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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전쯤으로 기억한다. 당시 모 호텔에서 개최된 하이 파이 쇼에 참석했다가, 참으로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분명
쾅쾅 방안을 가득 채우는 음향인데, 눈을 씻고 둘러봐도 대형기는 보이지 않았다. 설마 하며 창가를 바라보니 조그마한 북셀프 스피커
한 세트가 눈에 들어왔다. 당시 나오고 있던 음악은 듀크 엘링턴의 빅 밴드 넘버. 각종 브라스의 현란한 블로잉에 기세 좋게 두드려대는
드럼의 어택감으로 잠시 멍할 정도였는데, 설마 하며 스피커 앞에 손을 갖다 댄 순간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대체 이 조그마한
놈이 뭘 먹었길래 이렇게 힘이 좋단 말인가.
결국 앞좌석에 앉아 1시간 가량 감상에 임하고 말았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음에 놀랐고, 그 사이즈에 놀랐지만, 역시 제일
놀란 것은 저 완벽한 해상도와 밸런스였다. 특히, 약간 음영이 드리운 듯, 이른바 북구의 겨울 하늘을 연상시키는 음산함이 조금은
배어 있는 음이 역으로 진득하고 질감이 풍부한 음악성으로 승화되는 모습은 가히 찬탄이 나오게 했다. 레이블을 보니 다인오디오.
당시로는 생소했지만, 워낙 인상이 강렬해 기억에 담아두기로 했다.
이후, 다인오디오의 소형 스피커군은 빠른 속도로 국내 애호가들을 잠식해갔고, 소형 스피커를 새롭게 이해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
조그마한 놈도 잘만 다루면 메인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발상의 전환이 아닐까 한다. 아무튼 그 때의 충격 때문인지,
개인적으로는 동사의 초대형 시스템보다는 오히려 소형 스피커에서 더한 감흥을 받았다. 특히, 크래프트라는 모델은 지금도 애호가들이
찾는 명기로 자리잡은 터라, 중고가도 높게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필자도 꼭 손에 넣고 싶은 제품이다. 아무튼 그런
다인오디오에서 엄청난 크기의 플래그쉽 모델에 전념하다 이번에 포커스 시리즈를 새롭게 기획했는데, 필자를 감동시킨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해서 여간 기쁜 게 아니다.
현재 다인오디오는 홈 오디오뿐 아니라, 프로페셔널, 카 오디오 등에서도 이름을 높이고 있다. 아무래도 유닛 메이커로 출발한
만큼, 여기서 갈고 닦은 노우 하우가 반영되고 있는데, 특히 카 오디오에서의 높은 평가는 특필할 만하다. 최근 다인오디오가 카
오디오쪽에서 주력하는 것은 이른바 에소텍(Esotec)이라 부르는 유닛이다. 이전과 비교할 때 훨씬 다이내믹 레인지가 넓어지고,
내구성이 강해진 제품이다. 이것을 포커스 시리즈로 이전하면서 다시 개량을 실시, 에소텍 플러스(Esotec +)라는 유닛으로
진화시켰다.
이 유닛의 특징은, 강하게 압축한 페라이트 자석을 더블로 사용한 점에 있다. 그 결과 어떤 악조건에서도 별 왜곡없이 작동하도록
되어 있다. 또 보이스 코일은 알루미늄을 사용했는데, 이 경우 발열이 좋아 온도 상승으로 인한 왜곡이 감쇄된다. 말하자면 항상
이상적인 온도에서 드라이버가 작동하도록 고안한 것이다.
다인오디오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기술은 MSP라는 것이다. 이것은 “Magnesium Silicate Polymer"의 약어인데,
자세한 내용은 나와있지 않지만, 콘의 다이어프램 생산에 쓰이는 기술이라 한다. 그리고 이 다이어프램은 다이캐스트된 알루미늄 바스켓에
담겨지는바, 공진이나 잡신호에 철저하게 대응하고 있다.
