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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를 빛내는 찬란한 오디오 전통, 일렉트로콤파니에
이종학(Johnny Lee)

숨이 차고 다리가 덜덜 떨린다. 땀이 비 오듯 해서, 연신 안경을 벗고 눈가에 맺힌 습기를 제거해야 한다. 벌써 산에 오른 지 한 시간이 지났지만, 깎아지른 절벽과 돌길만 나올 뿐 미칼이 제시하는 바위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풀핏 록(Pulpit Rock)이라 불리는, 리세 피요르드 지역 최대의 명물은 과연 있기나 한 것인가. 대체 뭐가 그리 대단하기에 이토록 고생길에 내몬단 말인가? 그래, 지금 난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슬며시 부아가 났다.

생각해보면 등산을 해본 지 10년이 넘었다. 더구나 아테네에서 가볍게 발을 접질리는 바람에, 이런 험한 길을 오르는 데에는 무리가 많았다. 자칫 잘못했다간 그대로 추락하는 수도 있다.

침착하자. 잠시 숨을 고르고, 절벽 위에 있는 바위에 털썩 주저앉는다. 밑으로 커다란 호수가 장대하게 누워 있다. 눈이 부시도록 푸른 저 물은 그냥 들이켜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생각 같아서는 야호 소리치며 허공을 날아 호수에 풍덩 빠지고 싶지만, 여기는 헐리웃 블록버스터 촬영 현장이 아니므로, 군소리 말고 또 올라가야 한다. 갑자기 이 여행을 제의한 S 수입사의 A 사장이 더 없이 미워졌다. 저 인간의 달콤한 제의가 결국 이런 함정이었단 말인가?

뮌헨 오디오쇼 참관 차 유럽에 간 것을 기화로 이태리며 영국을 한참 돌 무렵, 난데 없이 메일이 왔다. 여차여차 해서 북구에 가게 되었는데, 오디오 회사 투어 겸 해서 합류해보지 않겠느냐... 그 리스트에는 노르웨이와 스웨덴이 포함되어 있었다.

물가 비싸기로는 그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두 나라를 이런 기회가 아니면 또 언제 방문하겠는가 싶어 덥석 미끼를 물었더니, 항공편이며 호텔 예약이며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오로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귀국 날짜를 연기시키는 것뿐이었다. 만일 이런 난코스가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다면, 절대로 응하지 않았을 제안이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후회막급이지만, 돌이킬 수는 없다.

그러고 보면 이번 산행을 주최한 미칼이라는 친구, 거의 슈퍼맨에 가깝다. 원래 워커홀릭으로 소문난 데다가 틈만 나면 요트다 등산이다 가만히 있지 않는다. 나이는 내 또래지만 체력으로 따지면 한 스무 살 정도는 더 젊어 보인다. 세계적인 오디오 회사를 운영하려면 결국 저런 열정과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단 말인가?

이때 A 사장이 걱정스러운 듯 다가왔다. 결국 자시만 미칼을 따라 갈 테니 나는 하산하는 게 좋겠다고 한다. 뭐, 나쁘지 않다. 전혀 억울하지도 않다. 그래도 푸핏 록의 모습은 보고 싶었으므로, 내 카메라를 그에게 맡겼다. 제대로, 멋있게 찍어주세요, 라는 당부와 함께.

이제 홀가분해졌으므로, 잠시 주위 풍경을 살펴봤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공기가 맑고 상쾌하다. 6월 초인데도 기온은 25도 정도. 그것도 그늘에 들어가면 에어컨을 쐬는 듯 시원하기만 하다.

이제는 여유를 갖고 천천히 밑으로 내려간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오는 이들은 내가 임무를 완수(?)한 줄 알고 가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그들의 해맑은 미소가 이 풍요로운 자연 환경보다 더 부럽다. 나도 손을 흔들어 화답한다.

이윽고 호숫가에 도착한다. 아무 할 일이 없으므로, 매점에서 아이스 커피를 사 들고 자리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 호수도 아무 말 없이 나를 지켜볼 뿐이다.

