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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오디오 에어로사의 캐피톨레 CDP가 국내에 소개되었을 때의 반향은 대단했다. 웬만한 분리형을 능가하는 해상력과 퀄리티는 물론이고, 프리앰프 없이 파워에 직결했을 때의 실력도 대단했기 때문이다. 오디오 시스템에서 프리앰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역으로 볼품없는 프리를 통했을 때의 악몽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경우 이 정도로 잘 연마된 볼륨단이 있는 CDP가 더 나을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 것이다. 실제로 본기를 보면, 그야말로 다기능이라 할 만큼 활용폭이 넓다.

본령인 CDP의 기능은 그렇다 하더라도, 무려 세 개의 입력단을 가진 프리앰프로서의 기능도 빼놓을 수 없고, CDT 혹은 DAC로도 얼마든지 전환시킬 수 있다. 즉, 무려 4개의 기능이 있는 셈이다. 취미성이 강한 오디오의 세계인만큼, 유저로서는 이 하나의 제품으로 얼마든지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기능이 품질 저하로 이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느 기능을 선택하던, 가격대비 대단한 만족감을 선사한다. 이번 시청에서는 단품 CDP뿐 아니라, 파워 앰프에 직결한 형태로도 사용해봤는데, 그 실력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과연 레퍼런스라는 타이틀을 붙일 만한 완성도인 것이다.

1997년 프랑스에서 설립된 오디오 에어로사는, 왜 이름에 에어로가 붙을까 의문이 들 법도 하다. 본사의 모토가 'Fly to the Music'. 그러고 보면 엔지니어 중 항공 기술 자격증을 가진 이들이 많다고 한다. 콩코드 비행기와 미러지 전투기를 제작하는 프랑스의 기술력이 이쪽 업계에도 발휘된 것일까? 참고로 캐피톨레는 오디오 에어로사가 내놓은 세 개의 라인업중 중간급에 해당한다. 위로는 프리스티지가 있고, 밑으로는 프리마가 있다. 캐피톨레에는 CDP 외에도 인티 앰프와 파워 앰프가 각각 한 기종씩 있는데, 일종의 세트 개념으로 사용한다면 좋은 성과를 얻을 것이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이런 커플링으로 시청을 하고 싶다.

본기의 외관을 보면, 알루미늄의 절삭 가공으로 이뤄진 새시에 별 특징이 없는 듯 보이는 프런트 패널이 배치되어 있다. 일견 아무런 디자인 감각을 발휘하지 않은 듯하지만, 가만히 보면 기능적인 버튼 배치나 깔끔한 디스플레이 등 결코 질리지 않는 센스를 자랑한다. 본체 밑에는 3점 지지의 인슐레이터가 있는데, 진동 방지에 대단한 노력을 쏟은 대목이다. 새시 윗부분에 위치한 덮개, 일명 톱 로딩 방식은 슬라이딩 도어가 아크릴 소재이고, 손잡이는 알루미늄으로 단단하다. 반쯤은 투명이어서 안에 들어있는 CD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사용자의 편의를 최대한 도모한 대목이다.

뚜껑을 열면 우선 드러나는 것이 바로 트랜스포트부. 그 뒷편으로 전원부와 DAC부 등이 각각 다른 기판에 배치되어 있다. 매우 깔끔하고, 잘 정리된 배치다. 일단 트랜스포트부터 보자. 마치 철저한 방진으로 처리된 턴테이블을 보는 듯, 네 귀퉁이에 설치된 받침대가 믿음직스럽고, 동사 특유의 알루미늄 서스펜션까지 가미, 안정된 동작을 자랑한다. 사용된 메커니즘은 필립스의 CD PRO2. 매우 정평이 있는 모델로, 리딩 능력에서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읽은 신호는 역시 필립스의 VAM 1201이라는 크리스털 발진기로 넘어간다. 이것은 DAC쪽에 보낼 레퍼런스 주파수를 생성하는 파트이며, 특히 여기선 지터를 최소화하기 위해 마스터 클록에 초정밀의 크리스털을 사용한 점이 특징이다.

이 신호를 받은 DAC부는 버 브라운의 PCM 1792 DAC 칩과 오디오 에어로만의 독자적인 S.T.A.R.S. 2 프로세서로 구성된다. 우선 버 브라운의 칩은 24bit/192kHz로 작동하며, 이를 받는 S.T.A.R.S. 2 프로세서는 일종의 리샘플링으로 24bit/192kHz를 다시 생성한다. 참고로 이 프로세서의 이니셜은 'Solution for Time Abstraction Re-Sampling'이라 한다. 이것은 192kHz의 주파수를 리샘플링할 뿐 아니라 24비트의 시그널을 최적화시키는 데 있다. 16비트로 구성된 CD의 신호에서 숨겨진 부분까지 낱낱이 뒤져내 모든 정보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 동원된 것이 SHARC의 DSP로서 초당 수억 번의 연산을 해서 1024배의 업샘플링을 한 다음, 다시 24bit/192kHz로 재구성하는 역할을 한다. 당연히 정확성, 다이내믹, 사운드 스테이지, 해상력 등에서 우수성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한편 아날로그부를 보면, 출력단에 일반적인 OP 앰프를 쓰지 않고 동사 특유의 6021W라는 미니어처 진공관을 사용하는 점이 흥미롭다. 사실 동사는 CDP뿐 아니라 앰프도 함께 생산하고 있는데, 앰프 제작에도 독특한 노하우가 있다고 한다. 일명 하이브리드 방식이라 불리는, TR 소자와 진공관을 적절히 혼용하는 것이다. 동사는 이를 TTRAC라 부르는데, 'Transistor Tube Relay Amplification Concept'의 약어다. D-MOSFET로 출력을 키워서 A급 증폭 방식으로 유도하는 형태인데, 매우 순도가 높고, 스피디하며, 구동력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기에 투입된 아날로그 회로는 이런 노하우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사실 디지털 기기의 퀄리티는 아날로그부에서 승부가 난다. 당연히 앰프를 제작해본 경험이 있는 메이커들이 유리하다. 그런 면에서 6021W라는 흔치 않은 미니어처관을 도입한 동사의 센스는 주목할 만하다. 이 관을 찾기 위해 숱한 회로 구성을 했을 것으로 보여지는데, 그런 노력이 음에 반영되어 이토록 훌륭한 제품이 탄생된 것이리라.

