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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스피커를 이야기할 때 크게 두 가지 타입으로 나눈다. 음상형과 음장형이 그것이다. 전자는 음 자체의 에너지와 밀도를 중시하는 바, 다소 앞으로 쏟아지는 경향이 있다. 음 자체의 설득력이 대단해서 듣자마자 빠져들지만, 반대로 여러 악기가 뒤죽박죽 섞여서 좀 혼란스런 경향이 있다.

반면 음장형은 스피커 뒤쪽으로 쭉 무대가 펼쳐져 공간을 채우는 보컬과 악기의 존재가 일목요연하게 보인다. 하지만 다소 멀찍이 서 있는 듯해서, 음 하나하나의 임팩트는 좀 약한 편이다.

 

스피커의 역사를 보면 이른바 빈티지라고 부르는 시대엔 음상형이 많았고, 하이엔드의 개념이 일반화된 1990년대 이후엔 음장형이 많이 출현했다. 사실 이 두 가지 타입을 잘 섞는게 묘미라고 하지만, 그런 경지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일정한 공간도 필요하고, 앰프나 케이블 등 투자해야 할 부문이 많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이런 최종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아무래도 음장형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음상형은 어떻게 해도 무대 연출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번에 소개할 베리티 오디오의 레오노레는, 여러 면에서 주목할 만한 장점이 많은 제품이라 하겠다.

 

처음 베리티 오디오가 소개되었을 때엔, 스피커 하면 무조건 음이 크고, 당차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즉, 크고 무거울 수록 좋은 스피커라는 선입견이 팽배하던 시절이라, 베리티의 제품을 보면 이게 뭐야, 하는 느낌이 많았다. 게다가 가격도 비싸서, 이 작은 녀석이 어떻게 이런 가격표를 단단 말인가 화를 내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하이엔드 오디오가 표방하는 개념들이 이해되면서 이 회사의 제품들도 서서히 진가를 드러내고 있다. 음상형에 취하다 음장형의 장점을 알게 된 분들이라면, 베리티 스피커의 장점이 뭔지 금세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음장형으로 제일 좋은 것은 이른바 평판형이다. 정전형도 좋다. 어쨌든 거대한 문짝같은 스피커를 떡 하니 세워놓으면, 그 안에 정말로 상상할 수 없는 입체 음향이 구현된다. 일종의 홀로그램과도 같고, 3D 영상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타입은 저역의 임팩트나 양감에 문제가 있고 또 공간의 문제도 있어서 우리에게 잘 보급되지 않은 편이다. 어떤 애호가는 위 아래 테두리를 떼어내서 천장에 매단 줄로 연결한 후 비스듬히 기울여서 썼다고 하는데, 그래도 음이 좋았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그야말로 미국의 큰 주택이 아니면 쓰기 힘든 타입인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 스피커 형태로 이런 음장형을 구현하게 되면, 베이스의 강력함까지 더해져서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선사한다. 베리티가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음인 것이다. 당연히 세팅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바, 통상의 위치에서 좀 더 앞으로 빼내어 뒷벽과의 간격을 넓힐 필요가 있다. 이 회사가 추천하는 방식에 따르면 우퍼가 뒤로 향해야 하고, 그러려면 뒷벽과 부딪혀서 나오는 대목을 약화시켜야 한다. 그러니까 앞으로 빼면 뺄 수록 좋은 것이다.

물론 우퍼의 방향을 앞으로 바꿔서 들을 수도 있다. 실제로 파르지팔 오베이션을 갖고 그런 실험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공간의 깊이가 약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또 저역의 깊은 맛도 반감되었다. 악조건이 아니라면, 우퍼는 뒤쪽을 향하게 하는 편이 맞는 것이다.

 

이번에 만난 레오노레는 등급으로 치면 파르지팔 오베이션의 바로 아래다. 그러나 상급기의 퀄리티를 갖추면서 가격적인 메리트가 있다는 점에서, 본 기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실제로 양자를 비교해보면 우퍼에서 좀 차이가 날 뿐이다. 파르지팔쪽이 큰 것 한 발이라면, 레오노레는 작은 것 두 발이다. 4~5평의 좁은 방이 우리네 청취 환경의 주류임을 감안하면, 컴팩트하면서 깊은 음장과 하이 퀄리티를 만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레오노레가 갖는 장점은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우선 외관을 보면 무슨 북셀프 스피커에 우퍼 박스를 더한 듯한 포름이다. 사이즈 면에서 뭔가 압도하는 맛이 없지만, 정교하게 잘 제작되었다는 느낌은 받을 것이다. 본 기는 정통적인 베리티 오디오의 노하우가 듬뿍 들어가, 그 외관에서도 동사만의 장점을 찾아볼 수가 있다.

일단 두 박스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윗부분이 중고역부고, 아랫부분이 우퍼부다. 앞서 설명했듯, 조건이 맞지 않으면 우퍼를 앞으로 오게 설치해서 들을 수 있다. 100% 만족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여기서 재현되는 자연스런 음장엔 충분히 공감하리라 본다.
여기서 우선 상단부부터 보자. 중고역 유닛이 각각 하나씩 달린 포름이다. 위에 달린 1인치 트위터는 주위에 링이 달려 있는데, 고역의 에너지를 잘 살리기 위한 조치라 하겠다. 이어서 미드레인지는 5인치짜리 한 발인데, 당연히 특주품이다.