한편 본 기에 쓰인 트위터는 새롭게 탄생된 T380이라는 소프트 돔이다. 이것 역시 에소텍 플러스의 테크놀로지를 통해 배양된
유닛으로, 네오디뮴 자석을 사용해서 매우 응답이 빠르고, 레인지가 넓은 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렇게 보면, 포커스 시리즈는,
그 하위 기종으로 개발된 오디언스 시리즈와는 완전히 차별되는 내용이며, 상급기인 콘투어 시리즈에 비교해도 별로 뒤질 게 없는
스펙이라 하겠다.
필자는 몇 달전에 포커스 시리즈의 투웨이 북셀프 모델인 140을 듣고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10여 년전에 들었던
충격 못지 않은 음 조성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이 정도 스피커라면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적절한 인티 앰프와 단품 CDP를 연결해서
편하게 오디오 라이프를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오디오 잡지를 뒤적이거나 관련 사이트를 검색하다보면 눈이 휘둥그레
떠질 만한 몬스터급 제품들이 즐비한데, 문제는 공간과 주머니 사정 아니겠는가. ”푸어맨스 그랜드 슬램“이나 ”푸어맨스 엘 디아블로“
정도로 부를 만큼, 140의 음은 사이즈를 넘어서는 실력기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윗기종인 220을 듣게 되었으니, 이래저래
포커스 시리즈와는 인연이 있는 듯 하다.
사실 최근의 스피커 동향이 AV쪽을 무시할 수 없는지라, 포커스 시리즈 역시 홈 씨어터용을 염두에 둔 라인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 기가 프런트에 쓰인다면, 북셀프로는 140과 110이 있고, 센터로는 200C가 제공된다. 여기에 동사의 서브 우퍼만 잘
고른다면, 올-다인오디오 홈 씨어터 패키지가 구성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쓰면 오디오파일들에겐 다소 찬물을 끼얹는 이야기가
되겠지만, 절대 실망할 필요는 없다. 단품으로도 포커스 오디오의 제품들은 하이 파이용으로 충분하며, 특히 이번에 소개할 220은
웬만한 가정에서는 메인으로 사용해도 별 불만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기 때문이다.
사실 필자는 은근히 140이나 110에 관심이 많았는데, 220을 보면서 한 가지 의아한 생각을 가졌다. 어차피 같은 2웨이고,
단단한 스탠드를 통해 음을 만질 수 있다면 이런 어중간한 톨보이보다는 북셀프가 낫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시 음을
듣고는, 이쪽이 형님은 형님이구나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쓰인 미드 베이스쪽 유닛은 두 발. 고작 한 발의 차이지만,
여기서 재생되는 저역의 디테일이나 양감은 역시 모든 면에서 북셀프를 제압한다. 게다가 이렇게 저역이 자연스러워지면, 고역도 영향을
받게 되는바, 좀 더 윤곽이 분명해지고, 개방감이 더해지며, 이른바 에어리(airy) 하다고 표현하는 풍부한 디테일을 맛볼 수
있다.
여기서 잠깐 스피커 구성을 보면, 트위터는 T380이라는 소프트 돔 트위터고, 그 밑으로 두 발의 미드 베이스가 장착된다. 인클로저는
전면보다 뒷면이 약간 좁은데, 얼핏 보면 사격형인 것 같아도 약간의 경사를 둔 마름모꼴로 뒤쪽으로 갈수록 폭이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다. 뒷면은 다인오디오 특유의 고급 터미널을 장착한 싱글 와이어링인 가운데, 아랫쪽에 제법 큰 덕트가 나 있다. 프론트
배플 위쪽에 미드 베이스가 위치한 것을 감안하면 통 안의 하부에 적절한 통로를 만들어 자연스럽게 뒤쪽으로 저역을 빼는 구조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적절히 벽에 떨어트려 놓고 사용할 경우 매우 자연스런 저역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시청에선 비교적 타이트하게
토 인을 했는데, 음상이 안으로 모아지는 효과가 매우 좋았다. 어차피 좁은 방이나 거실에서 사용될 것을 전제로 한다면, 스파이크나
받침대의 선택 등에서 여러 변수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사용자의 노력이 필요한 대목이라 하겠다.
