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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하이엔드의 자존심 부메스터

부메스터, 하면 모르는 분이 없을 만큼 이 회사의 네임 밸류나 제품의 퀄리티에 대해선 익히 알려진 바 있다. 또 오래 전부터 우리 곁을 찾은 만큼 많은 분들이 사용 중이거나 혹은 사용해본 경험도 있다. 하지만 의외로 이 회사의 연혁이나 설계자에 대해 알려진 바가 적어서 궁금증을 가진 분들도 많다. 이번에 디터 부메스터(Dieter Burmeter)씨가 방문한 김에 정식으로 인터뷰를 하면서 여러 의문을 풀어보도록 하겠다.

참고로 부메스터(Burmester)를 영어식 발음으로 버메스터라 읽는 분들도 있는데, 창업자에게 이 부분을 물어보니, '부어메스터'라고 발음한다. 여기서 '어'는 아주 짧게 있는 듯 없는 듯 발음이 되므로, 통상 부메스터로 쓰는 편이 옳다고 생각되어, 이렇게 표기하기로 하겠다.

세계적인 오디오 회사의 오너이자 디자이너인 디터 부메스터씨는 의외로 붙임성도 좋고 친절해서 처음 만난 자리지만 마치 오래 전부터 익히 알고 지내온 느낌을 줬다. 알고 보니 예전에 한국 분과 결혼해서 12년간 산 적도 있다고 한다. 당시에는 냉장고에 늘 김치통이 있어서 집에 온 친구들이 우선 냉장고 문을 열어 김치부터 꺼내먹었다고 한다.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일 만큼 한국에 유달리 애정을 갖고 있는 부메스터씨와 인터뷰는, 그러므로 여러모로 유쾌했다.

인터뷰어 하이파이클럽
인터뷰이 디터 부메스터

우선 이렇게 직접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부메스터라는 브랜드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분도 있을 듯싶어 일단 본인 소개부터 간략하게 부탁합니다.

저는 1946년 오스트리아 위덴부르크라는 도시에서 출생했습니다. 모친이 오스트리아인이었지만, 부친이 독일인이었던 관계로 몇 달 후에 독일 함부르크 근처로 이사하게 됩니다. 오스트리아에서 살았던 시기는 불과 몇 달뿐이었죠. 이후 쭉 그곳에서 청년기를 보냈는데, 15살이 되던 무렵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집니다. 우선 음악을 좋아해서 기타를 치기 시작했고, 한편으로는 라디오와 TV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게 됩니다.

부메스터씨가 노련한 기타 연주자라고 알려졌는데, 이때 시작된 것이군요.

맞습니다. 당시 함부르크는 록과 같은 새로운 음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도시입니다. 초기 비틀즈가 이곳에 있는 에 자주 출현했던 것은 아시죠?

그럼요. 혹시 그때 비틀즈를 본 적이 있나요?

지미 헨드릭스는 몇 번 무대에서 봤습니다.

그래요?

60년대 중반 무렵, 지미는 꽤 알려진 뮤지션이었습니다. 저는 가끔 스타 클럽에 가던 터라, 입구에 들어서니 그의 노래 <Hey Joe>가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레코드를 크게 튼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커브를 돌아 무대가 보이는 곳에 가보니, 지미가 보였습니다. 지미 헨드릭스가 말이죠. 이후에도 몇 번 더 공연을 봤답니다.

대단하군요. 지미 헨드릭스를 직접 보다뇨.

잘 알겠지만, 지미는 독일에 자주 왔습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죽기 5일 전에 베를린에 와서 공연한 적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15살 무렵엔 비틀즈건 지미건 아예 없던 시기일 텐데, 어떤 음악을 연주했는지 궁금합니다.

초창기 록큰롤이죠. 버디 홀리, 척 베리, 엘비스 프레슬리…. 그러다 비틀즈며 스톤즈 등이 나오면서 흠뻑 이쪽 문화에 빠져들었습니다. 당시에 꽤 기타 실력이 있어서, 주말엔 꼭 클럽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그 돈으로 학비를 대고 또 오디오며 레코드를 사들였죠.

말만 들어도 흥분됩니다. 언제 따로 시간을 내서 이 부분을 자세히 들어보고 싶군요. 그럼 오디오쪽 이야기를 해볼까요?

앞서 말했듯이 15살 때부터 TV며 라디오를 손보고 또 공부하면서 점차 전자공학 쪽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학도 이쪽 계통을 전공했죠. 그 후 73년도에 독립해서 회사를 차렸습니다. 크게 두 가지 일을 했죠. 하나는 미국의 DEC(Digital Equipment Computers)라는 회사에 프로세싱 인터페이스 관련 일을 맡았고요, 또 하나는 의료용 기기에 관계된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디지털과 의료용 기기라…. 뭔가 부메스터의 제품들과 연결되는 느낌이 오는데요.

