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거울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프런트 패널에 내 자신의 손이 보인다. 조심스럽게 노브를 잡어서 서서히 볼륨을 올리는 동작이 무척이나 우아하게 보일 정도다. 하긴 이 음악상자의 전면에 부착된 황금빛 패널의 화려하면서 탐미적인 분위기는,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숨을 멈추게 한다. 또 그 안에 질서정연하게 배열된 각종 콘덴서며 진공관을 감싸고 있는 원형 케이스들은 왜 이리 아름답게 다가오는지. 그야말로 기능성과 미학의 적절한 조화라 할 만하다.

그렇다. 이 제품은 저 콧대 높은 프랑스의 자존심과 기술력이 총 집결된 전자 제품이자, 찬란한 과학 기술의 유산이자 또 예술품이기도 하다. 이 브랜드의 생산품을 사는 이들은 마치 페트뤼스나 로마네 콩티를 사듯, 일종의 명품을 구매하는 것과 같다. 특별히 선택된 소수밖에 손에 넣을 수 없는 브랜드이기에, 그 가치는 루이뷔통의 한정 생산품이나 샤넬의 기념작과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번에 소개할 창립 25주년작은 동사의 4반세기에 걸친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이정표이자, 프랑스의 예술 과학 전통의 모뉴먼트이며, 애호가들에겐 향후 전설로 자리 잡을 작품인 것이다.

처음 자디스를 창립할 당시, 앙드레 칼메츠(Andre Calmettes)의 생각은 심플했다. 그냥 내가 쓸 만한 앰프를 만들어 보자. 그래서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했는데, 의외로 평이 좋아서 1983년 9월에 정식으로 회사를 창업하게 된다. 동년, 프랑스를 대표하는 오디오 잡지 「라 누벨 레뷔 뒤 송」(La nouvelle Revue du son)의 표지 모델로 선정된 후, 점차 브랜드 밸류를 높여서 이후 전세계에서 사랑받는 회사가 된다. 자디스의 신화는 이렇게 단순한 동기에서 탄생했는데, 그 첫 작품이 바로 JA 80이다. 채널당 KT88(또는 KT90, 6550)을 네 개씩 사용한 이 모노 블록은, 당시 상상할 수 없는 스피커 구동력과 미음을 양립시켜서, 이 출력관이 가진 투박하고, 거친 맛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개척한 바 있다.

물론 이 제품은 여러 차례 개량을 거듭한 바, 이번에 창립 25주년을 맞이해서 또 새롭게 리뉴얼되어 선을 보였다. 기존에 이 제품을 사용한 분들도 많고 또 현재도 수요가 높기는 하지만, 기념작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만큼 여러 모로 한층 업그레이드된 면모를 보여준다. 그냥 단순히 마크만 붙인 게 아니라,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부분을 체크하고 또 검증해서 개량하고 또 발전시킨 제품인 것이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겠다. 깜짝 놀랄 만큼 정교하고, 단단하며 또 아름답다. 단순히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이 앰프 세트가 내는 음의 요염함이나 탐미적인 색감은 강한 중독성을 갖고 있다. 특히 현과 여성 보컬에서 만들어지는 미음은 그대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물론 진공관에서 이런 음을 추구한다면, 당연히 3극관 싱글을 떠올리겠지만, 이런 쪽이 치명적으로 갖고 있는 출력 부족이라든가 구동력 문제를 극복하면서, 이들 못지 않은 투명함과 신선함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자디스만의 매직에 속한다. 심하게 말하면, 본기에 이르러 창업 당시에 추구했던 철학과 미학이 완성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이런 말을 쓸 만큼, 본작에서는 그간의 전통과 기술력 위에 기술적인 완결성과 내구성을 보완한 가운데, 새시의 마무리까지 완벽하게 처리해서, 더 이상 트집을 잡지 못하게 한 것이다. 더구나 그간 이 회사의 폴리시나 음향 철학을 존중하면서도 약간은 거리를 둘 수밖에 없던 필자로서는 이번에 본기에서 단단히 한 방 먹고 말았다. 그리고 두 손 번쩍 들고, 축하합니다, 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본기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더 이상의 리뷰는 무의미할 것이다. 언제 호주머니를 여느냐, 하는 타이밍만 남았으니까.

