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장인의 멋진 솜씨로 제작된 MFS의 매력
니트(Neat) 어쿠스틱스의 '니트'는 말쑥한, 청결한, 솜씨 좋은, 멋진 등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다. 이런 네이밍에 걸맞게 그 사운드 역시 사이즈에 걸맞지 않은 스케일과 밸런스, 해상력 등을 두루두루 갖추고 있는데, 이번에 소개할 MFS는 필자가 여러 번 평을 쓴 모델이기도 해서 특히 인연이 깊다 하겠다.
참고로 니트의 본사가 위치한 곳은 영국 북부의 티즈데일(Teesdale)이다. 인근에 이 동국이 뛰고 있는 미들즈브러가 있고, 그 위로 조진호의 입단이 불발된 뉴캐슬이 있다. 아무래도 런던 지역을 중심으로 한 잉글랜드의 구조상, 이 지역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인상이지만, 어디 영국의 역사와 전통이 하루아침에 이뤄졌을까? 이 지역의 문화적 배경과 깊이를 파고들면, 과연 영국이라 할 만큼 놀랍기만 하다.
여기서 니트의 두 주역인 밥 서저너(Bob Surgeoner)와 폴 라이더(Paul Ryder)에 대해 잠깐 소개할 필요가 있다. 둘 모두 기타를 중심으로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며, 특히 밥은 프로페셔널한 활동을 한 바 있다. 반면 폴은 레코딩 엔지니어로 풍부한 경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공통 관심사는, 실황에서 들은 음이 레코딩을 통해 집에서 재생하면 그 맛이나 재미가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어떻게 실황의 열기와 사운드를 리스닝 룸으로 가져오는가가 니트를 창업한 동기인 셈이다.
현재 니트의 본사에 가면, 별도의 레코딩 스튜디오가 있다. 그냥 폼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여기서 어쿠스틱 악기들을 중심으로 정기적인 레코딩이 이뤄진다. 바로 이런 경험이 니트의 제품에 반영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쓰면, 스튜디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여타의 회사들처럼 물리적인 스펙이나 파라미터에 의존하는, 다분히 스튜디오 지향의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라고 판단할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은 이와 정반대여서 놀랍다.
기본적으로 오디오를 구매하는 것은 음악을 즐기기 위해서다. 스피커 역시 음악적 감흥을 만끽하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많은 스피커 회사들이 파라미터나 측정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컴퓨터를 동원해 스펙에 맞는 형태로 설계하고 있다. 이 점이 니트가 보기엔 영 아니올시다인 것이다. 대신 숱한 리스닝 테스트를 하는데, 그 환경도 무음향실과 같은 공간이 아니라, 사옥 내에 꾸민 여러 형태의 룸에서 벌인다.
여기엔 이점이 많다. 특히 이런 환경에 과연 해당 스피커의 디자인이 어울리는가 검사까지 해서 부정적인 판단이 나오면 바로 접기도 한다. 철저하게 사용자의 환경을 중심으로 설계하자는 취지다. 물론 그렇다고 설계를 주먹구구식으로 하지는 않고, 기본적인 계측이나 시뮬레이션을 하면서도 여기에만 매달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태가 이렇다 보니, 스피커 제작에서 중요한 유닛의 경우, 철저하게 특주품을 이용한다. 이 특주된 유닛은 다른 회사에 절대로 판매될 수 없는 배타적 권리를 갖고 있으며, 더불어 크로스오버에 들어가는 몇몇 부품 역시 이런 형태로 제작된다. 또한 인클로저 제작 역시 외부에 맡기지 않고 순수 영국 장인들을 고용해서 하나하나 수공업 방식으로 이뤄진다. 인건비가 비싸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영국에서 이렇게 거의 인하우스(in-house) 개념으로 모든 제품의 A부터 Z까지 자사 공장 내에서 이뤄지는 스피커 메이커는 거의 없다. 그런 면에서 풍부한 음악적 배경과 장인 정신이 잘 어우러진 보기 드문 메이커가 아닐까 한다.
현재 니트에는 4가지 라인의 스피커가 생산되고 있다. 얼티메이텀, 클래식, 모티브, 모멘텀 등이 그 주인공인데, 이중 얼티메이텀이 제일 상위 라인이라 하겠다. 이번에 소개할 MFS는 이중 맨 하위 기종이고, 그 위로 MF5, MF7, MF9 등이 차례로 포진하고 있으며, 센터 스피커로 MFC가 별도로 존재한다. 비록 MFS는 북셀프 형태를 띤 얼티메이텀 시리즈의 막내라 하더라도, 여기에 투입된 기술과 노하우는 과연 음악을 사랑하고 아끼는 니트의 마음이 듬뿍 담겨 있어서, 그 테크니컬한 부분과 더불어 풍부한 음악성을 아울러 높이 평가해야 한다.