문득 시간이 정지한다. 공간도 그대로 얼어붙어 포즈 버튼을 누른 영상이 된다. 지나치게 크지도 또 작지도 않은 호수가 조금씩 마음에 다가오고, 그가 말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그렇다. 여기는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 나는 일렉트로콤파니에(이하 EC)를 취재하러 왔다가 여차여차 이곳까지 왔다. 그런데 참 오기를 잘했다. 산행을 포기한 대신 호수를 선택한 것도 너무나 좋았다. 가벼운 졸음까지 느껴진다. 이런 여유와 넉넉함. 멀리서 누가 재채기라도 하면 확연하게 들릴 정도의 적막함까지, 이곳의 풍경과 환경이 더없이 마음을 느긋하게 한다. 그리고 이런 곳에서 오디오를 만든다면 얼마나 꼼꼼하고 또 아름다운 제품을 만들지 조금은 상상이 된다.

사실 많은 오디오를 듣고 또 많은 디자이너를 만나면서 제일 보고 싶었던 것은 그들의 작업 환경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공장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사는 환경이나 역사 등을 알고 싶었다. 그러려면 가장 좋은 것이 직접 방문하는 것이다. 이처럼 산을 오르거나 오래된 유적을 살피는 것도 그 일환이다.

실제로 처음 방문한 스타방게르라는 도시는 노르웨이에서 서너 번째 크기에 해당하는 곳이지만, 한 시간 정도 중심지를 돌면 더 이상 볼 게 없는 작은 마을이다. 무려 이틀간 나는 혼자서 이 도시에서 지냈다. 무엇보다 물가에 놀랐는데, 조금 과장하면 프랑스나 독일과 같은 서유럽의 두 배쯤 된다. 편의점에서 작은 페트병에 든 물 하나가 6천원이고, 버거킹 세트가 2만원, 수제 햄버거가 4만원, 500CC 맥주 한 잔에 1만5천원... 우리나라가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 역으로 깨닫게 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곳의 인건비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아무리 소도시에 위치한 공장이라고 해도 기본 물가가 이 정도라면 월급을 얼마나 줘야 할지 감이 서지 않는다. 그런데도 EC의 제품은 그 퀄리티에 비해 가격이 착하다. 굳이 디자인이라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소박한 외관에 멋대가리 없는 검정색 일변도는 확실히 애호가들의 선호도와는 거리가 있기는 하다. 하나 일단 소리를 들어보면 생각이 바뀐다. 이보다 두 세 배 정도 돈을 더 줘도 줄 만한 퀄리티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번 방문은 바로 이런 의문을 해소하기 위함도 있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겠다. 위의 의문에 대해 대략 두 가지 정도의 답변이 있다. 이 나라는 약간 사회주의 성향이 있는 터라, 임금의 격차가 심하지 않다. 심하게 말하면 슈퍼마켓의 종업원과 이런 기업의 기술자가 받는 돈이 대동소이하다. 물론 책정된 금액은 다르지만 세율이 달라서 결국 받는 돈이 비슷한 것이다. 그 결과, 노르웨이의 엔지니어에게 지급되는 돈은 미국이나 일본보다 저렴하다고 한다.

또 하나는 어마어마한 설비 투자다. 즉, 초기 비용은 엄청나지만, 이후에는 큰 비용이 들지 않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이 부분은 팩토리 투어 부분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를 위해 미칼이 행한 개혁은 대단하다 하겠다.

물론 이런 투자가 오디오 부문만 보고 행해질 수는 없다. 알다시피 오디오 분야는 그리 전망이 밝지 않을뿐더러, 어느 정도의 수공업을 전제로 유지되고 있다. 오너가 어지간한 오디오파일이 아닌 다음에야, 이런 순수한 투자는 곧 파산을 의미한다.

그런데 미칼에 대해 말한다면, 최초로 구입한 오디오가 EC고, 다양한 악기를 연주한 적이 있는 데다가 전자 공학 엔지니어로서 쌓아 올린 경험이 있으므로, 40년이 가까운 EC를 혁신하는 데에는 더없이 적합한 인물이다.

무엇보다 그는 전자 제품의 다양한 소프트 및 하드웨어를 생산하는 웨스트 컨트롤(이하 WC)의 오너다. 10년이 넘게 이 기업을 유지하면서 오디오 분야와 어떻게 접목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므로, 2001년에 자연스럽게 EC와 결합한 지금의 형태를 완성한 것이다. 게다가 기존의 설계 팀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외부 인력과 제휴, 다채로운 신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그 부분에서 확실히 슈퍼맨 미칼의 역량이 돋보인다.