전원부를 보면 흔히 프리 볼트라고 하는, 여러 형태의 전원에 대응하는 방식을 채택한 점이 돋보인다. 이를 위해 AC/DC 파워 모듈로 친파 일렉트로닉스의 KAM 3005를 동원하고 있다. 85～265의 VAC 및 47～63Hz에 대응하고 있다. 우리처럼 220V에 60Hz라는 독특한 전원을 사용하는 국가에는 이 기능이 매우 유용하리라 보여진다. 새시를 열면 내부 조정 단자가 있으므로 적절히 선택하면 된다.

새시 뒷편을 보면 매우 풍부한 입출력 단자에 놀라게 된다. 앞서 소개했듯 본기는 무려 4개의 기능을 갖고 있으므로, 이 부분을 정확히 인식하지 않으면 막상 연결해놓고도 소리가 나지 않아 당황할 우려가 있을 것이다. 중앙 윗부분은 아날로그 인풋이다. 프리앰프로만 사용할 경우에 해당하는데, 3개의 입력단 중 3번이 밸런스 입력이다. 그 밑으로 디지털 인 아웃단이 있는데, 디지털 아웃은 오로지 BNC 하나뿐인데 반해, 인풋은 5종의 서로 다른 단자가 제공된다. BNC, COAX, AES/EBU, AT&T, TOSLINK 등이니 매우 선택의 폭이 넓다 하겠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인풋을 제공하는 데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일본의 경우, DAT나 디지털 음악 방송 등이 활성화되어 이런 소프트를 적극 활용하는 애호가들이 많다. 우리도 오로지 2채널의 DVD를 감상한다거나(오페라나 공연 실황 등이 제격일 것이다), 비디오 게임기의 디지털 음성단을 이용하겠다면 이런 다양한 단자는 필수적이다. 만일 이런 다양한 기기를 연결한다면, 별도의 DAC를 구입한 효과가 있으므로 단단히 본전을 뽑지 않을까 상상도 해본다.

한편 맨 오른편엔 아날로그 아웃풋으로, 밸런스 및 언밸런스 단자가 제공된다. 또 맨 왼쪽에는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위한 터미널이 하나 있다. 만일 동사가 새롭게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한다면 딜러에게 부탁해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소비자들을 배려하는 매우 적절한 조치가 아닐까 싶다. 이 중 각 입출력부에 있는 풀 밸런스 회로에는 지터 감쇄를 위한 오디오 에어로 독자의 소프트웨어가 탑재되어 있어 음질상의 배려를 남김없이 하고 있다. 그야말로 철두철미하게 음질 향상에 힘을 쏟고 있다 하겠다.

본기의 시청을 위해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하이페리온사의 HPS-968에 다질 프리 파워를 물린 첫 번째 세팅과 오디오 리서치 레퍼런스 210 파워에 직결한 두 번째 세팅을 이용해봤다. 그 이전에, 본기와 비슷한 가격대의 CDP를 비교 시청해봤는데, 여러모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우선 해상력을 보면 본기가 좀 더 우월하고, 저역의 디테일이 특히 우수함을 느낄 수 있었다. 또 고역의 자유분방한 심벌즈의 찰랑거림이나 어쿠스틱 기타의 명징함도 확실히 앞서 있었다. 다만, 고역의 질감이 매우 고상해서, 일체의 거친 맛을 느낄 수 없음은 튜닝에 있어서 많은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나 싶다. 또 이 부분은 보다 사실적인 재현력을 요구하는 애호가들에게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대역 밸런스가 빼어나고, 장르를 편식하는 버릇도 없으며, 어지간한 분리형을 능가하는 퀄리티는 특필할 만한 대목이다.

참고로 첫 세팅에 동원된 다질 프리의 우수성에 대해 새삼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두 번째 세팅에서는 프리 없이 파워와 직결을 해봤는데, 물론 파워 앰프가 달라졌으므로 뭐라 말할 수 없지만 해상력만 따진다면 그다지 뒤질 것이 없어 보였다. 역시 우수한 앰프를 생산하는 회사다운 노련한 음 매무새가 아닐까 한다. 현실적으로 하이엔드급 프리앰프의 높은 가격을 생각하면 이 제품의 경쟁력은 상당하다 하겠다. 아무리 SACD가 뛰어나고, LP 플레이어의 진화가 눈부시고, 새로운 디지털 포맷이 출현한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주 메뉴는 CD이다. 이런 CD의 구석구석까지 다 파헤쳐서 정보를 샅샅이 끄집어내 고상한 음악적 뉘앙스로 승화시킨 본기의 매력은 다양한 기능성과 더불어 매우 귀중하다 하겠다.

- 이 종 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