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첼리/BPO 브루크너 7번

2012년은 첼리비다케 탄생 100주년입니다. 스튜디오 녹음에 극도로 거부감을 가졌던 첼리이기에 실제

공연장에서 체험해 보기 전에는 이 지휘자가 풀어내는 독특한 음악을 느낄 기회를 가지기 어려웠습니다. 한국에서도 90년대 중반에 첼리비다케와 뮌헨필 내한공연 일정이 추진되면서 음악팬들의 뜨거운 관심이 모아지기도 했으나 결국 건강 악화로 무산되었고, 결국 1996년 첼리는 한국팬들에게 지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튜디오 녹음이 거의 없지만, 그의 실황 녹음이나 영상물이 조금씩 소개되고 있었는데, 2012년 들어 음악팬들 입장에서 메가톤급 소프트들이 발매되고 있습니다. Sony에서 1990년

일본 동경 산토리홀 공연 실황 두가지 (브루크너 7번과 8번)와 1991년 뮌헨에서의 브루크너 6번 실황

영상물, 그리고 1989년 비엔나 무지크페라인에서의 브루크너 4번 실황(CD)을 묶은 박스세트가 발매되었습니다. 연주는 뮌헨필입니다.
그리고 지금 소개하는 1992년 베를린필과의 콘서트..

젊은 시절 (2차대전 종료 직후) 첼리는 푸르트뱅글러와 함께 베를린필에서 활약했었습니다. 첼리가 베를린필 상임지휘자가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첼리는 일부 단원들의 적극적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일부 단원들에게는 강한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는 등, 직설적인 그의 성격때문에 결국 베를린필 상임의 꿈을 이루지 못했고, 그 자리는 카라얀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푸르트뱅글러가 카라얀을 싫어했기에, 만약 첼리가 좀 더 원만하고 사교적 처신을 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카라얀이 베를린필 상임에 취임한 이후 첼리는 베를린필과의 인연을 끊어버렸습니다. 이후 1989년 카라얀이 세상을 떠나고, 독일 통일,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베를린필 상임 취임 등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고, 독일 대통령의 간곡한 요청까지 가세하면서 1954년 이후 38년만인 1992년 베를린 샤우스필하우스에서 첼리의 베를린필 복귀 연주회가 열렸습니다. 당시 베를린필의 홈인 필하모니는 천장에서 석면이 떨어지는 문제로 보수 중이었습니다. 때문에 첼리의 복귀 콘서트가 필하모니에서 열리지 못했지만,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이라는 프로그램 특성을 감안하면 소리가 좀 더 부드럽고 잔향이 풍부한 샤우스필 공연도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첼리의 베를린필 브루크너 7번은 평소 다른 지휘자들에 비해 매우 느린 템포를 고수하는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더욱 극단적 해석입니다. 1악장에 27분 이상, 2악장에 30분 이상이 소요됩니다. 블루레이의 부록을

보면 리허설 장면이 나오는데 베를린필 단원들이 지휘자의 해석을 따라가기 매우 힘들어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첼리는 리허설에서 단원들에게 상당히 거북한 말을 자주 합니다. "당신들은 매우 잘 훈련된 연주자들이다..그러나.." 2바이올린 파트에 대해서 고성을 지르면서 질책합니다. 물론 호른 수석

하우프트만에 대해서는 "마에스트로!"라는 표현으로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 역사적 공연이 끝난 후 첼리는 베를린필의 수준이 저하되었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80세가 넘어서도 성격이 변하기는 어려운 모양입니다.

이 블루레이는 첼리의 열성팬들에게는 필수적인 아이템이 되겠지만,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의 해석으로는 자신있게 추천하기에 좀 망설여집니다. 바로 1악장의 극단적인 느린 템포때문입니다. 마치 슬로비디오를 보는 기분이며, 베를린필 단원들이 지휘자의 템포에 억지로 따라가는 느낌입니다. 물론 2악장의 경우 느린 템포가 충분히 설득력을 가지며, 첼리 특유의 브루크너 아다지오 표현의 정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를린필의 막강한 금관군이 지휘자의 해석에 날개를 달아줍니다.(2악장 악보를 보면 마디수가 불과 219개에 불과합니다. 이것을 30분 넘게 연주하니..음표 하나하나가 얼마나 진중하게 다루어지겠습니까? 특히 재현부에서 1바이올린이 6개 음으로 구성된 상승음형을 지속적으로 배경에 깔아주는 표현은..다른 어떤 음반에서도 체험하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3악장과 4악장도 괜찮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990년 동경실황의 1악장

템포가 좀 더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전반적으로 1990년 뮌헨필과의 동경실황이 일반적으로 추천가능한 연주로 판단됩니다. (1악장 말미에 지휘자의 괴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DVD이지만 음질은 대단한 수준입니다. 베를린필 블루레이는 홀의 특성을 반영한 부드러운 성향인데, 게인이 낮기 때문에 볼륨을 충분히 올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화질은 그다지 선명하지 못합니다.

베를린필의 악장은 스타브라바, 2바이올린 수석은 스타델만, 비올라 수석은 레자입니다. 바이올린쪽이 베테랑 연주자보다는 당시로는 상대적으로 젊은 연주자들이 나온 셈입니다. 플룻 수석은 죌러이며..오보에 수석에는 쇨렌베르거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트럼펫과 트럼본에 크레처, 괴슬링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아마도 첼리가 가장 기대를 많이 했을 호른 파트에 하우프트만 수석, 바그너 튜바에 자이페르트가 등장합니다. 사실 당시 금관 파트의 강력함은 현대의 어떤 오케스트라도 필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1악장       2악장      3악장     4악장

1989년 VPO Karajan           19:40       23:15      10:11      13:00

1990년 MPO Celi (동경)      24:20       27:25      11:35       13:50

1992년 BPO Celi                27:30       30:20      12:10       15:35

1999년 BPO Wand             20:53       21:53      10:25       13:11

2005년 LFO Abbado           19:27       20:47       9:32        12:48

2007년 BRSO Jansons      20:24        22:00      9:48        12:55

(첼리의 영상물은 실제 연주시간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