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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올 것이 왔다. 끝까지 레드북 CD를 고수하던 와디아가 드디어 SACD 플레이어를 만들었다. 소스 기기의 강자로서 와디아가 가지는 절대적인 브랜드 파워를 볼 때, SACD가 적용된 첫 플레이어라는 것은 꽤나 화제가 될 만한 일이다.

동사는 1988년 3M의 통신 관련 기술자들이 모여 만든 회사로, 오디오적인 접근이 아닌 텔레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접목시켜 접근하였고, 처녀작인 걸로 기억되는 와디아 2000 DAC(당시 정확한 명칭은 디코딩 컴퓨터였다)를 출시한다. 이후 티악(에소테릭)의 메커니즘을 이용해 CDP를 출시한다. 항상 디지털 기술의 첨병에서 CD 플레이어 시장을 선도해왔고,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만드는 것마다 같은 가격대에서 최고의 상품이었고, 필자의 첫 CDP 역시 와디아였다. 850과 860 이후, 861 같은 변형 모델을 만들기는 했지만 비교적 오랜 침묵기를 거쳐 내놓은 작품이 581이다.

외관은 이전 모델과 별 차이가 없다. 크기가 아주 약간 달라지고, 무게가 조금 가벼워지고, 옆판에 공기구멍이 뚫리게 된 것이 차이. 기타 스펙상의 차이도 861과 거의 차이가 없다. 581은 두 가지 버전으로 나온다. 581i SE와 581 SE, ‘i’ 가 붙은 모델은 디지털 입력이 가능한 모델로, 861과 861 베이직과 같은 구성이다. 가격도 비슷한 정도에서 형성이 된다.

메커니즘은 이전 CMK 3.2 모델에서 SACD 등의 멀티포맷을 위해 바뀌었다. 제작사는 커스텀 마운팅이 완벽하게 진동과 간섭을 차단시켜 독자적인 중후한 메커니즘 칸막이에 수납, 이전을 능가하는 데이터 적출 능력을 가진다고 한다. 하지만 당장은 이전의 정숙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이 더 마음에 든다.

861과 마찬가지로 한 개의 마스터 클록을 근거리에 배치 트랜스포트부와 DAC부의 클록을 링크시켜 일원 관리함으로 저지터를 구현했고, 와디아의 특허기술인 Swiftcurrent 회로를 발전시켜 SC-3D로 업그레이드되어 581에 탑재되었다. 이를 통해 더 높은 S/N비를 구현하게 된다. 디지털 볼륨은 이전과 동일한 듯 보이고, 주요 부분은 업그레이드가 용이하게 모듈로 구성되었다. 전원은 스위칭 전원으로 일반적인 스위칭 전원보다 높은 고주파수로 작동, 노이즈는 낮추고 간섭을 줄이면서 높은 효율의 파워를 얻는다.

861 베이직 이후 2년여 만에 다시 와디아를 연결했다. 여전히 톡톡 튀는 탄력적인 음색. 투명하고 깔끔한 와디아만의 특유의 음색은 정말 중독성이 강하다. 그동안 하이엔드 플레이어가 많이 소개되고 해서 이전 861을 연결했을 때처럼 감탄사가 튀어나오는 해상도는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861 정도의 퀄리티는 나오는 것 같다. 분명 개량은 되었고 SACD에 대응하는 기능이 추가되었지만 이전의 범주에서 벗어나 놀랄만한 변신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긴, 이만큼으로도 물리적인 특성은 충분하다. SACD 인식 과정으로 인해 이전보다 조금 로딩 시간은 길어졌지만, 일부 SACD 플레이어 같은 지루한 딜레이는 아니다. 와디아는 오히려 점점 더 아날로그화되고 따뜻하고 온화해지는 것 같다.

특유의 탄력적인 음색과 넓은 대역, 그리고 높은 해상도는 시원시원한 느낌으로 소리를 쭉쭉 잘 뽑아준다. 또렷한 피아노의 음색, 오케스트레이션에서의 고해상도의 매력, 그리고 미묘하게 부유하는 현의 촉감. 860 이래로 느껴지는 이 미묘한 감촉의 부드러움은 이전의 와디아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강점을 보이는 팝과 재즈의 묘사는 여전히 베스트다. 이미 많이 사람들이 사용하고 들어본 와디아의 소리를 굳이 표현하자면, 체스키 음반을 틀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일반 CD와 SACD를 비교하자면 한 꺼풀 벗겨내듯 음상이 더욱 또렷해지고, 저역의 박력이 압도하는 느낌. 특히 재생 대역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듯한 청감상의 시원함과 훨씬 더 정확하게 묘사되는 음원의 포지션은 빼어나다. 상대적으로 SACD의 퀄리티가 높지만, 일반 CD 역시 이전 와디아 만큼의 재생 품질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마음에 든다. 확실히 이전보다는 그렇게 녹음을 심하게 가리는 편이 아니다. 이전의 와디아가 있는 그대로 날카롭게 차갑게 소리를 만든다면, 지금은 그 한계를 벗어나 음악적인 감성이 많이 살아났기에 필자는 더욱 마음에 든다.

필자는 예전에 한 잡지의 리뷰에서 와디아를 픽사(Pixar)의 애니메이션에 비유한 적이 있다. 80년대 후반 <럭소 주니어>에서 보여준 자연스러움과 <토이스토리>에서 보여준 상상을 뛰어 넘는 정교함.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출발이 왠지 닮아 있다. 그리고 최신작인 <라따뚜이>에서는 세밀함에 놀라기보다 그저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그냥 편안하게 와 닿는다. 와디아 581 SE도 그러하다. 마치 이것 보라고 자랑하듯 보여준 화려함과 칼 같은 해상도를 강조하던 초기작과 달리, 이제 세밀함보다는 최신의 기술력을 통해 자연스러운 음의 재생이 무언지 알고 나아가는 것 같다.

와디아는 그 성능과 시장성이 보장을 받는 브랜드다. ‘개를 후보로 내보내도 당선될 것이다’는 말처럼 '와디아'가 가지는 브랜드의 절대성은 아마 형편없는 소리를 내는 제품을 내놓아도 명기로 대접받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같은 절대성은 여태까지 만든 제품은 항상 당대의 베스트였다는 데 그 이유가 있다. 581 SE는 훌륭한 작품임에 틀림이 없지만, 필자로는 불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랜만에 나온 신제품으로 새로운 메커니즘과 기술이 도입되었다고는 하나, 861에서 보여준 품질을 크게 뛰어넘지는 못하고 그냥 위에 SACD만을 탑재한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어디냐! 861은 아직도 천만원 안팎의 CD 플레이어 중 손꼽히는 제품이고, 이젠 SACD도 돌아가니까. 처음으로 출시된 와디아의 SACD 플레이어.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아마 몇 년 후면 ‘581 SE를 필두로 뒤늦게 SACD를 채용하기 시작한 와디아는…’이란 문구로 리뷰가 시작될 것이다. 그렇게 보면 단순한 신제품이 아닌 역사적인 사료가 내 눈앞에 놓인 건지도 모른다.

-llhtml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