현재 EC의 본사는 타우라는 소도시에 위치하고 있다. 그곳에는 각종 R&D, 홍보, 제조 공장들이 들어차 있는데, 스피커 제조를 위해 별도의 건물을 짓는 중이었다. EC와 WC의 시설이 함께 있고, 업무상 분담도 분명하지만, 만일 어느 한쪽 일이 급할 경우엔 다른 쪽에서 충원하는 일도 가능하다고 한다.

“만일 A사장이 갑자기 앰프 100개를 주문하면, 우리는 WC의 직원들까지 동원해서 철야 작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미칼이 웃으며 하는 말이지만, 결코 허언은 아니리라. 실제로 회사 전체 직원은 약 80명이 넘고, 국적을 따지면 무려 14개국에서 왔다고 한다. 마침 직원 한 명이 아기를 출산해서 결근했는데, 그런 면에서 우리 일행의 방문 날짜는 일종의 길일이 아닐까 싶다.

EC의 건물은 외부에서 보기에도 상당히 장대하다. 한적한 시골에 필요한 장비와 인원이 마음껏 배치될 수 있는 규모며, 넉넉한 주차 공간까지 생각하면 이런 업종이 왜 이런 곳에 둥지를 트는지 금세 짐작이 간다.

미칼과 해외 영업을 총괄하는 조니를 따라 2층에 가니 오피스가 나온다. 이곳에는 미칼의 사무실뿐 아니라 각종 R&D를 담당하는 연구원들의 방이 따로 있으며, 전 직원이 점심을 먹는 식당도 함께 있다. 80명이 넘는 직원이 한 자리에 모여 식사한다는 일은 그리 흔치 않은 광경이지만, 간단한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하고는 바로 일자리에 복귀하는 모습은 뭔가 프로페셔널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알고 보니 이 회사 직원의 근무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약 7시간을 근무하는 셈인데, 그렇기 때문에 점심 시간까지 아껴가며 일에 몰두하다가 일찍 퇴근해서 개인 시간을 갖는 모습은 어딘지 참 보기 좋았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광경은 블루 레이 플레이어를 제작하는 모습이었다. 이미 시작품이 나온 단계로 최종 마무리 과정에 있는데, 이를 위해 EC는 상당한 모험을 감행했다.

대개 이런 제품은 원천 기술을 갖고 있는 대기업의 하드 및 소프트웨어를 가져와 개조하는 선에 그친다. 하지만 EC는 따로 프로그램을 제작해서 독자적인 제품을 생산하려고 한다. 리눅스를 바탕으로 한 소프트웨어에 풀 밸런스 사양이며 EC에서 배양된 전원 쪽 기술이 투입된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어찌 보면 무모해 보이지만, 영상뿐 아니라 만족스런 음질을 얻기 위해선 이런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과연 미칼이고 EC구나 잠시 탄복했다.

또 다른 연구실에선 DAC 관련 일을 보는 분을 만났다. 현재 EC가 준비하는 제품 중엔 와이어리스로 디지털 신호를 받아서 DAC 처리해서 음을 들을 수 있는 장치가 있다. 그 시작품이 현재 이 방에서 마무리 체크 중이었다.

3개의 코엑스 및 1개의 USB 입력단을 가진 제품으로 시험 삼아 잠시 음을 들어봤는데, 와이어리스라 믿을 수 없을 만큼 또렷한 소리에 잠깐 놀랐다. 리모컨으로 다음 트랙을 선정하거나 소스를 선택하는 일도 가능하다고 하니, 애호가가 할 일은 그저 소파에 파묻히는 것밖에 없을 것 같다.

이어서 미칼과 조니를 따라 본격적인 팩토리 투어가 시작되었다. 이를 위해 아래층에 내려갔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방대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다양한 공장 관련 시설이 눈에 들어왔는데, 물론 이중에는 WC 관련 장비도 많았다.

하긴 요즘에는 오디오 쪽만 갖고 이런 인원을 고용할 수는 없다. 이렇게 든든한 WC가 뒤에 버티고 있기 때문에 EC에 시너지 효과가 더해지지 않았나 싶었다.

EC를 방문하면서 가장 크게 놀란 것은, 엄청난 자본을 들여서 PC 보드를 자동화 기기로 생산하는 모습이었다. 사실 대개의 하이엔드 오디오 메이커들이 일일이 사람 손을 쓰거나 혹은 인근의 회사에 의뢰해서 이쪽을 해결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참 대단한 광경이었다. 이 역시 배후에 WC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고, 실제로 이런 기기들은 의료 장비나 다른 전자 제품의 기판을 OEM으로 생산하는 일도 한다고 한다.

