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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유럽의 오케스트라에서는 단원들을 중심으로 한 독립적인 앙상블들이 많이 존재해 왔다. 전통적으로 현악 4중주단과 목관, 금관 앙상블이 가장 많았고 가끔씩은 쳄버 오케스트라로도 구성되어 연주회를 열어왔다. 아마도 이들 앙상블은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를 결정짓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만큼 오케스트라의 퀄리티와 동일한 기준의 연장선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이 오케스트라 앙상블은 각기 다른 종류의 악기들이 모이는 것이 기본인데, 유독 베를린 필하모닉에서는 12명의 첼리스트로만 구성된 앙상블이 탄생하여 인기를 누리고 있다. 같은 종류의 악기로 구성된 앙상블로는 각기 다른 성부를 갖고 있는 여섯 종의 클라리넷 앙상블이나 기타 오케스트라는 비교적 친숙하지만 낮은 성부를 갖고 있는 첼로로만 구성된 독립 앙상블은 베를린 필하모닉의 12명의 첼리스트가 최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내부 앙상블 가운데 가장 높은 인지도와 명성을 누리고 있는 ‘12명의 첼리스트’(이 단체의 고유명사다)는 그 기원이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앙상블의 창립자인 베를린 필하모닉의 첼리스트 루돌프 바인쉬머는 1965년 7월 2일 자신의 34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세 네명의 동료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첼로만으로 재미있는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이를 계기로 같은 해 11월 베를린 필하모닉의 도쿄 공연시 첼로만으로 구성된 앙상블로 따로 연주회를 가져 높은 호응을 얻으며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2년 뒤 1967년 잘츠부르크의 부활절 페스티벌에서 연주회를 가지며 ORF를 통해 녹화, 방송되기도 했다. 이들의 공식적인 첫 연주회는 1972년 3월 25일 모차르테움에서의 연주회였고, 이후 유럽을 비롯하여 전세계에서 연주회를 열며 새롭고 대중친화적인 새로운 레퍼토리로 인기를 끌게 되었다.

왜 하필 12명의 첼리스트일까? 이에 대한 아이디어는 바로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였던 아르투르 니키쉬에 대한 기념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것은 1895년부터 1922년까지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를 역임했던 니키쉬의 65번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위대한 첼로 비르투오소로 일컬어졌던 율리우스 클렌겔(1859-1933)이 1920년에 작곡하여 헌정한 12명의 첼리스트를 위한 ‘찬가(Hymus)’를 모델로 삼았기 때문이다.

 

클렌겔은 법률가이자 훌륭한 아마추어 음악가, 멘델스죤의 친한 친구였던 아버지 밑에서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고, 이후 독일 첼로계의 거장인 구르츠마허와 다비도프의 제자이자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수석 첼리스트인 에밀 헤거를 사사했다. 15세 무렵 그는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되었고 22세(1881년)에는 수석이 되었고 1924년까지 그 지위를 유지했다. 니키쉬의 후임으로 이 단체의 수석 지휘자였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클렌겔의 첼로 협연으로 쥬빌리 콘서트를 지휘하기도 했다.

 

그 동안 많은 음반을 제작했는데 그 가운데 지금까지도 베스트 셀러인 음반은 The Beatles in Classics라는 제목의 음반(Teldec)일 것이다. 비틀즈의 명곡들을 12대의 첼로를 위한 편곡을 수록하고 있는 이 앨범을 통해, 베를린 필하모닉의 12명이 첼리스트들은 상업적인 성공과 더불어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일 수 있게 되었다.

 

2000년 이후 EMI 레이블을 통해 South American Getaway, Angel Dances, As time goes by, Round Midnight, Pleaur de Paris와 같은 앨범들을 지속적으로 발매하며 단체의 인기와 명성을 높여갔다. 꾸준한 레코딩과 활발한 연주회를 통해 창단된 지 40년 만에 그들은 첼로만을 위한 앙상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전통을 세운 것이다. 그리고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그들은 남미 음악과 프랑스 음악, 대중적인 팝과 영화음악들을 첼로 앙상블을 위해 새롭게 편곡하여 연주하는 한편 다양한 장르의 솔리스트들과의 협주를 통해 크로스오버 장르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뛰어난 비르투오시티와 음악성을 발휘하기 위해 정통 클래식 레퍼토리를 새로운 형태로 연주함은 물론일니와 구바이둘리나와 같은 동시대 작곡가들의 신작을 위촉, 연주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여기 소개하는 Euroarts에서 발매된 블루레이/DVD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12명의 첼리스트에 대한 최초의 영상물로서 창립 40주년을 맞아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 홀에서 가진 연주회 실황이다. 1080i Full HD 화질과 16:9 화면, 멀티채널 DTS-HD 음질(다큐멘터리까지도)로 AV적인 쾌감이 극도로 높을 뿐만 아니라, 무대의 조명도 화려하고 카메라 워크도 현란하며 기념 연주회인만큼 연주자들의 몰입도와 청중들의 환호 또한 높아 생생한 현장감을 준다. 대중적인 관심과 더불어 AV적 퀄리티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클래식 AV 타이틀로서 이만한 퀄리티와 음악적 완성도를 갖춘 아이템은 드물 것이다. 한편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된 60여분짜리 다큐멘터리는 이들 단체의 역사와 현재를 흥미진진한 전개를 통해 보여준다.

 

첫 곡은 클렌겔의 ‘찬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피력한다. 엄숙하고도 숭고한 분위기를 뒤로 하고 감각적인 장 프랑세의 ‘오바드’와 강렬한 피아졸라의 ‘천사 모음곡’을 연주한다. 특히 피아졸라는 12명의 첼리스트가 주력하는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로서 칼로 잰 듯 완벽한 테크닉과 뜨거운 리듬을 실어내며 클래식 영역으로 들어온 탱고의 새로운 매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프랑스 클래식인 포레의 ‘파반느’와 드뷔시의 ‘성당의 종’, 라벨의 ‘보칼리제 연습곡’을 연주하고, 대중음악으로는 흥겨운 반다르의 ‘파리의 꽃’을 비롯하여 왈츠 풍의 샹송인 스코트의 ‘파리의 다리 밑’, 영화음악인 미셸 르그랑의 ‘여자는 여자다’와 허만 훕펠드의 ‘As time goes by’, 엔니오 모리코네의 ‘The Man with the Harmonica’를 연주한다.

 

한편 앙코르로 연주하는 에디트 피아프의 ‘장미빛 인생’과 텔로니오스 몽크의 ‘Round midnight’, 비틀스의 ‘Yesterday’는 청중으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을 자아내며 이 40주년 기념 연주회의 대미를 멋지게 장식한다. 어지간한 연주회 실황보다 더 친숙하고 감동적인 순간을 최고의 퀄리티를 통해 전달받을 수 있는 이 영상물은 새로운 클래식 AV 레퍼런스로 추천하기에 모자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