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모르는 경이로움 PAD Purist Limited Edition Powercord

홈 > 이매거진 >

한계를 모르는 경이로움
PAD Purist Limited Edition Powercord

전원 코드라는 분야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아무래도 2000년대에 들어서인 것 같다. 물론 그 전에서 이쪽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고작 전원 코드 하나를 바꿔도 음이 변화하고 또 몰라보게 좋아진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요즘에는 스피커 케이블이나 인터커넥터 못지 않게 전원 코드의 중요성을 실감하는 중이다.

그러면 이 컴포넌트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별다른 손실 없이 전기 공급을 수행하는 것인데, 이게 간단치 않다. 무슨 음성 신호의 전달에 관여된 것이 아닌 만큼, 과연 얼마나 음에 영향을 끼칠까 의문이 되고 또 괜찮은 전원 장치 하나 있으면 굳이 비싼 전원 코드를 살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할 만하다.

그런데 한번 주위를 둘러보자. 얼마나 많은 EMI/RFI에 둘러싸여 있는지 깜짝 놀랄 것이다. 오디오를 모셔다 놓은 방 주변의 상황을 둘러보면 우선 컴퓨터가 보이고, 핸드폰, 아이패드 등도 눈에 띤다. 주방에 놓인 냉장고나 베란다의 세탁기, 거실의 진공 청소기, 에어콘은 또 어떤가? 또 오디오 기기 내에서 발생하는 각종 자기장과 잡신호 등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문제는 이런 EMI/RFI가 전원 코드를 통해 타고 들어와 음에 악영향을 준다는 데 있다. 사실 엄청나게 열악한 환경 속에 오디오 기기가 놓여있는 셈이다. 모든 것 다 버리고 허허벌판 한가운데 집 한 채 지어 달랑 오디오만 놓을 수 없는 일이라, 어떤 식으로든 이런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 양질의 파워 코드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에 소개할 PAD(Purist Audio Design)이라는 회사는, 사명에 “퓨어리스트”, 즉 순수주의자를 표방할 정도로 케이블에서 신호 전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회사다. 그러나 단순히 케이블 자체의 전송 능력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이런 외부 요인들도 철저히 따져서 그 근본부터 차단하겠다는 발상을 갖고 있는 점이 여타 회사들과 차별화된다.

창업자인 짐 오드(Jim Aud)라는 사람은 원래 전기 및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으며, 한때 원자력 발전소에 근무한 이력도 있다. 이 시기에 물리학이며 재료 과학 등을 다양하게 연구했다고 한다. 사실 오디오계에서 이렇게 전문적인 기술, 과학 공부를 한 인재가 드문 편이라, 그의 이력은 일단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짐 역시 일찍이 오디오에 취미가 있어서, 어릴 적부터 바꿈질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케이블의 중요성을 절감, 결국 1986년에 텍사스에서 창업하게 된다. 케이블의 존재감이 별로 부각되지 않는 시기에 창업한 셈이다. 현재 동사가 위치해 있는 지역은 클루트(Clute)라는 소도시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텍사스의 황량하고 거친 이미지와는 좀 다른 곳이다.

가까이 멕시코 만이 있고, 만 주변에는 서프 사이드 비치라고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해안이 길게 펼쳐져 있으며, 도시 자체에는 수목이 울창하다. 또 인근에 샌 버나드 및 브라조리아 내셔널 야생 동물 보호 지역이 있어서 얼마나 자연친화적인 곳인지 금세 짐작케 한다. 아마 이렇게 문명에 떼 묻지 않은 환경 자체를 오디오에서 구현하기 위해 PAD라는 케이블 회사를 차리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실제로 동사만큼 기초 과학 분야에 활발한 연구를 하는 메이커는 드물다. 아무래도 창업자가 일종의 과학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본다. 그러므로 이 회사에서 새롭게 개발한 기술들은 동종 업계의 표준이 되어 수많은 카피작을 탄생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동사가 히트시킨 기술 몇 가지를 이 기회에 간단히 소개하자. 우선 케이블에서 제일 먼저 관심을 갖게 되는 선재, 그러니까 컨덕터에 관한 것이다. 이들은 신호 전송의 중요성도 인정하지만, 외부의 간섭 역시 철저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자기장의 영향에 주목하는 바, 그래서 순은이니 순동이니 하는 심플한 소재로 사용한 선재에 큰 점수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알로이를 적극 활용해서 적절한 대응을 하고 있다. 바로 방자 처리 능력 때문이다.

