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아이스파워의 사용기에 대한 마무리를 지을까 한다.
지금은 아이스파워 모듈을 사용한 앰프가 상당히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다는 인상인데, 어찌되었든 그것은 국내 업체인 사운드포럼이나 오디오인드림에서의 동 모듈을 이용한 앰프의 제작이 합리적인 가격선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동안 정말이지 나름대로는 많은 스피커들을 이 앰프와 매칭해 보았고, 개인적인 오디오 생활에 있어서 이 앰프만큼 많은 스피커들과 만나게 해줘 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본인도 이 모듈을 이용한 앰프에 애착이 많다는 것으로 이해를 해주주시면 고맙겠다.
각설하고, 결론적으로 화두를 던져보자면, 이 앰프가 가진 최대의 장점은 바로 ‘구동력’이다. 아주 슬림한 사이즈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출력과 댐핑능력 제공이 최대의 장점이란 말이다. 하지만, 이 ‘구동력’에의 매력은 때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을 뜻하기도 한다. ‘구동력’을 얻고, 아이스파워에서 우리가 잃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이런 선문답같은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자명한 답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우선 국내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세 종류의 아이스파워의 성격에 대해 정리해 본다.
1. 제프롤랜드 501
하이엔드적인 만듦새, 공진이 거의 없는 견고한 몸체, 간결한 회로 구성을 특징으로 한다.
고역은 개방적이기 보다 다소 닫혀 있는 쪽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역의 끝이 쭉 뻗기보다 다소 몽글몽글한 느낌의 소리(제프롤랜드 앰프들의 소리가 묻어난다).
아주 담백한 색깔들을 사용한 수채화같은 음을 지녔다.
2. 사운드포럼 K2
사포의 아이스파워는 문도르프 컨덴서들의 소리가 거의 지배적이지 않나 하고 생각해본다.
세 종류의 아이스파워 가운데 고역이 가장 개방되어 있어 아주 쌉쌀한 느낌이 난다. 제프와 달리 고역 또한 쭉 뻗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저역은 다소 풀어져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으며, 또한 저역의 양이 많다. 시스템에 따라서는 과도한 저역이 될수도 있고, 어떤 시스템에서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샷슈의 강성이나 만듦새는 다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게인이 다소 높게 설정되어 있어 프리앰프의 볼륨 컨트롤이 불편한 감도 없지 않으나 이 또한 출력 게인이 낮은 프리 사용시에는 장점일까?
아이스파워치고는 개성이 강한 음이라고 볼 수 있다.
3. 오디오인드림 파워앰프
공동제작이라는 편견을 떨쳐버릴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한 샷슈로 가공되어 있다.
고역은 제프롤랜드처럼 약간 닫혀 있는 쪽에 가깝다. 저역은 적당하다. 하지만 단자류가 다소 불만족스럽고, 개인적인 견해로 지지대인 스파이크는 그리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고강성의 샷슈에 부드러운 재질의 지지대를 채용한 제프롤랜드의 고민을 나름대로 생각해보아야 할 듯.
전면 아크릴에 새겨진 앰프의 이름이 스텔스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로 그리 써놓았는지 의문이다.
위 순번은 가격 순서대로이기도 하다.
4. 매칭
(1) 다인오디오
다인오디오 스피커들과 아이스파워와의 매칭은 거의 실패로 끝났다. 물려본 스피커들은 다인오디오 템테이션, 25주년, 1.8mk2, 컨투어1 mk3였는데, 모두 다 만족스러운 소리를 내어주지 못하고 다소 경질의 울림이었으며 특히 저역이 대단히 부자연스러웠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구경이 작은 다인 우퍼들에 지나치게 오버댐핑이 걸리지 않는가 생각해본다. 아이스파워로 다인오디오를 울리다가 100와트급 몬순 정도의 진공관 파워앰프를 물려보면, 곧장 ‘아!’라고 탄성을 내지르며 아이스파워가 미워지기 시작한다. 세 스피커에 아이스파워를 물려보고 필자의 결론은 다인오디오와 아이스파워와의 매칭은 비추이다.