우선 처음 본 것은 스피드 포인트 테크놀로지에서 나온 장비인 바, 이걸로 PC 보드의 기본적인 배선이 이뤄진다. 이를 위해 당연히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통제가 되는데, 전 공정을 단 두 명의 직원이 다룬다는 말을 듣고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자동화라는 것이 이런 면에서 참 유리하구나 싶었다.

이어서 본 것은 배선 처리된 기판 위에 부품을 부착하는 공정이다. 마이 데이터라는 회사의 제품을 사용해서 역시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정교하게 작은 콘덴서며 저항이 정확히 지정된 곳에 꽂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오픈 릴 테입인가 여겨졌던 플라스틱 줄에 각각의 부품이 달려 있고, 이를 하나씩 떼어내서 정확히 붙이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매우 섬세하고 까다로운 공정이다.

이렇게 배선 처리된 기판에 부품이 꽂히면 이어지는 것이 납땜 공정이다. 당연히 기계화가 이뤄진 바, ERSA사의 기기를 이용해서 이를 해결하고 있었다.

진공관 앰프 시절에는 트랜스 감는 것과 납땜 기술로 국력을 헤아리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빠른 속도로 납땜이 이뤄지는 모습을 보면 뭔가 허무하기도 하다. 그러나 정밀도나 완성도에서 얼마나 뛰어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지 추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완성된 기판은 차곡차곡 선적이 되는데, 이 또한 기계 공정에 의해 이뤄지고 있었다. 일렉트로 디자인사의 제품을 사용해서 완성된 기판들을 쌓은 후, 이를 컴퓨터를 통해 일일이 검사한다. 이때 동원되는 기기가 사이버 옵틱스. 검사대에 오기까지 여러 번의 체크를 거치고 각 공정마다 정확한 프로그램에 의해 컨트롤되었지만, 그래도 오차가 있을 수 있으므로 여기서 최종 검사가 이뤄지는 것이다.

참고로 담당자에 따르면 이 모든 공정을 이루는 라인이 현재 공장 내에 세 개나 있다고 한다. 그 중 하나는 구형이고, 두 개의 신형으로, 작업 속도에 있어서 조금 차이가 있단다. 공격적일 만큼 진취적인 미칼이 최근에 얼마나 의욕적으로 생산에 임하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심지어 그는 이 정도 설비면 가격 경쟁으로 중국과 싸워도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한다. 바로 그런 배짱이 EC의 명성을 지금도 이어가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기판이 완성되었다고 해도, 다시 한번 사람 손을 거쳐 마무리된다. 여기서 다시 납땜을 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데, 오디오처럼 부품의 배치나 납땜의 상태에 따라 미묘하게 퀄리티가 변하는 성격을 감안하면 충분히 상상이 가는 대목이다.

이후 준비된 새시에 제품이 담겨지고, 조립이 완성되면, 다시 한번 테스팅이 이뤄진다. 이전에는 기판만 체크한 데에 반해, 지금은 완성품으로서의 동작 시험이라 하겠다. 나는 오디오 중에 특히 파워 앰프의 스케일과 외관에 상당히 이끌리는 편인데, 이렇게 많은 제품이 한데 모인 모습을 보니 장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모든 완제품이 나왔다고 해서 공정이 종료된 것은 아니다. 이제 번인이 이뤄져야 한다. 이는 실제로 통전을 해서 어느 정도 에이징을 시킬 뿐 아니라 작동 중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사전에 예방한다는 의미도 있다. 이를 위해 EC에서 고안한 별도의 장치가 동원되는 바, 이를 통해 실제 사용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잔고장을 예방하고 있다.

자, 이렇게 번인까지 끝났다고 해서 바로 포장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축구에서 보면 최종 수비수가 마지막 위험 상황을 커트하듯, 여기에도 ‘라스트맨 스탠딩’이 있는 바, 오랜 현장 경험을 가진 노련한 직원이 이 부분을 커버하고 있다.