 

사실 스피커를 설계할 때 제일 중요한 게 바로 미드레인지다. 이 녀석이 얼마나 넓은 대역을 커버하는지, 그러면서 적절한 밀도나 해상도를 유지하는지에 따라, 스피커 설계의 방향이 바뀔 정도다. 그런데 대부분의 음성 신호가 미드레인지에 집중된다고 보면, 이 유닛이 유능할 수록, 스피커 설계가 쉬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 점에서 본 기에 들어간 미드레인지는 상당히 유능하고, 전통적으로 동사는 이 부분의 개량에 힘을 써왔다. 자사만의 특허도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본 기를 직접 들어보면 마치 하나의 유닛에서 나오는 듯한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바, 이런 식의 설계가 가진 최대 장점이라 하겠다.

 

한편 우퍼는 6인치 두 발로, 얼핏 보면 제대로 된 저역이 나오겠냐 싶지만, 이 사이즈에 35Hz까지 떨어진다. 어지간한 중대형 스피커에 버금가는 스펙이다. 참고로 고역은 50KHz까지 담당한다. 상당한 와이드 레인지인 것이다.

이런 스피커를 구동할 땐 당연히 대출력 파워 앰프를 찾게 된다. 하지만 본 기에선 그럴 필요가 없다. 입력 감도가 93dB이며, 6오옴 이하로 거의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3극관 싱글까지도 가능한 수치지만, 일반적으로 50~100W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시청에도 120W짜리 파워를 동원했는데, 구동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단, 워낙 민감하고, 정교하게 제작된 터라, 앰프의 퀄리티나 개성에 즉각 반응한다. 출력보다는 내용이 좋은 앰프를 선정할 필요가 있다. 소스쪽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말아야 하며, 일정한 그레이드의 케이블은 필수.

오랜만에 만난 베리티의 제품이라 개인적으로 흥미가 많았고, 그 내용도 만족스러웠다. 단, 앞으로 달려들며 듣는 사람을 꽉 움켜쥐는 음향이 아니라, 정교치밀하게 구축된 3D 사운드를 디테일하게 표현하는 쪽이므로, 그런 면에서 약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듯하다. 하지만 일단 음장형 스피커를 듣게 되면, 그 특유의 매력에 저항하기 힘들 것이다. 그 점은 확언할 수 있다.

 

본 기의 시청을 위해 파워 앰프는 나그라의 MSA를 동원했다. 원래 스테레오기로 60W를 내고, 집에서 사용하기에 충분한 출력이다. 그러나 시청실의 환경을 감안, 이것을 브리지 모드로 해서 두 대를 동원하니 120W가 나왔다. 본 기를 움직이는데 넉넉하고도 남았다. 프리앰프는 역시 나그라의 멜로디고, 소스는 메리디안의 술루스. 시청 트랙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하이든 《첼로 협주곡 1번 1악장》 로스트로포비치(첼로)
-사라사테 《치고이네르바이젠》 안네 조피 무터(바이올린)
-아트 페퍼 《You'd Been so Nice to Come Home to》
-들국화 《그것만이 내 세상》

하이든의 음악을 처음 듣는 순간, 그 고품위함에 잠시 말을 잊었다. 유럽의 귀족이 베푸는 살롱의 향연에 온 듯하다. 나긋나긋하게 바이올린군이 등장하는 가운데, 첼로가 유연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중고역의 하이 퀄리티도 좋지만, 저역의 빠른 풋 워크도 인상적이다. 결코 파워나 양감으로 달려드는 저역은 아니지만, 충분히 밑으로 뻗고, 실제음에 가까운 스피드를 갖고 있다. 따라서 재생음에 일체 흐르러짐이나 어긋남이 없다. 특히 넓은 무대와 깊은 안길이는 본 기가 가진 최대 장점이라 하겠다.

이어서 무터의 연주를 들었는데, 여태까지 들어온 재생음과 좀 차이가 난다. 확 앞으로 밀려들면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 뒤로 물러서서 정교치밀하게 연주하는 모습이다. 단, 주변을 감싸는 오케스트라의 존재감이 또렷하고, 치고 빠지는 순발력이 좋으며, 전반적으로 악단과 독주자가 일사분란하게 맞아가는 느낌이다. 특히 고역으로 휘몰아칠 때의 에너지도 대단하지만, 그럼에도 넉넉한 인상을 받는 것은 아무래도 50KHz까지 담당하는 트위터의 능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랜만에 듣는 아트 페퍼의 곡은, 진하고 걸죽한 맛 대신에 상큼하고 발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녹음 자체가 억지로 만든 스테레오 방식이어서인지, 왼쪽 채널에 페퍼가 있고, 오른쪽 채널에 리듬 섹션이 몰려있다. 중앙이 허전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든 그 연결선이 그어지고, 또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좌우 채널이 따로 노는 게 아니다. 게다가 킥 드럼이나 더블 베이스가 밑으로 뻗는 부분이 충분해서, 리듬감이 정확하게 전달된다. 아무튼 혼 타입 스피커의 재생음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달라서, 이 부분이 흥미를 유발한다.

 

마지막으로 들국화를 들었다. 원곡 자체가 처절할 만큼 고역을 쏟아내고, 진한 필링으로 가득한데, 여기서는 맛이 다르다. 힘으로 압박하지 않고, 냉정하고 정확한 분석으로 음악 그 자체를 전달한다. 보컬은 상당히 투명하고, 베이스는 명징하며, 몰아칠 때의 음량은 크지만 거북스럽지 않다. 무엇보다 각 멤버들의 위치가 일목요연하고, 인터플레이의 모습이 정확하게 포착되며, 녹음 엔지니어가 그때 그때 어떤 악기를 올리고 내리는지 잘 보인다. 따라서 분석하겠다고 마음먹고 달려들면, 그 나름의 쾌감을 전해준다. 확실히 레오노레가 드러내는 세계는 독특하기도 하지만 또 매력도 있다. 기회가 되면 한번 들어보라 권하고 싶다.

 

이종학(Johnny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