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FICLUB, High-end Internet

10여년 가까이 프로음향 잡지에 관련 내용에 관한 글을 써왔던 적이 있다. 그런데 몇 년 동안 글 쓰는 것으로부터 한 번 손이 떠나고 나니, 좀처럼 소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과거만큼 재미있지가 않다. 하지만 오디오와 소리는 나에게 있어서 마음의 기복이 있을 지언정, 아마도 평생토록 가장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큰 부분임이 분명하다. 이미 오랜 시간 동안 가족이라는 단어와 동일시되어왔던 것이다.

모처럼만에 ‘소리’에 관한 기기 리뷰. 게다가 프로음향용 기기가 아닌 가정용 하이파이 기기! 하이파이 클럽에서 오디오 기기 리뷰 청탁을 받게끔 한 장본인은 노르웨이산 헤겔 인티앰프 H1.

인연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참 기묘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것으로서, 이래서 시간의 흐름 속 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행복이라고 부른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닐지 모르겠다. 공교롭게도 본인의 마스터링 스튜디오 [A]에서 사용하고 있는 앰프는 헤겔의 상위모델 H4(스피커는 쿼드의 정전형 ESL2805). 게다가 함께 일을 하고 있는 김현석 레코딩 엔지니어 역시 집에서 쿼드의 ESL 2805 스피커와 함께, 이번 리뷰 대상인 헤겔의 H1 인티앰프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마스터링 스튜디오에서의 사운드는 글을 쓰고 있는 오늘 하루만 해도 오전 11시부터 저녁 7시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온종일 스튜디오에서 마스터링 작업을 하며 이 헤겔의 소리를 들었고, 김현석 레코딩 엔지니어의 집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헤겔 H1 인티앰프의 소리를 들어왔다. 항상 출근하는 마스터링 스튜디오에서도, 그리고 동료의 집에서도 함께 하는 헤겔의 사운드인만큼 이 HI 인티앰프는 나에게 더 없이 각별하게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나는 인티앰프를 자주 사용할뿐더러 대단히 좋아한다. 우선 적당한 사이즈의 인티앰프가 이뻐 보인다는 이유로 주변 거실이나 방의 환경에도 부자연스러움이 없이 잘 어울리기 마련이다. 더 나아가 주변이 완벽하게 정돈되어야 무슨 일이든 시작할 수 있는 급살 맞은(?) 나의 성격을 미루어 보건데, 리스닝룸이나 거실에 비치되어 있는 여러 종류의 오디오들이 정신없이 바닥에 널려있는 것 보다, CDP와 인티앰프, 스피커의 트리오 편성이 시각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스피커가 바이올린이라면 CDP는 비올라, 앰프는 첼로랄까?

그렇기 때문에 집에서는 눈에 들어오는 새로운 인티앰프가 있으면 그 소리와 모양이 궁금한 나머지 참지 못하고 덜컥 구입해 버리는 통에 집에는 늘 여러 대의 인티앰프들이 상주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두어 대는 꼭 놀고 있어 아내에게 면박을 받기 일쑤다.

오랜 시간 나의 메인 인티앰프로 터주대감 역할을 맡고 있는 모델은 제프 롤랜드의 콘센트라. 사실 꾸준했다기보다는 들락날락 벌써 3번째 사용하고 있는 제품이라 자연스럽게 사용기간이 길어지게 된 것 같다. 이외에도 놀고 있는 레벤 CS600 인티앰프도 이번 리뷰를 위해 간만에 전기를 먹였지만, 결국 이번 헤겔 H1 인티앰프는 자연스럽게 제프 롤랜드 콘센트라와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신제품이라고 하기에 출시된 지 조금 시간이 흐른 제품이지만. 멋진 디자인과 충실한 만듦새, 볼륨의 조작감과 리모컨 기능, 볼륨 노브의 조작감 등은 시간에 관계 없이 훌륭하다. 콘센트라는 전원스위치가 없고 인티앰프치고 전기를 많이 먹는데다가 열도 많이 나는 편일 분더러, 이보다 훨씬 더 저렴한 100만 원 대 인티앰프들보다 좌우 스테레오 이미지 포커싱이 좁은 편이다. 게다가 인티앰프의 태생의 한계인 8옴의 100W의 출력이 지니고 있는 딱 그만큼의 저역을 들려주며 분리형 파워와 같은 무시무시한 저역 또한 나오지 않지만. 위에 열거한 몇몇 단점을 제외한 모든 소리의 요소가 나에게는 커다란 장점으로 다가온다.

콘센트라로 한참 동안 좋아하는 음악들을 시청한 뒤 헤겔 H1로 기기를 바꾸어 들어보았다. 헤겔 H1 인티앰프에 대한 첫 느낌은 순식간에 결정되어버렸다. 무엇보다도 마스터링 스튜디오에서 사용하는 H4와는 우선 저역의 표현이 많이 다르다. H1을 듣는 순간, 녹음실에서 듣던 바로 그 소리가 들려온다. 어떤 CD를 듣던 간에 그 음반의 소리를 만든 프로듀서와 엔지니어가 듣고 있었을 바로 그 소리! 전반적으로 콘센트라의 풍부한 중저음과는 경우가 많이 다른, 약간 부족하다고 말할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메마른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여기에 밸런스가 충실한 중역을 바탕으로 깔끔하고 명확하며 자연스러운 고역이 얹어진다.