그는 제품 전반의 설계나 컨셉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 터라, 감각적으로 완성된 제품을 골라 다시 한번 체크한다. 그 꼼꼼함이나 경험에 대해선 두 말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이제 모든 견학을 마치고 2층에 있는 식당으로 가려는 찰나, 잠깐 미칼이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바로 전면 프런트 패널을 도장하는 곳으로, 이조차 외부 용역 없이 자체 해결하고 있는 데에 다시 한번 놀랐다.

숱한 테스팅과 체크로 제품을 완성할 뿐 아니라, 외관은 좀 아니올시다, 라고 여러 차례 글을 써온 내가 부끄러울 만큼, 디자인에도 이렇게 세심한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EC의 제품들은 창업 당시부터 일관된 폴리시를 갖고 제품 디자인을 하고 있다. 그런 부분이 낯설거나 어색하더라도 관용을 갖고 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

인터뷰

이제 견학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리스닝 룸에 가서 간단한 브리핑을 들었다. 그리고 인터뷰도 했는 바, 중간에 마케팅 담당 조니의 도움도 받았지만, 기본적으로는 미칼 드레게빅(Mikal Dreggevik)이 주가 된 터라 그를 중심으로 글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EC 하면 ‘TIM’이니, ‘FTT’하는 여러 신기술이 언급됩니다. 여기에 사연이 있다고 하는데 잠시 소개해주시죠.

그 이야기는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AES 컨퍼런스에서 마티 오탈라 박사가 제안한 TIM(Transit Intermodulation) 이론을 들은 스베인 에릭 뵈르야라는 분이 깊은 감동을 받고, 이를 막 EC를 창업한 얀 로스트로 박사에 제안하면서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이론을 현실화하는 데엔 무려 3년이 걸렸는데, 이때 에릭과 얀은 오탈라 박사의 조언을 많이 받았죠. 그 결과 76년에 25W짜리 스테레오 파워 앰프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게 당시 오디오계의 바이블이었던 『오디오 크리틱』 매거진에 소개되면서 주목을 끌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사운드’라는 찬사를 받았던 만큼, 전세계 애호가들의 관심을 끈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 후 FTT 기술 등을 확립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TIM과 FTT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시죠.

TIM은 통상 초단에 낮은 전류를 흘리는 전통적인 방식을 개선, 높은 전류를 흘려서 다이내믹스를 증가시키고, 저항을 줄이는 방법을 채택한 것입니다. 당연히 왜곡도 적어지고, 전기적인 안정도도 높아집니다. 또 FTT는 ‘Floating Transformer Technology’의 약자로, 일종의 파워 서플라이에 대한 기술입니다. 통상의 방식보다 파워 공급량이 두 배에 이를 정도로 성능이 뛰어납니다.

EC를 이끌었던 분들은 지금 대부분 은퇴 상태라 당신이 주재하는 EC와 아이덴티티 면에서 어떤 점이 공통되는지, 그 점이 궁금합니다.

저희는 창업자들뿐 아니라 기술진과도 계속 교류하고 있습니다. 새로 제품을 설계하면 때로는 그분들을 찾아서 조언을 얻기도 합니다. 제가 처음 산 제품이 EC이고, 그 소리에 매료되어 지금에 이른 만큼, 당연히 저도 아이덴티티 부분은 중요하게 여기고 있죠.

그럼 자신에 대해 잠깐 소개해주시죠.

저는 원래부터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악기도 여럿 다뤘죠. 당연히 오디오에 흥미를 가져 결국 EC를 구입하게 되었는데, 그 슬로건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스터 테잎에 최대한 근접하자!’ 우리가 오디오로 듣는 음은 실연이나 원음에 얼마나 가깝냐로 판단하기는 합니다만, 근본적으로는 녹음된 마스터 테잎에 얼마나 가까우냐로 결정해야 합니다. 그 점에 매료되어 왔다가, 나중에 제가 주재하는 웨스트 컨트롤과 조합해서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판단 하에 M&A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아무튼 드레게빅씨가 맡으면서 EC의 행보가 만만치 않습니다. 요즘 시대에 부응하는 신제품도 많이 나오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음질도 개인적으로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아까 설명했듯 저희 회사에는 무려 14개국에서 온 인재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외부 인력도 적극적으로 끌어들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스피커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2002년부터 시작한 것으로, 지금까지 개발 중에 있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개발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여러 모로 접근법이나 이론이 마음에 들어서 우리가 투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지금까지 줄곧 만들었는데, 아마도 올 여름이나 가을쯤에 출시될 겁니다.

