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음원을 이용한 PCFI에 대한 소문이 여기저기서 들리면서 호기심이 생기긴 했으나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Linn의 Klimax DS로 재생하는 소리가 아날로그에 필적한다는 말을 듣고는 비로소 관심이 생겨 직접 들어보았습니다. 과연 좋았습니다. 이 정도면 최고의 아날로그와 견줄 만 했습니다. 그런데 가격이 많이 비싸더군요. 요즘 오디오 가격이 엄청난 인플레를 보이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비쌉니다. 단품 가격이 1000만원을 넘어가면 일단 심리적인 저항감이 생깁니다. 아마 구세대 오됴쟁이라 그런 모양입니다.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는 오디오장사는 이제 포기하고 재벌이나 준 재벌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으로 정책을 바꾼 것 같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음악을 좋아하는 젊은 친구들이 진입하기가 엄청 어려워지고 결국 하이엔드 오디오 시장은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뭏튼 Linn의 Klimax DS는 좋기는 했으나 사고 싶은 생각이 전혀 안드는 가격이라 일단 제외하고 다른 것은 없나 살펴 보았습니다. 네트워크플레이어가 아닌 USB나 Firewire을 사용하는 DAC이 다수 있더군요. 대부분 Amara를 설치한 맥에 연결해 사용해야 성능을 보장한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걸림돌이 나타났습니다. 집에 PC가 몇 대나 굴러다니는데 또 맥을 사야 하나. 음원재생만을 위해 맥을 사기에는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격이 꽤 하는 Amara 소프트웨어는 상용답지 않게 불안정하다는 소문도 들립니다. (마크레빈슨 31.5를 트랜스포트로 쓸 땐 별로 안 아까웠는데 맥에는 왜 인색??? 나도 모릅니다.)
PC를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보았읍니다. 몇 가지 플레이어가 있더군요. 윈도우즈 미디어 플레이어, foobar는 바로 탈락. J River도 탈락. 기대했던 foobar는 고역의 경질감이 심했고, J River는 투명하지 못했읍니다. 그러다 cplay를 발견했읍니다. cplay는 사운드 엔지니어들이 사용한 프로용 프로그램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극악한 유저인터페이스와 엄청나게 불편한 파일관리를 감수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성 있는 소리였습니다. 오디오 포럼의 자료를 조사해보니 분명 뭔가 있다는 느낌이 옵니다.
http://www.audioasylum.com/forums/pcaudio/messages/3/31286.html
http://www.audioasylum.com/forums/pcaudio/messages/2/27041.html
실제로 국내외에서 cplay와 CMP(cplay전용 shell)를 이용하는 음원재생전용 PC를 제작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PC에 ASIO 2.0을 지원하는 DAC을 설치하고 윈도우 XP를 OS로 한 뒤 cplay와 CMP에 윈도우 XP를 최적화시키는 과정을 거친 후 PC를 디지털 음원 재생용 트랜스포트로만 작동하게 하는데 목적을 둡니다 (Cplay는 ASIO만 지원합니다. ASIO가 안되면 cplay를 작동시킬수 없읍니다. ASIO를 지원하지 않는 DAC는 가상ASIO(ASIOfolALL)를 사용할 수 있으나 소리가 별로라고 합니다. 완전한 BitPerfect전송이 되니 안되니 하는 의견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최적화된 조건에서 CMP를 동작시키면 고가의 하이엔드 트랜스포트에 버금가는 소리를 내준다는 주장이 있고 실제 그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사용의견들이 다수 발견됩니다.
그렇다면 밑져야 본전이니 일단 집에 있는 PC 한 대를 가지고 시도해 보기로 했읍니다. 문제는 ASIO 2.0을 지원하는 DAC이 없다는 것. 여기저기 판매처에 문의해보았더니 대부분이 ASIO가 뭡니까? 라는 답변이 되돌아옵니다. 린데만, 뮤질랜드, Calyx의 DAC이 ASIO2.0을 지원할 듯했으나 확인된 것은 뮤질랜드와 Calyx DAC 뿐입니다.
그 와중에 Calyx DAC의 제작자가 Calyx DAC을 일주일 빌려주겠다고 제의해왔읍니다. 평소 친분이 있는 사이기는 했지만 선뜻 빌려준다는 제의는 그 의도가 상당히 의심스러웠습니다. 성능에 자신감이 없다면 쉽게 빌려줄 리가 없을 테고...... 좋으면 살 생각인데 하필이면 3개중에 제일 비싼 놈이라니....
