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숨결을 찾아 떠난 여행 - 박한규님
로베르트 슈만이 클라라와 닮아있듯, 리하르트 바그너가 코지마와 닮아있듯,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는 남이 아닌 하나가 되어갔던 것이다. 오디오와 나 역시 서로 닮아가기 마련이다. 이 운명의 닮은 꼴은 세상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나만의 특권이자 숙명이다. 그렇기에 반려자의 삶에서 현실의 내 모습을 발견하듯, 내가 만든 소리에서는 나의 무의식적인 동경이 배어있다고 말하더라도 비약은 아닐 것이다.
이번 시스템 소개는 아날로그와 오페라의 향취에 듬뿍 빠져있는 박한규님의 시스템. 평소 부드러운 음색과 아름다운 영상을 선호하는 만큼, 이 집안에는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최고의 선택들로 가득 차 있다.
대학 때부터 음악에 대한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한다. 80년대 대학의 봄은 너무도 추웠고, 홀연히 들려온 음악 한 줄기에 얼어붙은 마음이 이내 녹아내린 기억을 가지고 있다. 당시 주섬 주섬 마련하게 된 오디오는 당시의 베스트셀러이자 최고의 매칭이었던 마란츠 리시버와 JBL 스피커, 테크닉스 턴테이블이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자신의 유전자에는 오디오에 대한 집착(?) 만큼은 수록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고 한다. 그저 음악이 좋았고, 오디오는 음악을 들려주는 도구였을 뿐이다. 그렇게 대학시절과 신혼시절을 보냈고, 세월이 흐른 지금 오디오는 이제 도구가 아니라 나에게 가장 중요한 악기로 변하게 되었다. 목적만큼이나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도 중요함을 음악이 가르쳐 준 셈이다.
어느덧 세월이 흐르면서 몇몇 '악기' 들을 거치면서 B&O 시스템에 이르게 되었다. 영화, 오페라, 음악 모두를 즐길 수 있었던 그는, 용기를 내어 음악을 대하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그것은 단순히 기기에 대한 호기심이 아닌, 음악 자체에 대한 정성의 발로였다.
아직도 디자인과 편리성에 있어서 B&O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그이지만, 자신이 모아왔던 음반을 보다 업그레이드된 소리로, 아니 자신의 마음을 보다 솔직하고 정직하게 비추어줄 수 있는 악기를 원했던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주위 지인들의 강력한 부추김이 있었고, 그렇기에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린데만 SACDP와 패스 XA200 파워, 코드 프로세서 등을 거치며 오디오파일로서 나만의 소리 찾기의 포커스는 좁혀졌다. 여기서 등장한 첫 번째 선수는 메느로놈의 칼리스타 레퍼런스 CD 트랜스포트와 CA2 시그너춰. 소리가 확 열리면서 무대가 커지는 모습에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고 회고한다.
플레이어의 디자인은 꼭 우주선처럼 생긴 것이 소리는 천상 최고급 아날로그 사운드에 버금가는 윤기와 색채를 머금고 있기에, 이 초하이엔드 CDP를 선택하는데 일말의 주저함이 없었다고 한다.
이후 발견한 소리는 바로 다즐 프리/파워 앰프에 있었다. 이제부터 박한규님의 시스템은 업그레이드라고도 말할 수도 있지만, 사실상 새로운 차원의 세상으로 텔레포테이션한 셈이다. 아날로그의 따스함과 예술성 높은 음악성을 자랑하는 이 황금빛 덩어리가 주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오디오라기보다는 악기에 가까운 예술적인 설계와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따스함 덕분에 스위스 초정밀 오토매틱 시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은밀한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공산품임에도 불구하고 나만을 위한 맞춤형처럼 느껴졌던 LP 자켓의 친근함과도 비견할 만했다고 한다.
이제 악기의 머리와 몸통이 생겼으니 정신을 불어넣어야 했다. 구동력 좋은 darTZeel 앰프와 정보량이 엄청난 메트로놈 CDP를 위한 박한규님의 최선의 선택은 바로 루멘화이트의 다이아몬드 라이트. 1.2인치 다이아몬드 트위터에 7인치 아큐톤 세라믹 돔 미드레인지 한 개와 우퍼 세 개가 만들어내는 강렬한 낭만성과 상상력 풍부한 사운드는 평소 꿈꾸던 바로 그 소리였다.
여기에 평소 즐겨 플레이하던 메리디안 G98 DVDP와 삼성 블루레이 플레이어까지 연결하니, 보급형 리시버와 멀티 - 채널 스피커로는 만족하기 힘든 하이파이 스테레오의 무한한 가능성과 고급스러운 품격을 만끽할 수 있었다. 평소 자주 듣는 FM 라디오를 듣기 위해 튜너도 매그넘 다이나랩 MD109 트라이오드를 연결했다. 그런데 무언가가 계속 허전했다. 이토록 과분한 악기를 손에 넣었는데도 왜 이토록 허전한 걸까.
