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가만히 생각해보니, 앞으로 몇 년만 있으면 CD 탄생 30주년이 다가온다. 작은 케이스에 담긴 음반이 마치 장난감처럼 보였던 것이 얼마 전 같은데, 벌써 사반세기 전의 일이라고 하니 믿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세월이 빠르게 흘렀단 말인가? 아무튼 이렇게 짧지 않은 CD의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은 아무래도 와디아의 등장이라 하겠다.

1988년 처음 이 회사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CD는 어차피 디지털 미디어에 속하기 때문에 음은 대개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차갑고, 음악성이 없으며, 기능적인 메리트만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런 세간의 선입견을 일시에 바꾼 것이 와디아이며, 그 후 90년대 내내 하이 엔드 CDP의 선두 주자로 자리잡았다.

그러다 무리하게 DAC 파워를 제작하면서 한동안 어수선한 시절을 보냈지만, 이후 전열을 재정비하고 최근에 우리 곁을 찾았다. 이번에 소개할 381i는 그런 획기적인 사상과 다채로운 경험이 멋지게 어우러진 데다가 상당한 퀄리티를 갖추고 있으므로, 그 자체만으로도 역사이고 또 성과라 생각된다.

와디아 381이 있고 i가 뒤에 붙은 381i가 있다. 381은 아날로그 출력만 있는 전용 CD 플레이어이고, 381i의 USB를 포함한 다양한 디지털 입출력을 지원하는 모델이다. 즉, 요즘 큰 이슈거리인 PC-Fi를 통해 고음질 디지털 음원을 재생할 수 있는 모델이다. USB의 경우 24bit/96kHz까지 지원을 하므로 편리하게 고음질의 PC-Fi를 구현하는데 충분한 스펙을 지원한다. 디지털 입력은 USB외에 BNC, 광, AES/EBU 총 4가지를 지원하며, 출력은 ST, BNC, 광, AES/EBU를 지원한다.

사실 외관을 보면 상급기와 큰 차이가 없다. 정통적인 디자인을 그대로 채용했기 때문에 일부 애호가들은 불평을 할만도 하지만, 그 사이 전기적, 기계적 차폐 기술을 발전시켰으므로, 초창기의 새시와 달라도 한참 다르다. 참고로 이들은 새시 대신 인클로저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손가락으로 두드려보면 아플 정도로 단단할 뿐 아니라, 무게도 엄청 나간다. 트랜스포트 메커니즘이 유닛이라고 하면, 새시를 인클로저 설계로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모터를 사용하고, 진동에 민감하고, 지터를 저감하기 위해선 이런 발상이 필요한 것이다.

그럼 시중에 나도는 중고 와디아 제품과 본기를 어떻게 차별화시킬 것인가? 이 또한 아주 간단하다. 음이 다르다. 달라도 한참 다르다. 매우 정교 치밀하면서 전체적인 밸런스가 뛰어나고 또 음악성이 대단하다. 소스의 정보를 낱낱이 포착하되, 일체 흐트러짐 없이 제공한다. 과연 오랫동안 CDP 한 종류를 만들어온 회사다운 노련미와 완성도가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본기에는 781~581 시리즈로 이어온 많은 기술적 성과가 고스란히 이양되어 있다. 절대로 가격적인 면을 고려해서 대충 만들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채용하면서 오히려 더 발전시킨 부분도 있다. 이런 최신 성과를 생각하면, 전작과 확실히 차별화되는 음질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선 지적할 것인 와디아의 트레이드마크인 스위프트 커런트(Swift Current) 방식이다. 이번에 버전 3를 채용해서, 그 높은 퀄리티를 자랑하고 있다. 이 기술의 핵심은 전류를 전압으로 바꿔주는 방법에 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이즈와 왜곡을 대폭 절감한 것이다. 한데 흥미로운 것은, 이런 기술적 배경에는 와디아에 대참사를 가져다 준 DAC 파워의 개발이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본격적인 앰프를 제작하면서 얻은 노하우가 결국 이렇게 발전적으로 본기에 채용된 것이다..

전류를 전압으로 바꾸는 기술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그리 간단치 않다. 원래 이 기술은 윌슨 커런트 미러(Wilson Current Mirror) 서킷에서 착상한 것으로, 전류를 전압으로 바꿈에 있어서 글로벌 피드백을 이용, 압도적인 직진성과 과도특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클래스 A의 방식으로 위상 교정 필터에 전달되면, 이것이 동시에 전압으로 변화하면서 원치 않은 고주파의 노이즈를 제거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861에 채용되었고, 이후 921을 거쳐 본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SC-3D(Superior Current to Discreet)라는 독자적인 기술이 개입한다. 이는 세 개의 독립된 데이터를 출력하는 방식으로, 각각 밸런스 및 언밸런스 단자로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참, 위에서 고주파 노이즈를 제거한다고 했는데, 이 부분 또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디지마스터(DigiMaster)라는 기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또한 와디아의 특허 기술로,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로 변환할 때 독자적인 알고리즘을 사용해서 24비트의 리졸루션을 이루고, 메가 헤르츠급의 초고속 듀얼 DSP 채용으로 정확성을 높이는 등 여러 고안이 이뤄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청 주파수 대역 밖의 고주파 노이즈를 적절히 제거, 음악을 감상할 때 일체 부자연스런 요소를 없애고 있다. 스위프트 커런트가 전기적인 부분에서 이런 노이즈에 대응하고 있다면, 디지마스터는 음성 신호 부분에 대응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본기의 기술적 성과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지터를 없애기 위한 독자적인 클로킹 방식을 추구한 결과, 클록 링크(Clock Link)라는 기술을 배양했기 때문이다. 이는 마스터 클록을 DAC 섹션에 놓되, 트랜스포트 서보 컨트롤 회로와 디지털 필터 및 DAC부 모두에 개입시켜서, 이 마스터 클록이 모든 과정을 체크하고, 조정하는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체의 지터를 허용하지 않는 와디아만의 기술력이 숨어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은 전원에 대한 부분이다. 일단 트랜스포트부를 보면 스위칭 전원을 채택하고 있지만, 통상보다 몇 배나 높은 0.5MHz급의 초고조파로 동작하게 해서 효율을 극단적으로 높였다. 그러면서 노이즈는 최대한 저감시켰으므로, 하이 파워~로우 노이즈라는 이상을 실현, 트랜스포트 구동시 일체의 소음이 들리지 않게 했다.