윈도우 XP를 10번쯤 새로 깔고 부팅을 50번정도 하고 숱한 삽질과 시행착오를 격고 난 뒤 cplay와 CMP에 최적화된 XP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수면부족과 과다한 카페인섭취는 그 과정의 산물로 며칠 고생을 예고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혹시? 아니면 역시? 하는 심정으로 음악을 틀었습니다.
기존의 시디를 이용한 디지털재생음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고역의 딱딱함입니다. 고역의 특정대역에 에너지가 몰려 경질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추정합니다. 물론 스펙상으로야 가청주파대 한참 위까지 리니어하게 재생한다고 주장합니다만 들어보면 귀에서 걸립니다. 이런 고역의 경질감은 바로크 바이올린이나 금관악기가 들어간 음악을 재생할 때 특히 문제를 일으킵니다. Manze, Biondi, Melkus는 시디로 듣는 걸 포기해야 합니다. 브란덴부르그 1번도 듣기 힘든 소리가 됩니다. 고역특성이 좋은 시디피도 있는데 그럴 경우, 배경이 투명하지 않거나, 밀도감과 색채감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읍니다. LP로는 그리 어렵지 않게 만들어낼 수 있는 소리가 시디피에서는 힘든 이유는 지터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기계적 회전을 모두 배제하고 메모리에 음원을 로드하여 재생시키는 cPlay의 재생방법은 아주 이상적이라고 생각됩니다.(foobar에서도 음원을 메모리에 마운트하여 재생시키는 옵션이 있습니다. 소리가 조금 긍정적으로 바뀝니다.) XP의 불필요한 서비스와 프로세스를 모두 제거하여 최적화시키고 CPU가 cPlay의 재생만 전담하게 하는 CMP의 작동방식도 지터를 최소화 한다는 목적에서 보면 수긍이 갑니다. 그렇다면 cPlay+CMP에 최적화된 XP를 OS로 사용하고 ASIO2.0으로 연결된 Calyx DAC이 만드는 소리는?
일단 그냥 들었습니다. 판단을 유보하고 평소 즐겨듣던(아니 듣고 싶었지만 소리가 맘에 안들어 잘 듣지 않던)시디를 리핑하여 편안히 감상했습니다. 하루정도 이것 저것 들은 다음에 다시 기존의 시디피를 이용해 동일한 음원들을 재생해 보았습니다. 결론이 바로 납니다. 소리가 좋아지는 것에는 크게 감흥이 없어도 나빠지면 귀는 크리티컬하게 반응합니다.
고역의 경질감이 많이(거의) 사라졌읍니다. Airy한 고역입니다. 바로크 바이올린과 금관의 재생에서 거슬리는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해상도가 증가하고 음상이 위치가 잘 드러납니다. 앞 뒤로 깊은 레이어가 나타납니다. 다이나믹스의 향상이 있습니다. 반응이 빨라져 스피디한 소리가 납니다(앰프가 골드문드 비수무리하게 소리를 내서 신기했습니다). 좌우의 폭은 그리 향상이 없습니다. 소리의 결은 조금 거친맛이 있지만 음악의 집중도를 방해할 정도는 아닙니다. 소리의 밀도감과 색채감은 아쉽게도 LP를 따라오진 못하지만 기본은 합니다. Bloom하는 맛도 약합니다. 그러나 몇 칠동안 고생한 것을 충분히 보상해주는 소리입니다.
내킨 김에 맥+Amara와 비교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친구를 살살꼬셔서 Amara가 설치된 맥을 들고 오게 했습니다.(이전에 하이파이클럽에 들러 Calyx DAC 와 린데만 DAC을 비교해서 맥으로 들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몇 가지 문제가 있어 제대로 비교해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맥+Amara가 돈 값을 했습니다. 무대가 좌우로 더 넓고 고역이 더 매끄러웠습니다. 더 안정적으로 동작했습니다. 그러나 cplay+CMP가 더 배경이 투명하고 사실적인 질감을 나타낸다고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아마라가 화장빨이 좀 있는 거 같다고 주장했지만 맥주인은 절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상대적으로 맥+Amara가 좀더 warm한 소리를 만들었습니다. 비교시청중에도 CMP는 수시로 에러메시지를 날리면서 먹통이 되었읍니다. 안정성면에서는 맥을 이길 수가 없었읍니다. 하지만 Amara도 두어번 먹통이 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CMP는 공짜프로그램이라 용서해줄 수 있지만 상용프로그램이 저러면 안됩니다.
cPlay+CMP+XP최적화된 PC는 맥+Amara의 90프로정도의 성능을 보여준다고 결론내렸습니다.(맥주인은 80프로라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공짜프로그램으로 이정도면 훌륭한 결과입니다. (CMP의 불안정성은 ASIO 드라이버의 latency재설정으로 해결되었읍니다. 너무 과격한 설정이 원인이었으며, 여유로운 설정으로 바꾸자 안정적으로 동작하였습니다.)