오래 전부터 아날로그 사운드를 자신의 최고의 목표로 삼았던 박한규님. 그는 LP를 듣고 싶었다. 까만 PVC의 소리골을 따라 질주하는 카트리지가 노래부르는 진한 음악의 감동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마음 속 강한 무언가를 자극한다. 그 강렬한 자극은 곧 컨티넘에서 제작한 컬리번 턴테이블 구입을 결심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일단 덩치가 엄청나게 컸다. 세계 최고의 턴테이블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호주의 컨티넘사다운 스케일이다. 그 자부심은 곧 박한규님의 LP에 대한 사랑과 직결되어 있었다. 생애 최고의 아날로그 사운드를 소유하겠다는 그 마음은 컬리번의 크기조차 작아보이게 할 정도다. 두 개의 코브라 톤암을 장착하여 카트리지도 스테레오와 모노 두 개를 사용하며 스테레오반과 모노반의 차이를 적나라하게 이끌어내는 호사를 서슴지 않았다.
이렇게, 나만의 악기가 완성되었다. 자연스러운 향기와 높은 해상력으로 빈 필하모닉의 맑고 부드러우며 광활한 사운드를 완성시킨 박한규님은, 다시금 생각에 빠져들었다. 분명 내 악기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가 원하는 소리가 나질 않았던 것이다.
악기는 아무리 비싸고 좋은 것을 사용한다고 해서 결코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취향과 의도에 맞는 정확하고도 섬세한 튜닝이 필요한 법. 해답은 바로 케이블 튜닝에 있었다. 스피커 케이블과 인터 케이블 대부분을 노도스트 발할라로, 음색과 표현력에 따라 중간 중간 PSC Audio와 아르젠토, 시너지스틱 리서치를 적절하게 사용했다. 여기서 박한규님은 한 마디 거들었다. 파워코드를 PSC Audio로 바꾼 뒤 소리가 '뻥' 뚤리는 듯한 개방감과 훨씬 맑고 유연해진 중고역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편 원래 방에는 본래의 바닥 위에 카펫이 깔려있었고 한 쪽 유리 창문에는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캘리번을 처음 들여놓고 음악을 듣는 순간 턴테이블을 잘못 산 줄 알았을 정도다. 알고 보니 카펫과 방바닥, 커튼 모두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일말의 주저함 없이 룸 튜닝에 들어갔다. 원목으로 바닥을 깔아 저역과 기기의 고유 성능을 향상시켰고, 커튼을 모두 없애 음장감을 넓혔으며, CDP를 아예 시스템 왼편 뒤쪽으로 치우면서 개방감을 얻었다고 한다. 사진에 나와있듯이, CDP가 턴테이블에 밀려 찬밥 신세로 뒤편으로 찌그러져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여기에 방 자체의 근본적인 문제, 즉 왼쪽은 트여있고 오른쪽은 유리창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안정된 사운드 밸런싱을 만들고자 마법과도 같은 효과를 내는 Resonator를 달았다. 플래티넘을 중심으로, 골드, 골드 스페셜, 실버, 베이직 등을 적절히 배치시키며 울림과 잔향, 톤, 음향 무대 등을 조절했다. 작고 네모나한 Noise Filter와 음향 카펫을 유리창 쪽에 집중적으로 배치하여 공격적인 직접 반사음을 낮추는 한편 자연스러운 소리의 어우러짐을 도모했다.
박한규님이 가장 기꺼워하는 음악은 단연 성악, 특히 오페라다. 오페라의 내용을 하나 하나 따라가다보면, 성악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을 듣노라면, 내 자신이 바로 그 자리에 있는 듯한 생생한 즐거움과 표현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예술의 전당 및 서울 곳곳에서 진행하는 오페라 강좌에 꾸준히 참여하여 음악과 사람 모두를 느끼고자 노력하는 박한규님. 오페라를 좋아하지만, 정작 오디오 세팅시에는 현악을 수반한 대편성 오케스트라로 튜닝한다고 한다. 악기 개개의 음색과 표현력이 살아나며 리얼한 사운드를 낼 수 있어야 비로소 성악 또한 시원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울린다는 것이 그만의 튜닝 포인트.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무조건 따라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결국 나만의 악기를 찾고자 수고스럽고도 먼 여행을 떠났다. 그 과정이 녹녹치 않게 힘들었지만, 결코 지금이 완성된 소리라고는 자신할 수 없다. 지금은 그저 음반을 사모으며 불현듯 지금의 소리가 싫증나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그 때가 되어야 비로소 다시금 시작될, 소리를 향한 저 험난한 고행을 감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 박한규님은 바로 그 때를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