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랑 백건우가 다시 왔습니다. 이번에는 부조니의 바흐 편곡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라흐마니노프와 라벨 등 주로 낭만파 음악가들을 주로 천착해 온 그가 드디어 바흐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팬의 한 사람으로서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이 음반에 담긴 곡들은 부조니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남긴 것입니다. 다른 악기를 위해 쓰인 곡을 피아노로 옮기는데 있어서, 리스트와 함께 부조니가 남긴 성과는 음악애호가들을 위한 귀중한 선물입니다. 부조니의 경우 처음부터 바흐의 절대적인 영향아래 작.편곡작업을 진행해 온 만큼, 많은 바흐 편곡을 남겼습니다.
부조니의 바흐 편곡은 주로 오르간이 뿜어내는 방대한 스케일과 수많은 음색변화를 피아노로 재생해 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원래의 오르간곡 구조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분산화음을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 손이 작은 연주자는 악보 앞에서 많은 고민을 해야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음반의 시작은 토카타 C장조 BWV 564입니다. 백건우는 강력한 타건과 호쾌한 기풍으로 원곡의 우주적 스케일을 훌륭히 살려나갑니다. 피아노라는 악기의 한계에 도전하는 장대한 곡으로, 백건우는 완벽한 테크닉으로 건반을 요리합니다. 부조니가 의도했던 오르간적 음향도 깊고 풍성하게 살아나고 있습니다.
음반의 중간블럭은 역시 오르간곡인 코랄 전주곡을 피아노로 편곡한 것입니다. 부조니는 원래 10개의 코랄전주곡을 편곡했습니다. 1907년에서 9년 사이의 일입니다. (부조니 자신은 1866년에서 1924년까지 살았습니다. ) 일반적으로 자주 연주되는 것은 이가운데 4곡입니다.
'깨어나라고 부르는 소리 있도다'(Wachet auf, ruft uns die Stimme,BWV 645)를 비롯해 '이제 오라 우리 구주여'(BWV 659) '성도들이여,이제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자' (BWV 734a) '주예수여,당신을 소리쳐 부르나이다'(BWV 639) 가 그 4곡입니다. 근래에 발매된 음반으로는 머레이 페라이어의 '무언가(Songs without Words)'에도 이 4곡만 실려 있습니다. 백건우는 10곡 모두를 다룹니다.
이 10곡은 두어개를 제외하고는 워낙 조용조용 연주하는 곡들이 되어서 연주자들간 특성비교를 하기가 쉽지 않고,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곡의 흐름을 놓치게 되는 일도 많습니다. 원 성악곡의 정서가 편곡을 거치면서 추상화되어 내적으로 잘 갈무리된 사색적인 곡이라 할 수 있는데, 백건우의 연주는 뭐라 나무랄데가 없습니다. 다만 제 능력으로는 딱히 뭐라 구체적인 찬사를 적을 말도 없어서 아쉬울 뿐입니다.
자주 손이 가는 곡들로는 4번트랙 ('하느님,창조자,성신이여 오소서 Komm,Gott,Schopfer, Heiliger Geist' BWV667), 10번트랙 ('주안에 기쁨있도다 In dir ist Freude', BWV615)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음반의 대미는 저 유명한 '샤콘느'입니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BWV1004)의 일부죠.
현재 - 그것이 개인적인 처지이든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의 한계에 관한 것이든- 에 대한 비탄과 고뇌,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피안에의 동경과 갈구가 어우러진 이 곡은 비록 모음곡의 일개 구성부분이라 하나 서양음악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큰 독주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길이 등의 형식적인 규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이 내포하고 있는 정신의 규모를 말하는 것입니다.
백건우의 샤콘느에 대해 쓰기에 앞서서, 집에서 자주 듣던 로잘린 튜렉의 연주를 다시 한번 들어보았습니다. (VAI audio.VAIA 1024-2 / Rosalyn Tureck, Live at the Teatro Colon. 1993.DDD)
바흐의 성녀라고 일컬어지는 튜렉 여사의 경우, 심오함과 구조감을 강조하는 해석이라 생각됩니다. 터치 방식도 하나하나의 음에 매우 강력한 인상을 실어 전달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가끔 정서의 흐름이 물흐르듯 유연하게 이어지지 않는 점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인데 백건우의 이번 연주와 비교해 들어보니 그런 느낌이 듭니다.
또한가지 두 연주간의 차이라면 튜렉의 연주가 보다 형이상학적인 인상이라면 백건우의 연주는 보다 인간적인 느낌이라는 것입니다. 개별 음의 터치의 강력함보다는 정서의 흐름을 더욱 강조하는 듯한 인상입니다. 역시 튜렉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지 터치가 약하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백건우의 연주는 질풍노도와 같이 격정을 몰아쳐 카타르시스에 이르게 하는 흐름이 아주 강력합니다. 땅 위에 두발을 딛고 있는 인간, 뜨거운 피가 뛰는 인간의 진한 고뇌가 느껴집니다. 베토벤의 비창,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에 이어 이 곡은 바흐의 비창(pathetique)이라고 해야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에 맺힌 것이 많은 분이라면 이 연주를 듣다가 그냥 울어버릴지도 모릅니다.