EC에서 스피커가 제조된다니 흥미롭군요.

지금 여기 리스닝 룸에 있는 것은 시작품이므로, 아직 완성 전이라 소리만 들어보라 하겠습니다. 참고로 구성을 보면 샌드 캐스트 알루미늄 5조각으로 인클로저를 구성하되, 일체 나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시어스제 우퍼에 스캔스픽 트위터를 개량한 것, 그리고 미드는 역시 스캔스픽제입니다. 베이스 덕트가 없는 일체형이지만, 드라이브가 쉬워 약 120W의 출력이면 구동이 가능합니다. 노르딕 톤 모델 1이라는 제목을 달고 출시될 것입니다. 6옴에 90dB의 감도를 가졌고, 주파수 대역은 28Hz~35KHz입니다.

견학을 해보니 정말 공장이 방대하고 또 직원이 많은 데에 놀랐습니다. 현재 WC와 EC에서 생산하는 제품들이 총 얼마나 됩니까?

저희는 작은 부품이나 PC 기판부터 완성품까지 모두 커버합니다. 그 결과 WC에서 약 170여 종, EC에서 30여 종의 제품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군수물자부터 기업 상품까지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죠.

마에스트로라는 신제품이 흥미를 끕니다. 간단히 소개해주시죠.

이 제품은 일종의 올인원이라고 할까, 아무튼 한 기기 안에 대부분의 성능을 집어넣은 제품입니다. 기본으로는 CD, DVD, 인터넷 라디오, 일반 FM 그리고 블루 레이 디스크까지 커버하면서 랜, 서브 우퍼용 잭, USB 단자까지 제공합니다. 거기에 프런트, 라이트, 레프트 등을 120W로 출력할 수 있는 파워단이 있죠. 여기에 별도의 리어단을 달면 5.1채널이 가능해집니다. 제일 흥미로운 것은 하우스 인스톨레이션 기능으로, 안방에서 CD를 듣고, 건넌방에서는 FM을 듣는 식의 활용도 생각해볼 수 있답니다.

마에스트로를 필두로 별도의 컨셉을 가진 제품군을 기획 중이라 들었습니다.

현재까지 저희 EC는 주로 오디오 애호가들을 겨냥한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쪽 산업은 향후 규모가 줄면 줄었지 결코 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고객을 겨냥한 제품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이엔드 라인과는 별도의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라인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쪽은 디스트리뷰터도 별도로 계약해서 관리할 예정입니다.

당신이 EC를 인수하면서 상당히 공격적인 전략이 수립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제가 처음 산 오디오가 EC제로, 이후 쭉 이 회사에 매료되어 왔습니다. 그러다 기회가 되어 2004년에 M&A를 하게 되었죠. 이후 5년 만에 30여 개의 신제품을 개발할 정도로 의욕 넘치게 달려왔습니다. 그 결과 현재 전세계 55개국에 수출하는 큰 기업으로 탈바꿈한 것이죠.

이런 오랜 역사를 가진 회사가 당신 덕분에 새롭게 진취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은 참 보기 좋습니다. 팩토리 투어를 비롯한 여러 배려에 큰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P.S 나중에 호텔에 와서 사진을 정리하다가, 못 보던 것들을 찾아냈다. 알고 보니 등산을 포기하고 내려오면서 대신 내 카메라를 A 사장에게 맡겨서 찍어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과연 찬찬히 살펴보니 그 위용이 대단하다. 둥그런 원반처럼 평평한 언덕 밑으로 깎아지른 절벽이 있고, 그 주위에 강이 흐른다. 그 높이만도 무려 600여 미터.

“여기는 사람이 있을 곳이 아니다. 신선이 노니는 곳이다.”

직접 푸핏 록을 본 A 사장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세계에서 온 EC 딜러들은 꼭 미칼을 따라 이곳을 방문한다고 한다. 이 아름다우면서 신비스런 자연을 보고 나면, 더욱 이 회사가 지향하는 이상과 음악에 공감하게 된다고 하는데, 사진을 보니 이해가 간다. 다음에 혹 방문하게 되면, 단단히 준비를 해서 이곳을 찾아야겠다.

듣자 하니 이보다 더 높은 곳에 또한 절경이 있고, 거기엔 꼬박 1박 2일이 소요된다고 한다. 미칼이 그곳으로 데려간다고 하면 과연 어떡해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