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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필하모닉의 연주실황을 담은 두 장의 DVD가 발매되었다. 하나는 이스라엘 필하모닉이 창단 7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로서 2011년 12월 텔 아비브의 행사장 Hangar 11에서의 실황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필하모닉의 본거지인 텔 아비브의 만 오디토리움에서 2010년 3월에 열린 베토벤 음악회 실황이다. 이스라엘 필하모닉은 1936년 요제프 요하임의 제자로서 폴란드 출신의 명바이올리니스트인 브로니슬라프 후베르만이 창단한 팔레스트리아 오케스트라가 전신으로서, 1936년 창단 연주회를 가진 이후 지금까지 많은 지휘자를 거치면서 음악적 기량과 역사를 쌓아나가고 있다. 정상급 오케스트라라고는 말하기 힘들지만 높은 수준의 기량을 갖춘 단원들을 주축으로 레코딩과 연주회 양면으로 준메이저급 오케스트라로서 최고의 앙상블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가운데 75주년 기념 콘서트 실황을 먼저 짚어보도록 하겠다. 이스라엘 필-주빈 메타 조합은 지난 1월 5일 내한한 이스라엘 필이 예술의 전당에서 연주한 신년 갈라 콘서트, 그리고 2010년 11월 말러 교향곡 1번 내한공연 때의 조합이기도 하기에 친숙함이 앞선다. 이 날 연주회장인 Hangar 11은 정식 콘서트홀이 아닌 탓에 음향 컨디션이 썩 좋지 않고 카메라 위치가 한정되어 있는지 앵글 또한 전체적으로 폭이 좁고 효과 또한 단조로운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상물에 반드시 주목해야 할 이유는 바로 매순간 펼쳐지는 도취적인 음악적 열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로서 중요한 행사인 만큼 단원들의 자신감 넘치는 연주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도 협연자로 등장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안 라츨린과 바딤 레핀,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의 손에 땀을 쥐게끔 하는 명연들이 시청자들의 오감을 자극한다.

가장 먼저 율리안 라츨린이 등장하여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를 연주한다. 그는 예측할 수 없는 테크닉과 다채로운 음향 컨트럴, 드라마틱한 전개를 통해 이 작품의 새로운 카리스마와 고급스러운 우아함 모두를 자아낸다. 메타의 박력있는 지휘와 절묘한 앙상블을 이룬 라츨린의 연주는, 특히 음악이 서서히 빨라지며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대목과 마지막 치열한 코다 부분에서 강한 빛을 발한다. 앙코르로 연주한 바흐의 파르티타 2번 BWV 1004 가운데 사라방드는 앞선 비르투오소적인 작품과 대조를 이루는 단조의 비감어린 작품으로서, 연주자의 예민한 감수성과 기민한 호흡이 돋보이는 연주다. 

이 DVD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키신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2011년 11월 내한공연을 가진 시드니 심포니-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와 협연했던 키신의 연주를 연상케 하는데, 쇼팽 피아노 협주곡 오케스트라 반주의 최다 레코딩 기록 보유자인 역전의 노장 주빈 메타 덕분에 키신은 그때보다 훨씬 긴장감 높은 템포와 격조 있는 다이내믹을 선보이며 자신의 잠재력을 200프로 끌어올린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쇼팽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2010년 폴란드 실황인 바르샤바 필하모닉-안토니 비트와의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영상물(Accentus)과 좋은 페어링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반가움이 앞선다. 앙코르로 연주한 쇼팽 스케르초 2번 또한 청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러시아 피아니즘에 기반한 키신 본연의 시성이 번뜩인다.

바딤 레핀이 등장한 쇼송의 시곡. 일관된 시각과 견고한 흐름을 견지하면서 이 난곡의 유장한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레핀의 연주는 단연 압권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지나친 표현력이나 테크닉의 흔들림 없이 작품으로부터 깊은 페이소스와 격정적인 다이내믹의 대비를 이끌어낸, 영상물로 만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연주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이어서 주빈 메타가 지휘한 순수 오케스트라 작품으로서 베토벤 교향곡 8번이 등장한다. 안정된 앙상블과 특징적인 관악 파트의 표현력을 바탕으로 메타의 다채롭고 유려한 해석이 펼쳐지는 이 연주는 무엇보다도 밝고 건강한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세부를 들여다보면 2악장의 기민한 주제 리듬과 3악장 미뉴엣 리듬에서 메타 특유의 아름다운 선율미와 고급스러운 음색이 살아나며 이채로움을 더하는 모습에서 메타의 노련함과 거장적인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에는 두 번째 영상물로 넘어가보도록 한다. 이 2010년 영상물의 특징은 바이올리니스트인 이자크 펄만이 지휘를 맡았다는 것이다. 그가 지휘를 맡은 영상물은 이번이 첫 발매로서, 의자에 앉아서 지휘봉을 든 손을 살짝 떨고 감정 표현에 있어서 왼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모습은 일견 노년의 오토 클렘페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첫 에그몬트 서곡을 들어보면 전문 지휘자가 아닌 만큼 오케스트라로부터 현란한 사운드와 급격한 다이내믹의 대비를 뽑아내는 것보다는 안정적인 템포와 디테일이 잘 살아나는 표현, 균형잡힌 밸런스를 통해 음악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DVD의 하이라이트라고 말할 수 있는 베토벤의 3중 협주곡. 펄만이 이 작품의 영상물에 등장한 것은 저 전설적인 베를린 필-바렌보임-마가 등장한 DVD(EMI) 이후 두 번째로서, 이번에는 바이올린이 아니라 순수하게 지휘봉만을 들고 나왔다는 것이 다르다. 

그가 바이올린을 잡고 지휘를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지만, 이 영상물에서는 전혀 새로운 음악가들의 참신한 앙상블을 감상할 수 있어 나름대로의 위안을 얻을 수 있다. 그 새로운 인물들을 살펴보자면 바이올린에는 이스라엘 출신의 미국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최근 각광을 받는 지오라 슈미트(1983년생), 첼로에는 중견 미국 첼리스트인 쥘 베일리(1972년생), 피아노에는 이자크 펄만의 딸인 나바 펄만(1971년생)이 등장한다. 이들은 각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젊은 연주자들로서, 기존의 거장들과는 다른 풋풋하고 신선한 연주를 들려준다. 그리고 이들 세 명의 연주자가 앙코르로 연주한 슈베르트의 악흥의 순간 F장조 D.780 트리오 버전은 원곡의 색다른 묘미를 안겨준다. 

펄만이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은 만 오디토리움의 건조한 음향 때문에 풍윤한 울림을 만끽하기엔 모자란 감이 없지 않지만, 오케스트라 기량과 고유의 음향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영상이다. 특히 2악장에서 펄만이 만들어내는 칸타빌레와 아기자기함, 5악장에서의 평화로운 분위기가 빼어나다. 펄만의 지휘가 현재 지휘계의 마에스트로들만큼 강렬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지휘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부드러움과 유려한 흐름으로부터 일종의 순수한 감동을 전달받을 수 있다. 화면은 두 개 모두 16:9이지만 75주년 연주회 DVD는 PCM Stereo와 더불어 DD/DTS 5.1채널을 지원하는 반면, 베토벤 연주회 DVD는 PCM Stereo만 지원한다. 

/박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