(2) JBL S9800
필자가 가장 감동적으로 들었던 아이스파워의 음이었다. JBL 15인치 드라이버를 완벽하게 다루어 내면서 밑바닥까지 완전히 긁어내리는 듯한 저역, 특히 대편성 오케스트라 곡에서는 JBL에서 내어주는 오디오적 쾌감의 극치를 맛볼 수 있게 해준다. 다른 장르의 음악도 고루 무난하게 울려주며, 취향에 따라 프리앰프를 결정하면 된다. 당시엔 의외로 마크레빈슨 프리와 매칭이 가장 훌륭했다. 26sl 프리앰프에 390sl 시디피 조합으로 들었던 길버트 카플란의 말러 교향곡 2번은 지금까지도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실로 엄청난 소리였다.
(3) B & W 시그너처800
JBL에서의 감동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훌륭한 음을 내어주는 조합이다. 다만 프리앰프에 따라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는데, 색이 진하고 아주 농후한 음색을 자랑하는 진공관 프리앰프와의 매칭을 권장한다. 그렇지 않고 일반적인 티알 프리앰프를 물리면 음의 색깔이 지나치게 투명해져서 정말 맹물같은 사운드가 되어버린다. 저역은 역시 아주 우수하다고 말할 수 있다. 케이블링시에도 질감 위주의 케이블들로 튜닝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중립적인 발란스이거나 투명한 스타일의 케이블들로는 그리 편한 마음으로 음악감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단히 투명한 음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최선일 수도 있을 것이다.
(4) 아발론 오시리스
후배의 작업장에서 정말 오래도록 들어본 조합. 제프 501 하나로 트라이와이어링을 시도했을 때, 엄청난 음을 들을 수 있었다. 여기 모듈을 추가하여 바이앰핑도 구사해보았는데... 그 때 들은 음에 대한 충격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고역이 어떠하느니, 저역이 어떠하느니 말이 필요없는 소리가 스피커로부터 흘러나온다. 스피커의 지배력이 강하기 때문인지 수준급의 프리를 걸어주면 모두다 타당한 소리를 내어준다. 테스트 당시의 프리앰프는 제프롤랜드 코히어런스였다.
(5) 토템 마니2
다인오디오 스피커들과 비슷한 결과였다. 차라리 200~400와트급 일반 TR 파워들과의 매칭이 더 훌륭한 소리를 내어주었다. 권장하고 싶지 않다.
(6) 윌슨 오디오 와트퍼피 시스템6
마크 소스기와 함께 사용했을 때 상당히 음악적인 소리를 내주었던 조합. 와트퍼피라고 하면 ‘음악성’보다는 ‘오디오적 쾌감’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지만... 개인적인 견해로 6만큼은 잘 울리면 음악적인 소리를 내어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7은 운용해보지 않아 모르겠다) 와트퍼피를 완벽한게 드라이빙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오디오 파일은 상당기간 대단히 즐거울 것이다.
(7) MBL 무지향성 스피커
필자가 운용해보지는 않고, 필자와 아주 가까운 형님이 운용하는 시스템인데 모두 MBL 노블라인 세트이며, 파워앰프만 제프501과 사포K2로 바이앰핑 운용중이다. 전체적인 MBL시스템의 영향탓인지는 몰라도 대단히 차분한 경향의 사운드이며, 음의 대역 발란스, 음장 모두 만족스럽다. 본인의 귀에는 MBL 파워앰프 제짝보다도 아이스파워 조합이 더 나은 소리로 들렸다. 의외였다. 귀에 착착 감기는 맛이 있는 소리라고 생각되지는 않으나 극악무도한 음압을 갖고 있는 MBL 스피커의 바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만족스러운 매칭이다.
5. 결론
이 시스템들에 아이스파워를 물려보면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울리기 어려운 대형기 일수록 좋은 결과가 많다.