참고로 시청은 대출력을 자랑하는 분리형 파워보다는 현실적인 환경을 고려해 비교적 작은 룸에서 골드문트의 미메시스 330이라는
인티 앰프와 SRCD 3이라는 유니버설 플레이어를 동원했다. 미메시스 330은 골드문트가 자랑하는 잡 4 모듈과 잡 5 모듈을
적절히 섞은 잡 4.5을 사용한 가운데, 채널당 200W를 얻고 있다. 그러나 이 앰프는 양감보다는 빼어난 질감과 하이 스피드를
표방한 만큼, 본 기와는 매우 훌륭한 조합을 얻어내고 있다. 이를 보면 크렐, 마크 레빈슨, 제프 롤랜드 등에서 내놓은 인티
앰프와도 얼마든지 좋은 궁합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 가격대 제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앰프의 성격이나 특징을
곧잘 드러내므로, 자신이 겨냥하는 음을 오히려 앰프쪽에서 구한다면 훨씬 쉽게 전체적인 음색을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한편 SRCD
3은 CDP 전용이 아니라 DVD며 SACD 등에 모두 대응하는 만능형이다. 이번에는 CD음만 들었는데, SACD까지 시청했다면
좀 더 다이내믹하고, 레인지가 넓은 음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선 슈타케르가 연주한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를 듣는다. 농후하고, 질긴 맛의 첼로가 방 안 가득 피어오른다. 드르렁
드르렁 긁어대는 손길에서 강력한 카리스마가 느껴지고, 고역에서 저역에 이르는 밸런스가 빼어나 어디 하나 빈 구석이 없다. 개인적으로
오디오에서 중요한 것은 해상력보다 밸런스라고 생각하는데, 이 정도라면 굳이 흠 잡을 곳이 없다 하겠다. 첼로 특유의 남성적 매력이
허심탄회하게 다가와, 비교적 난해한 곡인데도 불구하고 음에 빨려들어간다.
게르기에프 지휘의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은, 편성도 복잡하고, 음의 높낮이도 시쳇말로 미친 년 널 뛰듯 경황이 없으며, 초저역부터
초고역에 이르기까지 레인지가 넓다. 그런데 이 2웨이는 비교적 정확하게 그 음을 그려낸다. 초반부의 잔잔한 움직임이 점차 활기를
띠고 여러 악기가 붙으면서 점차 클라이맥스로 몰아가는 대목이 정확하게 포착되어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각종 음향 효과와 메시지를
충분히 납득하게 된다. 특히, 저역에서의 박력은 두 발의 미드 베이스 유닛이 이뤄낸 성과라 하겠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는, 늦가을 보도 위에 낙엽이 떨어지는 듯한 스산한 이미지의
작품인데, 특히 뮤트 트럼펫이 만들어내는 고독함은 온 몸에 전율을 일으킬 정도다. 게다가 적당히 낡은 듯한 옛 녹음의 매력도
일품인데, 여기에서 바로 그런 분위기가 재현되고 있다 ! 일절 재주를 부리지 않고 소박하게 부는 마일스의 매력이 출중할뿐더러,
중간에 연주되는 갈랜드의 피아노 솔로 역시 맛깔스럽다. 과연 재즈 재생에서 압도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하겠다.
마지막으로 마델라인 페이루의 을 듣고는 그야말로 K.O. 당했다. 최신 녹음으로 전해지는 생생한 악기의
질감도 대단하지만, 페이루의 다소 노스탤직한 보컬이 주는 정서가 슬픔을 가득 물고 온다. 손을 뻗으면 만져질 것같이 양 스피커
중앙에 정렬한 그녀의 자태는 너무나 고혹적이어서 눈을 감으면 그녀가 노래하는 클럽에 온 듯하다. 중간에 박력있게 전개되는 해먼드
올갠과 일렉트릭 기타의 애드립까지 듣게 되면 그저 뿌듯하기만 하다. 풀 코스는 아니어도 꽤 잘 차려진 프렌치 코스 요리를 먹은
듯한 포만감이다. 역시 오랫동안 유닛을 만들어온 솜씨로 배양된, 그야말로 뛰어난 밸런스를 갖춘 스피커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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