맞습니다. 디지털 쪽은 나중에 CDP나 DAC 관련 제품들을 만들 때 밑바탕이 되었고, 의료용 기기는 앰플리케이션과 관계된 만큼, 나중에 앰프 제작과도 연결이 되죠.

그런 일만 해도 얼마든지 연주 활동을 병행하면서 지낼 수 있었는데, 어떻게 오디오 쪽 일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하군요.

저는 연주로 많은 돈을 벌고 있었으므로, 대학 시절에 이미 남들이 부러워하는 하이엔드 제품을 쓰고 있었습니다. 쿼드의 진공관 앰프를 중심으로, 역시 쿼드의 ESL 57이란 정전형 스피커를 매칭한 가운데 재규어 턴테이블에 SME 212 톤암, 슈어 V15 카트리지 등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가끔 앰프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당시에는 진공관이 대세였으므로, 아무래도 험이라던가 소켓이라던가 손볼 데가 많았습니다.

이 부분을 직접 고치면서 관련 지식을 다양하게 습득했습니다. 실제로 만져보니 그리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의료용 기기를 제작한 경험을 살려 직접 회로를 설계하고, 고급 부품을 들여서 디테일이 풍부한 프리앰프를 직접 제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게 친구들 사이에 호평을 받았고 또 오디오 잡지도 높게 평가해줘서, 결국 1977년 베를린에서 부메스터를 설립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해를 기념해서 777이란 모델명을 붙였죠. 20대 정도 제작해서 판매한 기억이 나는군요.

부메스터의 설계 컨셉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이쪽 업계 최초로 풀 밸런스 회로를 채택한 것입니다. 그때가 1983년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방송국에서 밸런스 단자를 이용하기는 했지만, 내부까지 이런 설계를 도입한 적은 없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이런 시도를 해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이죠. 또 짧은 신호 경로를 추구하고, 그 과정에 일체의 커패시터가 작용하지 않게 한 점도, 입력된 신호의 순수성을 보존한다는 면에서 좋았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광대역을 추구한 점입니다. 보통 0Hz에서 수백 KHz까지 재생하니까요.

부메스터의 제품은 내구성이 좋기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맞습니다. 808 프리앰프를 볼까요? 이것은 1980년 8월에 만들어져서 이런 제목을 붙였는데, 기본적으로 마이너 체인지를 하면서 무려 30년간 제작되고 있습니다. 저희 제품은 모듈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므로, 만일 업그레이드를 한다면 해당 모듈만 교환하면 됩니다. 말하자면 1980년에 나온 제품을 구하더라도 모듈 교체를 통해 최신 모델로 만들 수 있는 것이죠.

이렇게 부메스터의 제품이 강한 내구성을 갖는 이유는 뭡니까?

DC 커플링 방식을 취해서 롤 오프가 없고, 광대역임에도 불구하고 일체의 페이스 쉬프트가 없으며, 파워 컨디셔너 쪽에 특허를 갖고 있는 만큼, 작동에 큰 무리가 없습니다. 또 최상의 부품을 선별해서 제작하니까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끄떡 없습니다.

부메스터는 소스부터 스피커까지 모두 제작하므로, 원 브랜드로 시스템을 꾸밀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의 장점이 있다면 뭘까요?

예를 들어 스피커를 봅시다. 내부 배선재를 보면, 저희가 제공하는 스피커 케이블과 같은 재질입니다. 이런 식으로 같은 재질을 사용한 부품들이 소스부터 스피커까지 모두 망라되므로, 전체 음에서 통일성을 느낄 수 있죠.

그렇다고는 하나, 부메스터씨의 이력에서 볼 수 있듯 CDP나 앰프 제조에서는 그 경력이 십분 이해되지만, 스피커 제조에 대해선 좀 부정적인 시각이 있을 수 있겠는데요.

스피커 디자인은 베른트 슈타크(Berndt Stark)라는 분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 분은 스피커 제조에 대한 책도 두어 권 쓸 정도로 권위자여서, 심지어 저의 라이벌 회사들도 이 책을 참고해서 스피커를 만들 정도입니다.

아하, 그럼 여태 가져왔던 오해가 해소됩니다. 언제 슈타크씨를 만나 스피커 제조에 대해 한 수 배워야겠군요. 그럼 현재 부메스터사의 직원이 얼마나 됩니까?