실딩 역시 중요한 분야인데, 여기서 이들은 단순한 실딩에 그치지 않고, 역시 전기적인 악영향을 줄이는 쪽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그 결과 실리콘 성분을 주요 소재로 하는 일종의 유체 실딩을 발전시킨 바, 이를 “페록스 실딩”(FEROX Shielding)이라 부른다. 실제로 이를 근간으로 하는 콘테고(Contego)라는 기술을 완성시킨 바, 이때 콘테고는 라틴어로 덮다, 보호하다 등의 의미를 가진 뜻이라 한다.

크리요-멕(Cryo-Mag)이라는 기술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흔히 극저온 처리로 알려진 이 기술은 선재나 단자의 원자 구조에 일체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에너지 레벨을 극도로 낮춰서 여러 효과를 얻는 테크놀로지다. 이렇게 레벨 자체를 낮추면 원자 자체가 극성을 띠지 않게 된다. 이후 다시 에너지를 원상복귀 시키면 원하는 극성의 방향으로만 움직이게끔 해서 실제 음성 신호나 전기의 움직임을 원활하게 만든다. 요즘은 많은 회사들이 이 기술을 도입하고 있지만, PAD는 일종의 선구자 역할을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에 만난 리미티드 에디션 파워 코드는, PAD의 홈 페이지에 가면 25주년 기념작 다음에 위치한 제품군으로 소개되고 있다. 단, 현재까지 본 기 하나만 올라온 정도라 앞으로 어떤 제품이 나올지 알 수 없지만, 곧 주력 분야가 될 전망이다.

본 기의 가장 큰 특징이 일종의 하이브리드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간 PAD가 쌓아올린 각종 성과에다가 전원 컨디셔너의 기술을 접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사에서는 일종의 전원 컨디셔너로 S.S.P.C.(Single Point Power Conditioner)를 생산하고 있다. 이것은 단 하나의 파워 코드에 대응하는 장치로, 기다란 막대기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1GHz 이하의 신호를 외부 간섭에서 보호하는 데 큰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아마 추측컨대 여기서 쌓아올린 노하우를 접목해서 하나의 파워 코드를 완성시키지 않을까 싶다.

실제 본기의 외간을 보면 파워 선 중간에 일종의 막대기가 삽입되어 있다. 절대로 폼이 아니고, 그 안에 제대로 된 전원 컨디셔너 회로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자체는 패시브 방식으로 일단 전기가 유입되면 작동하는 바, 무엇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임피던스에서 누락되는 부분을 보상하는 역할을 한다. 주요 대역은 200KHz~1GHz 사이. 물론 우리의 가청 주파수 대역과는 상관이 없지만, 이 대역에서 발생하는 고주파의 개입이 실제 음에 얼마나 나쁘게 작용하는지는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또 이것은 전류를 전달할 때 방해되는 요소도 없애고, DC의 악영향이나 써멀 노이즈, 그러니까 열을 통해 발생하는 왜곡 등을 철저하게 낮춰서 풍부한 다이내믹스를 확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알루미늄 케이스에 밀봉되어 내용물이 철저히 보호되는 바, 그간 수많은 전원 코드를 봤어도 이런 형태는 처음이라 그저 놀랍기만 하다. 아울러 큰 기대를 갖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게 본기에 투입된 단자들이다. 모두 오야이데 제품으로 각각 M1과 F2이다. 전기적인 아이졸레이션이 뛰어나고 기계적 완성도도 높을 뿐 아니라 외부 진동에도 강해다. 알루미늄 알로이로 제작되어 자체 내구성도 뛰어나다. F1의 경우 벨릴륨 동으로 만들어진 접속 단자에 주목할 만한데, 매우 정밀하고 강하게 밀착하는 장점을 갖고 있다.