Calyx DAC을 돌려보낼 날이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팅된 시스템을 허물고 싶지 않았읍니다. 불안정성이 가득한 phase plane에서 우연하게 발견한 local stable point. 조금만 pertubation이 가해지면 그냥 무너져버릴지도 몰라. 오디오하다 보면 아주 간혹 경험하게 되는 일입니다. 여기서 한 개라도 손대면 다시 이 소리를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상황. Calyx DAC의 제작자는 아는 사이라고 물건을 싸게 주거나 하는 일이 없는 성격의 소유자라 Calyx DAC를 사러 샵으로 나갔읍니다. 처음 Calyx DAC을 대여받을 때의 불길한 예감이 적중한 셈입니다. 대리점이 두 군데 뿐이라 별 고민없이 서초동 금강전자로 가서 흰둥이 Calyx DAC을 사왔읍니다. 신품을 박스에서 꺼내보긴 정말 오랜만입니다.
검둥이가 대여받은 놈이고 흰둥이가 새로 사온 놈입니다.
검둥이는 잠재적인 Radiation source위에 얹혀있어 향후 성능하락이 있을지도 모르겠읍니다. 돌려 보낼거니 난 모릅니다.
서초동 금강전자에 설치된 Calyx DAC은 제소리의 50프로도 못내고 있었습니다. 제대로 된 cplay세팅을 해주고 싶었는데 PC의 사양이 떨어져서 ASIO2.0 드라이버의 Latency세팅도 힘들었습니다. 시간도 부족했고 최적화용 소프트웨어 툴도 안가져갔고. 나름 노력했지만 단순히 cPlay만 동작하게 하는데 그쳤습니다. 제대로 세팅해서 다인 컨피던스를 울려보고 싶었는데 아쉽습니다.
제가 테스트한 시스템은 윈도우 XP가 설치된 PC에서 cPlay와 CMP에 맞게 XP를 최적화하고 USB를 통해 Calyx DAC으로 디지털신호를 전달합니다. 여기서 Calyx DAC을 다른 DAC으로 바꾸면 소리가 어떻게 변할지는 실험해보지 않았습니다.(저가형 DAC 두 종류는 해보았읍니다만 바로 빼버렸습니다.)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이 린데만 DAC이었고 배터리 전원장치도 테스트해보고 싶었지만 갑자기 전투 의욕이 사라졌읍니다. 당분간은 며칠동안의 고생에 대한 보상으로 편안히 음악을 듣고 싶습니다.
맥과 Amara를 사용하기에 경제적인 여유가 충분한 분이라면 그냥 맥과 Amara를 사용하는게 가장 편리합니다. 그러나 맥과 Amara에 돈쓰기가 아깝거나 그럴 돈이 있으면 술 사먹겠다는 분등은 이미 보유한 PC를 이용해 제가 한 시도를 해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하루정도는 투자해야 합니다. 시행착오도 좀 격고 공부도 좀 해야하지만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현재는 조금 더 궁리를 해서 PC에 멀티부팅이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부팅초기에 cPlay와 CMP에 최적화된 XP(여기서는 cplay 재생외에 다른 작업은 거의 못합니다.)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OS로서의 XP(혹은 윈7) 둘 중하나를 선택해서 부팅이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음원관리가 아주 편리해집니다. 음악 안 들을 때의 PC활용도도 높아집니다.
비싸고 나쁜 오디오는 있어도 싸고 좋은 오디오는 없다. 이건 오됴쟁이의 불문율입니다. 그런데 싸더라도 사용자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좋은 오디오가 가능하기도 하더군요. PCFI에서는 가능한 일입니다.
혹 필요하신 분이 있다면 cPlay와 CMP의 설치와 설정, XP 최적화, 멀티부팅설정 등의 과정에 대한 설명을 메일로 보내 드리겠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