2000년 6월 영국 서포크에서 나그라 장비를 사용해 녹음되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한국연주자의 음반이 흔히 그렇듯 오리지널은 수입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시리얼넘버는 DD 5926. 467 358-2입니다. (DECCA)
오디오파일용이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크게 부족함이 없는 녹음입니다. 위에 말씀드린 튜렉의 음반이 연주를 매우 멀리서 녹음한 것처럼 음량과 음상이 축소돼 있는 것에 비하면 샤콘느와 토카타의 풍성한 음향을 감상하기에 이 씨디가 훨씬 낫습니다.
별은 4개반. 구입을 강력추천합니다.
부조니의 바흐 편곡은 주로 오르간이 뿜어내는 방대한 스케일과 수많은 음색변화를 피아노로 재생해 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원래의 오르간곡 구조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분산화음을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 손이 작은 연주자는 악보 앞에서 많은 고민을 해야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음반의 시작은 토카타 C장조 BWV 564입니다. 백건우는 강력한 타건과 호쾌한 기풍으로 원곡의 우주적 스케일을 훌륭히 살려나갑니다. 피아노라는 악기의 한계에 도전하는 장대한 곡으로, 백건우는 완벽한 테크닉으로 건반을 요리합니다. 부조니가 의도했던 오르간적 음향도 깊고 풍성하게 살아나고 있습니다.
음반의 중간블럭은 역시 오르간곡인 코랄 전주곡을 피아노로 편곡한 것입니다. 부조니는 원래 10개의 코랄전주곡을 편곡했습니다. 1907년에서 9년 사이의 일입니다. (부조니 자신은 1866년에서 1924년까지 살았습니다. ) 일반적으로 자주 연주되는 것은 이가운데 4곡입니다.
'깨어나라고 부르는 소리 있도다'(Wachet auf, ruft uns die Stimme,BWV 645)를 비롯해 '이제 오라 우리 구주여'(BWV 659) '성도들이여,이제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자' (BWV 734a) '주예수여,당신을 소리쳐 부르나이다'(BWV 639) 가 그 4곡입니다. 근래에 발매된 음반으로는 머레이 페라이어의 '무언가(Songs without Words)'에도 이 4곡만 실려 있습니다. 백건우는 10곡 모두를 다룹니다.
이 10곡은 두어개를 제외하고는 워낙 조용조용 연주하는 곡들이 되어서 연주자들간 특성비교를 하기가 쉽지 않고,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곡의 흐름을 놓치게 되는 일도 많습니다. 원 성악곡의 정서가 편곡을 거치면서 추상화되어 내적으로 잘 갈무리된 사색적인 곡이라 할 수 있는데, 백건우의 연주는 뭐라 나무랄데가 없습니다. 다만 제 능력으로는 딱히 뭐라 구체적인 찬사를 적을 말도 없어서 아쉬울 뿐입니다.
자주 손이 가는 곡들로는 4번트랙 ('하느님,창조자,성신이여 오소서 Komm,Gott,Schopfer, Heiliger Geist' BWV667), 10번트랙 ('주안에 기쁨있도다 In dir ist Freude', BWV615)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음반의 대미는 저 유명한 '샤콘느'입니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BWV1004)의 일부죠.
현재 - 그것이 개인적인 처지이든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의 한계에 관한 것이든- 에 대한 비탄과 고뇌,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피안에의 동경과 갈구가 어우러진 이 곡은 비록 모음곡의 일개 구성부분이라 하나 서양음악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큰 독주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길이 등의 형식적인 규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이 내포하고 있는 정신의 규모를 말하는 것입니다.
백건우의 샤콘느에 대해 쓰기에 앞서서, 집에서 자주 듣던 로잘린 튜렉의 연주를 다시 한번 들어보았습니다. (VAI audio.VAIA 1024-2 / Rosalyn Tureck, Live at the Teatro Colon. 1993.DDD)
바흐의 성녀라고 일컬어지는 튜렉 여사의 경우, 심오함과 구조감을 강조하는 해석이라 생각됩니다. 터치 방식도 하나하나의 음에 매우 강력한 인상을 실어 전달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가끔 정서의 흐름이 물흐르듯 유연하게 이어지지 않는 점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인데 백건우의 이번 연주와 비교해 들어보니 그런 느낌이 듭니다.
또한가지 두 연주간의 차이라면 튜렉의 연주가 보다 형이상학적인 인상이라면 백건우의 연주는 보다 인간적인 느낌이라는 것입니다. 개별 음의 터치의 강력함보다는 정서의 흐름을 더욱 강조하는 듯한 인상입니다. 역시 튜렉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지 터치가 약하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백건우의 연주는 질풍노도와 같이 격정을 몰아쳐 카타르시스에 이르게 하는 흐름이 아주 강력합니다. 땅 위에 두발을 딛고 있는 인간, 뜨거운 피가 뛰는 인간의 진한 고뇌가 느껴집니다. 베토벤의 비창,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에 이어 이 곡은 바흐의 비창(pathetique)이라고 해야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에 맺힌 것이 많은 분이라면 이 연주를 듣다가 그냥 울어버릴지도 모릅니다.
2000년 6월 영국 서포크에서 나그라 장비를 사용해 녹음되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한국연주자의 음반이 흔히 그렇듯 오리지널은 수입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시리얼넘버는 DD 5926. 467 358-2입니다. (DECCA)
오디오파일용이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크게 부족함이 없는 녹음입니다. 위에 말씀드린 튜렉의 음반이 연주를 매우 멀리서 녹음한 것처럼 음량과 음상이 축소돼 있는 것에 비하면 샤콘느와 토카타의 풍성한 음향을 감상하기에 이 씨디가 훨씬 낫습니다.
별은 4개반. 구입을 강력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