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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디지털 AV 쇼에서 보우(Bow)를 수입하는 젠오디오 부스에 잠시 들른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엔 보우를 위한 방문은 아니었지만, ZZ-8과의 첫 만남이 마치 인연처럼 이루어졌고 쇼 당시 좋은 느낌을 받았던 기억으로 보우 테크놀로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얼마 뒤 ZZ-8의 리뷰 의뢰가 들어왔고, 제품이 도착하던 날에 Bow ZZ-8 덕분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생겼다.

오디오 리뷰를 하다 보니 늘 집 내부가 제대로 정리된 적이 없었는데, 정리 안 된 오디오 장식장과 제품 박스로 가득한 집안은 비단 필자뿐만 아니라 전용 리스닝룸이 없는 평론가라면 일상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항상 불만 가득한 아내의 눈치를 볼 때도 많았지만, 보우 ZZ-8만은 선택 받은 제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왜냐하면 장식장에 제품을 올려놓은 순간 아내의 반응이 의외였기 때문이다. "혹시 이거 팬케이크 굽는 기계 아니에요?"

비록 우스갯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거실에 놓인 ZZ-8의 디자인이 지금껏 보아왔던 기기적인 느낌의 제품들과는 달리 인테리어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사실 덕분에 오랜만에 여유 있게 리뷰 제품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농담이지만 만약 필자 같은 고민을 한다면 보우는 인테리어적인 면에서 좋은 대안이 될 것 같다. 서두가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렀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보우 테크놀로지와 ZZ-8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덴마크를 대표하는 하이엔드 하이파이 브랜드라면 다인오디오나 뱅앤올룹슨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 모두 견고한 만듦새와 세련미 넘치는 감각적 디자인으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라인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우 테크놀로지 제품 또한 예외는 아니다. 동사의 CEO인 보 크리스텐슨(Bo Christensen) 사장은 줄곧 하이엔드 오디오만을 설계해온 엔지니어 출신으로 80년대 스웨덴의 프라이메어 사에서 928과 200 시리즈를 제작했다고 한다.

이런 과거의 설계 노하우를 통해 1996년 그들 최초의 양산 체제를 갖춘 제품인 인티 앰프 ZZ-One과 CDP ZZ-8을 출시하였는데, 오디오파일의 경험을 토대로 한 뛰어난 사운드와 슬림하고 샤프한 디자인을 강조한 세트형의 하이엔드 제품이 강조되어, 그 당시 해외 리뷰 등을 돌이켜 보면 상당히 이목을 집중시켰던 제품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 제품임을 강조하면서 하이엔드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한 계기가 되기도 하였는데, 아시아권에서는 일본에 먼저 상륙하여 ZZ-8은 일본 S잡지에서 선정한 올해의 베스트에서 CDP 부문 1위를 차지하기도 했었다. 특히 소스 기기 부문에서 일본 제품들을 최고로 인정하는 그들의 선정 기준을 고려한다면 상당히 인정받은 CDP로 기억되는데,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에는 당시 브랜드나 제품에 대한 많은 소개가 이루어지지 않아 제품 보급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Bow ZZ-8 3rd 버전은 이제부터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중요한 제품이다.

2007년 1월 이들의 세 번째 에디션 버전이 공개되었는데, 2004년의 두 번째 버전에서 DAC를 울프슨제 24bit로 개량한 뒤 다시 한 번 업그레이드되었다. 밸런스 단자를 생략하고 언밸런스 단자만을 제공한 것도 외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세 번째 에디션 제품을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메커니즘 부분을 보자. 기존 제품은 필립스 CDM12 Pro CD 드라이브 메커니즘을 사용하였으나 이번 세 번째 버전부터는 필립스 Pro2M CD 드라이브 메커니즘으로 변경하여 기존 제품에 비해 보다 안정적으로 개량된 메커니즘 도입을 통해 깊이 있는 사운드 재생이 가능하게 되었다. 물론 메커니즘의 변화는 음질 개선과 함께 CDM12 Pro의 단종에 따른 대안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하이글로시 마감의 지지대 세 개를 설치한 새로운 스태빌라이저 설계를 통해 기존 모델에 비해 디자인적인 향상은 물론, 보다 안정적인 회전을 통해 음질을 향상시켜 주고 있다. 물론 외부 진동을 억제시켜 섬세하고 정확한 디지털 신호를 재생시켜 줄 수 있는 밑거름이 된 단단하고 견고한 외부 케이스는 기존 제품의 것 그대로 유지시켰다.