우선 MFS의 외관을 보면, 위아래에 트위터와 미드 베이스가 배치된 2웨이 형태를 띠고 있다. 통상의 2웨이 북셀프라고 판단할 만한 포름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인클로저의 마감이 독특하다. 옆면과 뒷면은 자작나무로 만들어진 데에 반해 앞면과 윗면의 재질이 독특하다. 폴리에틸렌이라는 소재를 가공한 것인데, 만져 보면 약간 까칠까칠한 질감이 느껴진다.
이 대목에서 왜 이런 소재를 썼을까 의문이 든다. 꼼꼼히 살펴보면, 유닛이 배열된 부분에 약간의 홈을 만들어서, 일종의 혼과 같은 형태를 띠게 했다. 또 트위터 쪽을 보면 바깥 부분이 좀 파여 있어 음향적인 고려가 있음을 알게 된다. 즉, 성형이 자유롭기에 이런 소재를 사용한 것이다. 덧붙여 트위터 주변에 스펀지 같은 것을 붙였는데, 이는 벽에 반사되어 다시 스피커로 돌아오는 2차 반사음을 충분히 흡수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유닛 배열을 보면 깜짝 놀라게 된다. 우선 168미리 구경의 미드 베이스를 보면, 안에 똑같은 유닛이 하나 더 장착되어 있다. 일종의 아이소배릭(isobaric) 구조를 이룬 것이다. 이럴 경우, 한 발에서 나오는 것보다 훨씬 풍부한 저역을 재생하게 된다. 당연히 인클로저 내부도 복잡한 형태로 제작되어, 니트가 상당한 기술력을 갖춘 회사임을 짐작케 한다.
한편 트위터는 티타늄 계열의 소재를 사용했는데, 일종의 돔 타입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고역이 끝나는 게 아니고, 인클로저 상단에 EMIT 방식의 리본 트위터가 두 발 더 장착되어 있다. 리본 트위터? 그렇다. 일종의 슈퍼 트위터라고 보면 된다. 즉, 기본은 2웨이 형상이지만, 저역을 아이소배릭 형태로 해서 더 풍부하게 하고, 슈퍼 트위터를 달아 고역 쪽의 에너지와 스케일을 확장시킨 것이다.
사실 처음 이 스피커를 대면했을 때, 발상은 놀랍지만 이렇게 배치한 유닛들이 과연 제구실을 할까 싶었다. 특히, 북셀프 스피커에서 얻을 수 있는 풍부한 음장이나 정확한 타임 코히어런스와 같은 부분에서 얼마나 쫓아올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음을 들어보고는 다시 놀라고 말았다. 단, MFS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선 조건이 하나 있다. 스피커 핸들링이 뛰어난 파워 앰프가 필수라는 것이다.
물론 어떤 스피커든 양질의 파워 앰프를 물리면 소리가 잘 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MFS의 경우, 이렇게 쓰는 이유는 다른 북셀프처럼 일정하게 레벨이 올라가면 그 이후로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는 것과는 달리, 정말 어디까지가 이 스피커의 본령일까 의심스러울 만큼 끝도 없이 능력이 확장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경이적일 정도다. 따라서 적당한 인티에 물려 본기를 사용하고자 한다면, 제 실력의 반도 못 쓴다고 감히 단언하겠다.
실은 이전에 MFS와 여러 개의 파워 앰프를 물린 경험이 있다. 그중 제일 인상이 좋았던 파워 앰프는 램의 M 1.2 레퍼런스다. 순 A 클래스로 8옴에 110W를 재생하는 이 괴물은, 객관적인 출력의 서너 배는 족히 나옴직한 스피커 핸들링을 자랑한다. 이 앰프와 만났을 때의 MFS는, 작은 거인이라는 말도 부족할 정도로 저역과 고역이 끝도 없이 신장하며, 스케일이 엄청 커지고, 음의 밀도도 높아서 일체의 틈이 보이지 않았다. 만일 눈을 감고 이 조합을 듣는다면 상당한 대형기에서 재생되는 음이라 생각할 정도다. 바로 이게 MFS의 가공할 만한 잠재력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번에는 램이 없는 관계로, 방향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말하자면 MFS의 질감과 음악성을 풍부하게 드러내는 조합을 찾은 것이다. 그 결과 소스는 보우 테크놀로지의 ZZ-Eight 3rd Edition으로, 프리앰프는 다질로 고정한 채 파워 앰프는 다질의 파워와 코드의 SPM 1400E를 번갈아 가며 물렸다. 서로 개성이 다른 파워 앰프이므로, 그 결과는 자못 궁금하기만 하다. 참고로 시청 디스크는 다음과 같다.
