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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9년 3월 11일 베를린, 20세의 청년 멘델스존은 2년간의 준비 끝에 바흐의 대작 마태 수난곡을 무대에 올렸다. 바흐의 서거 이후 단 한 번도 연주되지 않은 채 도서관에서 잠자고 있던 해묵은 악보가 다시금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다시피 했던 거장의 음악이 장엄하게 울려 퍼지자 그 자리에 있던 청중들은 모두 뜨거운 감동으로 눈시울을 적셨다.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당대 최고의 철학자 헤겔은 이 음악회를 보고 나서 이렇게 기록했다. “바흐는 위대하고 진실한 신교도였으며, 강인하고 박식한 천재였다. 최근에서야 비로소 그의 음악을 완전한 형태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마태복은 26장과 27장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전곡 연주에만 3시간 이상이 소요될 정도로 그 구성과 규모에 있어서 진정한 대작인 이 작품은 바로크 시대 교회음악의 정수라고 말할 수 있다. '수난곡'이란 교회의 수난기간동안 연주되는 음악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겪은 수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곡은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1부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예언에서 체포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여인의 아름다운 이야기와 예수를 팔아넘기려는 배반자 유다의 이야기, 그리고 예수와 그 제자들의 최후의 만찬 장면,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고통스러운 기도는 모두 1부에 속한다. 서정적인 음악으로 표현된 제1부는 마치 제2부에서 펼쳐질 폭풍의 전야와도 같이 고요하고 엄숙하다.

이어지는 2부는 체포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탄식과 빌라도 앞에 선 예수, 그리고 고통스러운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의 여정을 담고 있다. 보다 드라마틱한 2부는 시작하자마자 알토의 구슬픈 아리아와 함께 체포된 예수를 염려하며 찾아 헤매는 시온의 딸들의 슬픈 합창이 들려온다. 곧 재판이 시작되고 예수를 증오하는 유태인 군중 합창이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공포를 몰고 온다. 한편 새벽닭이 울기 전 예수를 세 번 부인한 베드로의 슬픔은 가슴을 저미는 듯한 바이올린의 흐느낌이 되어 인간의 나약함을 일깨워준다. 배반자 유다의 비극적인 최후, 그리고 빌라도 앞에 선 예수의 평화로운 침묵과 빌라도의 우유부단함, 고통스러운 골고타 언덕과 십자가. 그 모든 것은 그대로 생생한 인간 드라마가 되어 우리에게 살아있는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이 작품은 바흐의 모든 기법이 총망라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음악적 구성이 복잡하고도 다양하다. 이 하나의 작품 속에 르네상스 마드리갈을 연상시키는 복잡한 다성 합창이 있는가 하면 교회 예배 시간에 흔히 들을 수 있는 단순하고 화성적인 코랄이 있고, 화려한 오페라 아리아 못지않은 서정적인 아리아들이 있는가 하면 섬세한 레치타티보도 있다. 그래서 어떤 음악학자는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가리켜 “바로크 종교 성악곡과 세속 성악곡을 통틀어 모든 종류의 음악 형식을 다룬 만화경”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1781년 창단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멘델스죤이 1835년부터 1847년까지 카펠마이스터를 지냈던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오케스트라로서, 바로 그가 1841년 이 악단을 지휘하여 마태수난곡을 연주한 바 있다. 한편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은 바흐가 1723년부터 1750년까지 칸토르로 봉직했던 유서 깊은 합창단으로서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함께 마태수난곡 연주하여 그 전통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 DVD에 등장하는 지휘자 게오르크 크리스토프 빌러는 1992년부터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의 16대 칸토르로 봉사하고 있는 지휘자로서,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바흐의 새로운 모습과 전통적인 사운드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

20세기의 역대 칸토르들이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음반으로 남겨왔던 것처럼, 게반트하우스-성 토마스 합창단-빌러의 라인업 또한 성 토마스 합창단 창립 800주년을 기념하여 Rondeau 레이블을 통해 마태수난곡을 음반으로 발매했다. 음반뿐만 아니라 거의 매년 내한공연을 갖으며 청중에게도 대단히 친숙해진 이들의 연주는 매번 바뀌는 독창자들에 따라 전혀 다른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독일 Accentus 레이블에서는 이들이 2012년 4월 성 토마스 교회에서 가진 연주회 실황을 DVD로 발매하여 현대의 최신 AV 환경에 부합하는 고퀄리티의 음향과 영상을 통해 이들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 ‘바흐 이전의 침묵’에서 지휘자 빌러의 인터뷰와 교회의 대부 일부가 등장했던 것, B단조 미사와 크리스마스 콘서트 같은 영상물 외에 이들의 마태수난곡 전곡을 담은 영상물 출시는 이번이 처음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소프라노 크리스티나 란드샤머, 알토에 카운터테너인 슈테판 카흘, 에반겔리스트에 테너 볼프람 라트케, 아리아에 테너 마르틴 라트케, 예수역에 베이스 클라우스 메르텐스, 필라투스에 베이스 고트홀드 슈바르츠가 등장하는 화려한 성악진이 무엇보다도 인상적이다. 이들은 자신이 맡은 배역에 최선의 가창과 최고의 연기력을 보여주며 예수의 고난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펼쳐낸다.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는 단연 발군으로서, 폭발적인 대목에서는 장엄한 분위기를, 경쾌한 대목에서는 화사하되 소박한 음향을 자연스럽게 표현해 낸다.

 

세부적으로 보았을 때 39번 알토 아리아 “아, 나의 하나님이여(Erbarme dich)”에서의 애절한 바이올린 솔로와 탄식과 호소의 깊은 감정을 표현하는 카운터테너의 목소리의 어우러짐은 이 DVD 가운데 단연 백미로서, 교회의 홀톤과 내부장식의 아름다운 화면이 어우러지며 극적인 고양감을 이끌어낸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합창 또한 대단히 감동적이다.

 

45번 코랄 “오, 피투성이가 된 그 머리(O Haupt voll Blut und Wender)”은 사형판결을 받는 예수의 이야기가 레치타티보와 합창으로 묘사되는데, 여기서 빌라도의 질문에 대답하는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 외치는 군중 합창은 푸가의 정갈함과 절제된 에너지감을 전달하고, 뒤이은 50번에서의 합창에서는 점점 거칠어지는 군중의 분노를 사실적으로 연출해내며 웅장한 합창의 사운드를 발산한다.

 

또한 27번의 소프라노와 알토 이중창이 끊임없이 진행되는 가운데 합창이 짧게 응답하는 독특한 기법이 등장하는데, “그를 놓아주어라! 지켜라, 묶지 마라! 그만 둬라! 묶지 마라!”라는 내용의 짧은 합창악구들이 자아내는 환기적인 분위기 또한 신선하다.

 

마태수난곡에 있어서 최고의 해석과 최상의 경건함을 만끽할 수 있는 이 두 장의 DVD는 최초로 한글 자막이 지원되어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돌비 5.1과 DTS 5.1 사운드가 지원되어 성 토마스 교회의 홀 컨디션을 방 안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반드시 구입해야 할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다. 블루레이 버전으로도 출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