저역이 부족하다고 해서 음악을 듣기 불편하거나 음악적인 감흥이 떨어질 만큼 부족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리스닝 룸에서 느낄 수 있을 법한 불필요한 중저음의 공진음들이 전부 커트되어 룸 자체의 특성은 사라지고 음반에 담긴 소리 자체만 남아있는 바로 그러한 느낌이다. 이 소리를 들으면 내가 지금까지 들은 소리, 특히 중저역은 피크가 있는 불필요한 소리들을 함께 들어 왔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물론 이러한 소리의 피크감이 때론 훌륭한 음색적인 특성이 되기도 한다).

중역은 현악기 소리를 들으면 현의 보잉 노이즈가 살짝 들려오는 정도로만 약간 부풀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3/5A 스피커도 이렇게 중역이 살짝 부풀어진 성향을 지니고 있다. 고역은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너무 화려하지도 않고 답답함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심벌의 윗소리까지 깨끗하게 빠져준다.

옆에서 함께 듣고 있는 아내가 컴퓨터로 게임을 하면서 이야기를 한다.
"이 앰프 소리는 딱 20대 젊은 처자의 생얼 같아요."

결혼한 지 1년도 되지 않는 신혼이지만 그 사이에 프라이메어 A30.1, I30. 마란츠 PM11S1. 맥킨토시 MA6900. 제프 롤랜드 콘센트라와 콘체르토. 레벤 CS600. 골드문트 390D 등등, 집에 늘 왔다갔다하는 여러 가지 앰프 소리를 함께 듣고 있었던 아내. 이제는 새로운 오디오기기의 소리를 들으면 단번에 그 특성을 정확하게 짚어내어 나를 놀라게 할 정도다. 20대 처자의 화장을 하지 않은 생얼 같다는 이야기는 헤겔 H1 인티앰프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정말 절묘한 표현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날씬한 20대 처자의 생얼같은 소리를 들려주는 회사라면 단연 골드문트가 떠오르는데, 사실 골드문트는 파스텔톤의 화장을 아주 옅게 한 젊은 처자라면 헤겔은 정말이지 노메이크업, 천연 그대로의 모습을 들려준다. 그런 까닭에 내가 지금까지 경험해왔던 모든 앰프류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모니터적’인 앰프로 내 기억 속에 남아있게 되었다.

사실상 프로 음향 소리를 듣고 판단할 때 사용하는 모니터 기종은 하이파이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실제로 자연스러운 모니터적인 소리를 들려주는 것은 그 흔한 모니터라는 단어에 비해서는 아주 드물게 느껴질 뿐더러, 오히려 괴상한 음향 특성과 밸런스를 들려주는 기기들이 모니터 스피커라는 이름을 지닌 채 나오기도 한다. 내 자신에게 익숙해진 청취 밸런스 때문이라기보다, 헤겔 앰프의 소리의 모니터적인 정직함과 솔직함은 그 누구에게나 어필할 정도로 객관적이다.

위에서 표현한 것처럼 중역대에 아주 약간의 악센트가 있어서 작은 음량에서도 상당히 듣기 좋게 들린다. 이러한 소음량의 리니어리티는 오디오(특히 스피커)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모니터적인 소리를 집에서 듣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나에게 있어서 매력적인 소리로 들려오지는 않지만, 분명히 이러한 소리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을 것이다.

요요 마에서부터 게이코 리. 리 사오노. 로버트 레빈이 연주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까지 여러 장르의 음악을 들어보았다. 전체적으로 음반에 담겨있는 잔향의 표현. 음색과 대역 밸런스가 아주 정확하게 표현된다. 마치 룸환경이 데드해서 룸의 어쿠스틱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들리는 것이 신기하다. 실제로 헤겔의 앰프들은 ECM 레이블에서 주로 녹음하는 스튜디오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레인보우 스튜디오에서도 사용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ECM 음반을 안 들어 볼 수가 없다.