반면 DAC부는 별도의 인덕터를 사용해서 다중 레귤레이터 방식을 통해 강력한 전원부를 구축한 것이 큰 특징이다. 표면실장 서킷을 채용함으로써 부품간의 RF 신호 간섭을 피했고, 지터의 발생을 적극 차단시켰다. 무엇보다 완전히 실딩 처리된 토로이달 전원 트랜스를 밸런스로 구성한 후, 4개의 파워 서플라이를 구성한 점이 눈길을 끈다.

이는 각각 디지털 프로세싱, 클로킹, DA 컨버터 그리고 출력단에 독립적으로 공급되기 때문이다. 이런 풍부한 전원 공급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본 기를 구동하는지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아무튼 이렇게 전원부부터 클로킹, 디지마스터 등 다양한 기술이 투입된 결과, 뒷배경이 깨끗하고, 안길이와 폭이 넓은 입체적인 음을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본격적인 음악 시청을 위해 CD 플레이어 외에 별도의 DAC 기능도 있으므로 시청곡은 CD와 고음질 디지털 포맷을 같이 들어보았다.

-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루빈슈타인(p)

- 윈턴 켈리 "Whisper Not"

- 스테이시 켄트 "Under the Blanket of Blue"

-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4번 in D major KV 218 - Allegro(24bit/96kHz)

넓은 공간에서 대형기를 들을 때 진짜 소스의 실력이 판가름 난다. 좋은 기기일수록 공간을 꽉 채우기 때문이다. 일체 빈틈이 없다. 그런 면에서 본기가 들려주는 넓은 음장과 밀도가 높은 음에는 특필할 만한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 자연스러워서, 악기의 질감이나 오케스트라와 독주자의 콤비네이션 등이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다가온다. 개방적인 고역에 나긋나긋하게 펼쳐지는 현악기들, 그리고 여기에 가볍게 얹히는 유려하면서 정감 있는 피아노. 이 높은 품격은 와디아의 신기술이 이뤄낸 최대 성과라 할 만하다.

윈턴 켈리는 주로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아티스트다. 물론 죽은 지 한참 지났지만, 빌 에반스 못지않은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번 라인업으로 들으니, 새삼 일본의 재즈 클럽이 떠오른다. 진한 블랙커피에 에이징이 된 JBL 스피커에서 나오는 단아하면서 생동감 넘치는 음. 그러고 보니 많은 일본 재즈 클럽에서 CDP는 와디아를 쓰고 있다. 아마 본기도 그곳에서 큰 사랑을 받을 것 같다. 무엇보다 음의 표정이나 뉘앙스가 훨씬 풍부해서, 들으면 들을수록 새김이 깊고, 인상이 강렬하다. 윈턴이 표현하고자 하는 애수가 절실하게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스테이시의 발성은 그리 크지 않다. 걸진 음성도 아니다. 작고 따스하며 오밀조밀하다. 그런데 거기에 매력이 있다. 역시 뛰어난 해상도라는 측면에서 짚고 넘어갈 만한 부분이 많다. 이를테면 블루라고 할 때 B의 발음이 V와 확연히 구분된다는 점이나, 어쿠스틱 기타를 튕길 때 줄의 움직임이 보일 만큼 사실적이라던가, 아무튼 파고들면 들수록 그 높은 리졸루션에 감탄하게 되고, 이 모든 요소가 음악적인 밸런스로 빼어나게 다듬어진 부분 역시 칭찬할 만하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USB 케이블을 통해 24BIT/96kHz 풀스펙으로 걸자 과연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며, 와디아의 진가가 발휘된다. 오케스트라 복잡한 악기의 음이 전혀 엉킴 없이 하나씩 하나씩 정교하게 펼쳐진다. 마치 아날로그 음반을 듣는 것처럼 힘을 뺀 유연한 음이 너울거린다. 아날로그와 다른 점은 좀 더 깨끗한 배경이 펼쳐진다는 점이다. 이정도면 음의 따스함을 위해서 LP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란한 색채감이 인상적이다.

와디아 음을 사랑하는 애호가라면 381i를 적극 고려하여 보라고 권하고 싶다. 와디아만의 완성된 디지털 사운드에, 다양한 디지털 입출력을 지원하며 USB등을 통한 PC-Fi까지 가능한 편리한 인터페이스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를 창출하는 와디아의 노력이 앞으로도 계속 되기를 바래본다.

-llhtml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