그래도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 프리 및 파워의 스펙이며 기능적인 부분을 간단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우선 프리부터 살펴보자. 동작부과 전원부가 별도의 케이스에 수납된 이 제품은, 기존 JA 80보다 확실히 부피가 크고, 높이도 훨씬 커졌다. 자태 또한 아름답다. 무엇보다 프리는 미세 신호를 다루는 기기인 만큼, 외부의 진동이나 자력에 민감한데, 이 부분부터 손을 댔다. 즉, 튼튼한 스파이크로 확고하게 기기를 떠받치는 가운데, 일체의 자성 성분이 없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새시를 만든 것이다. 단, 그 충실도를 극한으로 하기 위해 외과용 가위나 메스에 사용되는 그레이드의 316L 스테인리스를 동원했다. 참, 극한의 물량 투입이다.

전면을 보면, 오른편에 부착된 세 개의 노브가 눈길을 끄는데, 왼편이 셀렉터이고, 오른편에 볼륨단이다. 즉, 볼륨 노브가 두 개 나 있는 바, 각각 오른편 및 왼편 채널을 담당한다. 무엇보다 본기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는 프런트 플레이트는 24캐럿의 금도금이 되어 있다. 순도와 완성도가 높아, 이 부분은 절대로 벗겨지거나 변색되지 않는다고 한다.

내부를 보면, 무엇보다 MM 및 MC 단을 제공하는 것이 반가운데, 각각의 입력단에 맞는 배선 처리를 한 점이 돋보인다. MC는 더블 실딩된 선재를 쓴 반면, MM은 실딩 처리된 은선을 사용했다. 한편 일반 라인단은 트위스트된 실버선을 쓰고, 별도로 그라운드 처리를 했다.

이 모든 입력단은 커패시터를 통과하면서 게인 조정이 이뤄지는 바, 특히 MC 입력단의 경우 매칭되는 카트리지에 따라 자동으로 대응하는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 '오토 어댑터블'(auto adaptable)이라고 부르는 이 기능의 요긴함에 대해선 두 말하면 잔소리. 한편 모든 진공관은 각각에 해당하는 커버로 감싸고 있어서, 상호 간섭을 극히 억제한 부분도 눈 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이어서 파워 앰프를 보자. 동사를 상징하는 제품답게 여러 모로 개량이 이뤄지고 있다. 일단 구조를 보면, 맨 앞에 초단 및 드라이브관이 있고, 철망으로 둘러싸인 쪽이 출력관이다. 그 뒤로 보이는 게 출력 트랜스포머로, 자디스를 상징하는 골드 플레이트가 상단에 박혀 있다. 맨 뒤에 있는 것은 전원 트랜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각각의 파트를 최대한 독립적으로 떨어트려서 다른 부분과의 간섭이나 영향을 피한 부분이다. 또 각각의 동작을 최적화시키기 위해, 실딩 처리나 메커니컬한 격리 구조를 취한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내부를 보면, 아무래도 자성을 띨 수밖에 없는 커패시터의 경우 테플론으로 감싸서 외부 누출을 막았고, 파워 서플라이 파트는 프린트 기판을 쓴 반면, 그 외의 부분은 하드와이어링 처리한 것도 여러 모로 음질상 유리한 부분이라 하겠다. 출력 트랜스와 스피커 커넥터를 연결하는 선은 자디스가 자체 제작한 스피커 케이블 PGSJ 1 선재를 이용한 것으로, 다시 말해, 동사의 스피커 케이블과 연계할 때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뜻도 된다. 마지막으로 출력관의 경우 리듐 처리된 소켓을 사용한 바, 이 경우 외부 자력의 영향을 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진동에서도 한결 유리하다.

사실 일일이 개량 포인트를 지적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 면에 걸쳐 손질이 이뤄진 만큼, 그것은 고스란히 음질상의 업그레이드로 나타난다. 특히, 금도금의 변색을 막고 최고 품질의 새시와 노브 등을 동원한 점은, 단순히 외관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높은 내구성까지 아울러 추구한 부분이라 하겠다. 어떤 오디오 메이커든 4반세기를 이어왔다고 하면, 그만큼 축적된 노하우가 많다는 뜻이겠고, 분명 그런 내공과 깊이가 이번 기념작에 반영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기존의 자디스 애호가들뿐 아니라, 많은 애호가들도 관심을 가져볼 만한 퀄리티라고 생각한다.