그럼 가장 핵심적인 변화인 DAC부를 살펴보자. 참고로 필자가 과거 초기 제품을 직접 리뷰해본 적이 없어 구체적인 사운드 비교는 어렵지만 하드웨어적으로 개선된 부분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DAC부에는 24bit/96kHz로 8배 오버샘플링이 가능한 버브라운 사의 PCM1704를 채널당 하나씩 두 개 사용하고 있는데, S/N이 120dB로 우수한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DAC 내부는 별도의 디지털 컨트롤 단자를 통해 디지털 노이즈를 없애주고 있다. 이러한 DAC을 통한 하드웨어적인 특성은 사운드의 명료함과 디테일에서 보다 좋은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디지털 소스 기기에서의 DAC의 중요성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번 세 번째 업그레이드는 새로운 디지털 소스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적 의미와 함께 출시 이후 11년이 지난 지금도 ZZ-8이 단종 없이 출시되고 있다는 의미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동안의 버전업은 단순히 사양의 업그레이드나 하드웨어적인 개선을 뛰어넘어 혁신적인 사운드 변화를 도모하여 보다 높은 해상력과 사운드의 디테일 향상을 가져왔다.

현재 ZZ-8의 초기 제품을 업그레이드해주고 있는데, 비록 국내에서는 수요가 많지 않았지만, 제조사에서 기존 제품에 대한 업그레이드 배려는 사용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모든 부분의 변경은 아니지만, DAC부와 스태빌라이저의 변경이 가능하니 이 점은 참고로 하면 좋을 것이다. 아마도 기존 제품에서 디테일이나 해상력에 불만이 있었다면 업그레이드를 통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본격적인 시청에 들어가 자끄 루시에 트리오의 연주로 바흐의 이탈리안 콘서트 중 ‘Allegro’를 들어보니 안드레 알피노의 드럼이 압권으로 심벌의 경쾌함이 돋보인다. 생동감 있는 드럼의 연주가 중심에 있고 여기에 피아노 건반의 느낌이 강조되는데, 적절한 저역의 잔량이 돋보인다. 베이스는 섬세한 손놀림이 느껴지듯 선명하고 디테일한 표현으로 다가오는데, 실제 베이스 연주의 느낌이 강조되었다. 전체적인 연주는 한마디로 리듬이 살아 있는 자연스러움의 연속이라는 표현이 어울려서 더 이상의 트리오 조화는 없을 정도였다.

스윙 재즈곡으로 딕 하이먼의 <From the age of swing> 앨범에 수록된 ‘You’re Driving me crazy’을 들어보면, 앞선 자끄 루시에 트리오의 조화를 다시 한 번 들려주는 듯한데, 스튜디오 녹음에서의 악기 거리와 완급 조절이 고스란히 유지되어 눈앞의 작은 무대를 연상시킨다.

보우 테크놀로지의 ZZ-8은 지금껏 들어 본 소스 기기들 중에서도 과장되지 않은 디테일, 때론 화려하고 맑은 특성, 그리고 자연스러운 사운드가 일품으로 기억되는데, 어쩌면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받는 듯 듣는 이의 기분을 흥분시켜는 매력을 지녔다. 또한 생동감 있는 사운드는 재생 악기의 질감을 제대로 표현해주고 있어 재즈나 대편성곡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았던 무대의 잔향들이 느껴질 것이다.

이번 세 번째 버전은 한마디로 보우 ZZ-8의 완성형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며, 최근에 출시된 소스 기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훌륭한 제품이다.

-llhtml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