저희는 베를린 공장에서 PCB부터 스피커까지 모든 것을 자체 생산합니다. 그러므로 약 50명 정도의 인원이 일하고 있죠. 그 중 R&D 파트는 약 10명 정도 합니다.

새 모델이 만들어질 경우, 부메스터씨 혼자 튜닝을 합니까?

아닙니다. 5~7명 정도의 리스닝 테스트 전담반이 있어서, 이들이 모두 합의하기 전에는 절대로 생산하지 않습니다. 저도 그 팀의 일원일 뿐으로, 아무리 제가 주장한다고 해도 다른 이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제품화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제품 판별의 기준이 뭔가요? 결국 계측인가요?

그것은 약 50% 정도의 비중을 차지할 뿐입니다. 계측과 실제 청음했을 때의 결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그저 참고 사항에 불과할 뿐이죠. 계속 들어가면서 만족할 때까지 튜닝해야 합니다.

악기를 연주하면서 얻은 경험도 많을 텐데요.

그렇습니다. 이미 11살 때 진공관식 프리앰프를 제작한 터라, 기타용 앰프 제작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반 기타는 튜브가 좋습니다. 아무래도 오버 톤이나 여러 효과음을 내는데 유리합니다. 반면 베이스 기타는 솔리드 스테이트가 낫습니다. 댐핑이 좋아 타이트하면서 빠른 음을 낼 수 있으니까요.

최근에 카 오디오 사업에도 진출한 것으로 아는데요.

자동차용 제품은 무척 그레이드가 높아야 합니다. 거칠게 빠른 속도로 움직여도 음악을 듣는 데에 지장이 없어야 하니까요. 처음에는 부가티에서 나온 베이론에 장착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1001마력에 시속 400Km 이상의 속력을 낼 수 있는 괴물이죠. 그 후 포르쉐 그룹과 협력하게 되어 이 회사 최초의 4 도어 스포츠 살롱 파나메라에 탑재되었고, 올해부터는 카이엔에도 장착되었습니다.

이번에 방문한 목적 중에는 신제품 소개도 있는 듯한데, 간략하게 설명해주시죠.

저희 회사는 매년 2~3개의 신제품을 내놓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것은 우선 099라는 프리앰프입니다. 이 제품은 DAC가 장착되어, 다양한 디지털 제품의 퀄리티를 높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가의 DVD 플레이어나 셋톱 박스를 보면, 그 안의 DAC는 한심한 수준입니다. 다행히 이들 제품에 옵티컬 아웃단이 있으므로, 이를 활용해서 저희 제품의 높은 DAC 퀄리티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또 앞으로 뮤직 서버도 내놓을 예정인데, 큰 기대를 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제품에 크롬 패널을 많이 사용합니다. 무슨 이유라도 있는지요?

내구성 때문이죠. 예를 들어 이태리의 고급 가구를 봅시다. 대개 유리와 크롬을 사용해서 만듭니다. 바우하우스도 마찬가지죠. 30년 전 제품도 신품처럼 튼튼합니다. 이른바 클래식 카를 보면 역시 크롬을 많이 썼습니다. 저희 제품이 오랫동안 사용해도 노후가 더딘 이유중의 하나죠.

벌써 예순이 넘었는데도 참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여행도 많이 하고 또 새로운 프로젝트에서 과감히 도전하는 바탕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저는 제 인생이 참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음악을 연주하는 제 취미가 제일 큰 힘이죠. 저는 집에 스튜디오를 따로 만들어서 녹음도 하고, 작곡도 하고 또 연주도 하는 데에 크게 만족합니다. 그런 취미 덕에 무려 50년간 이쪽 업계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죠.

끝으로 한국 애호가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

저희 제품은 무려 53개국에 수출됩니다. 그러므로 아시아에도 자주 옵니다. 도쿄, 싱가폴, 타이완, 서울.... 그 중 서울은 8년 만에 방문했는데, 참 활력이 넘치고 또 많이 변해서 놀랐습니다. 예전에는 다분히 미국 지향적인 도시였는데, 지금 보니 이태리 레스토랑이며 독일 승용차 등 여러 면에서 유럽 지향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도시를 방문해보면 그런 변화에서 앞으로 방향을 읽곤 하는데, 아시아 중에는 타이완과 서울이 가장 힘이 있다고 느낍니다. 정말로 멋진 미래를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곳에 방문해서 좋고, 또 저희 제품을 애용하는 분들도 계셔서 더욱 기쁩니다.

말씀 참 고맙습니다. 다음에 또 기회를 만들어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죠.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