파워 앰프가 신속하게 원하는 만큼의 전력을 공급하느냐가 중요하다. 심지어 정전형의 경우 1옴 혹은 0.5옴까지 떨어지기도 해서 파워 앰프가 이런 부담을 견디지 못하면 딜레이가 끊어지거나 심하면 타버리는 경우도 발생한다. 에지의 장점은, 이렇게 심하게 요동치는 옴수에 정확히 일치하는 바이어스를 제공한다는 데에 있다.

에지의 파워를 보면 레이저 빔 조절 장치가 있다. NL 12.1의 경우, 출력단에 모토로라 MJL 3281을 채널당 8개를 사용한다. 스테레오 파워이므로 좌우 각각 8개가 쓰인 셈이다. 이것을 8 패럴랠 푸시풀로 구동하는데, 특이하게도 NPN 소자만으로 구성해서 쓰고 있다. 이렇게 NPN 소자만으로 구성해야 소리가 자연스럽다는 것이 에지의 주장이다. 이 출력단의 TR 각각이 1차로 저항을 투입해서 전체적인 바이어스를 조정한 후, 2차로 레이저 빔 바이어스를 동원해서 세심하게 맞춘다. 양쪽 채널에서 항시 빔이 나와 서로의 양이 어긋날 경우 즉각 바이어스를 조정하게 만드는 구조다. 그러므로 음악 신호의 강약에 따라 순간순간 적극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채널당 3KW의 토로이덜형 트랜스를 배치한 점이나, 그 위에 8개의 전원 콘덴서가 원을 그리며 꽂혀있는 점, 각 파트를 두툼한 스틸로 차폐한 점 등은, 마치 잘 구획된 계획 도시를 보는 듯한 꼼꼼함과 완벽주의가 곁들어져 가히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파워 앰프로 손꼽기에 무리가 없는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 프리를 보면, 이 역시 심플하면서도 정곡을 찌른 설계에 탄복하게 된다. 우선 내부를 열어보면 셀렉터에 긴 샤프트가 연결되어 바로 뒷편의 입력단과 직결되어 있다. 이런 과감한 배치는 에어의 프리 이후 처음이 아닐까 한다. 또 볼륨단의 경우, 내부를 보면 밀봉 처리되어 고도의 섬세한 조정을 가능하게 했고 또 외부의 간섭을 일절 배제하고 있다. 놀란 것은 강력한 전원부. 이 역시 두 개의 전원 트랜스가 동원되는데, 하나는 AC용이고, 또 하나는 DC용. 그렇다. 이 프리는 일명 배터리 전원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DC 전원을 장시간 사용해서 바닥이 날 경우, 자연스럽게 AC 전원으로 옮아가면서 DC쪽에 충전이 이뤄지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으니 중간에 음악이 끊어질 일이 없다. 물론 AC와 DC의 음도 차이가 있다. AC가 말 그대로 에지가 분명하고, 기상이 높은 20대 처녀라면, DC는 좀 더 숙성이 되고 기품이 있는 30대 유부녀라고나 할까? 아마 진공관 음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DC쪽에 손이 갈 것 같고, 그런 면에서 앱솔루트 사운드의 편집장이 열광한 이유도 짐작이 간다.

마지막으로 프리 파워 모두 채택하고 있는 독특한 새시에 대해 설명해야겠다. 1.3cm 두께의 6061 알루미늄을 CNC 가공 처리한 새시의 강인함이나 독특한 미적 감각은 그렇다 치고, 양옆에 배치된 방열핀의 모양이 왜 이리 이상한가? 묘하게 구부러지고 또 중간 부분은 안으로 휘어 있다. 일종의 웨이브 형태인데, 다 이유가 있다. 이렇게 형상을 만들 경우, 수직 진동은 물론 수평 진동에도 완벽 대응하기 때문이다. 이 곡선을 찾기 위해 에지는 컴퓨터를 통한 숱한 계측을 시행했다고 한다. 실제로 제작 과정도 까다로워 이 방열핀을 만드는 데에만 상당한 시간과 물량이 투입된다고 한다. 물론 이 방열핀을 떼고 그냥 싸게 앰프를 만들어달라고 떼를 쓸 수도 있지만, 그쪽에서 응낙할지는 미지수.

확실히 에지의 음을 들으면 하이 스피드하고, 투명하며, 매우 와이드 레인지하다. 그럼에도 음이 날카롭지 않고, 경직되지 않았다. 마치 진공관을 들을 때처럼 음의 끝이 부드러우면서 자연스럽다. 극과 극은 만난다고, TR이라는 소자를 이용해서 이렇게 경계(에지)에 다다르면 결국 잘 만들어진 진공관 앰프가 갖는 투명도와 자연스러움에 연결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과거 20여 년간 요란하게 하이엔드 시장을 점령했던 여타의 앰프들과는 차별화되는 새로운 세대의 앰프라 칭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역시 최근에 주목을 받는 다질과도 상성이 좋다고 보는데, 다질의 묘하게 가슴을 적셔오는 탐미적이고, 아름다운 프리앰프에 에지의 진솔한 파워를 매칭했을 때의 절묘함은 이 시대 솔리드 스테이트의 절정이라 극찬하고 싶다. 아직도 전 시대의 유물을 최고로 여기는 분들이 있다면 꼭 일청을 권한다. 시대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 이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