둘째, 음색이 아주 진한 진공관 프리앰프(빈티지 포함)와 매칭시 의외로 좋은 결과가 많다.
셋째, 파워코드의 영향을 많이 탄다.
넷째, 절대적으로 번인타임과 예열시간이 필요하다(항상 켜놓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섯째, 뒷단의 전원장치에 돈을 투자하면 가끔씩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대형기일수록 좋은 결과가 많았다는 것은 우퍼의 사이즈가 클수록이라는 말과 동일하게 생각해도 무방하다. 실제로 필자가 경험해본 스피커들 가운데에서는 우퍼의 사이즈가 클수록 놀라운 소리가 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음색이 진한 프리에 관한 이야기는 취향의 탓도 무시 못하니 다소 조심스럽다. 하지만, 이것은 아이스파워 자체가 그닥 강한 개성을 가진 음을 갖고 있지않다는 말로 생각해주셔도 무방하다. 필자가 가장 놀랬던 때는 빈티지 기기로 분류되는 노이만 프리앰프를 이 앰프에 물렸을 때다. 첫 음이 흘러나오는 순간 귀를 의심했으니까.
파워코드는 몇가지를 물리고 교체하다가 결국은 오디언스로 귀착하고 말았다. 파워코드쪽에 많은 금전을 지출할 수 없었던 것도 이유이긴 하나, PAD 도미누스 파워코드로 한동안 잘 듣다가 저역의 양에 대해 고민하던 중 퇴출시킨 후 그대로 오디언스에 정착해 버렸는데, 실제로 청감상으로도 오디언스가 본인의 귀에는 만족스러웠다.
뒷단의 전원장치는 차폐트랜스 등도 물려보았는데, PS오디오 P1000을 물려보고 깜짝 놀랐다. 실로 엄청나게 투명해지며, 다이나믹스의 폭도 확 넓어지는 느낌이다. 아이스파워 자체가 많은 전기를 요구하지 않아 P1000에 물려 사용시 대음량에서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음의 양감을 조금씩 늘리거나 고역을 누그러뜨리는 방향, 배경을 정숙하게 만드는 쪽에서는 차폐트랜스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으나 음장 측면에서는 그리 권장하고 싶지 않다.
6. 가능성
필자는 아직도 아이스파워에 대한 기대가 많다. 그 이유는 합리적인 가격에 강력한 구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정말이지 오디오파일들에게는 너무도 매력적인 그 이유 때문이다. 때로 이 파워앰프가 정말 대단한 것처럼 광고하는 경우도 보게되는데, 이것은 거의 그 사이즈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출력과 구동력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맞다. 모든 면에서 완벽할거라고 기대하면 실망할 일이 더 많다는 말이다.
실제로 아이스파워는 음색이나 질감의 측면에서는 진공관 파워앰프에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이엔드 파워앰프들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러한 단점들은 앰프 자체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컨덴서를 추가하여 음에 색을 칠하고 등등 튜닝방법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궁극적으로 아이스파워 모듈을 이용한 파워앰프는 스피커 매칭의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 단점을 어느 정도만이라도 커버할 수 있다면, 정말 합리적인 가격에 합리적으로 오디오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결국 아이스파워를 자신의 소리로 바꾸기 위해서는 앞단 소스기기와 프리앰프의 선정에 대단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또한 케이블링과 전원장치등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하여 본인이 의도하는 음의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아이스파워는 아이스파워일뿐이다. 몇가지 시도를 해본 후 이 파워앰프가 자신이 의도한 음으로 가져가지지 않는다고 판단된다면 미련없이 포기해야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지만, 날로 놀랍게 발전해가는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형태의 오디오 기기를 탐구해가는 것은 그 과정만으로도 즐겁지 아니한가. 본인은 앞으로도 이 아이스파워에 대해 즐거운 실험을 계속해 볼 계획이다.
-광주에서 김신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