-쇼팽 "Nocturne op. 32 No. 2" 예프게니 키신(p)
-바흐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D minor" 하이페츠 & 프리드먼
-Led Zeppelin "In the Evening"
-Paul McCartney & Wings "Band on the Run"
-비발디 "4계" 중 “봄” 제 1악장 장 영주 &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
우선 다질의 프리 파워 세트로 들었을 때, 다질 특유의 미음이 상쾌하게 리스닝 룸을 채우는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쇼팽의 피아노를 들어보면 키신의 타건에 힘이 실린 가운데 라이브를 펼치는 카네기 홀의 무대 사이즈가 짐작될 만큼 여운이 길고, 공명이 풍부하다. 하이페츠와 프리드먼이 펼치는 현란한 바이올린 연주는, 과연 이 곡이 바흐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정신이 없는데, 그 스피드는 F1 그랑프리를 연상시킬 정도다. 에너지도 발군이어서 한번 긁을 때마다 가슴이 벌렁벌렁 뛴다. 정말 대단한 스케일과 힘을 자랑한다.
한편 록에서의 강력한 파괴력도 언급할 만하다. 특히 초반의 복잡한 음향 효과가 두드러진 레드 제플린의 경우, 스피커 사이의 공간을 이리저리 오가는 퍼커션 효과음이라든가 안개가 피어오르듯 뭉실뭉실 떠도는 신디사이저는 매우 흥미롭다. 폴의 샤우트가 인상적인
다만, 다질의 파워가 100W라는 수치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의 스피커 핸들링 실력을 보여주기 때문에, MFS와 만나자 다소 힘으로 밀어붙이는 경향이 보인다. 그 예는 장영주의 연주에서 찾을 수 있는데, 평소 듣던 모범생적인 단아함과 차분함이 여기서는 강력한 에너지로 힘차게 보잉하는 모습으로 바뀌는 데에 놀랐다. 한 연주자의 실력이나 스타일이 이렇게 바뀔 수 있는가 연신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이어서 파워를 코드로 바꾸자 전체 사운드의 스타일이 일변해서, 코드 특유의 섬세하고 촉감이 좋은 음이 MFS의 성격을 놀랍도록 변화시킨다. 파워 앰프로 인해 이렇게 음의 경향이 바뀐 예는 흔치 않은데, 그만큼 MFS의 잠재력이 풍부하다는 증거다. 비발디의 경우, 얌전한 요조숙녀처럼 장영주가 변신하는가 하면, 키신 역시 매우 세밀한 표정으로 음 하나하나를 조탁하는 모습인데, 다소 여성적이다. 바흐도, 하이페츠의 개성이 죽는 대신, 전체적으로 악단과 솔로 연주자가 오밀조밀하게 앙상블을 주고받는 모습으로 바뀐다. 참, 착해진 하이페츠다.
한편 록으로 오면, 레드 제플린은 풍부한 스튜디오 음향 효과가 돋보이지만, 이 밴드가 갖고 있는 야성은 다소 순화되어, 일종의 실내악을 듣는 듯한 기분이 된다. 영국 왕실에 공연이라도 온 모습이라고 할까 ? 폴 역시 생기발랄하기는 하지만, 어딘지 점잖을 떠는 구석이 있어서 에너지 면에서는 약간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클래식을 중심으로 하는 애호가들에게 이 조합은 매우 추천할 만하다 하겠다.
이렇게 보면, 북셀프 타입이라고 해서 MFS를 절대 만만히 봐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무작정 출력을 높이거나 비싼 분리형을 매칭시켜도 큰 효과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순A급 앰프를 잘 물려야 제 실력이 발휘될 것으로 보이며, 힘이 좋은 진공관 파워도 고려해볼 만하다.
이래서 잘만 매칭하면, 사이즈를 짐작할 수 없는 대형기의 음이 술술 나오고, 음악성 또한 풍부해서 어떤 소스를 걸어도 질리지 않고 감상할 수 있다. 좁은 공간에서 북셀프밖에 쓸 수 없는 입장이라면, 이 스피커의 가치는 더욱 빛날 것이다.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해서 만든 스피커인 만큼, 갈고 다듬으면 보석처럼 빛이 날 제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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