최근 ECM에서는 아주 멋진 신보가 한 장 발매되었다. 바실리타 브로풀로스와 안나 레흐너. UT 간디가 연주한 MELOS. ECM 특유의 넓게 퍼지는 공간감 안에 맑고 선명하고 깨끗한 피아노와 살아움직이는 듯한 첼로. 그리고 귀에 거스름이 없는 부드러운 ECM 특유의 심벌. ECM 음반을 헤겔 HI 으로 들으니 특유의 아름다움이 더욱 더 아름답게 들린다. 아마도 이 음반을 만든 제작자들도 분명 이러한 소리를 들으며 소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음반에 담겨있는 잔향(공간음)의 표현에 있어서 멀리 사라지는 약음들에 이르기까지 정확한 표현력을 실어서 재생해 낸다. 사실 다른 많은 기기들은 이러한 약음들을 싹뚝 잘라버리는 경향들의 제품들도 많이 있다. 묵직하고 풍부하게 낮게 깔리는 중저역의 질감 있는 소리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앰프보다는 다른 진공관 앰프들에 눈을 돌려볼 것을 권한다. 그렇지만 피아노 음향과 음악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앰프를 소유함으로 해서 가족들이 늘 연주를 하는 영창 피아노가 마치 스타인웨이 피아노로 바뀐 듯한 소리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불필요한 저음역의 공진은 없애며 또한 지저분한 초고역의 노이즈도 없는, 맑고 투명한 중역의 특성을 들려주는 이 앰프만큼 피아노 소리를 잘 들려주는 인티 앰프는 상위 가격대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피아노 소리만 놓고 보자면 재즈부터 클래식에 이르기까지 콘센트라보다 훨씬 더 영롱하며 사실적으로 들린다. 리스닝룸에서 저음의 붕붕거리는 공진음 때문에 중역부터 고역까지 이러한 저음이 마스킹을 해서 전반적으로 소리가 선명하지 못하고 뿌옇게 들리는 분들도 이 앰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출력은 8옴에 120W. 사실 어지간한 대형기에서 무시무시한 저역을 얻을 것이 아니라면 충분한 출력이다(이러한 대형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물론 공간도 커야할 것이다). 언뜻 떠오르는 커플링 스피커는 B&W 805S(사실 이 스피커는 은근히 울리기가 쉬운 편이다). 그리고 사이즈에 비해서 풍부한 저음을 지닌 엘락의 스피커들도 분명 좋은 매칭이 될 것이다. B&W보다 더 모니터적인 PMC 등의 스피커와 듣는다면 음악이 조금 재미없을 듯하고, 부드럽고 풍부한 앰프들이 어울리는 소너스 파베르와도 그리 좋은 매칭을 보여주지는 않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노르웨이가 있는 북유럽 하면 무엇인가 맑고 차갑고 깨끗한 것을 떠올린다. 헤겔 앰프는 그러한 이미지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물론 소리는 추운 그곳의 날씨만큼 차갑지 않다. 개인적으로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등의 북유럽쪽 오디오기기(프로음향 포함)들을 무척 선호하는 편이다. 이곳의 오디오기기들은 우선 가격이 터무니 없이 비싸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디자인이 좋다.

헤겔 앰프 역시 마찬가지다. 사진으로 보면 슬림하고 단순한 것 같지만 유선형의 패널이 실제로 보면 상당히 멋지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볼륨 노브의 움직임이 손으로 조절할 때 조금 급격하게 변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섬세한 볼륨 조절은 리모컨을 사용하는 것이 용이하다.

프리 아웃 등 여러 가지 기능들을 지니고 있지만 실제로 인티 앰프에 있는 프리 아웃을 적극적으로 오랜시간 사용하는 유저들을 거의 본 적이 없으며, 나 또한 잠깐의 시간을 제외하면 프리 아웃을 유용하게 사용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다른 구조적인 내용에 관해서는 딱히 이야기를 할 부분이 없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노르웨이와 멀지 않은 덴마크의 프라이메어 제품들과의 비교도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인데, 다행이 위에서 열거한 대로 짧은 시간에 늘 앰프들을 바꾸어 들어보는 것에 비해서 메인 스피커는 바뀌지 않고 그대로 있기 때문에 기억 속에 남아있는 프라메어 I30 인티 앰프와 비교를 한다면, 소리의 성향은 서로 많이 다르다. 프라이메어는 중역이 헤겔처럼 나와 있지 않고 조금 들어가 있는 편으로서 한층 부드러운 소리를 내어주며 중고역이 보다 밝은 편이다. 그리고 온도감에 있어서 차가운 소리를 내는 밝음도 아니고. 그렇다고 화사한 소리를 들려주는 밝음도 아닌, ‘싱싱한’ 소리를 들려주는 밝은 중고역이 돋보이는, 합리적인 가격의 최상의 소리를 들려주는 제품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헤겔 H1 인티앰프도 이에 상응하는 장점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두세 달 이상 소리를 들어보는 것이 아닌 한 달여의 짧은 시청시간을 통한 인상이지만, 이렇게 모니터적인 소리를 강렬하게 들려주는 앰프는 거의 만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녹음이 훌륭한 음반들을 들으면 헤겔의 장점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한편 50-60년대 몇몇 과거의 음반들을 들어보면 미처 듣지 못했던 단점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상급인 H4 파워 앰프는 이에 비해 저음이 풍부하게 나오는 편이지만, 안타깝게도 저음의 반응이 중고역보다 늦다.

이러한 스피드감은 오히려 하급기인 H1 인티앰프가 훨씬 더 좋은 편이며, 그리 넓지 않는 공간에서 성능이 좋은 스피커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H1은 말 그대로 완벽한 중용의 밸런스를 지닌, 기본적으로 앰프가 지녀야 할 덕목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좋은 앰프의 표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llhtmlll-