사실 다른 선재들과 달리 파워 코드는 전기에 대한 많은 지식을 요구한다. 또 자기장의 침범이나 EMI/RFI 등 외부 잡신호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다른 선재를 만들 때보다 더 골치가 아프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 만난 제품은 아예 전원 컨디셔너 장치까지 장착한 만큼, 물량 투입이나 완벽주의라는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리고 이런 접근법은 여지없이 음에 반영되어 한없이 순수하고, 투명한 음을 연출하고 있다. 국립 야생 동물 보호 구역에 흐르는 공기처럼 일체의 공해나 소음이 없는 음 그 자체라 할 만하다. 그 높은 경지에 찬사를 보낼 만하다.

참고로 본 기의 시청을 위해 B&W 802 다이아몬드 스피커에 다질 프리, 에어 MXR 파워 앰프를 연결했고, 소스는 린데만 825를 썼다. 주로 소스 및 프리 앰프에 연결해서 그 성능을 점검했다. 시청곡은 필자가 편집한 음반의 재즈 및 클래식 편에서 각각 발췌했으며, 그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야니네 얀센

-조수미 《도나 도나》

-오스카 피터슨 《YOU to Me Good Look》

-듀크 엘링턴 《MOOD Indigo》

우선 멘델스존을 들으면 정보량의 증가에 깜짝 놀라게 된다. 분명 음성 신호의 전달과는 무관한 파워 코드인데도 이토록 정보량 자체에 크게 관여하는지 의아할 정도다. 또 보다 스피디하게 정보를 처리하고, 대역도 훨씬 넓어진 점에 주목하게 된다. 물론 다이내믹스가 증가해 얀센 본연의 현란한 테크닉이 눈부시게 펼쳐질 뿐 아니라 배후의 오케스트라도 한결 스케일이 큰 음을 낸다.

조수미를 들으면 초동의 어쿠스틱 기타의 음이 보다 리얼하게 다가온다. 통 울림도 적절하고, 나일론 줄의 부드러움도 기분 좋게 다가온다. 조수미의 음성은 뱃심이나 섬세한 기교 등이 낱낱이 포착되어 현미경처럼 미세 관찰하는 것 같다. 역시 대단한 가수구나, 실감하게 된다. 중간에 나오는 클라리넷의 환각적 음색은 곡의 정취를 더욱 북돋는다.

오스카 피터슨의 곡은 우선 놀란 것이 초동에 탱탱 치는 트라이앵글의 강도다. 그 울림이 임팩트 있게 다가올 뿐 아니라, 세기까지 절묘하게 포착한다. 스네어를 두드리는 브러쉬의 미세한 손길이나 킥 드럼의 어택감도 좋고, 더블 베이스의 대역도 엄청 증가해 바닥을 쿵쿵 울릴 정도가 된다. 주역인 피아노의 아름다운 울림은 특필할 만하며, 클라이맥스로 치달을 때의 열기뿐 아니라 정보량 역시 대단하다.

마지막으로 듀크 엘링턴을 들으면, 녹음 당시의 히스 노이즈라던가 다소 거친 맛이 잘 살아있다. 이게 오히려 음악 감상의 즐거움을 더한다. 인트로에서 가볍게 치는 듀크의 피아노 연주는 더 없이 멜랑콜리하며, 혼 섹션의 은근한 맛이나 콜맨 호킨스의 호방한 느낌이 잘 살아 있어, 한때 좋았던 시절의 재즈를 만끽하게 된다. 고작 파워 코드 하나만 바꿨을 뿐인데도, 무슨 마술처럼 시스템 전체의 음이 확 변화하는 것은, 참, 원리는 알고 있어도 막상 들으면 마냥 경탄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