이번 시청을 위해 CDP는 디지털 플레이백을 준비했고, 스피커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윌슨 오디오의 사샤가 동원되었다. 시청 CD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야나인 얀센

- 라흐마니노프 '엘레직 트리오 1번' 랑랑, 마이스키 등

- 멜로디 가르도트 'Baby I'm a Fool'

- 밥 딜런 'Love Minus Zero'

첫 곡을 듣는 순간 자연스럽게 탄성이 나왔다. 그냥 바라만 봐도 압도되는 미인을 만난 격이라고나 할까? 여기서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여태 나온 와트 퍼피 시리즈를 모두 회상해 봐도, 본기와 접속된 음을 따를 수가 없었다. 그만큼 사샤와의 매칭이 뛰어나다. 참으로 고품위하고 또 아름다워 할 말을 잊게 한다. 어떻게 사샤에서 이런 미음이 나올 수 있을까 처음에는 속은 것 같았지만, 차츰 이성을 되찾고 분석해보니, CDP를 포함한 이번 매칭에 상당한 메리트가 있음을 알았다. 아무튼 오케스트라의 움직임은 지극히 평온하면서도 기민하고 바이올린의 음은 폐부를 찌를 정도로 강력하면서도 고혹적이다. 해상력, 구동력, 스케일, 밸런스, 다이내믹스 등 오디오적인 관점에서 봐도 높은 점수를 줄 만한 음이다.

이런 탐미적인 음색은 두 번째 엘레직 트리오에서 극대화된다. 여기서도 한 동안 시청이라는 사실을 잊고 그냥 음에 몰두했다. 하긴 이 정도면 굳이 뭐가 어땠느니 저랬느니 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자유분방한 가운데 교묘하게 얽혀 들어가는 세 악기의 움직임이 일목요연하고, 공간을 떠도는 자연스런 잔향이나 촉감 등이 넋을 잃게 한다. 분명 세 악기의 연주자들은 남자인데, 모두 아름다운 미녀가 연주하는 착각을 준다.

멜로디의 신작에서 고른 이 노래는, 과연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하는 그녀의 기량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오케스트라를 배후로, 선명하게 오른쪽 채널을 채우는 어쿠스틱 기타의 솔로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보컬은, 정위감이 탁월할 뿐 아니라, 전체적인 조화도 뛰어나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듣게 한다. 다소 중성적이라고 느꼈던 그녀의 보컬 톤이 여기서는 묘하게 섹시하게 다가온다. 그 느낌이 확실히 좋다. 또 그 뒤에 위치한 드럼의 경우, 마치 코앞에 스네어가 있는 듯 브러쉬 웍이 현란할 뿐 아니라, 심벌즈의 화려한 울림까지 가세해 거의 눈이 부실 정도다. 자디스를 상징하는 골드 패널의 화사하면서 탐미적인 이미지와 부합되는 음이라 하겠다.

마지막으로 전혀 경향이 다른 밥 딜런을 골랐다. 한데 60년대 말 녹음다운 거칠면서도 투박한 면이 살아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부드럽게 마무리를 해서, 귀에 부담 없이 다가온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확고부동한 정위감. 맨 뒤의 드럼부터 좌우의 기타와 베이스 그리고 중앙의 보컬까지, 손을 뻗으면 만져질 만큼 3D로 다가온다. 또 딜런으로 말하면, 젊고 싱싱한 느낌이 충만해, 한참 기세가 오를 때의 에너지가 충분히 전달된다. 심지어 가사의 발음이나 액센트도 명료해져서 순간적으로 리스닝 실력이 는 것 같은 느낌이다.

프랑스에서는 아무리 아름다워도 과학적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말이 있다. 그 점에서 본기는 테크놀로지와 탐미주의가 완벽하게 결합된 케이스가 아닐까 싶고, 이 높은 경지에 다다르기까지 숱하게 쏟은 땀과 노력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과연 4반세기에 이르는 시간은 결코 헛된 게 아니었다. 페트뤼스나 로마네 콩티에 다다른 오디오라고 감히 평하고 싶다.

-llhtml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